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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달력에서의 감사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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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8-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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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의 달력의 특징은 과거 시제를 거부하고 현재와 미래 시제로 바꾼 것입니다. 영국 국교회의 기독교 연력은 강림절에서시작하여 사순절을 지나 삼위일체 주일로 이어지는 성육신에 중점을 두는 회고적인 반면, 청교도 달력은 매주 안식일을 붉은 글자로표시하였는데 그 강조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안식을 기대하며 하루를 가정과 예배당에서 엄격한 헌신을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영국 국교회의 달력은 반복적이고 순환적이고 고정적이었던 반면에 청교도 달력은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 가운데 현재적이며계속적인 활동을 활기찬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시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역동적인 인식은 금식일과 감사일에서 제도화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기에 그것의 실질적 유용성 때문이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으로 강조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안식일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였지만 주일 오후3시에 거룩한 시간이 끝나는 것으로 지켰습니다. 청교도들은 또한 그들의 달력에서 금식일 또는 굴욕의 날을 제정하여 지켰습니다.금식일은 인간을 비롯한 창조계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감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주님께서 자신들의 영혼에 괴로움을 주시기를 구하는굴욕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해석과 판단은 매우 애매한 경우가 많고 또한 굴욕의 날이갑자기 감사의 날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회중들은 굴욕의 날을 준비하다가 감사의 날로 모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경우에 그들은 구약의 시편기자의 고백에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청교도들의 주요 감사의 이유들은 세 가지인데, 첫째, 정착 초기에 안전하게 거두어들인 추수를 인하여 감사했고, 둘째는 심각한기근이 예상되는 순간에 보급선들이 도착한 것을 인하여 감사하였습니다. 셋째는 친구들의 도착을 인하여 감사하였습니다. 첫째 이유의감사들은 메사추세스에서 1631년 11월 11일, 1632년 6월 13일, 1632년 9월 27일, 1634년 8월 20일 등에지켜졌습니다. 뉴잉글랜드에서의 첫 감사일은 정확한 날자는 알 수 없으나 윌리암 브래드포드의 “플리머스 이민지”(WilliamBradford, Of Plymouth Plantation)의 기록에 의하면 1621년 가을이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최초의추수에 대한 감사였고 뉴잉글랜드 전체가 감사의 날로 지킨 것은 1637년 10월 12일이었는데 이 감사는 식민지 병사들이페쿼트족 인디안들과 싸워서 승리한 것을 경축하여 지킨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감사의 날을 지킨 것을 보면 사소한 관심에서부터 보다넓은 관심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넓은 관심에서 감사일을 지킨 것은 삼위일체 전쟁(the Trinity YearsWar)에서 신교 군대가 구교 군대와 싸워 승리한 것을 경축한 경우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훌륭한 지도자, 전쟁에서의 승리, 타인들과의 평화, 영국과의 관계 개선, 사회 질서 등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감사의 날이제정되었습니다. 좁은 의미의 관심들에서도 개인적인 감사의 날이 지켜졌습니다. 세왈이라는 분은 잃었던 말과 안장을 찾았다는사실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발견하였다고 하여 감사일을 지켰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일들도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보기도 하였습니다. 카튼 매드의 순수한 경험을 들어보면 “나는 한 시계의 소유자였다. 그 시계는 다양한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계를 매우 좋아했다. 나의 아버지가 이 시계를 갖고 싶어 하셔서 나는 ‘나는 이 시계보다더 많은 은혜를 아버지께 입었다. 그리고 제5계명의 준수는 절대로 보상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그 시계를 아버지께 드렸다.이 일 직후 내가 방문을 기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한 숙녀가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놀랍게도 나를 방문하여 자신의 선물로시계 하나를 받아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진실로 그 시계는 내가 전에 아버지께 드린 것보다 더 좋은 것이었다.”

일상에서 비교적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건들이 부풀려지고 증폭되어 경건하게 과장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건들에서하나님의 섭리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고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 애매한 경우는 1676년 11월 27일보스톤에서 일어난 큰 화재 때 매더 목사의 집도 불탔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화재 전후에는 맑은 날씨였는데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큰비가 내려 매더 목사의 책들과 물건들을 건져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록한 사람은 목사의 집이 불탄 것을 목사에 대한심판으로 사람들이 해석할까봐 화재의 피해를 축소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반대로 어떤 때는 폭풍과 낙뢰로 많은 가옥들이 피해를입었는데 그 중에 몇몇 목사의 집이 심하게 파괴된 것을 하나님이 목사들을 심판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위험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순수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과학이 발전하여 제2원인이 강조 되어 마녀사냥과 같은 극단적 폐해는 사라졌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해석의 권위까지 떨어지게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해석에는 모호성과 이중성이 있어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지만모든 것을 인과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청교도들의 넓은 관심에서의 감사와 좁은 의미에서의 감사가 발전된 개혁주의신앙에서 꽃피게 될 날을 바라보며 우리 함께 기도하며 성령을 의지하여 힘써봅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시 107:31; 1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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