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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교회의 중요성, 노회와 총회도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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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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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KAPC 제39회 총회가 남미에서 열렸는데 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참석을 못하였습니다. 나를 아는 몇몇 분들이 “황목사가 총회에 참석을 안 하면 어떡해?”라고 약간은 비아냥대는 투로 말하였습니다. 목사는 노회나 총회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평소에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KAPC에 가입한 이래 거의 20여년 가까이 한 번도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총회에 참석을 잘 안 하는 목사들에게, 목사는 노회와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총회에 참석을 하지 못한 것이 평소의 주장을 스스로 저버린 것 같아 조금은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사실 총회나 노회에 성실하게 참석을 안 하는 목사님들이 의외로 많은 편입니다. 그런 목사님들도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교회의 모임에 참석을 잘 하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학생은 학교에 빠지면 안 되고, 회사원도 회사에 빠지면 안 되고, 공무원도 출근을 안 하면 안 되고, 교인은 예배에 빠지면 안 되고, 국회의원도 회기 중에 국회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들 중에 총회나 노회에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노회 교역자가족수련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함께 밴을 타고 여행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여행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연세가 지긋하신 어떤 목사님께서 젊은 후배 목사에게 “○ 목사, 노회나 총회 일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해야 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선배 목사님께 “목사님, 노회와 총회도 교회입니다.”라고 했더니, 그 선배 목사님께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네.”라고 하셔서 한 바탕 웃었습니다. 저의 말에 순간 선배 목사님께서 아차 하시는 눈치셨는데 여유 있게 받아넘기셨습니다. 노회나 총회가 교회라는 사실을 선배 목사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교회일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말씀하시다 잘못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사실을 잘 모르는 목사님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노회나 총회에 잘 참석하지 않는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교회 모임에 잘 참석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목사님들이 노회나 총회에 참석하는 것을 괜히 정치나 하고 쓸데없는 데 참석하느라 시간과 경비를 낭비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목회자가 잘 못 가르친 때문입니다. 실제로 노회나 총회가 교회라는 사실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아서 노회나 총회를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적 모임으로 알고 있는 교인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12명의 제자들 외에 많은 다른 제자들이 있습니다. 충성심이나 진정성이나 순수한 열정이나 소위 스펙으로 따지면 12제자들보다 나은 제자들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의 핵심 멤버들은 12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 후에 교회의 기둥 역할을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당신을 배신했던 그 제자들을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택하셔서 가르치시고 훈련을 시키셔서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일은 처음부터 예수님께서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택하시고 특별훈련을 시키셨다는 사실이, 그들이 다른 제자들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2제자들은 처음부터 훌륭하고 능력 있는 자들로 선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심은 통상적인 선발 기준을 따른 것이 아니고 아주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출신 성분이나 소위 스펙 같은 것을 완전히 무시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라도 예수님께 선택을 받으면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12제자들은 다 배신자였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악질적인 배신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팔고 후회하여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제 11명의 제자들이 120여명의 부활공동체의 핵심 멤버가 되어 최초의 교회공동체를 주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예수님의 12제자들 중 한 사람인 배신자 가룟 유다의 결원을 보궐하는 일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사도 보궐 선거인 셈입니다. 이 모임에서 베드로가 사회를 보면서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 구약의 예언을 들어 배신자의 비참한 최후는 사필귀정임을 이야기 하며 이어서 사도 보궐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행 1:15-26). 사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신했었고, 다른 제자들도 그런 셈이었지만 거기에 모인 그 누구도 11제자들의 실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1 사도들의 배신이나 자격을 운운하지 않았고 그보다 시급한 일을 하는데 모두가 암묵적으로 기꺼이 동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급한 일이 이를테면 바로 사도 보궐 선거입니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죽거나 죄를 지어 의원직을 상실하면 보궐선거를 통해 결원을 채워야 합니다. 한 명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냥 해도 될 텐데 반드시 보궐을 하는 것은 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법에 의하면 결원이 생겼을 경우 반드시 보궐 선거를 통해 결원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보궐 선거를 왜 해야 되느냐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보궐은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서둘러 한 것일까요? 