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주의와 역사적 예수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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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8-02-0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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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실증주의자 아우구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는 모든 인간 지식은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 단계로서 모든 자연 현상을 신의 활동으로 설명하는 시기이고, 둘째는 형이상학적 단계로서 모든 것을 자연 안에 있는 형이상학적인 힘에 의한 변화로 설명했으며, 셋째는 과학의 단계, 즉 실증주의적 단계로 발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신의 활동으로 본 첫째 단계나 또는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힘으로 설명했던 미개한 단계를 거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실증주의 단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실증주의는 모든 자연 현상을 ‘강철 같은 자연 법칙’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과학 실증주의는 “신약성경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고 안타깝게도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역사 철학자의 실증주의적 믿음에 매료되어 복음서를 믿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역사적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초기 기독교의 편견과 교리와 거짓으로 덧씌워진 예수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벗겨내고 예수를 있는 그대로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율적 이성이 진리를 검토할 수 있는 궁극적 기준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성주의와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같은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겼고, 결국은 예수를 평범한 인간 예수로 만들었으며, 초자연적인 예수는 성경에서 제거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결국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할 수 없는 보통 사람 예수를 만들기 위해 복음서에서 초대교회가 덧붙인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모두 떼어내 버렸습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역사적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는데 그 탐구의 한결같은 결론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인들의 구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데이빗 스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ss)라는 신학자도 1835년에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은 슐라이어마허 (F.D.E. Schleiermacher)가 쓴 “‘예수의 생애”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주장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데 있어서 신앙은 걸림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며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안경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믿음이 독실했던 한 청년이 스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읽고 그 주장에 설득당해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바로 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주의 경제 이론서인 자본을 쓴 엥겔스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과학적 성경연구, 역사적 예수탐구의 폐해에 소름이 돋습니다.
오늘날은 안티기독교와 안티예수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 신뢰성을 잃어버린 낡은 과학 실증주의의 방법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는데 어리석게도 그러한 주장에 솔깃해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다빈치 코드나 유다복음 같은 것으로 기독교에 흠집을 내보려는 시도는 현대인의 의식수준을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의 수준으로 얕잡아보는 오만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식함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실증적 믿음을 확증하는 그들의 신학에 필요한 만큼만 예수에 관한 것을 찾아내려했습니다. 그들은 순수 역사와 순수 역사적 예수를 찾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철저히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신뢰했던 과학은 과학이 아니었고, 그들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었으며, 그들의 철학은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믿음이었고 우상이었습니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예수탐구를 뒷받침했던 과학적 믿음과 이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으로서 철학과 역사학계는 물론 과학계 자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믿고, 예수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과 예수의 역사성만 믿는 것이 아니고 그 역사의 초자연적 신적 계시성을 믿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가 나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행 2:36절 -
모든 것을 신의 활동으로 본 첫째 단계나 또는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힘으로 설명했던 미개한 단계를 거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실증주의 단계로 발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실증주의는 모든 자연 현상을 ‘강철 같은 자연 법칙’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과학 실증주의는 “신약성경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믿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고 안타깝게도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역사 철학자의 실증주의적 믿음에 매료되어 복음서를 믿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역사적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초기 기독교의 편견과 교리와 거짓으로 덧씌워진 예수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벗겨내고 예수를 있는 그대로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율적 이성이 진리를 검토할 수 있는 궁극적 기준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성주의와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 같은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겼고, 결국은 예수를 평범한 인간 예수로 만들었으며, 초자연적인 예수는 성경에서 제거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는 결국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할 수 없는 보통 사람 예수를 만들기 위해 복음서에서 초대교회가 덧붙인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모두 떼어내 버렸습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역사적 예수탐구에 열을 올렸는데 그 탐구의 한결같은 결론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인들의 구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데이빗 스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ss)라는 신학자도 1835년에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은 슐라이어마허 (F.D.E. Schleiermacher)가 쓴 “‘예수의 생애”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스트라우스의 주장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데 있어서 신앙은 걸림돌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역사적 예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며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뿐이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안경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믿음이 독실했던 한 청년이 스트라우스가 쓴 “예수의 생애”라는 책을 읽고 그 주장에 설득당해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바로 칼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주의 경제 이론서인 자본을 쓴 엥겔스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과학적 성경연구, 역사적 예수탐구의 폐해에 소름이 돋습니다.
오늘날은 안티기독교와 안티예수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 신뢰성을 잃어버린 낡은 과학 실증주의의 방법으로 기독교를 공격하고 있는데 어리석게도 그러한 주장에 솔깃해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다빈치 코드나 유다복음 같은 것으로 기독교에 흠집을 내보려는 시도는 현대인의 의식수준을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의 수준으로 얕잡아보는 오만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식함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들이나 시청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실증적 믿음을 확증하는 그들의 신학에 필요한 만큼만 예수에 관한 것을 찾아내려했습니다. 그들은 순수 역사와 순수 역사적 예수를 찾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철저히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신뢰했던 과학은 과학이 아니었고, 그들의 역사는 역사가 아니었으며, 그들의 철학은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믿음이었고 우상이었습니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예수탐구를 뒷받침했던 과학적 믿음과 이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으로서 철학과 역사학계는 물론 과학계 자체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론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을 믿고, 예수의 역사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과 예수의 역사성만 믿는 것이 아니고 그 역사의 초자연적 신적 계시성을 믿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가 나의 주님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 행 2:3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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