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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동인(動因)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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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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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철학자 탈레스에게 그의 제자가 “선생님,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탈레스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가 다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가장 쉬운 일이란 남에게 충고하는 일이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는 것을 철학의 명제로 삼은 것은 그 시대에 소피스트들이 괴변으로 무지한 백성을 괴롭히고 젊은이들을 오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안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소피스트들은 저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잘 알고 또한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안다는 것은 사실 자신이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 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 그 앎이란 “무지의 지”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안다는 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깨달음이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체면술사가 한 사람에게 “잠이 깨면 창문을 열어라.”고 최면을 걸었습니다. 한 동안 최면 상태에 잠들어 있던 그가 최면에서 깨어나자 즉시 창문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창문을 열었느냐고 묻자 그는 “여긴 너무 답답하잖아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창문을 열게 된 것이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숨은 동인 때문임을 모르고 단지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대답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자신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우이웃 돕기 모금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다양한 변명을 합니다. 하지만 인색함이 불우이웃 돕기를 거부한 진짜 동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다고 하지만 숨은 동인은 자기의 명예와 이익에 대한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물량주의적이고 가시적이고 대형화된 기독교 행사에는 이기적인 숨은 동인에 의해 지배받는 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 한 번 설교에 3천명이 회개하는 가시적인 역사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3천명을 모아놓고 한 번 설교로 회개시키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후자의 방법에 목을 매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를 심는 행위나 누룩이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는 행위는 전혀 가시적으로 화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엄청난 것은 그것이 사람의 물리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로 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벨탑 사건입니다. 인간의 이름을 내고 물리적인 힘을 과시하려했던 바벨탑은 인본주의의 표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탑을 허시고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 당신의 나라를 시작하셨습니다. 성경 곳곳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원리가 계시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숨은 동인을 완전하게 간파할 수 없고, 간판한다고 해도 그 동인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중립적이고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만 고금의 모든 철학자들이 이 점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의 확신이 있게 마련인데 그 확신이란 것이 객관적 계시에 근거하기보다 자기 마음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강조하는 사람이 성경보다 자기 마음의 확신에 지배받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그런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도 부패하였고, 양심도 죄로 오염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순수한 마음, 순수한 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순수한 마음과 양심을 따라 행동했다는 것으로 정당성의 근거를 삼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동인에 의해 행동하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신자는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숨은 동기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바울이 자기들의 신 아데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배척하였지만 그의 숨은 동인은 이기심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데메드리오를 거울삼아경고를 받고 자신의 이기적인 동인을 하나님의 뜻과 사랑으로 대체하는 일에 성령의 도움 받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히 3: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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