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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질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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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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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일치입니다. 일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요인은 현대가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다가 일치의 가치를 소홀히 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회가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일치를 이루어 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일치가 다양성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일치를 이루어 내려면 거기에 가치의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가치질서가 무시되는 형편에서 다양성의 가치도 존중하고 일치도 이루려고 하는 것은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좇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세분화 되고 전문화 되는 상황에서 다양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문제는 분야가 서로 다른 것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그릇된 견해를 갖게도 합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그것은 현대인들이 맞고 있는 정신적 위기의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 동안 서구 철학은 이성을 최종적인 권위로 생각하였습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나아가서는 과학적 진리까지 그것의 최종적인 판정을 이성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성의 불완전성을 인정했던 철학자들까지도 결국은 그들의 주장을 이성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성의 권위가 이제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이성의 권위를 예전과 같이 인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을 때 그는 기독교가 이성과 합리주의를 하나님과 동일시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 죽었다는 것은 이성이 죽었다는 의미이므로 이성의 권위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가리켜 사람들은 니체가 부활한 시대라고 하기도 합니다. 자연과학이 하나님의 자리에 이성을 앉힌 잘못과 기독교가 이성이나 합리주의에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한 실수를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이성의 권위 모두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전의 하나님의 권위나 이성의 권위를 철저히 부정한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치와 권위가 이성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오다가 이성의 권위가 무너지자 모든 가치와 권위까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전에 귀하게 여기던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전에 천하게 여기던 것도 천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하고 남자는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옛 말이 되어 버렸고, 남자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합법적이 되었고,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는 것도 합법적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반드시 여자일 필요도, 아버지는 반드시 남자일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여 어머니로도 부릅니다. 한 마디로 현대는 가치의 혼란시대입니다. 절대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를 굳이 존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인이나 윗사람을 존대할 필요도 없고, 성직자나 스승을 존중할 필요도 없습니다. 노약자를 보호하던 전통적 가치가 노골적으로 파괴되는 사건들이 연일 일간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고, 청소년들이 어른을 존경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노인의 자살률이 높아가는 것도 가치 질서가 무너진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청소년들의 잘못을 나무라고 꾸짖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키가 크고 힘이 센 청년이라도 노인이 나무라거나 꾸짖으면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기가 정당해도 어른의 질책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노인이 길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 청소년들을 나무라거나 꾸짖다가는 뺨을 맞고 발길질을 당합니다. 노인을 존경해야한다는 가치 질서가 지켜지던 때의 어른들은 아무런 부담 없이 잘못 하는 젊은이들의 꾸짖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른이 겁이 나서 청소년을 꾸짖을 수 없습니다. 꾸짖기는커녕 아무런 상관이 없이도 무슨 봉변을 당할까봐 불안을 느낍니다.
 
질서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무질서는 불안하게 합니다. 사상이 혼란하게 되고, 가치질서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한 없이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치를 외칩니다. 불안의 요인을 분석할 능력은 없지만 무엇인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치운동입니다.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하나가 되기에는 역사상 가장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이 모래알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한데 모아놓는다고 하여도 그것은 진정한 일치가 아니라 모래성과 같은 일치일 뿐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물리적인 질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치의 질서가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구별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질서가 서려면 절대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을 주시기 전에 마치 주실 법의 대 전제와 같은 말씀으로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코데쉬(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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