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설교에 대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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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09-04-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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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이 지난 월요일 아침이다.
부활절인 어제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새벽부터 연합으로 모인 새벽 예배가 있었고 각 지교회마다 부활절에 관한 설교가 강대상에서 선포됐으며 그동안 준비된 찬양대의 특별순서와 각 교육기관 어린이들의 특순과 삶은 계란을 포함한 부활절 만찬과 그리고 등등등.
그런데 그 모든 행사들이 지나간 다음날인 지금 나의 마음에 과연 부활에 관한 그 무엇이 아직 있는가 ?
만약 없다면 부활절은 달력에 표시된 절기 행사로 끝나고야 마는가 ?
부활절은 어제 하루로 끝났고 오늘 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마는가 ?
여기서 부활절에 관한 교회 행사 - 특히나 설교에 관해 유감을 표시하고 싶다.
먼저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나 대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나 그 내용은 별반 차이없는 대동소이함을 알리고 싶다.
또한 작년이나 십년 이십년전의 설교도 그러하리라.
무엇을 말하는가 ?
대개의 설교들은 부활의 증거들을 먼저 말한다.
즉 빈 무덤, 많은 증인들, 천사들의 증거, 생전에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하신 예수님의 말씀, 잘 정리된 세마포등을 증거라고 제시하며 우리 모두는 귀에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는 말씀이 부활의 증거이므로 말씀을 확실히 배우면 부활을 알게 될 것
이라고 언급을 하나 어떤 내용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과연 위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들이 얼마만큼 우리들의 마음에 확증으로 다가오는가 ?아무리 설교시에 아멘으로 화답한들 고작 24시간이 지난 이 월요일 아침에 나에게 남은것은 과연 무엇인가 ?
말씀을 확실히 배우라고 했는데 어떤 내용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
답답한 마음으로 말씀을 다시 보고 싶다.
첫째 , 부활후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나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엠마오 가는길의 두제자는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시고 저희와 동행함에
도 불구하고 눈이 가리워져 알지를 못했다 ( 눅 24 ; 15,16)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는 에수의 서신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
고 동산지기로 간주했다. ( 요 20 ; 14,15)
둘째 , 저희들의 눈이 밝아져 에수님을 알아본 순간 예수님은 저희에게서 보
이지 않게 사라지거나( 눅24;31)마리아에게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다. ( 요 20; 17)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고 성경 말씀에 기록되었는가 ?
바로 육체를 입고 이 세상( 물질세계 , 3차원의 세계 )에 오셨던 에수님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시고 영광( 영의 세계 , 4차원의 세계)을 입으셨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아직 육신(물질세계)에 속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나 마리아가 알아 보지를 못했고 저들이 깨닫는 순간 사라지거나 만지지 못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설교가 아직도 육적인 증거( 위에 예를 든 대개의 설교상의 증거들)를 말씀에서 찾아내어 우리에게 믿으라하고 부활의 확신을 가지라고 한다.
2천년전의 이 사건에 내가 아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 영적세계) 에깨달을 수 있는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까 ?
엠마오 도상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자.
예수님이 사라지자 두 제자( 한 사람의 이름은 그로바다) 는 토론을 시작한다.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눅 24; 32 )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살아있고 역동하며 지금 확신되어질 나 자신의 부활의 증거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 역정중에서 그 어느 때든지 마음이 뜨거워진때
_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 들이고 믿기시작한때 , 그 은헤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흐르던떄 , 모태신앙으로 습관적인 신앙 생활을 하다 처음으로 에수님을 만난 체험으로 변화될때 , 그후 말씀을 읽을때나 들을때 , 기도를 하며 마음에 뜨거움이 올때 , 찬양을 하거나 찬양대의 찬양을 들을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격이 올때 _
그 어느때를 막론하고 우리의 마음에 뜨거움이 오며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흐르는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만지신 것이며 그 변화를 통하여 우리는 부활을 확신할 수있고 사람들에게 과감히 " 십자가에서 죽으신 에수님은 부활하셨고 아직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라고 선언할수 있는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육적인 증거들을 찾는 마음이 변화되기를 바란다.
육적인 교회의 크기와 화려함과 교인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의 눈으로 보이는 사람들앞의 교회 봉사가 아니라
영적인 부활 사건이 영적으로 보이고 확신되는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교회 봉사를 더 원하는
그런 성숙한 믿음이 확산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고
그러기에 그 하나님을 우리는 경외( respect & fear) 하기 때문이다.
