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이 교만이 되지 않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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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8-07-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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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언론을 자처하는 “N"사의 기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의 목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는 교회의 어려움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기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교회내의 갈등문제를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백해무익(百害無益)임을 모르는 목사는 없을 것입니다. 목사는 ”N"사의 기자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하면서 교회 안의 문제가 기사화 되어 회자(膾炙)될까 걱정하였습니다. 나는 “N"사가 여느 언론사와는 다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담임 목사가 원하지 않는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N"사의 기자라면 신중하게 교회 안의 갈등 당사자 양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여 기사를 쓰되, 쓰기 전에 그 교회의 내적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어야할 성격의 것인지, 아니면 교회 자체가 해결하도록 두어야 할 문제인지, 그리고 그런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 과연 그 교회와 크게는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쯤은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나의 믿음은 며칠 후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교회의 내적인 문제가 완전히 소설이 되어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교회가 속한 노회의 노회장이고, 노회에서는 수습위원을 파송하여 수습활동보고도 받았기 때문에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내용은 어느 교회의 어느 목사에게라도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너무나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목사를 반대하는 이들에게서 입수한, 그것도 완전히 왜곡된 내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가를 말해야 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기자는 목사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임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가 어떤 목사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기자가 왜 한 교회의 내적 아픔을 그렇게 허술하게 엉터리로 기사화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교회 목사는 재정 문제가 면경처럼 투명하고 어느 교회보다 선교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으며,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만을 위해 뛸 때 그는 교회 뿐 아니라 교단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해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만큼 기도 많이 하고, 그분만큼 교회를 위해서 일을 많이 하고, 그분만큼 건전한 목회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허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회 안에는 하나님 나라와 영적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 때문에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목회자의 탓으로 돌리며 목회자를 배척하려 하면 별의별 것이 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온갖 거짓말과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목회자를 낙심시키기 위해 성가대 안 서기, 헌금 안하기, 교회 활동에 불참하기... 그래도 목회자는 참아야 합니다.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지만 가라지도 뽑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참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불신자와 같이 여기라는 말씀도 있지만 교인의 기본 의무도 고의적으로 하지 않고 목회자와 성도를 낙심케 하는 교인이지만 “목사,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치리의 칼을 들이대기에는 마음이 너무 약한 목사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기자 양반은 아십니까? 목사가 다 나쁜 것 아니고 교회가 다 나쁜 교회 아닙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집안 이야기 남이 아는 것 좋아할 가족 없듯이 덕스럽지 못한 교회 형편이 부풀려지고 편집되고 침소봉대(針小棒大) 되고 왜곡되어 유포되는 것은 남 잘 안 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 거리가 될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의식 있고 건전한 신자라면 좋아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개혁언론을 표방하는 언론사의 기자가 그것도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십거리를 얻기 위해 배고픈 승냥이처럼 두리번거리는 저급한 주간지 기자들이나 쓸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해치는 일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에게 부족한 것이 많고 교회들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께서 세우시기에 “미주한인 교회 몰락은 시간문제?”라는 식의 표현과 글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나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평소에 의식 있는 언론사라고 생각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소개하고 칭찬했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N"사의 몇몇 최근 글을 읽으면서 글 속에서 교회에 대한 사랑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나의 영적 분별력이 깊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개혁은 그 피상성과 왜곡성과 순수를 표방하면서 지식적 혹은 영적 포퓰리즘(populism)에 편승하는 것이 역겨워 잘 읽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N"사의 몇몇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허구의 큰 구멍을 발견하고 실망하였습니다.
