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 스캔들에 빠진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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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0-12-2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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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돌아보셨다고 하여 기뻐하기도 하였지만 그 일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두려운 마음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되어 진 일들을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에게 보고하였습니다.
당시 세례요한은 요단 강 동편 사해에 있는 마케루스라는 곳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그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 메시야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이사야 35장 5절 이하에 있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냥 “내가 메시야다.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 없다.”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신 것은 당시 메시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기대한 것이 바로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입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도 똑같이 기대하고 바라는 세상입니다. 오늘날의 정치가 지향하는 것도 그런 세상이고, 과학과 의학도 그런 세상을 지향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인종과 문화와 사상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결국은 이사야가 예언한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한 유사 꿈이 많습니다. 그 유사 꿈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에도, 오늘날 불신자들에게도,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사 꿈을 꾸었습니다. 정치도 사상도 학문도 경제도 심지어 종교들까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나라와 유사한 세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소문과 함께 그 증거들도 많습니다. 민주화도, 복지정책도, 경제부흥도, 과학과 의학도 그와 같은 세상의 실현을 어느 정도 실현했노라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기대의 성취로 짧은 다리가 길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이가 금이빨로 바뀌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난치병과 장애까지 치료된다고 사람들은 열광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신 후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실족하다” 는 말은 헬라어로 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입니다. 영어의 scandal의 어원이 바로 σκανδαλίζω입니다.
지금은 이 뜻이 추문 정도의 뜻이지만 원래 헬라어는 어떤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믿음을 포기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의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쇼크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냥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듣고 믿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로 인하여, 즉 메시야로 인하여 스캔들에 휘말려 들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도 많지만, 예수님, 즉 메시야 스캔들에 걸린 자들도 많습니다.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메시야 스캔들에 빠졌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메시야 스캔들에 빠져 있었습니다.
연예인의 스캔들은 정상적인 연예활동에 치명적 상처를 입게 하고, 정치인의 스캔들은 정치 활동에 치명적 상처를 입게 하고, 목회자의 스캔들은 목회활동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합니다.
지 난 2008년 3월 12일에 뉴욕주지사였던 엘리엇 스피처가 불법성매매 스캔들로 인하여 주지사 직에서 사퇴하였고, 2007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주자로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여비서와의 스캔들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난 12월 7일에는 그의 아내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많은 미국인들은 남편의 왜도가 부인을 죽였다고 하여 각별한 마음으로 죽은 자를 애도하고 그의 남편을 비난하는 것을 볼 때 에드워즈의 정치생명은 거의 재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세상적 스캔들도 이렇게 치명적인데 메시야 스캔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통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초자연적인 능력과 위엄으로 메시야 왕국을 세우고 철장 권세로 로마제국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수고 왕으로 등극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정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가난이 없고 질병이 없는 나라, 그러면서도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메시야 왕국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당신의 제자들은 모두 메시야 스캔들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말년에 메시야이신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기도 하고 베드로는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은 귀넘어들은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들었고 열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여러 차례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나라에서 누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의욕과 소위 비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마지막 길에서, 또 한 번 당신이 당하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을 하셨지만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주님이 왕으로 등극하시면 자기의 두 아들을 요직에 기용해 달라고 청탁을 하였고 다른 제자들은 시기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서 내내 그 문제로 논쟁을 하였고 예수님은 갈릴리 어느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온통 그 나라에서 ‘누가 크냐?’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메시야 스캔들에 빠진 증거입니다. 심지어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조차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메시야 왕국에서 일등공신으로 요직을 차지할 이기적인 꿈으로 꽉 차 있었기에 그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난도 죽음도 부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듣는 것처럼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화도 냈지만 그것은 다 연극이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메시야는 거치는 돌이요 넘어지게 하는 반석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메시야 스캔들에 깊이 빠진 것은 바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즉 “너희의 관심은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롬 9:33 -
당시 세례요한은 요단 강 동편 사해에 있는 마케루스라는 곳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그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 메시야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이사야 35장 5절 이하에 있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그냥 “내가 메시야다. 다른 메시야를 기다릴 필요 없다.”고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신 것은 당시 메시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기대한 것이 바로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이 성취되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입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민족들도 똑같이 기대하고 바라는 세상입니다. 오늘날의 정치가 지향하는 것도 그런 세상이고, 과학과 의학도 그런 세상을 지향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인종과 문화와 사상과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결국은 이사야가 예언한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왕국의 도래에 대한 유사 꿈이 많습니다. 그 유사 꿈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에도, 오늘날 불신자들에게도,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사 꿈을 꾸었습니다. 정치도 사상도 학문도 경제도 심지어 종교들까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 나라와 유사한 세상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소문과 함께 그 증거들도 많습니다. 민주화도, 복지정책도, 경제부흥도, 과학과 의학도 그와 같은 세상의 실현을 어느 정도 실현했노라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기대의 성취로 짧은 다리가 길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이가 금이빨로 바뀌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난치병과 장애까지 치료된다고 사람들은 열광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신 후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실족하다” 는 말은 헬라어로 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입니다. 영어의 scandal의 어원이 바로 σκανδαλίζω입니다.
지금은 이 뜻이 추문 정도의 뜻이지만 원래 헬라어는 어떤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믿음을 포기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또는 의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쇼크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냥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듣고 믿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로 인하여, 즉 메시야로 인하여 스캔들에 휘말려 들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도 많지만, 예수님, 즉 메시야 스캔들에 걸린 자들도 많습니다. 당시 유대인 대부분이 메시야 스캔들에 빠졌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메시야 스캔들에 빠져 있었습니다.
연예인의 스캔들은 정상적인 연예활동에 치명적 상처를 입게 하고, 정치인의 스캔들은 정치 활동에 치명적 상처를 입게 하고, 목회자의 스캔들은 목회활동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합니다.
지 난 2008년 3월 12일에 뉴욕주지사였던 엘리엇 스피처가 불법성매매 스캔들로 인하여 주지사 직에서 사퇴하였고, 2007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주자로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여비서와의 스캔들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난 12월 7일에는 그의 아내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많은 미국인들은 남편의 왜도가 부인을 죽였다고 하여 각별한 마음으로 죽은 자를 애도하고 그의 남편을 비난하는 것을 볼 때 에드워즈의 정치생명은 거의 재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세상적 스캔들도 이렇게 치명적인데 메시야 스캔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통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초자연적인 능력과 위엄으로 메시야 왕국을 세우고 철장 권세로 로마제국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수고 왕으로 등극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정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가난이 없고 질병이 없는 나라, 그러면서도 누구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메시야 왕국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당신의 제자들은 모두 메시야 스캔들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말년에 메시야이신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기도 하고 베드로는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지나가는 말로 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은 귀넘어들은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들었고 열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은 여러 차례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나라에서 누가 요직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의욕과 소위 비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마지막 길에서, 또 한 번 당신이 당하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을 하셨지만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주님이 왕으로 등극하시면 자기의 두 아들을 요직에 기용해 달라고 청탁을 하였고 다른 제자들은 시기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서 내내 그 문제로 논쟁을 하였고 예수님은 갈릴리 어느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온통 그 나라에서 ‘누가 크냐?’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메시야 스캔들에 빠진 증거입니다. 심지어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조차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메시야 왕국에서 일등공신으로 요직을 차지할 이기적인 꿈으로 꽉 차 있었기에 그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난도 죽음도 부활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진지하게 듣는 것처럼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화도 냈지만 그것은 다 연극이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메시야는 거치는 돌이요 넘어지게 하는 반석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메시야 스캔들에 깊이 빠진 것은 바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즉 “너희의 관심은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롬 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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