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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무엇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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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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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중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눅 11:9-10)는 말씀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딱히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라기보다 광의적으로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의 지향성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기도란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지만, 그런 구체적 기도가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사과 한 개를 하나님께 구했다면 삶에서 그 사과 한 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놓고 삶에서는 자신의 뜻을 추구한다면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기도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겠지만 알면서도 기도에서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는 뜻에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기도에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 때면, 원칙적인 정답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현실적 대답은 내게 필요한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게 진실한 그 무엇이 일치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기도가 되겠지만 그럴 확률은 대단히 낮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의 진정한 필요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여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내가 구한 것이 진정 내게 유익하고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기계적으로 응답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기계적으로 응답하신다면 무지하고 잘못된 기도는 심각한 재난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내가 무지하여 잘못된 기도를 드려도 수정하여 들으시고 진정 내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응답을 하실 때는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잘못된 기도를 수정하여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신 것이 모두 성령을 구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 제일 좋은 것이 성령이라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주기도에서도 구체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으니까 그런 뜻은 아닐 것입니다.

기도 응답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믿고 구한 것은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응답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수정하여 응답하십니다. 따라서 어떤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응답도 있고 수정된 응답도 있습니다. 응답하지 않으시는 응답의 경우 우리가 구한 것을 이미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주시고 찾고 열릴 것이라는 말씀에 우리는 지나치게 고무되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방법에 너무 몰두하여 하나님의 뜻과 성령을 주신다는 뜻을 간과(看過)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떡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떡을 주시고 생선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생선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한 것을 다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묵묵부답도 응답이고 수정된 응답도 있고 지연되는 응답도 있습니다. 이 모든 종류의 응답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드릴 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방법과 열정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믿고 신뢰하는 토대를 기도의 방법이나 진정성이나 열정에 두면 안 되고 잘못 구할지라도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늘 아버지께 두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저런 소원들이 있습니다. 큰 욕심이 아닌 소박한 소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직장 문제, 사업 문제, 돈 문제, 대인관계 문제 등 소박한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큰 욕심이 아니고 소박한 것들이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 없이 늘 기도하고 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겠지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경우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젊은 나이에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죽거나 자식이 심각한 선천적 장애자이거나 교통사고로 자신이 장애자가 되거나 시한부 난치병에 걸린다면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변할까요?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까지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원칙적인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옳은 대답이라도 무책임하고 교만한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만이 대답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욥의 친구들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가 하나님께 직접 대답을 들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절대 빈곤에서 빵을 구했는데 성령을 주신다면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곧 은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원칙적이고 간접적인 설명입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욥과 같은 시련을 겪게 되거나 에볼라에 감염되거나 지진으로 가족을 잃거나 온갖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뚫어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으로 충만하면 견딜 수 없는 고난과 불행까지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설명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온갖 것이 부족해도 여호와만으로 만족했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마 5장에 의하면 복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복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슬프고, 서럽고, 춥고, 배고프고,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복된 이유는 사회복지적 차원의 복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새 생명의 능력이 그들을 복되게 한 때문입니다. 그 새 생명의 능력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늘 불평과 투정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하는 것들은 이루어 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형편과 처지는 다 다릅니다. 우리는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문제는 성령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초현실적인 어떤 경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상하지 않았던 좋은 것을 경험하고 혼자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피하게 하시고 주신 고난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시기 위해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눅 11: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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