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갑질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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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14-12-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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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데보라 그륀펠트(Deborah H. Gruenfeld), 대처 켈트너(Dacher Keltner), 카메론 앤더슨(Cameron Anderson)은 학생들을 3명씩 한 팀으로 편성한 다음 환경오염이나 낙태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글을 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작위로 그 중 두 명에게는 글을 쓰도록 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두 명이 쓴 글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차등을 매기고 일정액의 돈을 지급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각기 맡은 일을 하는 동안 먹으라고 한 팀에 과자 다섯 개씩을 주었습니다. 팀 멤버가 세 명인데 과자가 다섯 개 주어졌으니 한 개씩 먹고 두 개가 남았습니다. 이 실험에서 글을 쓰는 학생은 네 번째 과자에 손을 대지 않았고 보스 역할을 맡은 학생이 자연스럽게 나머지 두 개의 과자를 먹어 치웠다는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나왔습니다. 보스 역할을 맡은 학생에게 주어진 권한은 글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돈을 지불하는 것이었지만 나머지 과자 두 개까지 먹을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 받았다는 듯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어 치웠다는 것입니다. 과자를 먹는 동안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무시한 월권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가관(可觀)인 것은 그런 월권행동을 마치 정당한 특권을 누린다는 듯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태도에서 글을 쓰는 두 학생에 대한 일체의 배려도 감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이 실험에서 확인 된 것입니다.
한 사회의 지도자들은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운 인텔리들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사회계약은 위계질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계질서란 모든 사람이 자기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당연히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도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민주사회의 도덕,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리에 대한 정당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에 따라 개인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과 부자들과 인텔리들과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사람을 상하 관계 아래 들어가게 합니다. 힘없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약한 자들은 자기들보다 힘 있고 많이 배우고 강한 자들이 자기들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와 이익을 보장해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환상이라는 사실이 위 실험에서 밝혀진 셈입니다. 사람들은 남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될 때 그 권한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라는 뜻임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장님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심리학에서는 ‘중심 역할의 오류(the fallacy of centrality)'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요 법철학자인 액턴은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갑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갑질에 대한 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최근 글 중에는 새정치연합 소속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에 대한 언행을 ‘갑질 패악’이라 비난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자기의 지위와 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와 몸과 정신과 소유까지 침해하고 빼앗는 모든 언행은 갑질인 셈입니다. 군대에서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특수 규율로 인하여 갑질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 못지않게 사회 모든 조직 안에서 갑질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갑질이 마치 미풍양속처럼 장려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 문제는 거의 갑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직장에서 상사가 아래 직원에게, 교수가 조교에게, 대기업 관계자가 하도급 업체 관계자들에게, 고위 공직자가 하위 공직자에게, 담임 목사가 부목사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심지어 부모가 자녀에게까지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악의 갑질의 경우가 드러나면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우리 모두가 화를 내지만 어떤 사람이 특별히 악하여 갑질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본질과 수준 때문에 갑질의 매력에 쉽게 빠져듭니다. 돈이 많고 학문이 깊고 권력을 갖게 되고 명예와 인기를 얻으면 갑질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자연스러워집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주위의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갑질은 정당하고 당연하여 조금도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갑질을 한다는 의식도 못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갑질로 인한 고통을 꺼억 꺼억 참고 있는데도 그들이 모두 자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폴 피프(Paul K. Piff)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사회악이 되는 엄청난 착각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자동차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고 가정하고 4차선 도로에서 어떤 자동차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부당하게 끼어들기를 많이 하는지 실험하였습니다. 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30%,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 은 7~8%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거의 횡단보도의 선을 밟지 않았으나, 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무려 45%가 넘게 횡단보도를 침범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위반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피프는 실험 방식을 달리 하여 참가자들에게 누군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려는 이야기를 읽게 하고 그 행동을 얼마나 따를 가능성이 있는지 적도록 했는데, 스스로를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 외의 여러 실험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속임수를 더 잘 쓴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자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와 폭언, 이를테면 갑질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을 하였습니다. 갑질은 사회 안 거의 모든 집단에서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갑질의 종류도 성희롱, 막말, 반말, 부당한 일 강요, 협박, 폭력 등 다양합니다. 이런 갑질이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판사, 검사, 대학 교수, 목사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들에 의한 갑질은 문제가 되지만 그 외의 다양한 집단과 계층에서 일어나는 갑질의 피해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정규직 종사자의 비정규 직 종사자에 대한 갑질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2013년 3월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 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818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6.1%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 직에 대한 정규직의 갑질이 일으키는 사회적 갈등 요인도 상당하리라 생각됩니다. 레가툼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생활만족도가 110개 OECD 국가 중에 104위라고 하니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삶의 만족도를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아들들을 높은 지위에 앉혀 달라고 등용 청탁을 하였을 때, 청탁이 부당하다는 지적보다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얻어 갑질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자신들에게 좀 더 솔직해 지면 사실상 부자 되고 박사 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갑질 하는 즐거움을 탐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갑질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을에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옥 경험입니다. 갑질은 부자도 박사도 교수도 목사도 사제도 승려도 심지어 모든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짓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갑질 하는 재미로 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갑질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갑질은 하나님 나라에 없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갑질 하는 사람도 그 나라에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 20:25-28 -
