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라합과 여리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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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ㆍ2010-01-1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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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29 - 30절을 읽으니 무언가 의문이 생긴다.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저희가 홍해를 건넌후 여리고성에 도착했을때 여호수아가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고 그들이 기생 라합을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성을 탈출할 수 있게 되는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6장에 가서야 제사장 일곱이 앞장서고 언약궤가 뒤따르며 무장한 자들이 그 뒤를 따라서 여리고성을 7번 도는 사건의 기록이 있음도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0-31절에는 이 시간상의 순서가 거꾸로 기록되어 있다. 즉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녀 성이 무너진(30절) 기록후에 기생 라합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31절 )이다. 의도적으로 이런 순서를 나열한 히브리서 기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바대로 11장이 믿음장이라면 어떤 믿음의 순서내지는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29절에 보니 이스라엘인들은 믿음으로 건넜고 애굽인들은 시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출 14;21 )"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순식간에 된것이 아니다. 동풍이 밤새도록 분 후에야 바닷물이 물러갔다고 했으니 죽음을 생각하던 이스라엘인들의 눈으로 밤새도록 지켜봤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을만한 증거를 충분히 주신후에 믿게 하신다.
그런데 이를 보고도 어떤이(이스라엘인) 들은 믿음으로 건넜고
어떤이(애굽인)들은 시험하며 건너다 빠져죽는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구속사를 보여 주셨으나
어떤이들은 이를 믿음으로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 영생을 얻고
어떤이들은 이를 시험하다가 육신의 세계에 머므르며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보기에 누구나 할 수 있게 여겨지나
하나님은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며 믿음의 초보라고 하신다.
30절에 보니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칠일 동안 두루 다니는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걷는 것만큼 간단하고 쉬운 것이 없는데 걸을때도 믿음이 필요한가?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워도 우리가 게을리 하는 것이 있다.
"말씀 읽는 것 "과 "기도하는 것'이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은 쫓아 내셨고 자신들이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가를 물었을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였던가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 ) "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 안하는 것이 말씀 읽기와 기도이다.
특히 현대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간의 갈등과 분쟁등 문제점의 거의 대부분은 이에서 발생한다.
여러 글에서 필자가 거듭 강조했거니와 목회자들은 매일 아침 새벽 기도회부터 시작하여 적어도 4 시간은 골방에서 말씀 읽기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런 시간후에 교회일을 시작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영적인 걸음후에 예배시에 말씀이 선포될때 여리고성이 무너짐같이 듣는이 들의 심령이 쪼개지며 변화하는 기사가 생김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런 영적인 걸음이 없이 교회를 부흥시키려하니 이리저리 세미나나 기웃거리고 돈으로 박사 학위를 사서 박사 가운을 입고 힘내어 설교를 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에 힘쓰는 목회자들이 늘어 난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LA 의 모 한인 신학교에 현재 연방이민 수사국에서 학사 과정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가 들어가고 구속 단계에 이른 사건은 신문에 이미 보도된 사실이다.)
31절에보면 기생 라합이 등장한다.
그녀는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나
그 성안의 거주민중에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멸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 ; 10)" 라합을 비롯한 여리고성의 모든 거주민들은 이 새로 등장한 민족의 신 여호와가 그 민족을 통하여 이룩한 놀라운 일들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2;11) 이라고 summit 하였으나
다른 거주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against 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은 나 자신과 struggling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 들이고(홍해를 건너고)
쉽고 간단한 말씀 읽기와 기도로 영적 걸음을 하루하루 걸어가며(여리고성을 도는 것)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되어진 일들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일들인가 ( 필연 )
아니면 나 자신의 능력이나 우연이 되어진 것으로 받아 들이고 거부할 것인가가
최종 믿음의 모습이다.
나의 나 된것이 주의 은혜요 그러므로 마음 깊이 순종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천성을 향해 걸어가기를 원한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 30-31절에는 이 시간상의 순서가 거꾸로 기록되어 있다. 즉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녀 성이 무너진(30절) 기록후에 기생 라합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31절 )이다. 의도적으로 이런 순서를 나열한 히브리서 기자의 의도는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바대로 11장이 믿음장이라면 어떤 믿음의 순서내지는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29절에 보니 이스라엘인들은 믿음으로 건넜고 애굽인들은 시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출 14;21 )"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순식간에 된것이 아니다. 동풍이 밤새도록 분 후에야 바닷물이 물러갔다고 했으니 죽음을 생각하던 이스라엘인들의 눈으로 밤새도록 지켜봤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을만한 증거를 충분히 주신후에 믿게 하신다.
그런데 이를 보고도 어떤이(이스라엘인) 들은 믿음으로 건넜고
어떤이(애굽인)들은 시험하며 건너다 빠져죽는다.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구속사를 보여 주셨으나
어떤이들은 이를 믿음으로 죽음의 요단강을 건너 영생을 얻고
어떤이들은 이를 시험하다가 육신의 세계에 머므르며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보기에 누구나 할 수 있게 여겨지나
하나님은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며 믿음의 초보라고 하신다.
30절에 보니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녔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칠일 동안 두루 다니는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걷는 것만큼 간단하고 쉬운 것이 없는데 걸을때도 믿음이 필요한가?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워도 우리가 게을리 하는 것이 있다.
"말씀 읽는 것 "과 "기도하는 것'이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제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은 쫓아 내셨고 자신들이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가를 물었을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였던가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막 9;29 ) "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 안하는 것이 말씀 읽기와 기도이다.
특히 현대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간의 갈등과 분쟁등 문제점의 거의 대부분은 이에서 발생한다.
여러 글에서 필자가 거듭 강조했거니와 목회자들은 매일 아침 새벽 기도회부터 시작하여 적어도 4 시간은 골방에서 말씀 읽기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런 시간후에 교회일을 시작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런 영적인 걸음후에 예배시에 말씀이 선포될때 여리고성이 무너짐같이 듣는이 들의 심령이 쪼개지며 변화하는 기사가 생김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런 영적인 걸음이 없이 교회를 부흥시키려하니 이리저리 세미나나 기웃거리고 돈으로 박사 학위를 사서 박사 가운을 입고 힘내어 설교를 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에 힘쓰는 목회자들이 늘어 난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LA 의 모 한인 신학교에 현재 연방이민 수사국에서 학사 과정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가 들어가고 구속 단계에 이른 사건은 신문에 이미 보도된 사실이다.)
31절에보면 기생 라합이 등장한다.
그녀는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나
그 성안의 거주민중에 순종치 아니한 자들은 멸망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수 2 ; 10)" 라합을 비롯한 여리고성의 모든 거주민들은 이 새로 등장한 민족의 신 여호와가 그 민족을 통하여 이룩한 놀라운 일들을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라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2;11) 이라고 summit 하였으나
다른 거주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against 하였다는 것이다.
믿음은 나 자신과 struggling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 들이고(홍해를 건너고)
쉽고 간단한 말씀 읽기와 기도로 영적 걸음을 하루하루 걸어가며(여리고성을 도는 것)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되어진 일들이 하나님이 이룩하신 일들인가 ( 필연 )
아니면 나 자신의 능력이나 우연이 되어진 것으로 받아 들이고 거부할 것인가가
최종 믿음의 모습이다.
나의 나 된것이 주의 은혜요 그러므로 마음 깊이 순종하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천성을 향해 걸어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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