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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주님의 몸, 교회(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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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3-11-30

본문

근세에 들어 하나님의 교회 존속[存續], 존재의 가치 자체를 부인하고 위협하는 기현상이 각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이런 기현상들은 기업화된 대형교회들이나 사명감을 저버린 일부 황당한 목사들에게 그 책임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한 방법으로 왜곡시켜 전하고 통전 적이고도 유기적인 말씀을 앞 뒤 문맥을 살펴 총체적인 뜻을 밝혀 전하려하지 않고 한 구절만 똑 떼내어 그 구절에만 매달려 전체적인 뜻을 흐리게 하여 가르치는 데 있다.

이런 사람들이 무서운 것은 어리석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성교회를 벗어나야 살길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더 나아가 기성교회는 아예 구원이 없는 것 같은 속임수이건만,표면적으로는 사역자들의 비리에 항거하는 거센 목소리, 진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목소리인 것처럼 미화시켜 내어 놓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말에 현혹된 성도가 교회를 멀리하고 집에 주저앉아 있는 동안 이단이나 다른 사이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의 영혼을 사냥질 해간다.

구원 받는 백성이 줄어 들고 교회를 찾는 발걸음이 점점 사라지게 하려면, 하나님 교회의 권위를 땅에 떨어트리고 교회와 말씀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 중 하나임을 성도들이 인식해야 한다.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 요즘 세계적으로, 특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 수가 급격히 하강하고 있다는 통계가 그 사실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좀 생각해 보자.

교회란 무엇인가? 어근(語根)부터 살펴보자:
 
교회(敎會)란 그리스어로는 큐리아코스(kuriakos = 주에게 속하는),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ekklesia), 라틴어의 에클레시아(ecclesia)이며, ‘불러낸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초청받은 무리, 성령의 부르심을 통하여 거듭난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대관식에 참예할 수 있는 거룩한 무리의 모임이란 뜻이 있다. ‘카할’은 구약에서 회중, 또는 이스라엘 공동체, 특히 종교적인 측면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를 뜻하며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에서 구약교회를 ‘광야 교회(congregation)', 그곳에 모세가 있었다고 했다(행7: 38절).

교회(敎會)의 구분:

1. 민족적으로, 첫째, 예루살렘 교회인 초대교회, 둘째, 이방인 교회다. 이방 세계의 각 나라, 각 족속, 각 지역에 세워진 모든 교회를 총칭할 수 있다 .

2. 영적으로, 첫째, 개인 교회(고전 3:16절), 둘째, 공동체로서의 교회(에클레시아,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말할 수 있는데,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다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보이는(가시적인, 유형교회)교회: 보이는 교회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을 말하며, 성경은 이 교회를 가르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골1: 18절),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행 20: 28절, 벧전 1: 17-19잘), 또는 거룩한 무리(히 13: 12절, 벧전 1:2절)라고 말씀하고 있다.

둘째, 비가시적인 교회(무형교회): 이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로써, 주님의 나라를 의미한다(계 21:장 전장 참조). 지역과 인종과 역사를 초월하여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모여 있는 구원받은 성도들과 앞으로 구원받을 모든 성도를 총칭한다.

3. 교회를 영적으로도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영적인 교회이다. 둘째,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무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요, 영적인 교회이다.

땅 위에 교회(敎會)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
 
예수님께서 12제자를 택하신 후 특별히 그들에게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이 지상에 하나님의 기관인 교회를 세우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1.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눅19: 10절).
2.하나님께 경배하고 지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엡1: 4-6절).
3.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번창 되게 하기 위함( 마 28: 19-20).
4.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 요 6: 49절).
5.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기 위함(엡 3: 9-11, 3: 20-21, 5: 9).

