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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로서의 사랑과 실천을 위한 몇 가지 원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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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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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사랑이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저절로 상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그러한 이해는 가장 수준 낮은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감정적인 부분보다 의지적인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데 내 마음이 저절로 가는 것에 의해 좌우되는 감정적인 것이라면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의무론적 윤리를 강조하였는데, 윤리란 곧 사랑임을 전제할 때 칸트도 사랑을 의무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칸트가 사랑을 의무로 규정한 근거는 선한 의지이기 때문에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이성이나 선한 의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당위와 의무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이 사랑을 권면이나 교훈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이 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마음이 상대에게로 가든지 가지 않든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요 책임입니다. 성경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는데, 사랑이 감정적인 것이라면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의지라면 내 감정에 상관없이 행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신약 신학자 C. H. Dodd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을 잘 정의하였습니다. 그는 “Agape is not primarily an emotion or an affection; it is primarily an 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가페는 감정도 아니고 애정도 아니고 의지의 능동적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active는 대상에 상관없는 능동적 행동을 수식합니다. 상대가 사랑스럽거나 마음이 끌려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결단한 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마음이 가는 에로스는 감정이 사랑의 원인이 되고 아가페에서는 사랑이 감정의 원인이 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의지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이 의지로 시작하여 감정으로 나아가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을 사랑할 때 감정적으로 하는 사랑은 동정적인 사랑이 되어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사랑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기만족을 위하는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약한 자를 돕는 것이 동정심 보다는 마땅한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active determination of the will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즉 사랑할 가치가 없을 때, 또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신학적 근거입니다. 내 마음에 100% 좋고 만족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80%밖에 안 되지만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고, 심지어 마이너스 100%라도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러한 신학적 근거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는 개별적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 사랑입니다. 개별적 사랑은 구체적 개인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행위가 개별적이고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보편적 사랑은 그 사회의 법과 질서를 지키므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사려 깊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법과 원칙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무시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회나 사회나 교회에서 회의가 민주주의 원칙을 따라 이루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항들이 논의되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이 되어도 반대한 사람들은 승복을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자기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파행을 일삼습니다. 아마도 국회가 대표적인 경우이고 요즘은 교회가 국회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Debate and Vote입니다. 자유롭게 충분히 논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투표로 결정이 되면 모두가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 원칙이 국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법과 원칙이 필요합니다. 법과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법과 원칙이 있어야 질서가 서고 질서가 서야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과 원칙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으면 질서는 깨어지고 맙니다. 질서가 깨어지면 약육강식 즉 정글의 법이 지배하게 됩니다. 이 사회가 민주주의는 명분뿐이고 실제로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이 지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하나님 나라 법을 깨뜨린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서로를 돌아보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은 이 창조의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내가 동생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항의하였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 실존입니다. 내가 왜 동생과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돌아보아야 하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병든 자를 치료하여 주신 것은 그것이 창조의 원리이고 하나님 나라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돌아보지 않는 것은 창조의 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돌아보는 창조의 원리와 하나님 나라 법의 핵심은 정의와 사랑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사랑과 반대이거나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랑의 또 다른 형식입니다. 이 최고의 법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수단이 되면 안 됩니다. 사랑보다 더 고상한 가치가 있다면 사랑을 수단화해도 되지만 사랑보다 더 높고 고상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말은 사랑을 행하면서 어떤 결과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랑을 행하다가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은 가장 불쌍한 사람을 먼저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군가 이것을 사랑의 경제학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자에게 밥 한 그릇은 별 의미가 없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을 돌아보고 도와주어야 하지만 가장 가련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을 먼저 찾아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난민과 노숙자와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셋째, 갚을 능력이 없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자를 도와주면 그가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설명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채무자로 둔 사람은 정말 두려울 것이 없는 든든한 백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상을 바라는 것은 옳지 않지만 또 한 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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