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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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9-03-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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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똑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낍니다. 흔히 농담으로 나이만큼의 속도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의 경험으로 나이가 어릴 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지 모릅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똑 같지만 느끼기는 것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집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사형수에게는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으로 느낄 것입니다. 시간의 속도가 사람에 따라 또는 경우에 따라 느리게 느껴지기도 하고 빠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에 따라 행동이 느린 사람이 있고 빠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미루어 두지 못하고 서둘러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마냥 미루어 둡니다. 태성이 느린 사람이 있고 민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렇게 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첩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경우에 따라 민첩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또는 느리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경우에 따라서는 성격이 급하신 것 같기도 하고 나무늘보처럼 한 없이 느리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행동이 빠른 하나님, 혹은 느림보 하나님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따라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는 서둘러 애굽을 떠나도록 재촉하시며 유월절 음식을 서서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 외에 당신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이렇게 악을 행하려느냐고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진노가 지체하지 않고 속히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노 아래에 있으며 신음할 때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기도는 즉각 응답하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기도는 도무지 응답을 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인간 편에서 느끼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볼 때에 하나님은 서둘러 일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고 또한 천천히 일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인간 편에서 다급할 경우에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은 왜람 된 표현이지만 느림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모든 일을 천천히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성격이 급한 하나님, 무슨 일이든지 서둘러 신속히 처리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인간 편에서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아들을 기다렸지만 가능성이 제로가 될 때까지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첩을 들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건도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느림보 하나님이신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 실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단지 성격이 느림보라서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한 지혜로 하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 지혜를 다 모르니까 일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서두르거나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처신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아우슈비 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부인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곳에서 살아 나와서 그의 체험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 책 제목이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입니다.
구약 스가랴 1장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모르긴 해도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편 126편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은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가기를 눈물로 기도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이중 부정으로 되어 있는데 “울지 않고는 그의 발걸음을 옮겨 놓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기도를 할 때마다 울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그래서 기도자체가 너무나 단조로우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씨를 밭에 뿌리는 자를 묘사합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이스라엘은 돌아옵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이 울며불며 씨를 뿌리는 애끓는 기도를 하였지만 그 응답은 70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왜 천지를 하루 만에 창조하지 않으시고 6일 동안 만드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진리를 깨닫는데 미련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천천히 일하시지 않으셨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향해 극도의 인내심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참지 못하고 답답해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느림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 롬 2:4, 벧후 3:15 -
또한 사람에 따라 행동이 느린 사람이 있고 빠른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미루어 두지 못하고 서둘러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해야 할 일을 마냥 미루어 둡니다. 태성이 느린 사람이 있고 민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렇게 느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첩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경우에 따라 민첩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또는 느리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경우에 따라서는 성격이 급하신 것 같기도 하고 나무늘보처럼 한 없이 느리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행동이 빠른 하나님, 혹은 느림보 하나님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느끼기에 따라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는 서둘러 애굽을 떠나도록 재촉하시며 유월절 음식을 서서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 외에 당신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이렇게 악을 행하려느냐고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진노가 지체하지 않고 속히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노 아래에 있으며 신음할 때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기도는 즉각 응답하시기도 하시지만 어떤 기도는 도무지 응답을 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인간 편에서 느끼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볼 때에 하나님은 서둘러 일하시는 분이시기도 하고 또한 천천히 일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인간 편에서 다급할 경우에 우리가 느끼는 하나님은 왜람 된 표현이지만 느림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모든 일을 천천히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성격이 급한 하나님, 무슨 일이든지 서둘러 신속히 처리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면 인간 편에서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아들을 기다렸지만 가능성이 제로가 될 때까지 아들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첩을 들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건도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느림보 하나님이신가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 실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단지 성격이 느림보라서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한 지혜로 하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 지혜를 다 모르니까 일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서두르거나 성급하게 판단하거나 처신 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아우슈비 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수많은 유대인들 중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다면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밖에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을 부인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곳에서 살아 나와서 그의 체험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 책 제목이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입니다.
구약 스가랴 1장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모르긴 해도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면서부터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시편 126편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는 말씀은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가기를 눈물로 기도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이중 부정으로 되어 있는데 “울지 않고는 그의 발걸음을 옮겨 놓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기도를 할 때마다 울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그래서 기도자체가 너무나 단조로우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씨를 밭에 뿌리는 자를 묘사합니다.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이스라엘은 돌아옵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이 울며불며 씨를 뿌리는 애끓는 기도를 하였지만 그 응답은 70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왜 천지를 하루 만에 창조하지 않으시고 6일 동안 만드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진리를 깨닫는데 미련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천천히 일하시지 않으셨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향해 극도의 인내심을 보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참지 못하고 답답해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느림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 롬 2:4, 벧후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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