교회를 저주해서 안 되는 이유:
a.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시기 때문이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 18절, 엡5: 23절 참조).”

b. 성경은 성도가 하나님의 집인 지역 교회에 등록하고 공동체로서 주님의 몸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하며, 성도는 마땅히 주신바 탈란트 대로 하나님의 집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 15절 말씀).

c. 성경은 혼자 예배드려도 은혜받을 수 있지만 성도가 하나님의 집인 공동체를 벗어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폐하지 말라고 하신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면 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 24-25절).”

d. 교회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공동체이기에 깨어지면 안된다. “두세 사람이(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 20절 말씀).”

e. 성도는 믿음 안에서 친교(코이노니아)해야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친교란 영어로 fellowship,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 koinonia)다. 여기에는 물건을 함께 쓴다의 뜻이 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초대 교회는 물건을 함께 나누었다. (행2: 44, 4: 32절 참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기독교 공동체의 근본적인 요소라면 다음은 회원 간의 친교이다. 왜냐하면, 성도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으로 연합 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롬 12: 5, 고전 12: 27절 참조)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 되어진 성도들임을 깨닫는다면, 결코 '혼자만 정결하다’라고 주창할 수 없다는 것이다.

f. 보이는 성전,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건물은 하나님의 집이기에 거룩하다. 예수님께서 친히 “ 내 집(가시적 교회)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막 11: 7절)."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가시적 교회 성전 건물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교회를 더럽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개인교회)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그 장소 또한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파는 곳을 술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님을 모신 개인 교회가 모여서 거룩한 분께 예배드리는 그 장소를 거룩하다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주님을 모신 곳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관계없이 천국이요 거룩한 곳, 성전이다.

이런 것을 볼 때, 가시적인 교회(보이는 교회)와 비가시적인 교회(보이지 않는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에클레시아, 즉 하나님의 대관식에 초청받은 무리는 보이는 교회를 거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회(천국)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교회 안에는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자라는 것은 그분의 뜻이다
 
1.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 12)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will clear his threshing floor, gathering his wheat into the barn and burning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마 3: 12)”

본문에서 (his threshing floor)이라고 소유격을 사용하셨음을 주목하자. 그 뜻은 이미 불러냄을 받은 무리(개인교회)가 그분의 소유이다.(광의적으로는 모든 세상이 다 그분의 것이지만...) 개인교회가 모여 공동체 교회(가시적 교회)를 이룬 곳을 주님께서는 (나의 타작마당)이라고 소유격을 특별히 붙여서 사용하시기 기뻐하셨다.(나의 백성, 내 백성 등등)

2.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 37-43)"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t that time I will tell the harvesters: First collect the weeds and tie them in bundles to be burned; then gather the wheat and bring it into my barn.(마 13: 30)

마태복음 13장의  "세상"은 육신 세계를 의미하고 추수 때 교회와 분리시키실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상이라함은, 믿는 자, 믿지 않는 불신자 모두 섞여 살아가는 육신 세계를 총칭하신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모든 세상 사람이 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롬 3: 10절 참조) 과 의인(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개인 교회)을 알곡이라 하고 주께서 세상 속에서 불러내고 갈라내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러하다.

마태복음 13장 한 구절만 풀이하여 “세상”에는 가라지가 있으나, 교회 안에는 모두 알곡만 있다라고 주장 한다면 모순이다. 교회(개인교회나 공동체교회), 예수님을 마음에 구세주로 믿는 자가 되면, 그 즉시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벗어나서 하늘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성령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을 가리킴이라면 그 성전된 육신은 여전히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육신)는 세상에 속하였으나 그 권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주님의 피로 깨끗게 된 알곡이지만 주인의 창고에 들어가기 까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렇듯, 주님의 때가 되기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서로 부대끼며 자라고 있는 들판이 세상 속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주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사명이 알곡된 자들에게 주어졌고, 그 사명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단이 날이면 날마다 가라지를 뿌려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개인 교회가 모여 이루어진 아름다운 모임인 (공동체 교회) 안에도 사단의 회가 있다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다.(계 2장 참조)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가롯인 유다가 나왔다. 가라지는 분명히 있다.

