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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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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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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B.C. 386년 아테네 시 교외 숲에 그 지방 신의 이름을 따서 아카데미(Academy)라는 학교를 세우고 그의 남은 40년의 생애를 자기의 철학적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바쳤습니다. 그의 후계자들은 이 아카데미를 이용하여 플라톤의 철학을 다양한 형태로 유포시켰는데, 우리가 주의 깊게 주목해야 하는 점은 플라톤의 철학이 기독교 시대로 분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플라톤의 후학들은 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 외에 박물학, 생물학, 천문학, 음악, 법률 등도 가르쳤지만 무엇보다 철학이 가장 중요한 교과 과목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료를 내지는 않았지만 중류층 가정들은 학교의 유지를 위해 기부금을 넉넉히 내야만 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으로 여자도 입학이 허용되었는데, 여자들에게는 일체의 교육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고대 관습을 감안할 때 그것은 가히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플라톤의 철학과 사상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의 세계관 역사에 기여하게 한 것은 그의 유명한 대화록을 통해서였습니다. 가장 포괄적인 대화록은 “국가”였습니다. 그는 아카데미 교과 과정을 통해 그가 실행하려고 했던 바를 철학적 대화를 통해 변호하였습니다. 그의 주 된 관심은 학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와 국가를 윤리적이고 정치적으로 바르게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국가를 정의롭게 통치할 수 있는 지도자는 도덕적으로 훈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교육을 통하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판단할 수 있는 인물, 우선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자이어야 하고 또한 훈련을 통해 지도적 엘리트가 되면 그런 지도자가 국가를 다스릴 때 비로소 도덕적으로 바르고 정의로운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플라톤의 교육 방법은 대화식이었는데, 먼저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답을 하게하고 대답이 잘못되었을 때 지적하는 식이었습니다. 플라톤 자신이 직접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대화 전체를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대화의 방향을 통제하였습니다.

플라톤이 “국가”를 논할 때 전제했던 것은, 사회란 인간이 확대된 표현이고, 인간은 사회가 축소 표현된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는 “국가는 어떻게 시작되고 왜 세워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회 경제적 이유에 주목하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들이 자급자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생겨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곡물을 재배하는 일, 추수하는 일, 추수한 곡물을 분배하는 일, 집을 짓고 보수하는 일, 옷과 신발을 만들고 수선하는 일 등 그 외에 인간에게 필요한 일이 무수히 많은데 이 모두를 개인이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이 같은 필요에 의해 세워지는 원시 상태의 국가는 “돼지들의 국가”를 닮았다고 하였습니다. “돼지들의 국가”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더럽고 본능적인 욕심이 지배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플라톤은 원시상태의 국가란 사치품이 전혀 없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돼지들의 국가”를 닮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돼지들의 국가”는 기본적 필요만 충족되면 다른 욕심을 내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원시상태의 국가가 “돼지들의 국가”를 닮았지만 그 공동체가 발전을 하면서 욕망에 불이 붙어 기본적 필요가 충족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는, 제어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은 불의와 무질서를 낳게 되고, 부정직과 부정의는 마침내 전쟁까지 일으키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중동 지역의 여러 나라가 겪는 분쟁과 세계 모든 나라가 피할 수 없이 개입하고 있는 경제 전쟁을 플라톤의 “국가”로도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들이 겪는 분쟁과 노회와 교단의 분열과 갈등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누가 크냐는 경쟁이고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의 구역질나는 역겨운 싸움입니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더러운 싸움에 동원되는 주장과 방법들이 모두 경건과 거룩과 공평과 정의라는 성경의 원리들이라는 점입니다.

더러운 욕심의 분탕질이 되어버린 거룩한 공동체 싸움의 “원죄”는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가 왜 가겠느냐는 듯이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강 건너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분별없는 다수는 스스로 “원죄”의 위선에 기만당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분쟁을 주도하는 “막가파”의 언행에 화들짝 놀란 의식이 살아 있는 이들은 피를 토하듯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를 소리 높여 외치다가 지쳐 냉소적이 될 때 사탄은 소기(所期)의 목적을 달성한 것에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인간의 열정과 집념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일을 이루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일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라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이루는 것은 방법이고 그 일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훈련시키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지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좌절되었다고 낙심하고 실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 될 수 있고 또한 교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플라톤의 “돼지들의 국가”에서 돼지는 사치를 모르고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면이 있지만 보다 고급한 가치를 선택할 줄 모르는 무지한 짐승일 뿐입니다. 고급 가치의 대표적인 것은 사랑이고 정의는 사랑의 또 다른 방법이며, 하급 가치의 대표적인 것은 돈과 권력입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에서는 고급 가치가 존중되며 추구되어야 하고 하급 가치가 강조되면 안 됩니다. 하급 가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고급 가치보다 강조되기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고급 가치를 마다하고 하급 가치를 추구하며 거기에 만족하는 개나 돼지처럼 되지 않도록 말씀과 성령께 의지하여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끊임없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 마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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