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을 통한 일반은총에도 감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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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4-11-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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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종교개혁 497주년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수많은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해방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종교개혁을 통해 깨닫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는 특별 계시요 특별은총입니다. 이 특별 계시가 아니면 인간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특별은총이 아닌 일반 은총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중세 교회나 오늘날이나 교회가 일반은총에 무디고 어둡다는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로마 교회는 인간 삶의 영역을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천상적인 것은 잃었지만 지상적인 것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전제로 인간의 탁월함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죄의 개념도 성경적이지 않고 또한 인간 본성도 오해하는 그릇된 주장입니다. 무엇보다 로마교회의 치명적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완전성을 왜곡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일반은총을 경시한 것입니다. 그에 반해 개혁교회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 다는 특별은총과 죄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지키시는 일반은총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개혁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도 일반은총에 대한 이해가 중세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종교개혁을 통해 일반은총을 되짚어보는 것이 절실하게 여겨집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개혁의 의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종교개혁을 그저 단순한 종교적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정치와 경제와 문화 일반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 그 자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이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고, 한국 사람들은 8.15 해방을 기념합니다.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1863년 1월 1일이 잊지 못할 날입니다. 그런데 노예해방은 미국에 사는 흑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다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국가적으로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바로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와 그것을 반대하는 북부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비싼 동족상잔의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해방을 이룩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인권을 위해 싸웠던 흑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종교개혁도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종교개혁의 열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과 자유와 기회가 거의 종교개혁의 열매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첫째는 교회의 부패이고, 둘째는 교황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주의 내지는 보편주의에 대하여 근대적인 국가 형태를 갖춘 나라들의 민족주의의 충돌이고, 셋째는 교리적 탈선의 문제이고, 넷째는 사회 경제적인 요인이고, 다섯째는 대중들의 새로운 종교적 열정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중들의 종교적 경향은 성경적이라기보다는 미신적이었으며, 비현실적인 것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종교적 신앙적 의미를 부여한 성지, 성일, 기도문, 촛대 사용, 묵주 사용, 성자숭배, 유물숭배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그런 것을 다 지키려면 정상적인 일상의 삶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인문주의의 발흥이 종교개혁을 촉진하였습니다. 인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기독교 인문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를 구분합니다. 세속적 인문주의도 종교개혁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지만, 기독교 인문주의는 라틴 고전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작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성경을 원문으로 탐구토록 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1516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왜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도 짚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합스부르그 왕가가 누리던 신성로마제국의 보편성이 쇠퇴함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각 지방의 봉건영주들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이들의 분쟁과 봉건제도의 붕괴로 사회불안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신흥 상업 자본가들의 영향 하에 영주와 도시들은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521년 85개의 도시들 가운데 65개가 제국 직할 도시로 되어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부한 상인들 손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제국의 대부분이 봉건적인 구조와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영주들과 지방제후들에 의한 교회지배가 확산되었고, 반면 독일의 자금이 로마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증오 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와 성직자들과 관련하여, 일반대중들은 성직자들의 호사스런 옷차림과 종교세 등의 착취로 인하여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열정적인 대중들의 신앙적 분위기를 바로 지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를 이용하여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 오늘날과 같았습니다. 이를테면 정치 경제 문화 일반에까지 무질서가 판을 쳤고 그로 인해 인권과 보편 가치가 붕괴되자 하나님께서 그 때에 종교개혁자들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라는 하나님의 조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의 반기독교적인 계몽주의로 뻗어나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였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1881년 에크만과의 나눈 대화에서 “우리는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 편협함의 사슬에서 자유 하게 되었고,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되었으며, 기독교라는 그 순수함 속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 발을 확고하게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인간 본성 안에서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는 자연과 경험을 중시하는 리얼리스트, 아니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고한 리얼리스트”였습니다. 그는 이념에 매달리는 철학적 사변이 문학 작품에 독이 된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의식화 되고 형식적이 된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괴테의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추구한 것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경험적으로 진행되는 인간의 행위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중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기독교적 모티브를 담고 있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천국으로부터 속세를 거쳐 지옥에 이르는 인간 행위의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문학작품이 갖는 한계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폭 넓은 은혜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신 또한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개혁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단순히 하나의 종교 차원으로만 국한하여 이해하면 안 됩니다. 종교개혁은 종교, 즉 교회의 담장 밖으로 흘러 넘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내부의 질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세계사와 사상사,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세계사의 모든 지도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나 칼빈 같은 당대의 탁월한 개혁자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본래의 복음이 품고 있던 능력이 하나님의 때에 성령님에 의해 발현한 것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복음의 능력이 지향하는 데 따라 네 가지 모토,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만을 주장하였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였습니다. 이 주장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이고, 이 말을 뒤집으면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가 교회의 담장을 넘어 사회와 정치, 법,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 획기적인 영향이 미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계시와 복음의 능력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미치게 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적 운동으로 비판 받는 프랑스의 시민 혁명도 사실 알고 보면 복음의 능력이 종교개혁을 통해 끼친 일반은총입니다. 다만 그 혁명에 참가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공으로 오해한 것뿐입니다. 괴테가 모든 역사와 문화의 변혁을 이 종교개혁에서 이해하고 감사한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은 인식이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 시 89:11 -