세상(코스모스)에서 교회는 제외된다고 그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주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 거듭난 영혼은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귀한 무리이기에 하늘에 속하였으나, 무덤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여전히 땅, 곧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갈 2장 4절 그리고 고후 11장 26절에서 바울은 거짓 형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거짓 형제에게서 해를 많이 당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 시대에 가라지들이 있었음을 가리킴이 아니고 무엇인가?. 물론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듦으로써 훨씬 더 많은 가라지들이 들어왔음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교회 안의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낼 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주님께만 있다.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는 자격이 우리(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가라지와 알곡을 가르고 골라내시는 분은, 농부 되신 우리 주님의 고유권한이며 그분의 주권하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가라지 같다고 하여도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것은 주의 명령이다. 가라지를 찾아내고 갈라내고 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올바른 분별을 하도록 말씀의 떡을 떼는 것, 정(正, right)과 반(反, wrong)을 밝히고 논하는 그 선(line)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이다. "너는 가라지" 혹은 "너는 사단의 자식"이라고 쉽게 정죄하거나 손가락질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내가 갈라내려 하는 것과 주님의 말씀이 어떠한가, 그 정신을 논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내가 알곡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더욱 겸손하여 나보다 더 연약한 영혼을 섬겨야 할 것이다. 내가 참 열매인가? 그렇다면 가지 되신 주님께 더욱 바싹 붙어 있어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하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죽이는 말을 하기 전, 세워주고 밀어주고 살려주는 말을 하자. 다시는 우리 주님의 몸인 교회(개인교회)를 찢지 말자.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말을 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찢기시고 상하신 것은,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하심이다. 주께서 당하신 그때 그 모진 고통 한 번만으로도 족하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찢을까 삼가 조심하자. 말세가 가까워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 12)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 28절 하 참조).”


부록:
천국, 교회, 가라지 (마13:24~30) / 박윤선 박사 (주석에서 발췌)
  마 13: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여기 "천국"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헬라원어로 헤이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을 가리킨다. 이것은 현세에 있어서는 진정한 교회요, 내세에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이고(계21:1,22:5), 사후의 세계에는 천당이다(요14:1-4). 이 귀절들에 나온 비유에서는 천국이란 말이 교회를 의미한 방면이 농후하다. 진정한 "좋은 씨"란 말은 예수님께서 이 뒤에 해석하신 대로(마13:38), "천국의 아들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 마음속에 참되어 받은바 되어 그 생활에 변화를 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약1:18; 벧전1:23).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과 같다. 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히 받으면 생명을 받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생활이 이세상의 사람과 달라진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산다.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 뒤에 해석하신 대로 (마13:38,39)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원수는 마귀"이다. 이것은 교회 안에 마귀의 말을 듣고 순종하는 악도들도 섞여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주의할 말씀은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왔다는 것이다. 곧, 이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악한 씨가 들어온다는 말씀이다. (1)악한 씨는 신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마음에 들어와서 자라고 커서 장차 그의 신앙생활을 무실하게 만든다. (2)우리가 어떤 때에는 무엇을 선하고 유익하다고 하여 택하였으나 후에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도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참으로 선한 것이 아닌데 우리가 마귀에게 속아 그것을 택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교회 안에 있는 악도도 한 동안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실의 시기에는 그 본색을 나타낸다.

  마 13:28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이것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가라지와 같이 악한 결과를 나타낸 교회원을 교회에서 아주 단절시키고 아무런 소망도 두지 않으려는 심정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한 처분은 교회의 권징이 아니고 마지막 심판인 것이다. 권징은 단절하여 내어버리는 처분이 아니고 회개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실시하는 사랑의 처리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라지를 뽑는 것과 같은 행동이 아니고 자극성 있는 약을 주는 것과 같은 일종의 배양 행위이다.

  마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이 말씀은 윗말에 있는 바와 같이 범과자를 아주 심판하여 내어 버림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권징 행위를 금지함이 아니다. 교회가 범과자에게 대하여 권징하여야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바 있다(마18:15-20). 권징 실시의 필요에 대하여는 신구약이 일률적으로 가르친다.(고전5:1-13; 살후3:14,15).
 마 13:30

