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 도덕적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 아니다 > 지난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이곳은 2017년 이전에 올려진 아멘넷 오피니언 칼럼 글입니다. 이름으로 찾으실 수 있습니다.
황상하 | 김동욱 | 최송연 | 허경조 | 이수일 | 송흥용 | 김정국

지난 오피니언

사명이 도덕적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 아니다

페이지 정보

황상하 2008-09-08

본문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재난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흥망성쇠와 한 때 자유로웠던 국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마키아벨리같이 어름처럼 차가운 강심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부흥과 쇠퇴, 정치적 부상과 몰락에는 반드시 인간의 이기심이 지나치게 작용하거나 공공의식이 결여되거나 도덕적 절제가 무시되는 것 등의 요인들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곤 하였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인간 이성이 조종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증거는 정치, 경제, 사회와 역사 전반에 널러있다 하겠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지도자라도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온순하게 길들이기는 벅찬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인간의 문명이 활화산 위에 세워진 요세와 같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산업사회에서보다 인간의 이기심이나 탐욕의 사회적 폐해가 비교적 적었지만 문명과 산업의 발달은 도시인구의 팽창을 가져왔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극한에 이르게 되어 모든 문제를 길거리에서 해결하려 합니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리 주장이라고 하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군중들의 집단행동은 적을 섬멸하려는 군대와 같이 포위하고 협박하고 옥죄며 강요하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어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된 일상에서는 한 사회가 얼마나 쉽게 분열하고 붕괴될 수 있는가를 잊고 지냅니다. 또한 문명의 혜택과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면 누릴수록 더 많은 혜택과 풍요를 누리려는 극심한 경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절대적인 빈곤상태에서 좀 더 잘 살기 위한 경쟁은 발전이라는 열매를 맺지만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한 극단적 경쟁은 최소한의 도덕과 준법정신까지 무시하게 되어 가난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무방비상태로까지 내몰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비록 심판이라고 할지라도 약한 자를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시려는 조치이고 또한 악한 자들을 일깨워 경성시키시려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을 치르고 난 후에도 독일 사람들은 “우리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자신들의 운명의 얄궂음을 불평하면서 화가 치밀어 자신들과 국가의 운명을 히틀러의 손에 내맡겨 버린 것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공포와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은 물론이거니와 유럽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전승국가들 또한 전쟁에 이긴 것을 도덕적 정당성으로 해석하고 평가하여 자기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 전쟁에서나 집단적 싸움에서나 혹은 개인 간의 마찰에서 이긴 자는 역사의 심판자처럼 행세하거나 그 행위에 대한 승자위주의 도덕적 평가를 정당화 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들을 비껴갔다고 하여 그것이 곧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이 하나님인 것처럼 처신하는 행동에서 나오는 심판만큼 끔찍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세는 사람을 통한 심판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택했던 것입니다. 역사적 심판이 임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엄한 하나님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구약의 역사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도덕적 타락이었고 그 목적은 전 세계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박력 있고 독창적인 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선택된 민족이라는 사실에 만족하고 그 특혜를 향유했을 때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지만 온 세계를 위한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은 고난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한 국가 전 인류를 향해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처음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은 전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지배하거나 지역적 확장을 통해 전 인류를 향한 역사적 사명을 가졌다고 주장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이스라엘에 의해 로마 제국을 거처 대영제국에 퍼져갔고 지구 반대편인 샌프란시스코에까지 전파되었으며 또 다시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반도를 거처 지구촌 오지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곧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보증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탐욕과 이기심을 경계해야 하고 승자 위주의 도덕적 평가 또한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멘넷의 시각게시물관리광고안내후원안내ㆍ Copyright © USAamen.net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아멘넷(USAamen.net) - Since 2003 - 미주 한인이민교회를 미래를 위한
Flushing, New York, USA
카톡 아이디 : usaamen / USAamen@gmail.com / (917) 684-0562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