그 이유나 당위성이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아무도 사도 보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아 모두가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보궐에 대한 법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추측하는 것은 12라는 수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의 12명의 아들을 비롯해서 성경에는 12라는 수가 중요한 수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도 12제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사도라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12명 중 한 명이 결원이 생기자 사람들은 당연히 그 한 명을 채워야 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문제는 12사도들 중 한 명이 결원이 되었는데 그 수를 채우는 것이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 일인가 하는 점입니다. 초기 이 공동체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 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앞으로 모임은 어떻게 해야 하고, 모이는 장소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누가 그 일을 주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모임에 대한 로마 정부의 사찰이 있을 것이고,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 모임을 사이비 집단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급선무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사도 보궐은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보궐을 이렇게 서두른 이유를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초기교회공동체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일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왜 사도 보궐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뽑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을 공천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요셉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맛디아입니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비 뽑아서 맛디아를 사도로 세웠습니다. 이 보궐의 방법은 제비 뽑기입니다. 제비 뽑기는 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이고 선택은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작위로 한 것이 아니고 사도로 선택될 기본적인 조건을 먼저 세워 놓고 결정하였습니다. 기본적인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경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경험을 시기적으로 분명하게 명시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때로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다른 12제자들과 함께 한 자라는 조건입니다. 사도로 봉사하고 일할 수 있으려면 예수님의 공생애의 이런 전체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조건은 하나님께서 또는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건이 아닙니다. 사도들이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조직교회에는 이런 것들이 많습니다. 조직교회에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바울은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지만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바울은 사도의 자격 문제로 많은 곤욕을 치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조직교회 자체를 거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조직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조직교회에 속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참 교회에 속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직분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은 형식적인 사도권은 전승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직이 전승된다고 하는 주장은 전통교회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통 교회는 사도 직분의 내적인 역할은 모든 믿는 자에게 전승된다고 봅니다. 사도 보궐은 이 두 가지를 다 전제한 조치입니다.

사도의 형식적 권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권위가 없으면 교회가 세워질 수도 없고 성경이 완성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의 직무에 해당되는 일이 교회를 세우고 성경 계시를 완성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예수부활공동체가 처한 형편이 매우 혼란하고 자칫하면 외부적 위협에 의해 해체될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그 위험에 직접적으로 대처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형식적 조직을 세우고 역할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직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보궐 사도의 조건이‘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인데, 이는 함께 모인다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회에 함께 다닌다는 뜻입니다. 지역 교회에 함께 다닐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지역 교회에 다니지만 그것도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지역 교회나 노회나 총회도 다 한 교회입니다. 일반 성도들이 노회나 총회에 참석할 필요는 없지만 목사는 반드시 노회나 총회에 다녀야 합니다. 구체적인 지역교회와 노회나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토대입니다. 교회의 모임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교인은 엉터리 교인입니다. 노회나 총회에 참석하지 않는 목사는 엉터리 목사입니다. 지역교회에 나가지 않고 교회 생활을 안 하고 혼자서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착각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런 방식으로 성립되지도 않았고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교회 역사가 그것을 증언합니다. 중요한 교리나 신학을 채택하고 이단에 대처하여 교회를 지켜 온 것도 오늘날로 말하면 노회나 총회인데, 교회사는 그것을 결정한 종교회의를 교회가 결정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교회의 연합체인 총회가 교회임과 조직교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도 보궐입니다. 초기 교회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조직교회와 분리된 개인이 건강한 신앙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혼란하고 외부의 위험이 극도로 고조되어 있는 초기 교회의 상황에서 결원된 사도를 보궐하는 일을 서두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조직교회를 부정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지역의 한 조직교회에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 행 1:2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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