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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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1-05-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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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의하면 가족의 일차적 구성은 부모도 자녀도 형제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남편과 아내로 맺어져서 가정을 이룹니다. 부모나 자녀나 형제는 가정이 구성된 다음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가정의 목적과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가정이 기본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통하여 이루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이나 다른 구성으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혼인의 제도는 사람이 결코 변개할 수 없는 창조 질서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했어도 이 창조 질서의 기본 구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남자와 남자가 혹은 여자와 여자가 합하는 것은 혼인도 아니고 가정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혼인과 가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에 따라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그 차원에서 이해하고 논의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동성애는 타락한 인간의 욕구를 따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와 목적 가운데 세워진 혼인과 가정과는 아무른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가지 주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동성애자의 사회적 권리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동성애의 기원에 대한 문제이고 그것은 곧 두 번째 문제인 그들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긴밀한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생리적으로 동성애적 관계를 선호하도록 태어났거나 환경의 영향으로 동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 동성애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동성애자가 생리적으로 동성애를 선호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는데 능동적으로 그런 성적인 경향을 선택했다면 그의 선택은 도덕적 평가와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그리고 보편적인 법체계에 종속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창조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철학적 자연주의와 경험론적 연구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는 의지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정신적 질병이나 도덕적 도착이나 치료로 고칠 수 있는 학습된 태도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동성애가 질병도 선택된 행동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동성애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이론을 사용합니다. 그러한 이론 중에 동성애의 성향이 유전적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 보다 동성애적 선호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후천적으로는 부모의 자녀 양육 환경과 방법이 동성애를 선호하도록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즉 독재적이고 소유욕이 강한 어머니와 가정에서 별 영향력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동성애를 선호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회 환경이 동성애적 조우(遭遇)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배타적 범주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적 통념이 어쩌다 동성애를 경험하게 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정의를 내리게 하고 그러한 생각이 굳어지면서 다른 동성애자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자극을 받는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동성애가 생득적인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혹은 선택적 취향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의견이 나뉘어 있습니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동성애자들이 자기들의 성적 취향을 선택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동성애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유전적 영향이나 사회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성애는 고대 사회에서나 성경에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어떤 사회가 동성 혼인을 합법화 하거나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용인한 것에 대한 기록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과거 모든 역사에서 자신들의 성적 경향과 관행을 비밀로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소수의 동성애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69년 뉴욕 시에서 시작된 게이 해방운동(the Gay Liberation Movement)은 그들의 목표와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표방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동성애자들 가운데서 에이즈의 발생으로 그들의 운동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사회는 그들을 꾸준히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은밀한 그들의 생활을 유지해 오다가 이제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조직이 되어 백악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적 힘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사회 복지에 힘쓰고 환경보호운동에 기여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국제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며 수많은 NGO 단체에서 활동합니다. 미국에서 그들의 정치적인 힘은 자신들을 인종 차별 금지법의 실질적 일차 수혜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목사가 교회 강단에서 동성애는 비성경적이라고 설교하는 것과 동성애자의 교회 봉사나 활동 하는 것을 제한 한 것 때문에 교회가 고소를 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혐오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성의 죄악 중에 동성애가 포함되어 있고, 사사기 19장에는 동성연애로 기브아 사람들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은 동성애를 죽음에 처해 마땅한 “가증한 일”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신약 고전 6장 9-10절과 딤전 1장 8-11절에는 동성연애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죄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7-28절에 동성애를 “역리이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성경의 명시적 교훈들은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원리를 담고 있으며 그 어떤 유형의 동성애도 예외로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이고 유전적인 요인들이 동성애를 하도록 어떤 영향을 끼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결코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개인이 의지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적 심리적 생리적 조건에 의하여 허용된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정신없는 신학자들 중에는, 성경이 반대하는 것은 현대의 동성애가 아니고 성을 왜곡하는 자, 즉 이성애자로 태어났으나 동성애자가 된 자의 동성 행위를 반대하고, 또한 나이든 남자의 어린 소년과의 관계를 반대하고, 성경 본문이 동성애를 징책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관행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적 난교, 페더래스티, 우상숭배와 연결된 동성애, 성전 매음 등을 꾸짖는 것이지 동성애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절대 기준이나 보편 규범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동성애도 정상적이고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동성애는 역리가 아니라 순리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칭송할 만한 것이 될 수가 있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강제된 동성애는 금해야 하지만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진 동성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정황과 동성애의 형식이 바뀐다고 해도 성경에서 그것을 금하신 하나님의 뜻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성경이 명백하게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금지한다고 믿기 때문에 동성애를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건전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유도 상황도 근거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더구나 동성에를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혼인의 제도는 거룩한 가정을 통해서 거룩한 자녀를 낳게 하신 것이고 나아가서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거룩은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고 동성애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그 나라를 위해서 세워진 혼인과 가정을 전제한다면 동성애는 인간의 왜곡된 욕구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PCUSA가 교역자의 혼인 조건을 성경이 명시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에서 “두 사람의 연합”으로 바꾸어 놓아서 동성애자가 목사가 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반발하는 PCUSA 내의 한인 교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성애의 허용이 아니라 그것을 명백히 금하고 있는 성경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항해하는 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여 믿음과 경건과 도덕의 보루인 성경의 권위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이제 세속은 허물어진 그 틈을 통하여 걷잡을 수 없는 세력으로 교회에 범람하게 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해서 아직도 그런 것을 문제삼느냐는 태도를 보일 것이 자명합니다. 