  둘 다 추구 때가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이것은, 교회가 그 교훈 노선이나 생활 노선을 분변 없이 해도 좋다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사상이나 행위에 대하여 처리하는 것을 금함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다.(마16:6,12). 이 구절들에 있는 말씀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인신에 정죄함을 금지하는 것뿐이다. 인신 정죄는 사람이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다. 풀러라는 학자는 인간으로서 인신 정죄를 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말하였다. 그것은 (1)교회에 있는 외식자를 인간의 지혜로는 지목하기 어려운 까닭 (2)그렇게 불가능한 일을 인간이 한다면 악한 신자들도 외식자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 (3) 교회에서 그렇게 불가능한 심판을 한다면 아직 나타나지 못하였던 귀한 영광의 그릇들이 쓸 데 없는 자로 오해되어 내어 던짐이 될 우려가 있는 까닭 (4) 진실한 신자들과 불신실한 자들이 서로 섞여 있으므로 신자들이 깨어 있게 되고 더욱 경건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료 출처:
http://blog.daum.net/_blog/hdn/ArticleContentsView.do?blogid=06maZ&articleno=15721525&looping=0&long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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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2013-12-05 20:59
 65.xxx.228
 “교회”라는 정의는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고전1:2) 모인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정의 안에는 가라지와 쭉정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순수한 알곡 신자들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에는 가라지가 들어올 수도 있고, 쭉정이가 들어와 섞여있거나, 생길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친구가 섬기는 ss교회에는 00이단의 교인이 들어와 거의 12년을 암약하다가 나갔고, 저의 교회에도 최근에 AA이단의 사람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런 말씀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후 5:8)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고 알곡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치리권과 징계권을 사용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계속 안 나가는 가라지와 쭉정이를 어쩌겠습니까?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는 가라지와 쭉정이를 어쩌겠습니까?  발견이 안되는데 어쩔 것입니까?  변하길 기다려도 안변하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그 날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교회, 즉 하나님의 집에서서 심판을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서리요” (벧후 4:17-18)

이 말씀을 볼 때, “타작마당”이란 세상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교회도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타작의 목적과 대상은 가라지와 쭉정이가 될 것입니다.


pastor1 
2013-12-04 18:34
 108.xxx.254
 가라지에 대한 지방교회의 견해
 오늘 나는 마태 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 지방 교회의 하나님의 왕국과 천국에 대한 견해에 대해 반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가리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구별할수 없을정도로 흡사하여 이삭이 날 때 곧 추수때까지는 진짜 밀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가라지는 독사(마귀)의 자식으로 사람들을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게 하고 불법과 불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철저히 자신을 구원받은 성도로 위장하여 믿는 이를 속일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스스로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귀 사단이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가라지는 사람들이 잠잘 때 원수가 교회 안에 뿌립니다 여기서 잠잘 때는 영적인 침체 혹은 하락이나 사망을 뜻합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하락하여 영 분별 능력을 상실하면 원수가 가라지를 교회 안에 심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시대 이후로 교회는 하락하여 오늘 날 교회는 극심한 영적 침체기에 있습니다 이와같이 영분별이 안되는 시기에 원수는 교회 안에 가라지를 심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이치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모든 병은 병원균에 의해 발병하는 데 병원균이 몸 안에 침투했다할지라도 즉각 발병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잠복기를 거치는 것입니다 에이즈같은 죽음의 균은 잠복기간이 놀라울 만큼 깁니다 그러나 발병하면 현대 의학으로는 치유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에이즈 균보다 더 잠복기간이 긴 것이 바로 원수가 교회 안에 뿌려 놓은 가라지입니다 이 가라지는 주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사 알곡은 곳간에 가라지는 불에 태우기까지 구별되지 않으니 참으로 두렵고 경계해야 할 가라지인 것입니다 가라지가 믿는 이를 속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스스로 가라지인줄 모른채 교회 안에 잠복할 동안 교회는 극심한 해독을 입는 것입니다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 안에 분명 두 종류의 씨앗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으며 주님의 심판은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심판임이 분명합니다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 형제는 분명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과 같이 온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육신이 연약한 자들이었고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한 부분이 분명 있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가 구원과 상급을 구분하여 구원은 하나님의 왕국으로 천국은 상급으로 나눈 것은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서는 논리적 설득력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본질은 양과 염소에 대한 분리이며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분리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관점에서 성경에 기록된 심판을 연구하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가지는 못한다"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가라지가 있다" 이 말은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며, 또 어떤 유명한 신학자의 사적인 견해도 아닙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며 주님이 직접 비유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종들은 주께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라고 묻지만 사실은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을 수 있는가?"

