부활절 - 뉴욕영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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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열ㆍ2020-04-13관련링크
본문
4/12/2020
본문말씀 : 요 20:24-29
제 목 : 부활신앙으로 비상하세요
김경열 목사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John 20:29)]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모든 분들에게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치료하심을 기원합니다.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이렇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게 했습니다.
잘 나가던 경제인도, 큰 소리 치던 정치인도,
똑똑한 지식에게도 침투했습니다.
군인도 뚫렸고, 경찰이라고 무서워하지 않고,
의사라고 피해가지 않았으며,
예쁘다고 뽐내는 사람들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젊었다고, 늙었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피해가지도 않았고, 국가의 총리가 쓰러지고,
국경을 폐쇄되어 그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작은 힘 앞에 무능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생명이며 본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에서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부활절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받는
최대의 은총의 날이요, 기쁨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만약 기독교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신앙이 존재할 가치도 없고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했습니다.(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4)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메카성에 있는 마호멧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성지라고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빈 무덤입니다.
주님은 비석도 없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도 일어나고, 가정도, 민족도
비상하며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암흑이 번져 초토화된 지구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마다
절망하고 낙심했던 자들이 다시 회복되었고,
실패하고 낙심한 제자들이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다시 용기를 얻었고
확신을 얻었고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부활의 아침!
여러분들의 환경 속에도
돌문이 열리듯이 인생의 앞길이 열려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비상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경에는 부활의 목격자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눈물을 씻어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빈 무덤을 찾아가 울고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찾는 예수는 살아나서
지금 네 앞에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 주셨습니다.(요 20:15)
(2) 베드로는 십자가에 비참하게 달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갔다가 부활의 주님을 목격했고,
11제자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고전 15:1-8)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주님과 만나서
평안을 회복하고 크고 작은 문제로
상처난 삶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본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중에
도마에 대한 사건입니다.
도마는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불신앙의 모델입니다.
이런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평강을 주셨습니다.(26절)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6)
우리는 보통 평화를 말할 때에
‘샬롬’이라고 합니다.
‘샬롬’은 평상시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하신 단어는 ‘샬롬’이 아니라
'평강'이라고 하셨습니다.
‘평강’이란 ‘에이레네’란 말로서 그 의미는
지금 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가
서로 휴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전쟁 때에는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순간입니다.
전쟁은 두려움과 불안의 시간입니다.
그런 순간에 휴전을 합니다.
휴전한 그 순간이 바로 ‘평강’이란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평강입니다.
2) 주님의 본체가 평강입니다.
(1) 영혼의 평강이요, 마음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 위에서
부활의 주님이 내려 주시는 참 평강입니다.
주님이 오시던 날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했고(눅 2:14)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요 14:27)
또한 부활하셔서 첫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혼과 육체와
마음 속에 임하는 전인적인 참 평안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좋은 환경과 많은 소유를 가지고도
평안이 없는 사람 많습니다.
평안이 없는 가정도 많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평안한 사람인지 아닌지,
행복한 사람인지, 근심이 있는지, 실패를 했는지
얼굴에서 다 나타납니다.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40세 이전의 얼굴은 부모가 준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0세가 넘으면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얼굴이 변한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각료로 추천했답니다.
그런데 거절을 했는데 이유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 도대체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탐욕스럽게 산 사람은
깨끗한 얼굴이 없어지고 추한 얼굴로 변해 버립니다.
평강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의욕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불평이 많고 신경질적이며
남의 장점보다 약점만 보고 허물만 봅니다.
왜 그런가요? 평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얼굴인가요?
거울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마음을 얼굴을 통해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평안은
부활하신 주님만이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할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고
공부 할 기회를 놓친 사람은 지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던 사람은 권력이라고 할 것이고
병든 사람은 건강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있어야할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도 평안이 없어서
근심과 걱정, 불안에 떨면서 잠을 못 자고
불면증에 빠져 있다면 그 소유가 무슨 행복이 되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가장 먼저 받은 은혜가 뭡니까?
