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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대림절과 대 파국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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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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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푸른색이라고 합니다. 태양계 안에 푸른색의 행성은 지구와 해왕성입니다. 지구는 녹색을 포함한 푸른색을 내는데 녹색을 내는 행성은 지구뿐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 생명체가 존재하는 다른 행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합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녹색을 포함한 푸른색은 생명의 존재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녹색은 생명현상을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90년 2월14일에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는데, 그 사진에 푸른빛의 지구가 포착되었습니다. 태양계의 행성 중에 지구만이 녹색을 띤 푸른색이라서 사람들은 그 색이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의 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유명한 천문학자인 칼 에드워드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년 11월 9일 ~ 1996년 12월 20일)은 보이저 1호가 보낸 지구 사진에 의미심장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푸른색의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지구의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세이건은 철저한 불가지논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회의주의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신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가 아무리 천재이지만 교만한 말을 한 것입니다. 세이건은 자신이 회의론자이면서도 무신론자가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무신론자가 되려면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 반달곰이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어디서든 한 곳에서만 반달곰이 발견되면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반달곰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토를 다 뒤져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이건이 무신론자가 되지 못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스티븐 호킹이 신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것은 그의 물리학적 주장과도 맞지 않습니다. 그는 우주의 끝이 없다고 했고, 우주의 밖은 4차원 세계이므로 인간이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이건은, 우주를 창조한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려면 우주에게 시작은 없었다는 확고한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호킹보다 세이건이 훨씬 더 정직하고 겸손한 편입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대략 1억5천만 킬로미터입니다. 지난 번 미국의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까지 갔는데, 그 거리는 태양에서 지구의 거리보다 40배 멉니다.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입니다. 태양계라는 말은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범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태양이 지구를 비롯하여 명왕성까지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뉴호라이즌스호가 앞으로 20년 이상 더 멀리 날아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태양계를 벗어나게 될 텐데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신비로운 사실은 태양과 지구의 거리입니다. 그 거리가 1억 5천만 킬로미터인데, 이 거리는 일초에 30만 킬로미터인 빛의 속도로 달리면 대략 9분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왜 이 거리가 중요한가 하면 이 거리가 지구환경에서 모든 생명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거리보다 가까운 금성의 표면 온도는 400도가 넘습니다. 뜨거워서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습니다. 화성은 지구보다 태양으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평균 온도가 영하 80도라고 합니다. 역시 생명이 살 수 없습니다. 수성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기온은 179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금성이 수성보다 멀리 있지만 더 뜨거운 이유는 황산 가스층이 두꺼워서 열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왕성은 영하 240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아주 적당한 거리에 놓여 있습니다. 행성의 온도는 태양과의 거리와 행성 대기를 덮고 있는 가스 같은 물질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온도는 태양과의 적당한 거리와 대기권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태양계 안에 지구와 같은 조건을 갖춘 행성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태양계의 행성들의 태양과의 거리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우주의 질서입니다. 행성들이 태양과의 거리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행성마다 일정한 온도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행성의 온도를 결정하는 것은 거리뿐만이 아니라 대기권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대기에는 오존층이 있어서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을 막아줍니다. 오존층이 사라지면 지구는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처럼 되어 생명이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오존층에 구명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프레온 가스와 할론 가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레온 가스는 에어컨이나 냉장고 여러 종류의 스프레이 등에 사용되는 가스입니다. 이것은 공기 중에 분해되지 않고 성층권까지 올라가서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면서 오존층을 파괴합니다. 할론 가스는 주로 소화기에 사용되는 가스입니다. 이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입니다. 지금 남, 북극의 얼음은 점점 녹고 있습니다. 이상기후가 심화되는 것도 오존층의 파괴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존층이 계속해서 손상되어 간다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지구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유엔을 비롯하여 선진국들과 많은 나라가 21세기의 인류의 과제를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으로 공감하고 정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오존층이 점점 사라지고 태양 적외선이 지구 표면에 직접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한 어떤 원인에 의해 태양 에너지가 점점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 북극에서부터 지구가 얼기 시작하여 뉴욕까지 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뉴욕이 침수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기후 변화에 의한 인류의 종말, 대 지진에 의한 인류의 종말, 홍수와 가뭄에 의한 인류의 종말,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종말,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인류의 종말, 혜성과의 충돌로 인한 인류의 종말....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인류의 종말, 지구의 대파국을 상상하며 두려워해왔습니다. 아마도 노아 홍수 이후 인간의 이러한 염려는 더욱 심화 되었을 것입니다. 홍수가 그쳤을 때 노아는 다시 똑 같은 홍수가 오지 않을까, 또는 자연 질서가 계속 되지 않으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런 홍수가 없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고, 땅이 있는 동안에는 낮과 밤이 계속되고, 사계절이 계속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마치 가인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성을 쌓고 살상무기를 만들었듯이, 인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인간의 힘으로 대 파국을 피해보려고 합니다.