종들의 관점에서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임에 분명합니다 지상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다면 그리스도가 그의 피로 산 교회안에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인데 이것을 받아 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내가 지방 교회에 대해 말한다면 "탁월한 가르침이 선포되는 지방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다"라고 말한다면 지방 교회의 지체들은 누구도 쉽게 받아 들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회복은 하나님의 정하신 길이고 하나님이 이 시대를 위해 예비하신 것인데 "가라지가 있다니 이는 지방 교회를 음해하는 모략일 뿐이다"고 주의 회복의 탁월함이 뼛 속까지 각인된 지방 교회의 어떤 이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친히 교회 안의 가라지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또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하는 심판에 대해서 증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라지의 정체는 언제 드러납니까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 가라지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라지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그 본 모습을 감출 수 있을지 모르나 결실할 때에는 반드시 그 정체를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가라지들은 "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 앞에서 말할 것이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불법은 선을 행치않았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뿌린 씨가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나니"라는 말씀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 앞에서 수식하는 것을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이 성경 귀절은 가라지들에 대해서 너희가 불법을 행하므로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는 내가 뿌린 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는 불법을 행할 수 밖에 없다"라는 의미가 더욱 강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 자신이 뿌린 씨와 마귀가 뿌린 씨를 이미 알고 있으므로 종들은 주께 "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뽑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종들에게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심판이 그리스도인의 보상을 위한 심판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목회현장 
2013-12-03 22:00
 64.xxx.229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교회는 오직 천상의 교회 뿐입니다.
지상의 교회가 불완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쭉정이와 가라지가 알곡과 함께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가라지가 어떻게 지상의 교회에 공존할 수 있는가? 반문할 수 있으나 현실의 교회를 볼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단들이 교회로 들어오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쉬운 예로 신천지가 교회로 들어온 것만 봐도 알 수 있고, 또 다른 이단들도 자신을 숨기고 교회로 들어오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로 들어올 때,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속이고 들어오기에, 교회 속에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A 라는 가라지가(이단)가 들어왔었고, 지금도 B라는 이단인 한 가정이 들어와 있습니다. 먼저 들어왔던 가라지 A는 가만 두었더니 자기 발로 나갔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고민하고 있었는 데 자기 발로 나가주니 아주 좋은 것이었습니다.
B라는 가라지는 지금 현재 교회 속에 있는 데, 담임목사님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혹시나 변할까 하구요. 혹시나 바른 믿음을 가질까 지켜보는 거지요. 또는 나쁜 짓을 할까 봐 지켜보는 거구요.

이렇게 볼 때, 교회에는 가라지와 쭉정이와 알곡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 아멘냇은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에 가라지와 쭉정이들이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와 쭉정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뭔가?
그 특성을 보았더니 4가지였는 데,
하나는 거짓말을 아주 잘한다는 것입니다.
둘은 교회 안에 말썽을 피우고, 교회안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셋은 사람들을 속입니다. 속임수에 능합니다.
넷은 남의 일에 간섭을 잘합니다

 그러므로 가라지와 쭉정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거짓말을 잘 하면 가라지요 쭉정이 입니다.
공동체 안에 분란을 일으키고 말성을 피우면 그런 사람은 가라지요, 쭉정이 입니다.
남의 일에 간섭을 잘 하면 가라지요 쭉정이 입니다.
속임수로 사람들을 속이면 그는 가라지요 쭉정이 입니다.

이 네(4) 가지로 가라지와 쭉정이를 구별하여 "자주 평안" 이룩합시다.
 
