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리스천으로 핍박의 대상인가 비난의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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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ㆍ2016-08-1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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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2천 년 역사를 뒤돌아보면 박해를 받을 때는 신앙 지키느라 고통이었으나 교회와 크리스천의 존재감은 높았다. 극심한 박해가 가해지면 교회가 무너지고 성경이 자취를 감추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날 만큼 위기가 있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가 교회의 생명력은 극대화 되었고 그 영향력은 요원의 불길과 같았다.
기독교는 박해와 핍박의 종교이다. 그 속에서 존재하고 성장하고 세상을 변화케 했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탄생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핍박으로 시작하여 핍박으로 마치셨으므로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박해의 극치)를 지고 나(예수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핍박(박해)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요 15:20)라 하셨다. 그런고로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국 기독교 130년사를 보더라도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그때 교회의 존재감과 그 영향력은 대단하였음을 볼 수 있다. 금년이 조국 광복 71년 되는 해라 하여 국내외에서 의미있고 다채로운 행사가 많았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은 말과 글로 다 나타낼 수 없다. 그 중에도 교회가 받은 박해는 더욱 극심했다. 그들의 절대자로 섬기는 천황에게 절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박해의 총칼은 교회를 겨냥했고 성도들을 교회당에 가둔채 불 질러 화형시키고 갖은 고문과 감금 투옥으로 순교자와 불구자가 속출했다. 박해를 두려워 한 자는 교회 출입을 하지 못했다. 그때메 믿는 성도는 100% 애국애족자요 핍박의 대상이었다.
그 후 일본이 패전하여 박해자들이 물러가자마자 북한공산주의자들이 박해하기 시작했다. 지주(地主)들과 기독교인들을 겨냥한 박해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그들을 견디지 못하여 다 버리고 남쪽으로 월남한 분들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북한에 남아 있던 교회 지도자 뿐 아니라 성도들이 순교 당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도록 북쪽에는 박해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 있던 교회가 북한에서 온 성도들과 힘을 합쳐 더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지켜온 결과 한국 교회는 크게 성장하여 전 인구의 약 25%가 성도였다. 동시에 교회가 분열되어 교파가 우후죽순처럼 많아지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성경해석이나 이권, 명예욕, 물질욕으로 교파를 가르고 신학교가 난립되었다. 학장, 총장이 많아지고 총회장 자리가 많아졌다. 교회지도자들 중 세속화(世俗化, secularization)된 자들이 교회의 명예와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와 공산독재로 인한 박해 때는 교회수가 적었음에도 세상이 교회를 우러러 쳐다보았으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교회수가 많아지면서 일부 교권주의자 이권주의자들의 타락으로 세상이 교회를 내려다보며 비난하게 되었다. 그 후 교인은 날로 감소되고 교회당은 빈 자리가 늘어났다. 과거에 비해 정계(政界) 지도자들의 도덕 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잘못 보고 있는가?
세상 지도자와 교회 지도자를 재는 윤리적 잣대와 저울은 같지 않다. 같은 죄를 범해도 교회 지도자를 평가하는 잣대와 저울은 더욱 엄격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는 성경적 높은 차원의 윤리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근신과 조심을 잊지 말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의인 10명(창 18:32)이 없어 유황불 심판을 면치 못했다. 한국과 이곳 미국에는 그 보다 더 많은 의인이 있을 것이기에 결코 비관하거나 낙망치는 않는다. 남이 의인되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의인되도록 힘쓰자는 것이다. 비난의 대상에서 핍박의 대상이 되자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현주소는 이 땅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이다. 그리스도 밖에서 주소를 두었을 때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는 새로 지음받은 피조물(고후 5:17)이 되어 핍박의 대상으로 살자는 것이다. 핍박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크리스천이 될 수 없기 때문(요 5:20)에 피하고 싶은 마음을 바꿔야 할 것이다.
바른 신앙으로 살려고 하면 오늘날에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표를 잃기도 하고 왕따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義)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예수님은 "의(義)를 위하여 핍박(박해)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예수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福)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개인이나 교회가 신앙생활 바로 하려다 핍박(박해)을 받을 때 칭송과 존경을 받고 부흥했으나 비난과 조롱을 받을 때는 약해지고 망한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나는 결코 핍박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굳게 하기로 하자.