대파국은 믿거나 말거나 한 공상 속에서나 일어날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 가운데 도래할 사건입니다. 앞서 열거한 여러 가지 우주와 지구 환경의 변화에 의해 대 파국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닥치게 될 대파국은 단순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의한 대 파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대 파국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대파국은 지구 환경의 변화를 통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핵전쟁을 통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대 파국이 어떤 형태로 오건 인류는 그 대 파국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환경오염을 줄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렇게 하여 대 파국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3장 24-25절은 그 대 파국의 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러한 일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일어난 바벨론 포로와 로마 제국에 의한 유다의 멸망 같은 사건들을 상징하기도 하고 장차 종말에 이루어질 대 파국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날에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IS의 테러 앞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이 연합을 해도 쉽게 해결이 안 됩니다. 하지만 그 날에는 미국 같이 강력한 수백 개의 나라가 연합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기존의 질서가 해체되고 수많은 물리학적 원리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과학과 문명은 고장 난 컴퓨터처럼 작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핵폭탄을 터뜨려도 불꽃놀이 하는 정도로 밖에 효과를 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 날에 일어날 일을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날에 “해가 어두워지며”라고 했는데, 이 한 가지 사실만도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태양이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태양과 행성의 거리에 따라 생존의 환경이 결정되는데, 아예 태양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태양이 없으면 생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의미가 없어집니다.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합니다. 첨단 과학의 힘과 금융업으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합니다. 미국이 스스로 세계 경찰이라고 자처하고 그 역할을 수행해도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중소기업들에게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합니다.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권력자들, 검찰과 군인, 심지어 큰 교회 목사들까지 막강한 힘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힘 있는 국가나 기업이나 권력자들, 소위 갑들이 갑질을 할 수 없는 때가옵니다. 그 때가 바로 해가 빛을 잃게 되는 그 날입니다. 성경은 그 대  파국의 날을 해가 빛을 잃게 된다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3년 후나 혹은 1년 후에 그 날이 온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 그 날이 온다고 예단을 하고 집을 팔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도 접고 그 날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쿰란 공동체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사회 근처에 모여 문명과 단절하고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시한부 종말론 자들입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종말론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이 종말론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종말론을 믿는 자들은 쿰란공동체 같은 형태로 살았고 온건한 종말론 자들은 문명을 등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상의 삶을 살면서 그 날을 기다렸습니다. 종말의 날에 대한 이해에 따라 극단적 종말론을 믿게 되기도 하고 온건한 종말론을 따르게 되기도 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한 가지 사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일상의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의 특징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 있는 것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졸거나 잠에 빠져 있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잠자는 것은 일체의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기는 하지만 아무 활동을 못하니까 자는 것이 상징하는 것은 죽은 상태입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이 잔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인의 감시가 두려워 억지로 일하다가 주인의 감시가 사라지자 일하지 않는 태도를 잠자는 상태, 즉 죽은 상태라고 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주인이 없을 때 더 부지런하게 더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긴장감을 늦추면 안 됩니다. 기독교 윤리를 가리켜 긴장의 윤리라고 합니다. 일상의 일에 파묻혀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날은 대 파국의 날임과 동시에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단순히 괴로운 세상이 끝나는 날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 날에는 모든 질서는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나 권력자로 사는 자들은 그 날이 올까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을 기대하며 삽니다. 역사 종말의 대 파국이 아니라도 개인적으로 그 날을 맞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의 나름의 즐거움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복한 순간에도 불안합니다. 사람들은 대 파국의 날을 두려워 하지만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지난 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하였습니다. 대림절이란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12월에 있어서 이 때를 대림절로 지킵니다. 그러나 초림의 주님은 이미 2천 년 전에 오셨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초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핵심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대림절을 맞아 다시는 눈물이 없고 고통이 없고 슬픔과 염려와 걱정이 없고 죽음이 없는 그 날을 깨어 기다립시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 막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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