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과연 무속 종교인가 ?
페이지 정보
허경조ㆍ2011-03-21관련링크
본문
" 저런 식의 발언을 하는 신앙의 근원은 샤머니즘인 것이다. 재앙으로 벌하고 풍요나 성공으로 상을 주는 신, 한국기독교는 엄밀히 표현하자면 의식위주의 유교와 기복적 샤머니즘에 의해 변질된 기독교인 것이다. 그래서 저런 소릴 해도 교인들이 아멘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런 샤머니즘적 신학에 대해 정확하게 제시할 별다른 신학도 성경해석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는 무속종교와 별다름 없는 종교가 되어져 버린 것이다. '
이 댓글은 "자연 재난,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 하나"라는 CBS 기자의 글을 인용한 아멘넷 기사에 올려진 어떤 분의 댓글의 내용이다. 한국 기독교가 변질된 목회자들로 인해 무속 종교를 닮어가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이글을 쓰게끔 만든 요인은 " 문제는 저런 샤머니즘적 신학에 대해 정확하게 제시할 별다른 신학도 성경해석도 없다는 것이다"라는 부분이며, 이에 마음에 어떤 부딪힘이 있어 진리인 성경으로 돌아가 이 문제를 평신도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의 움직임의 발로임을 감히 고백한다.
과연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성경 말씀에서 아무런 대답을 안주시는 것일까? 만약에 말씀이 있다면 어떤 신학과 성경 해석이 가능한가?
자리를 잡고 앉아 한가지씩 생각해 보고 싶다.
한국인의 의식속에 뿌리박힌 샤머니즘을 이용하여 변질된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 욕심을 채우는 모습을 우리는 요사이 흔히 보게 된다. 흔히 "박사 가운입은 현대 무당"이라고 표현하며 성경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이 재앙과 복을 주관하는 위치로 보이게 만든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잘 알듯이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골수를 쪼갤수 있고 사람을 변화 시킨다.그런데 말씀을 교묘히 이용한다는 것은 초대 교회 이래로 이단들의 득세와 교회 혼란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창세기 시대에서 부터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잘 아는 선악과 사건이다.
선악과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인간의 몸(hardware)은 물질로 지으셨지만 그속(software) 은 하나님의 형상(창1;26) 으로 만드셨기에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능력(하나님의 창조물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스스로가 하나님이 될수있다는 착각이 들게 되기에 하나님이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선악과를 만드시고 명령을 하신 것이다.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뱀이 유혹을 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을 보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하시더냐"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비틀어 이용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한국 교회의 변질된 목회자들의 언행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영적 죽음의 결과이다. 그들이 한국 교회에서 일으키는 모든 분란의 모습들(탐욕, 축재, 횡령, 교회 세습, 치부, 간통, 외식, 파당 짓기, 사기, 명예 추구, 월권, 교회 사유화, 성직매매, 교만, 사치,거짓말) 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선악간의 심판을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는 영적 죽음의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채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연상되는가 ?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제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충동하는 가를 생각하고 싶다.
" 사람은 다만 결과가 두려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그것을 포기할지 모르지만 만일 사람이 나쁜 짓을 계속할 수만 있고 또 그 결과가 탄로되지 않고 안전하게 숨겨질 수만 있다면 사람은 반드시 그런 짓을 하고야 만다." - 윌리암 버클리.
무엇이 그것을 계속 할 수 있고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렘3;15)" - 교회 헌법 제24조 1항의 목사의 의의이다.
" 양떼를 탈취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이며 " - 같은 구절의 매튜 헨리의 주석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변질된 목회자란 양떼를 탈취하기 위해 일하는 자이다.
불행한 것은 한국 교회의 헌법을 제정할때 철저하게 목회자의 권익을 위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이를 손쉽게 악용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을 탈취하는 목회자가 늘어 난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하였거니와 인간은 죄를 짓고도 보호받을 장치만 구비되면 죄를 짓기 마련이라 현행 헌법하에서는 교권과 위선을 앞세워 교회의 입법,사법,행정을 독점하고 교회의 재정 ,인사,관리등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교회를 거덜내며 끝내는 세상 법원의 판사의 선고봉에 하나님의 이름이 두둘겨지는 참담한 현실들이 그 어디 한두번인가 ?
선악과를 따먹고 세상앞에서 선지자연 하는 목회자들의 일갈을 한번 보자.
2005년 쓰나미 참상에 대해 김모 목사는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번의 일본 지진,쓰나미에 대해서 조모 목사는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며 표현을 우회했지만 역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선지자연했음은 분명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어떤 모습이였는가?
선지서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했다. 하나님께 받은 말만 전했지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지 않았다.선지자로서의 전하는 역할이 끝나면 광야의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남부 유다나 북부 이스라엘 지역으로 직접 달려가 전달할 대상앞에서 하나님의 말을 전했다.
상기의 한국의 두분 왕목사님들의 현재 모습을 비교하면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본인의 영적 욕심인지 진짜 하나님의 직통계시(?) 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거액의 사례비와 아직도 교권의 중심부에 있는 모습은 물론이며 과연 강단위에서 그들의 그 우렁찬 일갈을 재해를 당한 일본 현지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해 있는 재해민들 앞에서 할 수가 있는가 ?
