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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회개해야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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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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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나는 모범적인 회개의 경우 중 하나는 삭개오의 회개오입니다. 그는 남의 것 사기 쳐서 취한 것의 사배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사배를 실제로 갚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직까지 삭개오의 회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아 갚았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삭개오의 회개를 그가 말 한대로 실행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예수님께서 삭개오가 그 말을 한 직후 구원이 그의 집에 이르렀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사무엘의 지적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노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무엘이 불순종의 증거를 들이대자, 사울은 마땅히 회개해야 할 순간에도 자기의 명예를 챙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사울은 끝내 회개의 기회를 비껴가다가 불행하게 일생을 마친 회개의 반면교사(反面敎師)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혁명이 어려운 것은, 모든 혁명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죽어야 산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혁명보다 어려운 것입니다. 혁명은 한 번 성공하면 자기 확대와 자기실현의 방식을 취하지만 회개는 일생 동안 인간의 본성적 욕망을 거스르는 방식을 취합니다. 혁명이 일정한 기간에 성취되는 것인 반면 회개는 지속적 행위이고, 혁명은 거의 타자를 대상으로 삼지만 회개는 자신을 대상으로 삼습니다. 혁명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도 가능하지만 회개는 자기 자신이 유일한 대상입니다. 혁명은 업적이 될 수 있지만 회개는 철저한 자기 부정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자기 부정이란 자기의 이기심과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지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 학대이며 전혀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닙니다.

2005년 2월 4일 한국에서는 백발의 교육계 원로들이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싸리나무로 된 회초리를 들고 스스로의 종아리를 내리쳤습니다. 수능부정과 교사의 대리답안 작성, 온갖 부정과 비리로 인성교육이 땅에 떨어진 현실은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란 게 스스로 자기들의 종아리를 친 이유입니다. 그 때 그 원로들은 실제로 종아리를 아프게 맞은 것이 아니고 내 잘못이라는 시늉을 한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원로들 중 그 동안 저질러 온 교육계의 뿌리 깊은 비리에 대해 자기가 저지른 구체적 해악에 대해 실제로 갚거나 보상을 했다는 덕담 같은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05년 4월 8일, 서울 강변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기도회에서 한국교계의 원로 목사님들이 공개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김창인, 강원용, 조용기 목사님들께서‘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김창인 목사님은 신사참배 하지 않은 재건파 교회에 속하여 신사 참배한 이들과 교회를 정죄한 교만을 회개하였고, 강원용 목사님은 인간 구원만을 위하고 자연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화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한국 교회가 분열하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회개를 하였고, 조용기 목사님은 값싼 은혜를 전한 것, 말로만 사랑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것, 불의에 대해 침묵한 것 등을 회개하였습니다.

그 때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4년 5월 15일, 한국기독교원로목사회는 기독교 100주년 기념회관에 모여 ‘한국교회와 목회자 갱신을 위한 회초리 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한 원로 목사님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바지를 걷고 회초리로 자신들의 종아리를 쳤습니다. 승객을 죽음에 남겨두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이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7일 한국교계 원로 목회자가 중심이 된 ‘회초리 기도회’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교계 원로 목사님들을 비롯한 5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단상에 오른 10여 명의 목사님들은 한국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회개하면서 회초리로 자기들의 종아리를 쳤습니다. 주최 측은 이날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회초리 하나씩을 기념품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원로 목사님들이 자신을 스스로 파렴치한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나부터 회개합니다!’라며 자신들의 종아리를 쳤습니다. 이분들이 연로한 분들이니 객기를 부린 것은 아닐 테고, 그 용기와 진정성이 대단합니다. 사회와 교계에 온갖 부패가 만연하지만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이가 없는 이 때에 원로들이 나 때문이라고 하고 나선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을 교회와 사회를 위해 일 해오면서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많은 인기와 존경을 받아 온 분들이 스스로 죄인이라며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회초리 기도회 뉴스를 접하고 너무 어이없다는 느낌과 함께 헛헛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엄청난 비리, 장로들의 메가톤급 사회부정, 영적이고 도덕적인 권위가 땅에 떨어진 교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분들의 회개가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로 목사님들의 회개는 엄격하게 말한다면 실체가 없는 회개입니다. 교만한 죄, 부족한 죄, 무관심의 죄, 침묵의 죄는 하나님 앞에 은밀하게 회개할 죄입니다. 그런 회개는 대중 앞에서 매스컴을 이용해 세상에 알리고 드러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구체적 개인이나 집단에 해를 끼치는 죄를 지었다면 해를 끼친 그 대상에게 구체적으로 갚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나쁘고 악질적인가를 인식하고 그 악을 미워하는 구체적 증거가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악함과 거짓과 이기적인 욕심과 파렴치함과 교활함으로 취한 모든 이익을 피해를 당한 구체적 개인이나 단체에 되돌려 주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행위까지를 보여야 합니다. 원로 목사님들의 회개가 개인이 하나님 앞에 은밀히 회개할 죄인데도 공개적 형식을 취한 것이라면, 높아지기 위해 겸손한 자세를 취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은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기 종아리를 회초리로 친 목사님들 중에 교회 공금을 횡령했거나 개인에게 해를 끼친 분이 있다면 갚거나 보상하거나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공금횡령이나 구체적 개인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끼친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는 것으로 회개를 한 것이라면 그 회개는 실체가 없는 회입니다. 회개하는 표로 자기 종아리를 치는 것이 한국적 회개의 토착화인지 모르겠으나 성경적 원리나 모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체가 없는 회개는 회초리 기도회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권징이 시행되는 개 교회, 노회, 총회에서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말로 회개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곳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이들 중에 유난히 윤리의식이 부족한 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들키면 ‘안 가져가면 될 거 아니야’, ‘돌려주었잖아?’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한인들은 그 나라 사람들의 형편없는 윤리의식과 수준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계에 공금횡령, 거짓말, 간음, 성희롱, 모함, 파당, 폭언, 폭력, 불법, 갑질 같은 것 못하면 무능한 것이고 들키면 바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교회나 노회나 총회에서 징계를 받고 진정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며 회개의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했잖아!’식의 회개, 실체가 없는 퍼포먼스식 회개, 경건한 지도자로 돋보이기 위한 회개라면 그 회개를 회개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초리 기도회는 회개까지 이벤트화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실망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중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물어보았답니다. “삭개오는 회개하면서 재산의 반을 내놓았고, 남의 것을 사기 쳐서 취한 것이 있으면 4배를 갚겠다고 했는데, 이번 원로 목사님들의 회개 행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무슨 이유냐?”그 목사님의 딸은 서슴지 않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답니다. “그분들은 삭개오가 아니잖아요.”정답입니다. 정답을 모르고 괜히 열을 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석연치 않고 찝찝한 것은 회초리 기도회가 자꾸만 회개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고 후배들을 가르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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