저는 평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불안한 자리에서 평안을 얻었고
근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워 떨리는 자리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화니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소경이 되어 평생을 살았습니다.
세상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시간에
이런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찬송)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평안입니다.
여러분도 부활신앙으로
참 평안을 누리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2. 부활의 주님은 도마의 의심을 해결해 주셨습니다.(27절)
부활의 주님은 의심으로 꽉 차 있는 도마를 찾으셔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1) 도마의 의심을 보세요.(25)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하자
의심 많은 사람 도마는
"내가 직접 그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25)
여드레가 지나 제자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이 닫혔는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면서
그 현장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26)
그리고 도마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봐라.
손을 내미시면서 못자국난 손을 만져 보라.
너는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
고 하면서 도마의 마음 속에 모든 의심을
다 풀어 주셨습니다.
의심하던 마음에도 부활의 주님과 만나면
확신과 소망으로 넘칩니다.
의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의심은 가정과 사회와 영혼을 무참히 파괴합니다.
의심하면서 기도하면 상달되지 않습니다.
의심하며 믿음생활 한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의심이 끼어들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봤습니다.
아주 지성인이고 사회적인 명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인을 의심하며 아주 비인격적인 사람이 됩니다.
한번은 전화를 늦게 받았다고 옷을 다 벗겨놓고
어디 갔다 왔느냐? 누굴 만났느냐? 뭐했느냐?
정신적인 고문을 한답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의처증이란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또 부인의 의부증은 더 무섭답니다.
다른 여자하고 대화만 해도 의심 한답니다.
회사에 전화를 여직원이 받았는데
당신 좋아하는 애라며 밤새 싸웠답니다.
길을 지나가다 다른 여자에게 고개만 돌려도 난리가 난답니다.
그런 것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사랑 두 번만 받으면 정신병자 되겠습니다.
결국은 서로 불행하게 헤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2) 의심은 모든 관계를 뒤틀어 놓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릴 때,
무서운 불신의 삶으로 변화가 됩니다.
사회도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하면
이 사회는 파괴되고 맙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의심이 있다면
하나님께 어떠한 교제도 응답도
평안도 축복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의심은 약으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약방에 약이 그렇게 많아도
의심을 치료하는 약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처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의심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심으로 꽉 차 있는 도마의 마음 속에도
부활하신 주님과 만날 때 의심을 풀어 주었고
믿음과 확신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서로 불신의 관계에 있습니까?
이웃과 서로 불신합니까?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일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처럼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으로 변화되길 축복합니다.
3.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을 보세요.(28절)
1) 확실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도마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참혹하게 죽으시는 것을
분명하게 목격했는데 그 주님이 살아났다고 하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도마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믿음, 응답의 확신,
천국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오는 것입니다.
불확실하게 의심하던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첫 고백이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확신을 고백했습니다.(28절)
믿음은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어야 하나님께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100세에 돌아가신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이
방송이나 신문에 나거든 그 기사를 믿지 마세요.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주소를 옮긴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 있는 고백입니까?
성도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으로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고후 5:1)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15:20)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도
"죽음은 영원한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부활신앙으로 승리를 고백하며
비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여러분! 확신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2) 또한,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29절)
도마가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못자국 난 손을
만져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도마에게
만져 보라고 확인시키시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신앙은,
(1)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2)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3)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배도 영이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도, 헌신도, 충성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삶에 지친 인생들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허락하시며
더 좋은 목적을 위해 살도록 희망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삶을 포기 하리 만큼 힘들고 지쳐서
낙심과 좌절로 실의에 빠져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아직도 천국의 소망이 없는 신앙 생활하는 이들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 되셨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다시 오십니다.
힘을 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도마처럼 평안을 회복하고 의심을 물리치고
믿음의 확신을 회복하시어
비상(飛上) 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본문말씀 : 요 20:24-29
제 목 : 부활신앙으로 비상하세요
김경열 목사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Then Jesus told him, “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John 20:29)]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 받는 모든 분들에게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치료하심을 기원합니다.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이렇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게 했습니다.
잘 나가던 경제인도, 큰 소리 치던 정치인도,
똑똑한 지식에게도 침투했습니다.
