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론과 실존주의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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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8-02-1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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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브라텐(C. E. Braaten)이 “실증주의를 뒤집으면 실존주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관념론(觀念論)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서 관념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이 중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는 이론입니다. 실존주의(實存主義)는 앞선 실증주의(實證主義)와 관념론에 대한 반발로, 실존은 항상 모든 것을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보고 존재양식과 존재 의미에 관심을 두고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이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적 방법에 의존했던 실증주의는 역사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였고 순수 사실과 순수 역사적 예수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기껏 그들이 발견한 예수는 위대한 종교적 천재 가운데 하나였으며, 기적적으로 종말을 기대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열광적" 유대인이었고, 복음서들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적 진술"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100년 동안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던 르낭, 슐라이에르마허, 슈트라우스, 홀츠만, 요하네스 바이쓰, 슈바이처 등은 결국 예수탐구에 실패한 불행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슈바이처는 예수를 “철저한 종말론자”로 생각하여 가까운 장래에 하나님의 기적적 간섭에 의한 종말이 자신의 선교 중에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사역하였으나, 이런 기대는 빗나갔고 예수는 "착각한 묵시종말론자"(mistaken apocalypticist)라고 판단하여 역사적 예수 찾기를 포기하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메시아적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신학자들이 발견한 예수는 깊은 우물에 비친 자유주의 개신교의 모습에 불과했습니다. 역사적 예수탐구는 역사적 예수의 참 모습이 아니라, 각 저자의 시대정신과 이상(理想)이라는 옷을 예수에게 덧입힌 현대적 예수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실증주의에 반발하고 나온 것이 역사적 관념론입니다. 관념론은 실증주의가 순수 과학으로 역사를 탐구하려면 객관적이고 공평하며 사심이 없어야 하고, 부르짖는 구호도 없어야 하고, 철학적 선입견도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고 하였습니다. 실증주의자에 의하면 모든 인간 지식의 논리적 설명 구조는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인간 지식을 자연과학의 모델로 환원시키려 하여 환원주의(還元主義-reductionism)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환원주의를 설명하기란 복잡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현상을 최하위 계층의 법칙과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 현상은 물리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인데 복잡한 데이터나 현상을 단순하게 환원하려는 것입니다. 즉 한 분야에 적합하고 정당한 방법을 다른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관념론자들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환원될 수 없다고 하여 역사에 주관성이라는 흠집을 내지 않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딜타이(Dilthey, William)는 그 방법을 “객관 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덕과 법률, 국가와 종교, 예술과 과학, 철학과 문명 그리고 문화의 정신적 측면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 객관 정신이 확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방법론으로 역사를 연구하려면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상상과 공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객관 정신의 확대로 나타난 역사는 인간의 의식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상상과 공감으로 그 의식에 접근하지 않고는 역사를 바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딜타이는 객관 정신으로, 크로체는 역사와 연대기의 구분으로, 콜링우드는 사건의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것으로 실증주의에 대응하였습니다.
19세기 실증주의는 사실을 해석에서 떼어놓으려 했고, 그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반발은, 과거의 사건은 해석을 덧붙여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정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념론적인 역사관은 기독교 역사에 더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기독교 실존주의자는 관념론자와 손을 맞잡고 실증주의 역사관을 거부하는 가운데 객관적 역사의 사건을 외면하고, 내면으로만 들어가 주관적 결단과 헌신을 실존주의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실증주의에 반발하여 역사적 예수 안 찾기 운동을 전개한 셈입니다. 신정통주의의 불트만, 바르트, 틸리히 등이 바로 역사적 예수 안 찾기 운동을 제창한 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를 찾는 일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며 신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 탐구대신 “케루그마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케루그마(κήρυγμα)란 선포, 또는 선포된 말씀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를 부인하고 그의 가르침만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인본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루그마 그리스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성육신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정황(context)에서 처음부터 인간 속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대변하는, 그와 동시에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 주고, 또한 소외된 인간의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았던 본질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실존적 인간, 즉 실존주의자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강조점이 조금 다를 뿐이지 틸리히와 판넨베르그 역시 예수를 하나님을 계시하는 유일한 통로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와 하나님의 일치는 존재의 일치가 아니라 의지와 계시의 일치일 뿐입니다. 지나치게 순수 역사적 사실에 집착하다 실패한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 실존주의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실존과 내면의 세계로만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외적 사건 외에 내면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면세계를 외적 사건보다 우위에 놓고 또한 내면세계와 외적 사건을 별개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실존주의자는 역사를 외면합니다. 실존주의 신학을 개혁주의가 용납하지 않는 것은 그런 입장이 결국은 성경적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인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거부하는 데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관념론적 역사 연구가, 역사가는 사건을 해석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역사연구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환기시켰지만 또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외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하여 등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실증주의를 비판한 관념론에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헌신과 결단이라는 내적 세계에만 빠져들게 한 점입니다. 현대교회가 설교, 제자훈련, 성경공부 프로그램, 묵상 등에서 주관적 성경해석에 치우치는 것은 다분히 실존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실존주의에 의하면 신앙은 객관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그의 실존의 결단을 통해서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은 객관적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그 계시를 통해 날마다 새로운 행위와 새로운 순종 자체를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역사적 실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 하나님 자신이며 죄인의 구주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으로 계시하고 있는 성경은 비밀(mystery)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그 비밀을 그 오묘함 속에 그대로 두어야 하고 억지로 개념화함으로써 합리적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실증주의가 이 오묘함을 순수 역사적 사실로 분석하려다 실패하였고, 관념론은 억지로 개념화하려다 실패하였으며, 기독교 실존주의는 역사의 객관성을 외면하므로 하나님이요 구주이신 예수님을 실존주의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요 11:27 벧후 3:16-
