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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낡은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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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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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버님의 1주기.
새벽 일찍 일어나 기도드리고 1년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글을 올린다.

평소 " 9988234"라는 우스갯소리를 설명하시며 " 99살까지 88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고 죽겠노라시던 아버님. "백년회"라는 친목회를 조직하시고 "그런데 그곳에서도 내 나이가 제일 많아~"라시던 아버님.

자주도 못하고 어쩌다 전화드려도 " 전화해 주어서 고맙다. 피곤할텐데 빨리 끊어라"하시던 아버님. 아들보다 더 빠르게 걸으시고 그 걸음으로 후러싱을 다니시며 많은 분들에게 덕을 끼치시던 아버님.

항상 어느 모임마다 사진을 찍어 주시고 그 사진을 현상하셔서 모든 분들에게 나눠주시느라 한달 용돈의 태반이 쓰여지고 그것을 타박하시는 어머님에게는 그저 웃음만 보이시던 아버님. 그 덕분에 교회다니건 안다니건 나이든 분들에게 성함만 대면 대개 " 아 그분~"하시며 사람들에게 좋은 덕을 끼치셨던 아버님.

최초로 경로대학을 만드시고 15년 넘게 학생회장으로 수고하시며 출석하는 학생들 한분한분에게 일주에 한번씩은 전화하셔서 안부를 묻던 아버님.

매년 정초때마다 전가족 세배 모임에서는 "너희 모두는 예수를 잘 믿어라 !" 하시며 가훈을 거듭 강조하시던 아버님. 독립유공자셨던 조부님의 유지를 따라 뉴욕 광복회를 조직하시고 섬기시던 교회에서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 예배를 등한시한다고 불평하시는 것이 유일한 불평이셨던 아버님.

일제시에 수재들만 들어갔던 평양사범 전문을 나오시고 교사 생활중 동기들이 경성제대로 동경대로 유학을 가니 더 공부를 하고싶은 마음에 같이 가려다 당시 황해도에서 목회중이시던 조부님의 강제 만류로 못가게 되었고 그것을 가끔 아쉬워하시던 아버님.(당시 목사가 귀하여 조부님은 7,8개 교회를 자전거타고 다니시며 동시 목회를 했고 아버님이 집안 살림을 했음)

피난이후 공기업에 근무시 명절때미디 뇌물성 선물은 그 즉시 반환하시던 아버님. 돈이 아쉬운 사람에게 월급을 비롯하여 어떻게하든 도움을 주었고 그 대신 빈궁한 집안 살림을 마다 않으시던 아버님.

그런 세월을 보내고도 7남매 모두 잘 장성하여 결혼하고 잘산다시며 "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하시던 아버님.평생 어머님께 큰소리 한번 지른적이 없이 항상 온유한 웃음만 보이시던 아버님.

그렇게 활발히 움직이시던 아버님이 몸져 누우시고 운명하시기까지 한달 동안에도 병실에서 누워계시며 항상 성경책과 낡은 수첩을 지니시던 아버님.한달간 살아 계셔서 모든 자식,손주들에게 아쉬운 마음 없이 병수발을 들게하시던 아버님.

운명 삼일전엔가는 찾아뵜던 세아들과 며느리앞에서 손을 흔들며 "내 앞에 하늘가는 길이 있으니 그 앞을 가로막지 말아라"하시던 아버님. 임종 직전에는 빨리 목사님을 부르고 예배를 보고 싶다고 하셨고 마침 찾아뵙던 목사님과 교우들함께 예배를 보았고 그 분들이 가시자마자 마지막 숨을 거두셨던 아버님.

1주기가 된 오늘 아침 새벽에 그 모든 아버님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내 눈앞으로 스쳐지난다.
" 너희 모두는 예수를 잘 믿어라"는 평소의 말씀이 아버님 의 신앙관이고 자식에게 물려 주시고 싶었던 축복의 말씀이었음이 더욱 강하게 확신되어지는 이 아침이다.

자식들에게 오직 믿음의 유산과 이십여개의 낡은 수첩외에는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않으신 아버님. 그 낡은 수첩을 오늘 새벽 보는 순간 마지막까지 평안하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마음속에 되살아 난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일년 열두달 매일매일을 그 속에 일기를 쓰며 아는 모든 분들에게 연락을 하고 자식들과 손주들 하나하나 동정을 기록해 넣으셨던 아버님.

항상 이 막내 아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셔서 제가 어긋난 길을 갈때 깨우침을 주시고 작은 일이라도 올바른 일을 갈때는 격려를 주시며 계속 저를 이끄시길 바랍니다.

"너희 모두는 예수를 잘 믿어라"하시던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아버지의 사시던 모습대로 살아갈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대로 저 역시 사람들을 대할것임을 이 아침에 다시금 다짐합니다.

그리운 아버지 !
그 온화했던 웃는 얼굴을 다시금 뵙고 싶습니다.

이후에 본향에서 다시금 만날때까지 그곳에서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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