경건한 자손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뜻을 생각한다면 동성애와 같은 성적 취향을 선택하는 것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 말 2:15 -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가지 주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동성애자의 사회적 권리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동성애의 기원에 대한 문제이고 그것은 곧 두 번째 문제인 그들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긴밀한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생리적으로 동성애적 관계를 선호하도록 태어났거나 환경의 영향으로 동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다면, 동성애가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동성애자가 생리적으로 동성애를 선호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는데 능동적으로 그런 성적인 경향을 선택했다면 그의 선택은 도덕적 평가와 비난을 받아 마땅하고 그리고 보편적인 법체계에 종속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창조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현대의 많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철학적 자연주의와 경험론적 연구의 영향을 받아 동성애는 의지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평가는 정신적 질병이나 도덕적 도착이나 치료로 고칠 수 있는 학습된 태도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동성애가 질병도 선택된 행동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동성애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생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이론을 사용합니다. 그러한 이론 중에 동성애의 성향이 유전적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 보다 동성애적 선호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후천적으로는 부모의 자녀 양육 환경과 방법이 동성애를 선호하도록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즉 독재적이고 소유욕이 강한 어머니와 가정에서 별 영향력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가 동성애를 선호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회 환경이 동성애적 조우(遭遇)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배타적 범주로 설정하고 있는 사회적 통념이 어쩌다 동성애를 경험하게 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정의를 내리게 하고 그러한 생각이 굳어지면서 다른 동성애자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자극을 받는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동성애가 생득적인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 혹은 선택적 취향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의견이 나뉘어 있습니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동성애를 금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동성애자들이 자기들의 성적 취향을 선택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동성애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유전적 영향이나 사회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성애는 고대 사회에서나 성경에도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어떤 사회가 동성 혼인을 합법화 하거나 동성애를 명시적으로 용인한 것에 대한 기록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과거 모든 역사에서 자신들의 성적 경향과 관행을 비밀로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미국의 소수의 동성애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69년 뉴욕 시에서 시작된 게이 해방운동(the Gay Liberation Movement)은 그들의 목표와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표방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동성애자들 가운데서 에이즈의 발생으로 그들의 운동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사회는 그들을 꾸준히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동성애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은밀한 그들의 생활을 유지해 오다가 이제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조직이 되어 백악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적 힘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사회 복지에 힘쓰고 환경보호운동에 기여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국제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며 수많은 NGO 단체에서 활동합니다. 미국에서 그들의 정치적인 힘은 자신들을 인종 차별 금지법의 실질적 일차 수혜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목사가 교회 강단에서 동성애는 비성경적이라고 설교하는 것과 동성애자의 교회 봉사나 활동 하는 것을 제한 한 것 때문에 교회가 고소를 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동성애를 혐오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성의 죄악 중에 동성애가 포함되어 있고, 사사기 19장에는 동성연애로 기브아 사람들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은 동성애를 죽음에 처해 마땅한 “가증한 일”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신약 고전 6장 9-10절과 딤전 1장 8-11절에는 동성연애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지 못할 죄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27-28절에 동성애를 “역리이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성경의 명시적 교훈들은 모든 시대와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할 원리를 담고 있으며 그 어떤 유형의 동성애도 예외로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이고 유전적인 요인들이 동성애를 하도록 어떤 영향을 끼치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결코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개인이 의지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동성애가 사회적 심리적 생리적 조건에 의하여 허용된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정신없는 신학자들 중에는, 성경이 반대하는 것은 현대의 동성애가 아니고 성을 왜곡하는 자, 즉 이성애자로 태어났으나 동성애자가 된 자의 동성 행위를 반대하고, 또한 나이든 남자의 어린 소년과의 관계를 반대하고, 성경 본문이 동성애를 징책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관행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적 난교, 페더래스티, 우상숭배와 연결된 동성애, 성전 매음 등을 꾸짖는 것이지 동성애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절대 기준이나 보편 규범은 없다고 믿기 때문에 동성애도 정상적이고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입장에서 동성애는 역리가 아니라 순리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칭송할 만한 것이 될 수가 있는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강제된 동성애는 금해야 하지만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진 동성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정황과 동성애의 형식이 바뀐다고 해도 성경에서 그것을 금하신 하나님의 뜻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성경이 명백하게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금지한다고 믿기 때문에 동성애를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건전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유도 상황도 근거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더구나 동성에를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혼인의 제도는 거룩한 가정을 통해서 거룩한 자녀를 낳게 하신 것이고 나아가서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거룩은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고 동성애는 그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그 나라를 위해서 세워진 혼인과 가정을 전제한다면 동성애는 인간의 왜곡된 욕구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PCUSA가 교역자의 혼인 조건을 성경이 명시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에서 “두 사람의 연합”으로 바꾸어 놓아서 동성애자가 목사가 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반발하는 PCUSA 내의 한인 교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성애의 허용이 아니라 그것을 명백히 금하고 있는 성경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항해하는 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여 믿음과 경건과 도덕의 보루인 성경의 권위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이제 세속은 허물어진 그 틈을 통하여 걷잡을 수 없는 세력으로 교회에 범람하게 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해서 아직도 그런 것을 문제삼느냐는 태도를 보일 것이 자명합니다. 경건한 자손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뜻을 생각한다면 동성애와 같은 성적 취향을 선택하는 것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 말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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