짐보 
2013-12-03 18:06
 207.xxx.194
 권면님,
별똥별님도 본 글에 주장하셨고
 저도 별님의 글에 동의하며 보충하는 댓글로 써놓았는데
 님은 먼저 님의 주장을 하셔야지 질문을 하시는 건 다른 의도로 보이는 게
 님의 수많은 아이디를 보았고 님이 글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덕이 되지 않는 분란의 논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님이 질문을 하였기에 다시 정리해 드립니다.
이 이후로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질문은 사양합니다.
그리고 님이 동의에 상관없이 제 주장의 변화를 기대하지 마시고
 만일 님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의 주장으로 끝맺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주님은 교훈이나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에 빗대어 설명에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비유는 예를 들어 구원같이 천국같이 추상적인 진리를
 일상을 빗대어 이해하기 쉽게 친근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가 교회에 있다는 주장은 
우선 ‘씨’에 대한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마13:3-23,막4:3-20).
-씨가 은밀히 자라는 비유:28(막4:26-29,눅8:4-15).
-곡식과 가라지 비유(마13:24-30).
-겨자씨 비유:(마13"31-19).
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씨의 비유입니다.
-씨는 생명이라 환경에 따라 죽기도 하고 자라서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씨는 종자(種子)다릅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태복음13:38]을
 문자 그대로 밭 = 세상 이면서
 헬라어로는 ‘코스모스’(kosmos)인데 성경은
 우주(요 1:10), 인간 세상(요 3:16),
하늘과 땅 전체(행 17:24), 지적인 세계(고전 4:9), 사람이 사는 곳
(고전 5:10)
으로 세상과 교회의 칼로 자르듯이 구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피조세계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시지만 사단도 일을 합니다.
물론 구분하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도 많습니다.
분리주의 자 들이고 영지주의의 사상을 가진 이원론 자들이지요.
계급적인 영지주의 자들이 분리한 세 계급처럼
 최고위 영적계급(Pneumatikoi spiritual man)
보통 교인인 정신적인 계급(Psychikoi semi-spiritual man)
물질적 계급 이방인(Hylic material man).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는
 교회의 일은 무조건 분별없이 선하고 삶의 일은 세속적이다 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세상과 교회를 (가시적으로) 분리하는 일이 교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것으로 여기게 가르치며
 이세상은 악하여 버려야 할 곳이고 오르지 천국만을 바라봐야 하는
 금욕주의적인 삶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땅에 충만 하라 하셨고
 세상은 우리가 누려야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운 삶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늘 감사하는 소망을 바라보는 땅이기에
 세상은 사탄의 지배로 악하고 모든 교회는 선하다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의 "가라지 비유"입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상에 심는 동시에,
한 편으로 사단도 자기의 자녀들을 심어놓고 있습니다(마 13:37-39).
그래서 하나님의 밭에는 곡식(하나님의 자녀들) 뿐 아니라
 가라지(사단의 자녀들)도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밭 = 교회 가 됩니다.
밭이 교회라는 전승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교부시대를 넘어 어거스틴도 밭을 교회로 해석하였고
 칼빈에 의하여 확정한 전통적인 해석 유래(由來)입니다.
우리가 아는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입니다.
교회의 건물이 세위진건 삼백년이 넘어서 지어졌고
 세상과 교회의 구별을 가시적으로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어거스틴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악한 자녀들을 그대로 허용하시는 것은
 첫째로 그들에게도 충분히 회개할 시간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똑같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을 기회를 제공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추수 때까지 참으시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마지막까지 그대로 두시는 것은
 그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들을 제거하면
 곡식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교회에는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 몇 분들 반대주장을 하고 성경적인 확신과 확증으로 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옳지 않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상대를, 상대의 연약함을
 긍휼이 자비로 여기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진리시고 주님이 우리의 사랑이 되셨듯이
 진리는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다 합심하여 선을 이루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장쟁이 
그렇습니다. 짝짝...
'무엇은 무엇이다' 식으로 단정하고 비유풀이를 하는 자들에게
또 자신의 생각과 한 조각의 말꼬투리를 잡고 심판의 칼(?)을 휘두르는 재단사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깨달음을 던지는
짐보님의 댓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짐보님의 깊은 신앙과 배려와 영성에 경의를 표합니다.
충성! 12/4 12:36
 173.xxx.141
 
 holykang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죠.
사모님이 시기 적절하게 좋은글을 올려주셨읍니다.
항상 좋은 정보 감사하고있읍니다 12/3 15:10
 50.xxx.254
 