군인도 뚫렸고, 경찰이라고 무서워하지 않고,
의사라고 피해가지 않았으며,
예쁘다고 뽐내는 사람들이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젊었다고, 늙었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피해가지도 않았고, 국가의 총리가 쓰러지고,
국경을 폐쇄되어 그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작은 힘 앞에 무능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생명이며 본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에서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부활절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받는
최대의 은총의 날이요, 기쁨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만약 기독교에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신앙이 존재할 가치도 없고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고 했습니다.(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5:14)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메카성에 있는 마호멧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성지라고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빈 무덤입니다.
주님은 비석도 없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신앙도 일어나고, 가정도, 민족도
비상하며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암흑이 번져 초토화된 지구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마다
절망하고 낙심했던 자들이 다시 회복되었고,
실패하고 낙심한 제자들이 일어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다시 용기를 얻었고
확신을 얻었고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부활의 아침!
여러분들의 환경 속에도
돌문이 열리듯이 인생의 앞길이 열려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비상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경에는 부활의 목격자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1)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눈물을 씻어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빈 무덤을 찾아가 울고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셔서,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네가 찾는 예수는 살아나서
지금 네 앞에 있지 않느냐고 위로해 주셨습니다.(요 20:15)
(2) 베드로는 십자가에 비참하게 달리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다시 고기 잡으러 갔다가 부활의 주님을 목격했고,
11제자와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고전 15:1-8)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부활의 주님과 만나서
평안을 회복하고 크고 작은 문제로
상처난 삶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본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 중에
도마에 대한 사건입니다.
도마는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불신앙의 모델입니다.
이런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평강을 주셨습니다.(26절)
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6)
우리는 보통 평화를 말할 때에
‘샬롬’이라고 합니다.
‘샬롬’은 평상시 평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사용하신 단어는 ‘샬롬’이 아니라
'평강'이라고 하셨습니다.
‘평강’이란 ‘에이레네’란 말로서 그 의미는
지금 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다가
서로 휴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전쟁 때에는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순간입니다.
전쟁은 두려움과 불안의 시간입니다.
그런 순간에 휴전을 합니다.
휴전한 그 순간이 바로 ‘평강’이란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평강입니다.
2) 주님의 본체가 평강입니다.
(1) 영혼의 평강이요, 마음의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환경에서 일시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평안이 아니라 하늘 위에서
부활의 주님이 내려 주시는 참 평강입니다.
주님이 오시던 날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했고(눅 2:14)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요 14:27)
또한 부활하셔서 첫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혼과 육체와
마음 속에 임하는 전인적인 참 평안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좋은 환경과 많은 소유를 가지고도
평안이 없는 사람 많습니다.
평안이 없는 가정도 많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평안한 사람인지 아닌지,
행복한 사람인지, 근심이 있는지, 실패를 했는지
얼굴에서 다 나타납니다.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40세 이전의 얼굴은 부모가 준 얼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0세가 넘으면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얼굴이 변한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때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각료로 추천했답니다.
그런데 거절을 했는데 이유는
그 사람의 얼굴에서 도대체
진실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탐욕스럽게 산 사람은
깨끗한 얼굴이 없어지고 추한 얼굴로 변해 버립니다.
평강이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의욕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불평이 많고 신경질적이며
남의 장점보다 약점만 보고 허물만 봅니다.
왜 그런가요? 평강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얼굴인가요?
거울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마음을 얼굴을 통해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평안은
부활하신 주님만이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이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할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고
공부 할 기회를 놓친 사람은 지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던 사람은 권력이라고 할 것이고
병든 사람은 건강이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있어야할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도 평안이 없어서
근심과 걱정, 불안에 떨면서 잠을 못 자고
불면증에 빠져 있다면 그 소유가 무슨 행복이 되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 믿고 가장 먼저 받은 은혜가 뭡니까?
저는 평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불안한 자리에서 평안을 얻었고
근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워 떨리는 자리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화니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소경이 되어 평생을 살았습니다.
