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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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09-12-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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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라는 이름은 흔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그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실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서열로 거명은 되나 사실 구약에서 나타나는 이삭의 활약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에는 한참이나 못미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이 이삭에 대해 생각이 머므르고 그래서 성경을 통해 이삭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1) 아브라함 100세에 사라의 몸에서 출생한 아들이다.(창21:-3,마1:2).
(2) 성품이 온유하고 종용하여 농업에만 전심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같이 다사한 생활을 하지 않고 평온 하였다.
(3) 부친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고 잡아 제사하려고할 때 그는 조금도 원망이나 반항이 없었다.(창20:1-5,22:2-13).
(4)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동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24:67, 25:20-26).
(5) 흉년을 피하여 그랄에 거하는 중 그 아내를 누이라 하였다가 탄로되고 농사로 거부가 되니 그곳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우고 다른 곳에 옮겨 팠더니 또 메우고 이같이 4차나 따라 다니며 메웠다. 그 다음에 파매 메우지 않는고로 그 우물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다(창26:1).
(6) 나이 많아서 장자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리브가를 통해 야곱이 알고 가장하여 들어 가니 눈이 어두운 이삭은 속아서 축복하였고 에서가 축복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 하여 야곱은 급기야 하란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피신하게 된다.(창27:1-45).
(7) 180세에 헤브론에서 별세하니 막벨라굴에 장사하였다(창35:28-29).
그 런데 히브리서 11장 20절에 보면 "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우리가 이 사건을 창세기 27장을 통해 보면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연속됨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믿음으로 축복하는 일과 거짓말이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이삭의 믿음이 그를 이스라엘 열조의 하나님을 부를때 그 이름이 거명되는 믿음일 수 있는가 ?
27장 1절에 보니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함으로 자신의 늙어감을 실감한 이삭은 평소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 하였으므로 사랑하였던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하고 있고 이를 엿들은 리브가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창 25; 22,23)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일을 추진하기에 이르른다.
이런 리브가의 거짓 행동에 동의한 야곱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형 에서의 의복과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위장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기에 이르른다. 후에 등장한 에서의 질문으로 야곱의 위장을 깨달은 이삭의 행동이 어떠한가 ?
"아버지께서 니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6절)라는 에서의 울부짖음에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7절)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3절)라며 상황을 받아 들이는 야곱의 모습.
비록 야곱의 위장 사기극으로 주어진 장자의 축복이지만 그 사건을 깨닫고는 이를 번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이삭의 모습이다. 비록 내 논리에 맞지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예정을 받아 들이고 굴복하는 것이며 이런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이삭의 믿음이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 개인의 삶의 모습속에서
교회의 분쟁속에서
내 논리에 맞지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발생하고 되어지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예정임을 깨닫고
나의 욕심과 고집을 포기하고 이삭처럼 받아 들일수는 없을까 ?
이삭의 평생에 처음으로 그의 믿음이 표출된 이 사건으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열조의 하나님을 부를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으로 그 서열에 포함되어 그 이름이 불리어지기에 충분한 인물이 된 것임을 깨닫는다.
(1) 아브라함 100세에 사라의 몸에서 출생한 아들이다.(창21:-3,마1:2).
(2) 성품이 온유하고 종용하여 농업에만 전심하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같이 다사한 생활을 하지 않고 평온 하였다.
(3) 부친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고 잡아 제사하려고할 때 그는 조금도 원망이나 반항이 없었다.(창20:1-5,22:2-13).
(4) 40세에 외종형 부두엘의 딸 리브가를 아내로 취하여 60세에 쌍동이를 낳으니 곧 에서와 야곱이다(창24:67, 25:20-26).
(5) 흉년을 피하여 그랄에 거하는 중 그 아내를 누이라 하였다가 탄로되고 농사로 거부가 되니 그곳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우고 다른 곳에 옮겨 팠더니 또 메우고 이같이 4차나 따라 다니며 메웠다. 그 다음에 파매 메우지 않는고로 그 우물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였다(창26:1).
(6) 나이 많아서 장자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리브가를 통해 야곱이 알고 가장하여 들어 가니 눈이 어두운 이삭은 속아서 축복하였고 에서가 축복을 빼앗기고 야곱을 죽이려 하여 야곱은 급기야 하란의 외삼촌인 라반에게 피신하게 된다.(창27:1-45).
(7) 180세에 헤브론에서 별세하니 막벨라굴에 장사하였다(창35:28-29).
그 런데 히브리서 11장 20절에 보면 "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우리가 이 사건을 창세기 27장을 통해 보면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연속됨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믿음으로 축복하는 일과 거짓말이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이삭의 믿음이 그를 이스라엘 열조의 하나님을 부를때 그 이름이 거명되는 믿음일 수 있는가 ?
27장 1절에 보니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함으로 자신의 늙어감을 실감한 이삭은 평소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 하였으므로 사랑하였던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하고 있고 이를 엿들은 리브가는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창 25; 22,23)을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일을 추진하기에 이르른다.
이런 리브가의 거짓 행동에 동의한 야곱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형 에서의 의복과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위장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기에 이르른다. 후에 등장한 에서의 질문으로 야곱의 위장을 깨달은 이삭의 행동이 어떠한가 ?
"아버지께서 니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6절)라는 에서의 울부짖음에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7절)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3절)라며 상황을 받아 들이는 야곱의 모습.
비록 야곱의 위장 사기극으로 주어진 장자의 축복이지만 그 사건을 깨닫고는 이를 번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 이삭의 모습이다. 비록 내 논리에 맞지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예정을 받아 들이고 굴복하는 것이며 이런 하나님께 순종한 것이 이삭의 믿음이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 개인의 삶의 모습속에서
교회의 분쟁속에서
내 논리에 맞지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어떤 일이 발생하고 되어지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예정임을 깨닫고
나의 욕심과 고집을 포기하고 이삭처럼 받아 들일수는 없을까 ?
이삭의 평생에 처음으로 그의 믿음이 표출된 이 사건으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열조의 하나님을 부를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 이삭의 하나님 , 야곱의 하나님으로 그 서열에 포함되어 그 이름이 불리어지기에 충분한 인물이 된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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