기독교는 박해와 핍박의 종교이다. 그 속에서 존재하고 성장하고 세상을 변화케 했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탄생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핍박으로 시작하여 핍박으로 마치셨으므로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박해의 극치)를 지고 나(예수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핍박(박해)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요 15:20)라 하셨다. 그런고로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국 기독교 130년사를 보더라도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그때 교회의 존재감과 그 영향력은 대단하였음을 볼 수 있다. 금년이 조국 광복 71년 되는 해라 하여 국내외에서 의미있고 다채로운 행사가 많았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우리 민족이 당한 수난은 말과 글로 다 나타낼 수 없다. 그 중에도 교회가 받은 박해는 더욱 극심했다. 그들의 절대자로 섬기는 천황에게 절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박해의 총칼은 교회를 겨냥했고 성도들을 교회당에 가둔채 불 질러 화형시키고 갖은 고문과 감금 투옥으로 순교자와 불구자가 속출했다. 박해를 두려워 한 자는 교회 출입을 하지 못했다. 그때메 믿는 성도는 100% 애국애족자요 핍박의 대상이었다.
그 후 일본이 패전하여 박해자들이 물러가자마자 북한공산주의자들이 박해하기 시작했다. 지주(地主)들과 기독교인들을 겨냥한 박해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그들을 견디지 못하여 다 버리고 남쪽으로 월남한 분들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북한에 남아 있던 교회 지도자 뿐 아니라 성도들이 순교 당하였고 오늘날에 이르도록 북쪽에는 박해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 있던 교회가 북한에서 온 성도들과 힘을 합쳐 더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지켜온 결과 한국 교회는 크게 성장하여 전 인구의 약 25%가 성도였다. 동시에 교회가 분열되어 교파가 우후죽순처럼 많아지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성경해석이나 이권, 명예욕, 물질욕으로 교파를 가르고 신학교가 난립되었다. 학장, 총장이 많아지고 총회장 자리가 많아졌다. 교회지도자들 중 세속화(世俗化, secularization)된 자들이 교회의 명예와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와 공산독재로 인한 박해 때는 교회수가 적었음에도 세상이 교회를 우러러 쳐다보았으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교회수가 많아지면서 일부 교권주의자 이권주의자들의 타락으로 세상이 교회를 내려다보며 비난하게 되었다. 그 후 교인은 날로 감소되고 교회당은 빈 자리가 늘어났다. 과거에 비해 정계(政界) 지도자들의 도덕 수준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잘못 보고 있는가?
세상 지도자와 교회 지도자를 재는 윤리적 잣대와 저울은 같지 않다. 같은 죄를 범해도 교회 지도자를 평가하는 잣대와 저울은 더욱 엄격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는 성경적 높은 차원의 윤리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근신과 조심을 잊지 말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의인 10명(창 18:32)이 없어 유황불 심판을 면치 못했다. 한국과 이곳 미국에는 그 보다 더 많은 의인이 있을 것이기에 결코 비관하거나 낙망치는 않는다. 남이 의인되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의인되도록 힘쓰자는 것이다. 비난의 대상에서 핍박의 대상이 되자는 것이다. 크리스천의 현주소는 이 땅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이다. 그리스도 밖에서 주소를 두었을 때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는 새로 지음받은 피조물(고후 5:17)이 되어 핍박의 대상으로 살자는 것이다. 핍박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크리스천이 될 수 없기 때문(요 5:20)에 피하고 싶은 마음을 바꿔야 할 것이다.
바른 신앙으로 살려고 하면 오늘날에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표를 잃기도 하고 왕따도 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義)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다.
예수님은 "의(義)를 위하여 핍박(박해)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예수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핍박(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너희에게 복(福)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개인이나 교회가 신앙생활 바로 하려다 핍박(박해)을 받을 때 칭송과 존경을 받고 부흥했으나 비난과 조롱을 받을 때는 약해지고 망한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나는 결코 핍박의 대상이 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굳게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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