이들의 의도가 자신들이 외치는 주장처럼 교회를 세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허는 것인지 그 모호한 경계로 인하여 사람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N"사를 극단적으로 나쁘게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개혁하겠다면 말씀의 바른 이해와 건전한 신학의 깊은 토대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단어 하나의 사용도 사랑의 구체적 실천이 되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일로 “N"사에 대해 많이 실망했지만 그 실망에 실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실망은 교만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대한 불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루시고 심지어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모든 언행심사에서 떨며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 잠 16:4 -
교회내의 갈등문제를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백해무익(百害無益)임을 모르는 목사는 없을 것입니다. 목사는 ”N"사의 기자가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하면서 교회 안의 문제가 기사화 되어 회자(膾炙)될까 걱정하였습니다. 나는 “N"사가 여느 언론사와는 다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담임 목사가 원하지 않는 기사를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N"사의 기자라면 신중하게 교회 안의 갈등 당사자 양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여 기사를 쓰되, 쓰기 전에 그 교회의 내적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어야할 성격의 것인지, 아니면 교회 자체가 해결하도록 두어야 할 문제인지, 그리고 그런 문제가 언론에 공개되는 것이 과연 그 교회와 크게는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쯤은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나의 믿음은 며칠 후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교회의 내적인 문제가 완전히 소설이 되어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그 교회가 속한 노회의 노회장이고, 노회에서는 수습위원을 파송하여 수습활동보고도 받았기 때문에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내용은 어느 교회의 어느 목사에게라도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너무나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목사를 반대하는 이들에게서 입수한, 그것도 완전히 왜곡된 내용이었습니다.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들인가를 말해야 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기자는 목사를 배척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임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가 어떤 목사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기자가 왜 한 교회의 내적 아픔을 그렇게 허술하게 엉터리로 기사화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교회 목사는 재정 문제가 면경처럼 투명하고 어느 교회보다 선교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으며, 많은 목회자들이 자기 교회만을 위해 뛸 때 그는 교회 뿐 아니라 교단을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일해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분만큼 기도 많이 하고, 그분만큼 교회를 위해서 일을 많이 하고, 그분만큼 건전한 목회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허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회 안에는 하나님 나라와 영적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의식 때문에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목회자의 탓으로 돌리며 목회자를 배척하려 하면 별의별 것이 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온갖 거짓말과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목회자를 낙심시키기 위해 성가대 안 서기, 헌금 안하기, 교회 활동에 불참하기... 그래도 목회자는 참아야 합니다.
목회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지만 가라지도 뽑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참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불신자와 같이 여기라는 말씀도 있지만 교인의 기본 의무도 고의적으로 하지 않고 목회자와 성도를 낙심케 하는 교인이지만 “목사,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치리의 칼을 들이대기에는 마음이 너무 약한 목사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기자 양반은 아십니까? 목사가 다 나쁜 것 아니고 교회가 다 나쁜 교회 아닙니다. 자랑스럽지 못한 집안 이야기 남이 아는 것 좋아할 가족 없듯이 덕스럽지 못한 교회 형편이 부풀려지고 편집되고 침소봉대(針小棒大) 되고 왜곡되어 유포되는 것은 남 잘 안 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 거리가 될지 몰라도 조금이라도 의식 있고 건전한 신자라면 좋아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개혁언론을 표방하는 언론사의 기자가 그것도 교회를 개혁하겠다는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가십거리를 얻기 위해 배고픈 승냥이처럼 두리번거리는 저급한 주간지 기자들이나 쓸 수준의 글을 쓴다는 것은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해치는 일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에게 부족한 것이 많고 교회들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께서 세우시기에 “미주한인 교회 몰락은 시간문제?”라는 식의 표현과 글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나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평소에 의식 있는 언론사라고 생각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소개하고 칭찬했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 “N"사의 몇몇 최근 글을 읽으면서 글 속에서 교회에 대한 사랑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나의 영적 분별력이 깊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개혁은 그 피상성과 왜곡성과 순수를 표방하면서 지식적 혹은 영적 포퓰리즘(populism)에 편승하는 것이 역겨워 잘 읽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N"사의 몇몇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허구의 큰 구멍을 발견하고 실망하였습니다.
이들의 의도가 자신들이 외치는 주장처럼 교회를 세우려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를 허는 것인지 그 모호한 경계로 인하여 사람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N"사를 극단적으로 나쁘게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회를 개혁하겠다면 말씀의 바른 이해와 건전한 신학의 깊은 토대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단어 하나의 사용도 사랑의 구체적 실천이 되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일로 “N"사에 대해 많이 실망했지만 그 실망에 실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실망은 교만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대한 불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루시고 심지어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으므로 우리는 모든 언행심사에서 떨며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 잠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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