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준을 드러내는 진리
페이지 정보
황상하ㆍ2014-10-16관련링크
본문
성경에는 영웅이 없습니다. 영웅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서 보통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낸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의 능력을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영웅이 가능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해도 그것을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영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능력을 부정합니다. 믿음은 인간의 능력이나 공로의 반대개념입니다. 성경에는 온통 이런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이 진리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깨달은 진리를 따라 사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이 성경 진리, 즉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복음의 진리를 알아가는 만큼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가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한창 활동하실 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도 고치고 떡도 얻어먹고 기적도 보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특별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회의원과 같은 유대의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입니다. 산헤드린공의회는 예수님께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결과를 두고 본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입니다. 그런 유대 지도자 그룹의 인사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세인의 관심은 물론 오늘날로 말하자면 특종 기사 거리입니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보통 사람의 방문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산헤드린공의회 몰래 예수님을 찾았다면, 그 사실이 탄로 날 때 문책을 받을 수도 있고 공의회 의원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바리새인 집단에서 어떤 목적으로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왜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유대 사회와 유대종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선생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칠 뿐 아니라 가르치는 율법에 대해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이 뜻이 말해 주듯이 그들은 구별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나중에는 형식적이 되고 정치적이 되고 세속화 되어서 백성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바리새인 하면 그래도 백성들은 그들을 선생으로 지도자로 존경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회개를 외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고 그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바리새인들의 고유한 영역인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에 대해서도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대단한 권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중에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또는 메시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심오하고 권위가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바리새인들의 권위가 폄하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여러 모로 대책을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온갖 짓을 다하였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이상한 질문도 하고 비난도 하고 위협도 하고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온갖 올무를 놓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어려운 질문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가서 어려운 질문을 하지만 그들 역시 사두개인들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내어 소위 협상을 하도록 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를테면 “이보시오, 예수 선생, 당신 이렇게 활동하지 말고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타진을 해보려고 예수님께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이 여의치 않자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는 아주 젊잖게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위대한 선생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셨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대 학자요, 위대한 선생입니다. 사상과 학문이 깊은 사람이요 경건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바른 관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아무리 하나님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해박하고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거듭나지 아니하면”그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시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이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생으로 백성들을 가르쳐 온 니고데모입니다.
그런데 그는 복음의 기본이 되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가짜 박사가 아닙니다.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시중잡배도 아닙니다. 그는 똑똑하고 지혜 있고 학문이 깊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모르느냐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요 3:16절은 그 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입니다. 그 후 니고데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니고데모의 학문과 경건과 지혜와 능력이 복음의 진리 앞에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인간의 수준을 드러냅니다. 니고데모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즉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형편없는 수준의 인간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분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0 -
예수님께서 한창 활동하실 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도 고치고 떡도 얻어먹고 기적도 보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좀 특별한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국회의원과 같은 유대의 산헤드린공의회 의원입니다. 산헤드린공의회는 예수님께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습니다. 결과를 두고 본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입니다. 그런 유대 지도자 그룹의 인사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세인의 관심은 물론 오늘날로 말하자면 특종 기사 거리입니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보통 사람의 방문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산헤드린공의회 몰래 예수님을 찾았다면, 그 사실이 탄로 날 때 문책을 받을 수도 있고 공의회 의원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온 것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바리새인 집단에서 어떤 목적으로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왜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냈을까요? 바리새인들은 유대 사회와 유대종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선생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칠 뿐 아니라 가르치는 율법에 대해 철저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이라는 말은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이 뜻이 말해 주듯이 그들은 구별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나중에는 형식적이 되고 정치적이 되고 세속화 되어서 백성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바리새인 하면 그래도 백성들은 그들을 선생으로 지도자로 존경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회개를 외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고 그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바리새인들의 고유한 영역인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일에 대해서도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대단한 권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중에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또는 메시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불안을 느낀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심오하고 권위가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바리새인들의 권위가 폄하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여러 모로 대책을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온갖 짓을 다하였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이상한 질문도 하고 비난도 하고 위협도 하고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온갖 올무를 놓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두개인들도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어려운 질문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가서 어려운 질문을 하지만 그들 역시 사두개인들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니고데모를 예수님께 보내어 소위 협상을 하도록 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를테면 “이보시오, 예수 선생, 당신 이렇게 활동하지 말고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타진을 해보려고 예수님께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이 여의치 않자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간 니고데모는 아주 젊잖게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위대한 선생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셨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대 학자요, 위대한 선생입니다. 사상과 학문이 깊은 사람이요 경건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바른 관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아무리 하나님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해박하고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거듭나지 아니하면”그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시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거듭남을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듭남이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생으로 백성들을 가르쳐 온 니고데모입니다.
그런데 그는 복음의 기본이 되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가짜 박사가 아닙니다.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시중잡배도 아닙니다. 그는 똑똑하고 지혜 있고 학문이 깊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모르느냐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요 3:16절은 그 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쳐 주신 복음입니다. 그 후 니고데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니고데모의 학문과 경건과 지혜와 능력이 복음의 진리 앞에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인간의 수준을 드러냅니다. 니고데모 뿐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기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즉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형편없는 수준의 인간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분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0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