미국 사람들은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고, 한국 사람들은 8.15 해방을 기념합니다. 미국의 흑인들에게는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한 1863년 1월 1일이 잊지 못할 날입니다. 그런데 노예해방은 미국에 사는 흑인들에게만 의미 있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다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국가적으로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바로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와 그것을 반대하는 북부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 비싼 동족상잔의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해방을 이룩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인권을 위해 싸웠던 흑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종교개혁도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종교개혁의 열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권과 자유와 기회가 거의 종교개혁의 열매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첫째는 교회의 부패이고, 둘째는 교황 중심으로 형성된 국제주의 내지는 보편주의에 대하여 근대적인 국가 형태를 갖춘 나라들의 민족주의의 충돌이고, 셋째는 교리적 탈선의 문제이고, 넷째는 사회 경제적인 요인이고, 다섯째는 대중들의 새로운 종교적 열정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중들의 종교적 경향은 성경적이라기보다는 미신적이었으며, 비현실적인 것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종교적 신앙적 의미를 부여한 성지, 성일, 기도문, 촛대 사용, 묵주 사용, 성자숭배, 유물숭배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그런 것을 다 지키려면 정상적인 일상의 삶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인문주의의 발흥이 종교개혁을 촉진하였습니다. 인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기독교 인문주의와 세속적 인문주의를 구분합니다. 세속적 인문주의도 종교개혁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지만, 기독교 인문주의는 라틴 고전들을 비롯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작들을 심도 있게 연구하였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성경을 원문으로 탐구토록 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1516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한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왜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도 짚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합스부르그 왕가가 누리던 신성로마제국의 보편성이 쇠퇴함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각 지방의 봉건영주들의 세력이 강화되었고, 이들의 분쟁과 봉건제도의 붕괴로 사회불안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신흥 상업 자본가들의 영향 하에 영주와 도시들은 번영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1521년 85개의 도시들 가운데 65개가 제국 직할 도시로 되어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부한 상인들 손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제국의 대부분이 봉건적인 구조와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영주들과 지방제후들에 의한 교회지배가 확산되었고, 반면 독일의 자금이 로마 교황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증오 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와 성직자들과 관련하여, 일반대중들은 성직자들의 호사스런 옷차림과 종교세 등의 착취로 인하여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열정적인 대중들의 신앙적 분위기를 바로 지도하지 못했고, 오히려 교회를 이용하여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 오늘날과 같았습니다. 이를테면 정치 경제 문화 일반에까지 무질서가 판을 쳤고 그로 인해 인권과 보편 가치가 붕괴되자 하나님께서 그 때에 종교개혁자들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종교개혁이라는 하나님의 조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의 반기독교적인 계몽주의로 뻗어나가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에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였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1881년 에크만과의 나눈 대화에서 “우리는 루터와 종교개혁에 대해 전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 편협함의 사슬에서 자유 하게 되었고,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되었으며, 기독교라는 그 순수함 속에서 모든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땅에 발을 확고하게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인간 본성 안에서 스스로를 느낄 수 있는 용기를 다시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는 자연과 경험을 중시하는 리얼리스트, 아니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고한 리얼리스트”였습니다. 그는 이념에 매달리는 철학적 사변이 문학 작품에 독이 된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의식화 되고 형식적이 된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괴테의 문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추구한 것은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이념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 경험적으로 진행되는 인간의 행위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는 중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기독교적 모티브를 담고 있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천국으로부터 속세를 거쳐 지옥에 이르는 인간 행위의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문학작품이 갖는 한계성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폭 넓은 은혜 또한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신 또한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개혁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단순히 하나의 종교 차원으로만 국한하여 이해하면 안 됩니다. 종교개혁은 종교, 즉 교회의 담장 밖으로 흘러 넘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내부의 질서만 바꾼 것이 아니라 세계사와 사상사,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 걸쳐 세계사의 모든 지도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나 칼빈 같은 당대의 탁월한 개혁자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본래의 복음이 품고 있던 능력이 하나님의 때에 성령님에 의해 발현한 것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복음의 능력이 지향하는 데 따라 네 가지 모토,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만을 주장하였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였습니다. 이 주장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이고, 이 말을 뒤집으면 “인간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가 교회의 담장을 넘어 사회와 정치, 법,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 획기적인 영향이 미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계시와 복음의 능력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미치게 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적 운동으로 비판 받는 프랑스의 시민 혁명도 사실 알고 보면 복음의 능력이 종교개혁을 통해 끼친 일반은총입니다. 다만 그 혁명에 참가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공으로 오해한 것뿐입니다. 괴테가 모든 역사와 문화의 변혁을 이 종교개혁에서 이해하고 감사한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은 인식이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 시 8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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