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정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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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7-02-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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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문명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 기독교는 천년 로마의 문명에 엄청난 충격과 변화의 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정의감으로 그릇된 로마 제국의 제도와 질서를 개혁한 것이 아니라 평화의 힘으로 적대세력을 극복하였고 그릇된 제도를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기독교의 이 같은 영향력을 실천성을 가진 세계 형성적 추진력(world-formative impulse)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불의하고 그릇된 사회 질서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은 제자도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종교 개혁자들의 노력으로 프랑스의 위그노들이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상과 그 사회 구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것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 구현 차원의 싸움으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 이방의 사상과 문명을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도의 실천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그 영향력이 한 사회의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그들은 평화보다는 정의를 강조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평화를 깨뜨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정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약점과 사회주의의 약점을 함께 성경적으로 비판해야 하고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도 동일한 관점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사고와 방법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것이 자신과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선택이 아니며, 선과 악의 선택이 아니라 덜 나쁜 것과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것의 선택일 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졌고, 무엇보다 세상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인간 또한 죄의 지배 아래 처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진리를 세우기보다 진리를 거스를 위험이 높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따를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쓰임 받을 때 “평화 안에서 정의를 위하여”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은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평화는 정의보다 큰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는 평화 없이도 세울 수 있어 때로는 혹독하지만 평화는 언제나 정의를 담고 있거나 극복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문제 자체를 녹여버리는 멜팅팟(meltingpot)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조하면 정의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피상적이기 때문에 평화 속에 극복되어 있는 정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화 없는 정의는 있어도 정의 없는 평화가 있다면 그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닐 것입니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 새가 어항 속에 있고 물고기가 새장 속에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직접 붙인 제목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붙인 제목인지는 몰라도 그 그림의 제목이 “평화”입니다. 얼핏 보아 새가 어항 속에 있고 물고기가 새장 속에 있는 상황은 평화일 수 없습니다. 그 그림에서 물고기나 새가 처한 환경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아마도 작가는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의 상태를 가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인 평화가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도이며 창조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평화 안에서 정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노력에는 겸손과 깊은 사려의 흔적이 묻어나야 합니다.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짝을 짓는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그 답은 “조심스럽게”입니다. 고슴도치는 사랑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고슴도치에게 가시는 존재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듯이 죄와 악은 인간에게 존재론적인 문제이기에 겸손히 조심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눅 19:42; 롬 12:18-
실제로 종교 개혁자들의 노력으로 프랑스의 위그노들이나 영국의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상과 그 사회 구조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것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노력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의 구현 차원의 싸움으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사도들이 되어 이방의 사상과 문명을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도의 실천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그 영향력이 한 사회의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그들은 평화보다는 정의를 강조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평화를 깨뜨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의 정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약점과 사회주의의 약점을 함께 성경적으로 비판해야 하고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도 동일한 관점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사고와 방법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것이 자신과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의 선택이 아니며, 선과 악의 선택이 아니라 덜 나쁜 것과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것의 선택일 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 아름답고 질서 있는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졌고, 무엇보다 세상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인간 또한 죄의 지배 아래 처하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진리를 세우기보다 진리를 거스를 위험이 높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들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경험을 따를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쓰임 받을 때 “평화 안에서 정의를 위하여”라는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은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평화는 정의보다 큰 개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는 평화 없이도 세울 수 있어 때로는 혹독하지만 평화는 언제나 정의를 담고 있거나 극복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문제 자체를 녹여버리는 멜팅팟(meltingpot)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강조하면 정의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피상적이기 때문에 평화 속에 극복되어 있는 정의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화 없는 정의는 있어도 정의 없는 평화가 있다면 그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닐 것입니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 새가 어항 속에 있고 물고기가 새장 속에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피카소가 직접 붙인 제목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붙인 제목인지는 몰라도 그 그림의 제목이 “평화”입니다. 얼핏 보아 새가 어항 속에 있고 물고기가 새장 속에 있는 상황은 평화일 수 없습니다. 그 그림에서 물고기나 새가 처한 환경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아마도 작가는 진정한 평화는 불가능의 상태를 가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인 평화가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우리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도이며 창조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평화 안에서 정의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노력에는 겸손과 깊은 사려의 흔적이 묻어나야 합니다.
“고슴도치들은 어떻게 짝을 짓는가?”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그 답은 “조심스럽게”입니다. 고슴도치는 사랑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고슴도치에게 가시는 존재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듯이 죄와 악은 인간에게 존재론적인 문제이기에 겸손히 조심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 -눅 19:42; 롬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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