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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쓰임 받은 도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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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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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이른바 `내선일체론'에 따른 창씨개명과 징용, 공출 등으로 한국 교회를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교회를 가장 힘들게 만든 것은 바로 신사참배였습니다.1938년 조선총독부는 `기독교에 대한 지도대책'을 마련하고 기독교 신앙인을 위협했습니다.

그 대책에 의하면
첫째, 예수교 교역자 좌담회를 개최하여 교인들의 지도 계몽을 담당토록 할 것
둘째, 교회당에 국기게양 탑을 건설할 것
셋째, 예수교도의 국기에 대한 경례와 황국신민의 서사(皇國臣民誓詞) 등을 제창토록 할 것
넷째, 찬미가 기도문 설교 등의 출판물을 검열할 것
다섯째, 당국의 지도에 따르지 않을 경우 관계법규에 따라 합법적으로 조치할 것 등 기독교의 변절을 강요했습니다.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천주교 감리회 성결회 구세군 성공회 등 대부분의 교파들이 일제에 굴복했습니다. 그래도 장로회는 맨 마지막으로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했습니다. 따라서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한 것은 거의 모든 한국 교회가 일제에 굴복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자 한국 교회는 부일(附日)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1937-39년에 걸쳐 일본 전승축하회 5백94회, 무운장구기도회 9천53회, 국방헌금 1백58만여원, 시국강연 1천3백여회 등을 열어 일본을 도왔습니다. 감리회도 교회 종 헌납과 황도문화관(皇道文化館) 개소 등으로 일제를 지원했습니다. 교파들의 협력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지원도 이뤄졌습니다. 시국강연회 강사로 신흥우 유형기 윤치호 박희도 차재명 등이 동원됐었습니다. 또 조선기독교연합회에도 정춘수 김종우 김우현 차재명 이명직 윤치호 양주삼 이동욱 등의 지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친일잡지에도 논설을 게재했습니다. 백낙준 신흥우 전필순 이용설 정춘수 정인과 양주삼 박희도 박인덕 최태용 등이 “조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본제국을 사랑하는 것이며”라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였고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일본국에 바치도록 신에게 명령을 받고 있다”는 등의 글을 써 징병을 독려했습니다. 기독교 여성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YWCA 유각경 총무를 비롯,박마리아 김활란 등이 징병제를 지지하는 논설을 썼습니다.

물론 이들과는 달리 목숨을 건 민족문화 수호운동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지은 남궁억은 강원도 모곡리에서 무궁화 보급운동을 벌였고, 문학 분야에서는 전영택 목사,김말봉 장로,김현승 박두진 박목월 윤동주 등이, 미술 분야에서는 김은호 김기창 등이, 음악분야에서는 현제명 안익태 등이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교회 쪽에서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주기철 목사님이 1938-44년 어간에 4차례에 걸쳐 7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순교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로 2천여 명이 투옥되었고, 2백여 교회가 폐쇄됐으며, 50여명이 순교했습니다. 일제의 강요와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일제를 찬양한 일부 기독교 인사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기독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신앙을 지키며 해방을 맞았습니다.

해방 이후 신사참배를 가결한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워 가는 일에 리더십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출옥 성도들에게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쓰셨습니다. 박해가 두려워 신사에 참배한 사람들, 일본의 강요에 무릎을 꿇고 신사에 참배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고 순교하자 박해자들은 그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 교회를 더 잔혹하게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이를테면 도망을 간 것입니다. 박해가 두려워 도망을 갔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은 “그 흩어진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행 8:4절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도망자들에 의해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불같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사도들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확장은 사도들 뿐 아니라 도망 간 사람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사도들로서 특별한 사명이 있었고 그 사명을 위해 불같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그들이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고 하여 복음 증거의 모든 일이 다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하였던 부분입니다.

도망간 신자들은 사도들처럼 예루살렘을 사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 전파에 이들이 사용됩니다. 빌립도 바로 그 흩어진 사람들 중 한 사람입니다. 바울 같은 경우는 도망 간 정도가 아니고 박해를 주도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비급과 변절을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처럼 죄인의 괴수 같은 우리를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쓰심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충성하자는 것입니다.

일제에 항거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켰던 순교자들과 출옥성도들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귀중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한국 교회의 부흥은 그분들에 의해 주도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쓰실 때는 늘 천한 자들을 쓰십니다. 멸시 받는 자들을 쓰십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와 신앙의 비밀이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힘과 지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높이고 또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심지어 정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비난할 입장이 못 되고 또한 사람을 높여서도 안 됩니다. 높임을 받아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람은 이해하고 용납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바울도 어거스틴도 칼빈도 한경직도 한 때 나쁜 사람이었고 비겁한 자였지만 우리가 비난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쓰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초에 쓰임 받은 자들 중에는 박해를 피해 도망간 자들이 많습니다. 약한 자를 쓰시고 비겁한 자를 쓰시고 도망자를 쓰시고 천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나 자신 또한 악한 자로 쓰임 받을 수 있음을 생각하고 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의 일에 수종들뿐입니다. 사람에게 정의와 사랑과 순결을 요구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이런 것은 내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일로 사람을 비난하는 일은 깊이 삼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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