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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신자의 삶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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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05-01

본문

희랍어에는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이 있는데 하나는 크로노스(χρόνος)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καιρός)입니다. 크로노스는 천문학적으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여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입니다. 늘 어김없이 반복되는 낮과 밤이나 계절이 변하는 시간, 즉 사람들이 친구와 약속하고 만나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의 시간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식물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시간이며,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고,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여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시간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이 시간 안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크로노스”는 희랍 신화 속에 나오는 신의 이름입니다. 신화에서 “크로노스”는 자기의 친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추방하고, 그도 역시 자기의 자식들에 의해 추방된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크로노스”라는 이름이 “시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시간은 자식들에 의하여 추방되도록 운명되어져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자식이고, 어제의 자식인 오늘은 또한 내일의 아버지인 셈입니다.

아비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아비를 추방하며, 그 자식은 다시 자식을 낳고 자기의 자식에 의해서 밀려난다는 것이 고대인들이 이해한 시간의 개념입니다. 인생을 이런 개념의 시간 안에서 생각하게 되면 너무 허무해서인지 고대 희랍인들은 또 다른 개념의 시간, 즉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생각해 냈습니다. 카이로스는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난 때를 가리킵니다.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 시간이며,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희랍어의 이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채용하였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4-15)에서 사용한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이 “때”는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라고도 하셨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도 하셨고,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논리적으로만 종합하려고 하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이미 왔다는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직은 그 때가 오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또한 이미 그 때가 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식적인 일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그 때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성격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왔고 재림 때에 가서야 완성될 것인데, 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처음 언급 된 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고 그것이 역사상에 좀 더 구체화 된 것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그 “때”에 대한 아브라함의 태도에 대하여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10)라고 주해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랐던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역사의 끝에 있을 재림까지가 함축된 것이지만, 아브라함과 구약의 선지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심지어 세례 요한까지도 “아직” 임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아직”이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세례 요한까지는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었고 예수님 이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임한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또한 바라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갔습니다. 믿음을 생각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내용이고 둘째는 전폭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계시이고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을 의미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자기 신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 특히 아브라함에 대해 설명하면서 신자의 삶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9-10).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틴 땅에 살아가는 태도는 결코 아브라함이 살았던 태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았습니다. “장막에 거하였다”는 것은 단순히 유목민의 주거 문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살았던 삶의 특징에 대한 설명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의 이 세상에서의 이러한 삶의 태도를 타계적(他界的)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거류자 혹은 우거자로 살았던 것은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랐기 때문이지만 그는 실질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이미”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영역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성, 즉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지만 타계 지향적으로 살지 않았던 것은 그가 현실에서 전폭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신념을 믿음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 질 것을 믿으며 살았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 될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소망 중에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때까지 현실적으로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원하는 대로 유대인 지배의 세계 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취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 안에 살아가면서 여전히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상존하는 것 때문에 그 나라의 “이미”의 측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도 소망 중에 기뻐하였고 또한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보다 더 풍성하고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 나라가 장차 극치에 이를 것을 받아들이는데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자의 삶의 정체성은 아브라함처럼 이 땅에서 나그네 의식을 가진 거류자로, 그러나 역동적이고 실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평가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창 23: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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