과학적 방법에 의존했던 실증주의는 역사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였고 순수 사실과 순수 역사적 예수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기껏 그들이 발견한 예수는 위대한 종교적 천재 가운데 하나였으며, 기적적으로 종말을 기대하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열광적" 유대인이었고, 복음서들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적 진술"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 말부터 100년 동안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던 르낭, 슐라이에르마허, 슈트라우스, 홀츠만, 요하네스 바이쓰, 슈바이처 등은 결국 예수탐구에 실패한 불행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슈바이처는 예수를 “철저한 종말론자”로 생각하여 가까운 장래에 하나님의 기적적 간섭에 의한 종말이 자신의 선교 중에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사역하였으나, 이런 기대는 빗나갔고 예수는 "착각한 묵시종말론자"(mistaken apocalypticist)라고 판단하여 역사적 예수 찾기를 포기하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메시아적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신학자들이 발견한 예수는 깊은 우물에 비친 자유주의 개신교의 모습에 불과했습니다. 역사적 예수탐구는 역사적 예수의 참 모습이 아니라, 각 저자의 시대정신과 이상(理想)이라는 옷을 예수에게 덧입힌 현대적 예수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실증주의에 반발하고 나온 것이 역사적 관념론입니다. 관념론은 실증주의가 순수 과학으로 역사를 탐구하려면 객관적이고 공평하며 사심이 없어야 하고, 부르짖는 구호도 없어야 하고, 철학적 선입견도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고 하였습니다. 실증주의자에 의하면 모든 인간 지식의 논리적 설명 구조는 동일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인간 지식을 자연과학의 모델로 환원시키려 하여 환원주의(還元主義-reductionism)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환원주의를 설명하기란 복잡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현상을 최하위 계층의 법칙과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 현상은 물리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이론인데 복잡한 데이터나 현상을 단순하게 환원하려는 것입니다. 즉 한 분야에 적합하고 정당한 방법을 다른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관념론자들은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은 환원될 수 없다고 하여 역사에 주관성이라는 흠집을 내지 않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딜타이(Dilthey, William)는 그 방법을 “객관 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덕과 법률, 국가와 종교, 예술과 과학, 철학과 문명 그리고 문화의 정신적 측면을 나타내는 모든 것이 객관 정신이 확대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방법론으로 역사를 연구하려면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상상과 공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객관 정신의 확대로 나타난 역사는 인간의 의식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상상과 공감으로 그 의식에 접근하지 않고는 역사를 바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딜타이는 객관 정신으로, 크로체는 역사와 연대기의 구분으로, 콜링우드는 사건의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것으로 실증주의에 대응하였습니다.
19세기 실증주의는 사실을 해석에서 떼어놓으려 했고, 그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반발은, 과거의 사건은 해석을 덧붙여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 것은 정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관념론적인 역사관은 기독교 역사에 더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기독교 실존주의자는 관념론자와 손을 맞잡고 실증주의 역사관을 거부하는 가운데 객관적 역사의 사건을 외면하고, 내면으로만 들어가 주관적 결단과 헌신을 실존주의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실증주의에 반발하여 역사적 예수 안 찾기 운동을 전개한 셈입니다. 신정통주의의 불트만, 바르트, 틸리히 등이 바로 역사적 예수 안 찾기 운동을 제창한 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를 찾는 일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하며 신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역사적 예수 탐구대신 “케루그마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케루그마(κήρυγμα)란 선포, 또는 선포된 말씀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를 부인하고 그의 가르침만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인본주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루그마 그리스도란 하나님으로부터 성육신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정황(context)에서 처음부터 인간 속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대변하는, 그와 동시에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 주고, 또한 소외된 인간의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았던 본질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실존적 인간, 즉 실존주의자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강조점이 조금 다를 뿐이지 틸리히와 판넨베르그 역시 예수를 하나님을 계시하는 유일한 통로로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와 하나님의 일치는 존재의 일치가 아니라 의지와 계시의 일치일 뿐입니다. 지나치게 순수 역사적 사실에 집착하다 실패한 실증주의에 대한 반발로 실존주의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실존과 내면의 세계로만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외적 사건 외에 내면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면세계를 외적 사건보다 우위에 놓고 또한 내면세계와 외적 사건을 별개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실존주의자는 역사를 외면합니다. 실존주의 신학을 개혁주의가 용납하지 않는 것은 그런 입장이 결국은 성경적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인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거부하는 데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관념론적 역사 연구가, 역사가는 사건을 해석할 수 있다는 면에서 역사연구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환기시켰지만 또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치우친 나머지 외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하여 등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실증주의를 비판한 관념론에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가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헌신과 결단이라는 내적 세계에만 빠져들게 한 점입니다. 현대교회가 설교, 제자훈련, 성경공부 프로그램, 묵상 등에서 주관적 성경해석에 치우치는 것은 다분히 실존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실존주의에 의하면 신앙은 객관적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그의 실존의 결단을 통해서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그들은 객관적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그 계시를 통해 날마다 새로운 행위와 새로운 순종 자체를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역사적 실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 하나님 자신이며 죄인의 구주이심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으로 계시하고 있는 성경은 비밀(mystery)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그 비밀을 그 오묘함 속에 그대로 두어야 하고 억지로 개념화함으로써 합리적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실증주의가 이 오묘함을 순수 역사적 사실로 분석하려다 실패하였고, 관념론은 억지로 개념화하려다 실패하였으며, 기독교 실존주의는 역사의 객관성을 외면하므로 하나님이요 구주이신 예수님을 실존주의자로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요 11:27 벧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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