부활절인 어제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새벽부터 연합으로 모인 새벽 예배가 있었고 각 지교회마다 부활절에 관한 설교가 강대상에서 선포됐으며 그동안 준비된 찬양대의 특별순서와 각 교육기관 어린이들의 특순과 삶은 계란을 포함한 부활절 만찬과 그리고 등등등.
그런데 그 모든 행사들이 지나간 다음날인 지금 나의 마음에 과연 부활에 관한 그 무엇이 아직 있는가 ?
만약 없다면 부활절은 달력에 표시된 절기 행사로 끝나고야 마는가 ?
부활절은 어제 하루로 끝났고 오늘 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마는가 ?
여기서 부활절에 관한 교회 행사 - 특히나 설교에 관해 유감을 표시하고 싶다.
먼저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나 대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나 그 내용은 별반 차이없는 대동소이함을 알리고 싶다.
또한 작년이나 십년 이십년전의 설교도 그러하리라.
무엇을 말하는가 ?
대개의 설교들은 부활의 증거들을 먼저 말한다.
즉 빈 무덤, 많은 증인들, 천사들의 증거, 생전에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하신 예수님의 말씀, 잘 정리된 세마포등을 증거라고 제시하며 우리 모두는 귀에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는 말씀이 부활의 증거이므로 말씀을 확실히 배우면 부활을 알게 될 것
이라고 언급을 하나 어떤 내용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과연 위의 증거라고 제시한 것들이 얼마만큼 우리들의 마음에 확증으로 다가오는가 ?아무리 설교시에 아멘으로 화답한들 고작 24시간이 지난 이 월요일 아침에 나에게 남은것은 과연 무엇인가 ?
말씀을 확실히 배우라고 했는데 어떤 내용을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
답답한 마음으로 말씀을 다시 보고 싶다.
첫째 , 부활후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나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엠마오 가는길의 두제자는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시고 저희와 동행함에
도 불구하고 눈이 가리워져 알지를 못했다 ( 눅 24 ; 15,16)
무덤으로 달려간 마리아는 에수의 서신것을 보나 예수신줄 알지 못하
고 동산지기로 간주했다. ( 요 20 ; 14,15)
둘째 , 저희들의 눈이 밝아져 에수님을 알아본 순간 예수님은 저희에게서 보
이지 않게 사라지거나( 눅24;31)마리아에게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다. ( 요 20; 17)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고 성경 말씀에 기록되었는가 ?
바로 육체를 입고 이 세상( 물질세계 , 3차원의 세계 )에 오셨던 에수님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시고 영광( 영의 세계 , 4차원의 세계)을 입으셨다는 사실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아직 육신(물질세계)에 속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나 마리아가 알아 보지를 못했고 저들이 깨닫는 순간 사라지거나 만지지 못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설교가 아직도 육적인 증거( 위에 예를 든 대개의 설교상의 증거들)를 말씀에서 찾아내어 우리에게 믿으라하고 부활의 확신을 가지라고 한다.
2천년전의 이 사건에 내가 아는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마음( 영적세계) 에깨달을 수 있는 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을까 ?
엠마오 도상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자.
예수님이 사라지자 두 제자( 한 사람의 이름은 그로바다) 는 토론을 시작한다.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눅 24; 32 )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살아있고 역동하며 지금 확신되어질 나 자신의 부활의 증거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 역정중에서 그 어느 때든지 마음이 뜨거워진때
_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 들이고 믿기시작한때 , 그 은헤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흐르던떄 , 모태신앙으로 습관적인 신앙 생활을 하다 처음으로 에수님을 만난 체험으로 변화될때 , 그후 말씀을 읽을때나 들을때 , 기도를 하며 마음에 뜨거움이 올때 , 찬양을 하거나 찬양대의 찬양을 들을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격이 올때 _
그 어느때를 막론하고 우리의 마음에 뜨거움이 오며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눈물이 흐르는 사건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만지신 것이며 그 변화를 통하여 우리는 부활을 확신할 수있고 사람들에게 과감히 " 십자가에서 죽으신 에수님은 부활하셨고 아직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라고 선언할수 있는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육적인 증거들을 찾는 마음이 변화되기를 바란다.
육적인 교회의 크기와 화려함과 교인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의 눈으로 보이는 사람들앞의 교회 봉사가 아니라
영적인 부활 사건이 영적으로 보이고 확신되는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교회 봉사를 더 원하는
그런 성숙한 믿음이 확산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고
그러기에 그 하나님을 우리는 경외( respect & fear)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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