그외에도 선악과를 따먹는 목회자는 줄을 잇는다. 오켕가의 신복음주의와 맥가브란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 개혁 운동을 시작했고 교리는 별개의 것,성경에도 오류는 있다,기록된 성경 말씀보다 직통 계시가 더 유효하다면서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은 비단 목회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평신도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갖었기에 항상 선악과를 의식하여야 한다.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권고하시는 그날이 있고 그날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며 참을수 있고, 용서할수 있고,기쁨으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 순종할 수가 있어야 한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져 죽어버린 삶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인정하는 귀한 삶이 ,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변치않고 이어져 천성으로 한발한발 걸어갈 수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댓글은 "자연 재난,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 하나"라는 CBS 기자의 글을 인용한 아멘넷 기사에 올려진 어떤 분의 댓글의 내용이다. 한국 기독교가 변질된 목회자들로 인해 무속 종교를 닮어가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런데 필자로 하여금 이글을 쓰게끔 만든 요인은 " 문제는 저런 샤머니즘적 신학에 대해 정확하게 제시할 별다른 신학도 성경해석도 없다는 것이다"라는 부분이며, 이에 마음에 어떤 부딪힘이 있어 진리인 성경으로 돌아가 이 문제를 평신도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마음의 움직임의 발로임을 감히 고백한다.
과연 우리의 하나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성경 말씀에서 아무런 대답을 안주시는 것일까? 만약에 말씀이 있다면 어떤 신학과 성경 해석이 가능한가?
자리를 잡고 앉아 한가지씩 생각해 보고 싶다.
한국인의 의식속에 뿌리박힌 샤머니즘을 이용하여 변질된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 욕심을 채우는 모습을 우리는 요사이 흔히 보게 된다. 흔히 "박사 가운입은 현대 무당"이라고 표현하며 성경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이 재앙과 복을 주관하는 위치로 보이게 만든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잘 알듯이 운동력이 있어 사람의 골수를 쪼갤수 있고 사람을 변화 시킨다.그런데 말씀을 교묘히 이용한다는 것은 초대 교회 이래로 이단들의 득세와 교회 혼란을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창세기 시대에서 부터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잘 아는 선악과 사건이다.
선악과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인간의 몸(hardware)은 물질로 지으셨지만 그속(software) 은 하나님의 형상(창1;26) 으로 만드셨기에 인간은 하나님과 유사한 능력(하나님의 창조물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스스로가 하나님이 될수있다는 착각이 들게 되기에 하나님이 그것을 깨우치기 위해 선악과를 만드시고 명령을 하신 것이다.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을 깨닫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뱀이 유혹을 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을 보라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하시더냐"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비틀어 이용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한국 교회의 변질된 목회자들의 언행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영적 죽음의 결과이다. 그들이 한국 교회에서 일으키는 모든 분란의 모습들(탐욕, 축재, 횡령, 교회 세습, 치부, 간통, 외식, 파당 짓기, 사기, 명예 추구, 월권, 교회 사유화, 성직매매, 교만, 사치,거짓말) 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선악간의 심판을 하신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는 영적 죽음의 모습이다. 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채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어떤 말씀이 연상되는가 ?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제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충동하는 가를 생각하고 싶다.
" 사람은 다만 결과가 두려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그것을 포기할지 모르지만 만일 사람이 나쁜 짓을 계속할 수만 있고 또 그 결과가 탄로되지 않고 안전하게 숨겨질 수만 있다면 사람은 반드시 그런 짓을 하고야 만다." - 윌리암 버클리.
무엇이 그것을 계속 할 수 있고 안전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인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이며(렘3;15)" - 교회 헌법 제24조 1항의 목사의 의의이다.
" 양떼를 탈취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그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이며 " - 같은 구절의 매튜 헨리의 주석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변질된 목회자란 양떼를 탈취하기 위해 일하는 자이다.
불행한 것은 한국 교회의 헌법을 제정할때 철저하게 목회자의 권익을 위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이를 손쉽게 악용하여 선악과를 따먹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을 탈취하는 목회자가 늘어 난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하였거니와 인간은 죄를 짓고도 보호받을 장치만 구비되면 죄를 짓기 마련이라 현행 헌법하에서는 교권과 위선을 앞세워 교회의 입법,사법,행정을 독점하고 교회의 재정 ,인사,관리등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교회를 거덜내며 끝내는 세상 법원의 판사의 선고봉에 하나님의 이름이 두둘겨지는 참담한 현실들이 그 어디 한두번인가 ?
선악과를 따먹고 세상앞에서 선지자연 하는 목회자들의 일갈을 한번 보자.
2005년 쓰나미 참상에 대해 김모 목사는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번의 일본 지진,쓰나미에 대해서 조모 목사는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며 표현을 우회했지만 역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선지자연했음은 분명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어떤 모습이였는가?
선지서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했다. 하나님께 받은 말만 전했지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지 않았다.선지자로서의 전하는 역할이 끝나면 광야의 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남부 유다나 북부 이스라엘 지역으로 직접 달려가 전달할 대상앞에서 하나님의 말을 전했다.
상기의 한국의 두분 왕목사님들의 현재 모습을 비교하면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본인의 영적 욕심인지 진짜 하나님의 직통계시(?) 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거액의 사례비와 아직도 교권의 중심부에 있는 모습은 물론이며 과연 강단위에서 그들의 그 우렁찬 일갈을 재해를 당한 일본 현지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망연자실해 있는 재해민들 앞에서 할 수가 있는가 ?
그외에도 선악과를 따먹는 목회자는 줄을 잇는다. 오켕가의 신복음주의와 맥가브란의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피터 와그너는 신사도 개혁 운동을 시작했고 교리는 별개의 것,성경에도 오류는 있다,기록된 성경 말씀보다 직통 계시가 더 유효하다면서 계속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중이다.
이 일은 비단 목회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평신도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갖었기에 항상 선악과를 의식하여야 한다.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권고하시는 그날이 있고 그날 다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며 참을수 있고, 용서할수 있고,기쁨으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 순종할 수가 있어야 한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져 죽어버린 삶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인정하는 귀한 삶이 ,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변치않고 이어져 천성으로 한발한발 걸어갈 수 있는 하루하루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