  요나 
2013-12-02 10:43
 69.xxx.50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 하며 돈을 사랑 하며...
이런 모습이 교회안에도 스며들어 집단 이기주의와 맘몬사상 으로 점점
 심화 되는 모습들로 인해 괴로워 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내안에서 자라고 있는 저에게 다시 한번 교회의 본질을 깨우쳐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초생달 
2013-12-02 00:39
 121.xxx.123
 교회 .우뚝솟은 그 건물은 즉 [주님의몸]
별똥별님의 말씀은 언제나 진실 을
 논 하고계시잖습니까
 주님의 몸 이라는뜻을 알고있는자들이 교회를 더럽히는자들에게서
 흔하게 볼수있는현상이아니겠습니까?
우리 주님은 그런 자들로인해서 많은 아픔을 견뎌내고있으리라
 생각이듭니다.우리 죄로 인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흘리시는  예수님을
 이곳에까지 아픔을 겨뎌내어야되겠습니까. 교회가세상속에있고 교회가 알곡들만 있기를 원하는 주님이시겠지만 가라지들때문에 세상이시끄럽고 아멘넷에도 그런거짓크리스챤들이 많이들어오고있는것같습니다.별똥별님, 그런자들때문에마음다치지마시고 지금처럼 열심히 좋은글많이써주시기를 초생달 바라마지않겠습니다.

 
 
짐보 
2013-12-01 16:55
 71.xxx.23
 별똥별님
 교회 론에 대하여 잘 설명하셨습니다.
요즘 이곳에서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찬반토론이 이어지는데
 잘 설명하셨고 추천 합니다.
가라지가 교회에 있느냐 없느냐는 가라지가 교회에 있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이를 조금 더 언급하신 글 이외에 덧붙인 다면
 이렇게 연관해 본다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자라나는 씨 비유
-겨자씨 비유 등이 더 있겠으나 여기서는 네 가지의 씨를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누가복음8:5-8]
씨가 떨어진 장소는 세상이냐 교회냐는 의미가 없지만
 말씀으로 교회가 생겼기 때문에 정확히 교회이지요.
씨가 하나님의 말씀이 다고 예수님의 설명이니까요.
그러면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마태복음13:38]
문자 그대로 밭=세상이기도 하지만
 밭이 세상이라 하신 이유는 세상에 속하여 존재하는 교회를 이른 거로
 초대교회와 교부들이 해석하였고 그것이 전승이며 유래로 알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태동하고 삼백년이 넘어서야 교회의 건물이 지어졌고
 그 전까지는 가정교회로 가시적으로 교회와 세상이 구별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도 밭을 교회로 여겼습니다.
“어거스틴은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들을 헌용하면서 교회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했다.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의 구분은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인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적, 가시적 교회는 절대로 완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이긴 하지만 이는 "섞인 몸(corpus permixtum)"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인 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verum)"과 "위선적인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simulatum)"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서, 교회가 "섞인 몸"이기 때문에 "신비적인 몸(corpus mysticum)"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들에서 등장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마 13:24-30) 및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의 비유(마 13:47-50)들을 전형적인 예로 삼았다. 나쁜 부류들과 좋은 부류들은 역사의 마지막 때에 가서 주님에 의해 분리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최종적인 판단자들(final judges)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교회가 성결하다는 것은 교회가 주님의 몸이며, 그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이지 모든 구성원들이 성결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communio peccatorum)였으나, 믿음으로 성도들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가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주름과 흠이 없는 교회(엡 5:27)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다.
-도나투스주의자들과의 논쟁에 나타난 어거스틴(Augustine)의 성서해석 김 영 도 목사“

교회에 가라지가 없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고
 그 보단 교회가 주님을 모신 공동체로서의 지체라는
 공동의식이 사라져가는 내부적으로 주의 사랑인 복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사라진 공동체라서 동력을 잃어가고
 외부적으로 개교회 중심이라 교회와 교회가 소통하지도 연합하지도 못하는 성경의 교회와 멀어진 현실은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는
 반증입니다.
 
 짐보 
 씨는 생명이라 성장하고 열매를 맺지만
씨는 종자가 다르기에
목적이 다르고
결과가 다르다고.
일반적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하고. 12/1 17:17
 71.xxx.23
 
  기자석 
2013-11-30 14:24
 65.xxx.228
 별샌님의 교회론 잘 보았고 명심하겠습니다.
한 가지 기도제목은 ...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 눈에 보이는 가라지를 안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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