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분쟁 해결은 언제가 적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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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ㆍ2009-06-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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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느 미국교회의 분쟁 조정에 참여할 때에 받은 한 가지 질문이 계속 제 머리속에 남아 있어서 글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 교회의 경우에는 재직원들 ( 저희 교단의 안수 집사와 안수 장로의 모임으로 Consistory라고 부릅니다.) 과 목회자간의 갈등이 중재팀과의 모임을 갖게된 이유중의 하나였습니다.
첫 모임에서 한 재직분이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우리는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데 굳이 지방대회 사무실의 중재팀이 와야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목회자들을 포함한 많은 평신도 분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문제가 눈에 잘 띠지 않을 때 혹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상태로 진행될 때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진행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해결해야지 왜 외부로 갈등 사실을 알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일종의 수치심일 수도 있고, 남이 알면 좋을 것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서 중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분쟁은 사태가 이미 외부로 표출될 정도로 악화된 후에는 중재를 시도하더라도 이미 치유의 때를 놓쳤다고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사태의 건강한 해결의 가능성도 매우 낮아지게 됩니다.
이 점은 일반적으로 “분쟁 중재는 심각한 상태에 다달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것을 마치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고 다음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육체의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성공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발견하면 치료도 쉽지 않고, 육체의 고통도 큽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대로 약도 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것이 분쟁 중재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이유입니다.
상호 갈등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때는 그래도 대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상식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사고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큰 위험 부담없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을 갖을 수 있습니다.
중재자의 도움으로 대화가 진행되다 보면 그 전까지는 표출되지 않았거나 감추어졌던 다른 문제들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끼리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고 느끼고 있던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프다는 증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어떤 다른 것(들)이 진짜 아픔의 원인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참고로 분쟁 중재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무나 중재를 시도해도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육체가 아파서 수술을 필요로 할 때, 아무리 그 수술이 쉽다고해도, 돌팔이 의사에게는 아무도 수술을 맏기지 않는 것과 같이 분쟁 중재 또한 아무리 쉬운 단계에 있다고 해도 잘 훈련되어진 사람에 의해서 시도되어져야 그 장단기 효과가 극대화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분쟁 조정자의 중요성을 짧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목회의 연륜은 분쟁 중재의 경험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일반의사가 아무리 많아도 전문의가 없으면 않되듯 목회자가 아무리 많아도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이 없다면 분쟁 중재또한 원하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분쟁 조정 전문가의 양성은 소규모 교회 수가 모인 집단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역의 특성상 한 두명 정도 훈련하는 것으로 가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사례 연구도 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측 노회에 사람이 없어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나?”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분쟁 중재가 얼마나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는지를 간과해서 생기는 생각입니다.
분쟁 조정 전문가의 양성은 시간과 투자를 요구 합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PCUSA의 뉴욕지방대회의 분쟁 조정자 훈련에는 동 교단의 타 지역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약 40명 가량이 참여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동으로 분쟁 조정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을 받았어도 자신의 적성과 형편이 맞지 않아서 이 역활을 포기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 저희 지방 대회의 경우에도 분쟁 중재자 훈련을 받은 분들의 절반 가량이 기권한 사례가 있습니다.
교회분쟁에 관여 할 때 마다 현장에 도착하면 긴장된 분위기를 바로 느끼게 되고 저자신도 긴장하게 됩니다. 그때 마다 문제를 잘 해결 해보려고 마음은 다져보지만 교회 분쟁의 성격상 조정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장담도 할 수가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분쟁조정 과정을 거쳐서 예상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때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모든 교회들이 위기와 갈등 상황등을 잘 극복하면서 건강한 사역을 펼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 모임에서 한 재직분이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 “우리는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데 굳이 지방대회 사무실의 중재팀이 와야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목회자들을 포함한 많은 평신도 분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문제가 눈에 잘 띠지 않을 때 혹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상태로 진행될 때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진행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끼리 내부적으로 해결해야지 왜 외부로 갈등 사실을 알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일종의 수치심일 수도 있고, 남이 알면 좋을 것이 없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서 중재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분쟁은 사태가 이미 외부로 표출될 정도로 악화된 후에는 중재를 시도하더라도 이미 치유의 때를 놓쳤다고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사태의 건강한 해결의 가능성도 매우 낮아지게 됩니다.
이 점은 일반적으로 “분쟁 중재는 심각한 상태에 다달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이해와 상반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것을 마치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고 다음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육체의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성공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게 발견하면 치료도 쉽지 않고, 육체의 고통도 큽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대로 약도 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것이 분쟁 중재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이유입니다.
상호 갈등의 정도가 심하지 않을때는 그래도 대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상식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사고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대화를 통해서 큰 위험 부담없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을 갖을 수 있습니다.
중재자의 도움으로 대화가 진행되다 보면 그 전까지는 표출되지 않았거나 감추어졌던 다른 문제들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자신들끼리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고 느끼고 있던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아프다는 증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어떤 다른 것(들)이 진짜 아픔의 원인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참고로 분쟁 중재가 쉽다는 이야기는 아무나 중재를 시도해도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육체가 아파서 수술을 필요로 할 때, 아무리 그 수술이 쉽다고해도, 돌팔이 의사에게는 아무도 수술을 맏기지 않는 것과 같이 분쟁 중재 또한 아무리 쉬운 단계에 있다고 해도 잘 훈련되어진 사람에 의해서 시도되어져야 그 장단기 효과가 극대화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분쟁 조정자의 중요성을 짧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목회의 연륜은 분쟁 중재의 경험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일반의사가 아무리 많아도 전문의가 없으면 않되듯 목회자가 아무리 많아도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이 없다면 분쟁 중재또한 원하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분쟁 조정 전문가의 양성은 소규모 교회 수가 모인 집단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역의 특성상 한 두명 정도 훈련하는 것으로 가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있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사례 연구도 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측 노회에 사람이 없어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나?”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분쟁 중재가 얼마나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는지를 간과해서 생기는 생각입니다.
분쟁 조정 전문가의 양성은 시간과 투자를 요구 합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PCUSA의 뉴욕지방대회의 분쟁 조정자 훈련에는 동 교단의 타 지역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약 40명 가량이 참여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자동으로 분쟁 조정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을 받았어도 자신의 적성과 형편이 맞지 않아서 이 역활을 포기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 저희 지방 대회의 경우에도 분쟁 중재자 훈련을 받은 분들의 절반 가량이 기권한 사례가 있습니다.
교회분쟁에 관여 할 때 마다 현장에 도착하면 긴장된 분위기를 바로 느끼게 되고 저자신도 긴장하게 됩니다. 그때 마다 문제를 잘 해결 해보려고 마음은 다져보지만 교회 분쟁의 성격상 조정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장담도 할 수가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분쟁조정 과정을 거쳐서 예상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때의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모든 교회들이 위기와 갈등 상황등을 잘 극복하면서 건강한 사역을 펼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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