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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이중성과 모자람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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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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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끝나고 10년의 세월이 흘렸을 때 한 독일 남자가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2차 대전 동안 유태인 한명을 저희 집 지하 골방에 숨겨줬습니다.”
“형제여,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으로부터 숙박비를 계속 받아왔습니다.”
“음… 그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죄를 진 것은 아닙니다.”
“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숙박비도 좀 내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가려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서서
“아 참,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그 유대인에게 전쟁이 끝났다고 얘기를 해줘야 할까요?”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말해 주지 않고 숙박비 조금 내려 주는 것으로 선한 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여러 나라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모아놓고 국가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마려하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참여한 정부의 고위 관리는 네덜란드가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는 현황에 대하여 브리핑하였습니다. 그 브리핑을 듣던 한 학생이 그 관리에게 물었습니다. “네덜란드가 네덜란드를 위해 저개발 국가를 돕는 것입니까, 아니면 진정 저개발 국가를 위해 저개발 국가를 돕는 것입니까?”그 관리가 의외의 질문에 머뭇거리자,

질문을 한 학생은 “진정 저개발 국가를 위한다면 저개발 국가의 수출품의 관세를 낮추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임이 끝난 후 그 정부 관리가 질문을 한 학생을 찾아와서 “너의 주장이 맞다.”라고 하였답니다. 저개발 국가를 돕는 부자 국가도 나름대로 사정과 애로가 있겠지만 국가란 본래 이기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무역에 있어서는 가난한 나라 사정을 봐줄리 없을 것이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속담처럼 그렇게 번 돈으로 가난한 나라를 돕는다는 소위 선진국 노릇의 불우 이웃 돕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적도 북쪽의 돈이 적도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는 반대로 적도 남쪽의 돈이 적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도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는 나라들이 남쪽에 있는 나라들보다 경제적으로 부자 나라입니다. 적도 북쪽에 있는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적도 남쪽의 나라를 경제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 도움의 또 다른 측면은 일종의 투자였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명분이고 속내는 투자였습니다. 그 증거가 1960년대 이후가 되면 적도 남쪽의 가난한 나라들의 돈이 적도 북쪽의 부자 나라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국가의 이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중성이란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편리한 것입니다. 국가란 본래 양심도 체면도 없는 이기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에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권한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이중성은 국민에 의해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은 민족주의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없고 국가의 이기주의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들이 민족주의나 애국의 이름으로 불공정 거래를 정당화 하면서 세계 평화와 질서와 저개발 국가 지원을 부르짖는 이중성은 마땅히 비판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해야 할 교회마저 국가의 이기적인 이중성을 닮아가고 있으니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로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국가도 이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면세특권을 부여하였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영리를 목적으로 무엇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영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교회는 이기적이 될 모든 위험 요소를 제도적으로 예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회가 이기적이 되지 않고 거룩하게 되도록 국가도 도와주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와 원리를 가지고 있어도 인간은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될 수 있을 만큼 간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곳이 낙원이었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과 국가가 보호하는 교회라고 하여도 인간은 교묘하게도 이기적인 집단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자체 예배당을 갖지 못한 교회들은 대부분 다른 교회 예배당을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에게 예배당을 빌려주는데 최소한의 사용료, 이를테면 유틸리티 비용만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교회가 그 돈을 받아 나쁜 일에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교회로부터 비싼 랜트비를 받아 선교나 구제에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눈감고 아옹 하는 이기적 이중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당 없는 교회의 교인이 결혼식 장소로 예배당을 사용하는데 수 천불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다른 장소를 빌리면 더 비싸다는 이유로 몇 천불을 받아 챙기면서도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교회들의 그러한 모습은 그렇게 떳떳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듯싶습니다. 교회가 돈이 많아야 선교도 많이 할 수 있겠지만 주님은 그 이중성을 뭐라 하실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어버이 날 부모님께 선물을 사 드리기 위해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께 하는 선물도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선물을 하면서도 좋은 일 한 것처럼 스스로 흐뭇해합니다. 이런 것은 이중성이라 하지 않고 모자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모자람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닙니다. 모자람의 이중성은 웃으며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것이 있는데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 이름으로 선심을 쓰는 것은 명백한 이중성입니다. 한국 어느 시골 교회의 회계 장로님은 교회의 부조나 조의금을 전달하면서 언제나 자기가 하는 것처럼 처신하여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목사님들 중에도 그렇게 처신하는 목사님들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나마 그 장로님을 비난한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지도자에게서 보게 되는 이중성은 더욱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세네카는 돈과 재물을 멸시하고 청렴하게 살라고 설파한 철학자였으나 정작 본인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정치적 적수를 살해하는 이중성을 보였고,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무엇을 모르면서 아는 체하기 때문에 모른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려다가 독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세네카의 이중성 때문에 그의 이론까지 배척할 필요는 없지만 신학이나 철학에서도 이중성은 ‘위선’으로 취급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위선을 외식이라고 질타하셨습니다.

정통신학(Orthodoxy)과 정통실천(Ortho praxis)은 마치 믿음과 행위와 같아서 둘이 아닌 일인이명(一人二名)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실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여는 경외함을, 같은 사람을 대하여는 진실함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진실함이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줄 지도자의 능력을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진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도자에게는 이중성은 물론 모자람도 없어야 하는데 그 모자람이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진실하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집에 거할 자의 자격을 정직과 진실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5편).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을 삼아...”  -출 18:2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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