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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경중에 대한 무지는 인격의 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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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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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에 부유한 촉(蜀)나라를 욕심내는 이웃 진(秦)나라 혜왕(惠王)은 호시탐탐 공격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승산에 자신이 없어 계략을 꾸몄습니다. 혜왕은 욕심이 많은 촉후(蜀侯)를 이용해 촉나라를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소를 조각하여 그 속에 황금과 비단을 채워 넣은 다음 그것을 촉후에 대한 우호의 예물로 촉나라에 보낸다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촉후는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진나라 사신을 접견했습니다.

진나라의 사신이 올린 헌상품의 목록을 본 촉후는 눈이 어두워져 보석의 소를 맞을 길을 열었습니다. 혜왕은 보석의 소와 함께 장병 수만 명을 촉나라로 보냈습니다. 촉후는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도성의 교외까지 몸소 나와서 이를 맞이했습니다. 진나라 병사들은 숨겨 두었던 무기를 꺼내 촉을 공격하였고, 촉후는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촉은 망하고 보석의 소는 촉나라의 치욕의 상징으로 남게 되어 후대인에게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중동지역 대부분의 나라에는 촉후와 같이 어리석은 소탐대실의 지도자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의 후세인,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등 아직도 욕심에 눈 먼 중동 지역,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권 나라의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소탐대실에 있어서 노벨상 감 지도자는 북한의 김정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온 국민의 기본권을 볼모로 사교집단 교주와 같이 되어버린 김정일은 가치 경중에 대한 판단 능력이 없는 인격의 미숙아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헐버트 버터필드는 누구든 히틀러가 처한 동일한 상황에 있었다면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았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그를 비난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아무래도 버터필드만큼 너그럽지 못하고 이해심이 부족하여 사람들을 비난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수는 용서할 의무가 내게 있지만 내 이웃의 원수를 용서할 권리는 내게 없기 때문에 공공의 적이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반하는 것은 분별하여 지적하고 대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소탐대실의 예가 되는 아슬람 나라 지도자들과 북한의 김정일과 같은 지도자를 비난하기엔 마음이 한 구석에 켕기는 부끄러움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 가치를 존중하고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중동 지역의 지도자들이나 북한의 김정일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는 교회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무바라크나 카다피는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자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배려를 너무나 소홀히 하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집트나 리비아처럼 된 교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내용적으로 북한집단과 닮은 교회도 있습니다. 이곳 미주 지역에도 이집트나 리비아처럼 불행하게 된 교회가 있고, 불행하게도 그렇게 될 것 같아 염려되는 교회도 있습니다.

세상 지도자들이 비참하게 되는 원인 중 두 가지를 꼽는다면, 하나는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돈입니다. 문제가 된 대형교회들에게서도 보게 되는 것은 역시 권력과 돈입니다. 교회에서의 권력이라고 해봐야 별 것 아닌 주도권이고, 돈은 하나님의 돈입니다. 그런데 주도권이란 결국 돈과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미국교회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인간의 약점과 한계를 보완할 제도를 마련하여 소탐대실을 예방하고 있습니다.

미국교회에는 은퇴하는 목회자가 노후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연금제도를 마련하였고, 교회의 재산권을 교단소유로 하여 개교회가 재산권으로 분쟁할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분쟁의 원인이 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막아놓았기 때문에 그 수준에서의 분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물론 미국 교회들 중에도 예외의 교회가 있고 또 다른 종류의 분쟁도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겪는 문제, 즉 사소한 주도권과 돈 문제로부터는 비교적 안전한 편입니다.

대형교회의 약점은 가치 경중(輕重)에서 돈과 주도권(권력)이 중(重)이 되고 진리와 거룩은 경(輕)이 되는 것입니다. “대형”의 속성과 힘은 지도자와 청중의 순수성을 압도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리더십이 뛰어난 지도자일수록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경영의 효율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형”을 이루려면 효율성을 따라야 하고 효율성으로는 독재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대형교회 지도자가 자신도 모르게 독재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어쩌다 되어버린 “대형”의 속성에 순응하는 청중을 자기를 신뢰하여 따르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고 또한 자기의 판단이 옳고 정당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것이 민주주의 방법입니다. 교회 지도자에게서 볼 수 있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의 특징 중의 하나는 “회의는 짧게 기도는 길게”입니다. 그것이 마치 경건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입니다.

성경은 소수보다는 다수, 다수보다는 진리를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다스림에 있어서 소수는 독재와 같이 될 위험이 있고, 다수는 민주주의로 독재를 예방하고 책임을 모두가 나누어지게 하며, 진리는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비효율적인 민주주의를 요긴하게 채용하는 이유는 가치 경중의 질서를 존중하고 인간 독재를 막고 모든 책임을 나누어지게 하는데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도덕 명령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보다 우선하는 명령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가치 질서의 근간입니다. 이 원칙은 십계명의 순서 가운데 확립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철저히 가치경중의 질서를 따라 주어졌지만 열 가지 계명은 모두 서로 상응하고 있습니다.

탐심을 경계하는 열 번째 계명과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예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첫 번째 계명은 동일한 차원에서 강조되어야 할 계명임을 바울은“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라고 하여 강조하였습니다. 이 원칙을 벗어나는 그 어떤 원리나 주장도 불의와 우상숭배와 파멸로 나아가게 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한 사람의 내면의 생각으로 끝납니다. 사람이 탐욕에 지배를 받는다면 다른 일에 아무리 철저하고 큰 업적을 남겨도 첫 번째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학 박사가 공적 모임 순서에서 자기 이름 뒤에 “박사”라고 쓰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대형교회 지도자가 자기가 연합회나 공공기관의 “장”이 못된 것 때문에 인적 물적 지원을 하지 않고,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서열 문제로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너무나 유치한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유명한 신학자나 대형교회 지도자가 아니라 작은 교회 지도자나 성도들도 형편은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재물 보다는 생명이 우선하고, 법 보다는 사람이 우선하며, 권리보다는 필요가 우선하는데 이러한 상식이 교회나 하나님 나라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기독교가 전파되던 초기에는 의식에서나 가치관에 있어서 교회가 사회를 선도했고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톡톡히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치관에 있어서나 의식에 있어서 교회가 가장 낙후된 집단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무시되는 곳이 교회이고, 재정운용이 가장 불투명한 곳이 교회이며, 예의와 질서가 가장 무시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그렇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개혁의 주체이며 또한 개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교회가 가치 경중의 질서를 뒤집어 놓았기 때문에 개혁을 한다 해도 바른 개혁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게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 사 5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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