한 사회의 지도자들은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운 인텔리들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사회계약은 위계질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위계질서란 모든 사람이 자기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당연히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도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민주사회의 도덕, 공공질서 및 일반적 복리에 대한 정당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에 따라 개인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위계질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과 부자들과 인텔리들과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사람을 상하 관계 아래 들어가게 합니다. 힘없고 많이 배우지 못하고 약한 자들은 자기들보다 힘 있고 많이 배우고 강한 자들이 자기들의 정당한 권리와 자유와 이익을 보장해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환상이라는 사실이 위 실험에서 밝혀진 셈입니다. 사람들은 남보다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될 때 그 권한이 다른 사람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라는 뜻임을 생각하기보다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장님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심리학에서는 ‘중심 역할의 오류(the fallacy of centrality)'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권력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요 법철학자인 액턴은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갑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갑질에 대한 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최근 글 중에는 새정치연합 소속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에 대한 언행을 ‘갑질 패악’이라 비난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자기의 지위와 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와 몸과 정신과 소유까지 침해하고 빼앗는 모든 언행은 갑질인 셈입니다. 군대에서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특수 규율로 인하여 갑질이 가장 많이 행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 못지않게 사회 모든 조직 안에서 갑질은 다반사로 일어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갑질이 마치 미풍양속처럼 장려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 문제는 거의 갑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직장에서 상사가 아래 직원에게, 교수가 조교에게, 대기업 관계자가 하도급 업체 관계자들에게, 고위 공직자가 하위 공직자에게, 담임 목사가 부목사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심지어 부모가 자녀에게까지 갑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패악의 갑질의 경우가 드러나면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우리 모두가 화를 내지만 어떤 사람이 특별히 악하여 갑질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본질과 수준 때문에 갑질의 매력에 쉽게 빠져듭니다. 돈이 많고 학문이 깊고 권력을 갖게 되고 명예와 인기를 얻으면 갑질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자연스러워집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주위의 다른 사람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갑질은 정당하고 당연하여 조금도 거리낄 게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갑질을 한다는 의식도 못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갑질로 인한 고통을 꺼억 꺼억 참고 있는데도 그들이 모두 자기의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폴 피프(Paul K. Piff)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그런 생각이 사회악이 되는 엄청난 착각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자동차가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고 가정하고 4차선 도로에서 어떤 자동차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부당하게 끼어들기를 많이 하는지 실험하였습니다. 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30%,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 은 7~8% 끼어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거의 횡단보도의 선을 밟지 않았으나, 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무려 45%가 넘게 횡단보도를 침범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위반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피프는 실험 방식을 달리 하여 참가자들에게 누군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려는 이야기를 읽게 하고 그 행동을 얼마나 따를 가능성이 있는지 적도록 했는데, 스스로를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비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 외의 여러 실험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속임수를 더 잘 쓴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자들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와 폭언, 이를테면 갑질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을 하였습니다. 갑질은 사회 안 거의 모든 집단에서 힘 있는 자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갑질의 종류도 성희롱, 막말, 반말, 부당한 일 강요, 협박, 폭력 등 다양합니다. 이런 갑질이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판사, 검사, 대학 교수, 목사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들에 의한 갑질은 문제가 되지만 그 외의 다양한 집단과 계층에서 일어나는 갑질의 피해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최근에는 정규직 종사자의 비정규 직 종사자에 대한 갑질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2013년 3월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 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818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46.1%나 되는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 직에 대한 정규직의 갑질이 일으키는 사회적 갈등 요인도 상당하리라 생각됩니다. 레가툼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생활만족도가 110개 OECD 국가 중에 104위라고 하니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삶의 만족도를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아들들을 높은 지위에 앉혀 달라고 등용 청탁을 하였을 때, 청탁이 부당하다는 지적보다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얻어 갑질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자신들에게 좀 더 솔직해 지면 사실상 부자 되고 박사 되고 교회가 부흥되고 권력과 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갑질 하는 즐거움을 탐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갑질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을에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옥 경험입니다. 갑질은 부자도 박사도 교수도 목사도 사제도 승려도 심지어 모든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짓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갑질 하는 재미로 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갑질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갑질은 하나님 나라에 없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갑질 하는 사람도 그 나라에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마 20:2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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