세상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시간에
이런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찬송)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이것이 진정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평안입니다.
여러분도 부활신앙으로
참 평안을 누리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2. 부활의 주님은 도마의 의심을 해결해 주셨습니다.(27절)
부활의 주님은 의심으로 꽉 차 있는 도마를 찾으셔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1) 도마의 의심을 보세요.(25)
다른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하자
의심 많은 사람 도마는
"내가 직접 그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25)
여드레가 지나 제자들이 다 같이 모였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이 닫혔는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면서
그 현장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26)
그리고 도마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봐라.
손을 내미시면서 못자국난 손을 만져 보라.
너는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
고 하면서 도마의 마음 속에 모든 의심을
다 풀어 주셨습니다.
의심하던 마음에도 부활의 주님과 만나면
확신과 소망으로 넘칩니다.
의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의심은 가정과 사회와 영혼을 무참히 파괴합니다.
의심하면서 기도하면 상달되지 않습니다.
의심하며 믿음생활 한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관계나 인간관계에서 의심이 끼어들면
모든 것이 파괴됩니다.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그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 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봤습니다.
아주 지성인이고 사회적인 명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인을 의심하며 아주 비인격적인 사람이 됩니다.
한번은 전화를 늦게 받았다고 옷을 다 벗겨놓고
어디 갔다 왔느냐? 누굴 만났느냐? 뭐했느냐?
정신적인 고문을 한답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의처증이란 정신적인 질병입니다.
또 부인의 의부증은 더 무섭답니다.
다른 여자하고 대화만 해도 의심 한답니다.
회사에 전화를 여직원이 받았는데
당신 좋아하는 애라며 밤새 싸웠답니다.
길을 지나가다 다른 여자에게 고개만 돌려도 난리가 난답니다.
그런 것이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랍니다.
이런 사랑 두 번만 받으면 정신병자 되겠습니다.
결국은 서로 불행하게 헤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2) 의심은 모든 관계를 뒤틀어 놓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릴 때,
무서운 불신의 삶으로 변화가 됩니다.
사회도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하면
이 사회는 파괴되고 맙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의심이 있다면
하나님께 어떠한 교제도 응답도
평안도 축복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의심은 약으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약방에 약이 그렇게 많아도
의심을 치료하는 약은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처방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의심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심으로 꽉 차 있는 도마의 마음 속에도
부활하신 주님과 만날 때 의심을 풀어 주었고
믿음과 확신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서로 불신의 관계에 있습니까?
이웃과 서로 불신합니까?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일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처럼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으로 변화되길 축복합니다.
3. 부활의 주님을 만난 도마의 고백을 보세요.(28절)
1) 확실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도마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참혹하게 죽으시는 것을
분명하게 목격했는데 그 주님이 살아났다고 하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도마는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믿음, 응답의 확신,
천국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오는 것입니다.
불확실하게 의심하던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첫 고백이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확신을 고백했습니다.(28절)
믿음은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어야 하나님께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100세에 돌아가신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이
방송이나 신문에 나거든 그 기사를 믿지 마세요.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주소를 옮긴 것입니다."
얼마나 확신 있는 고백입니까?
성도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으로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지으신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고후 5:1)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전 15:20)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던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도
"죽음은 영원한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부활신앙으로 승리를 고백하며
비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전 15:58)
여러분! 확신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6:24)
2) 또한,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29절)
도마가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못자국 난 손을
만져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도마에게
만져 보라고 확인시키시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신앙은,
(1)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2)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3)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배도 영이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도, 헌신도, 충성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삶에 지친 인생들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허락하시며
더 좋은 목적을 위해 살도록 희망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삶을 포기 하리 만큼 힘들고 지쳐서
낙심과 좌절로 실의에 빠져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아직도 천국의 소망이 없는 신앙 생활하는 이들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 되셨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곧 다시 오십니다.
힘을 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도마처럼 평안을 회복하고 의심을 물리치고
믿음의 확신을 회복하시어
비상(飛上) 하시길 축복합니다.
평생감사
뉴욕영안교회 드림
(917-963-9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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