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그리스도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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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4-08-1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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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10일 전인 4월 6일에 육군 28사단 소속 윤 일병이 선임 병들의 폭행으로 숨졌습니다. 군 수사당국은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을 이용하여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대강 얼버무려 마무리 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죽은 윤 일병의 친척 중에 의사가 있어서 윤 일병의 시신을 보고 단순 사고가 아님을 확신하고 아는 국회위원을 통해 연대장에게 알렸고, 군법무관 출신으로 변호사 활동 중인 친척을 통해 압박이 들어가자 헌병대에서 구타에 가담한 이들을 찾아내는 등 수사에 적극성을 보였다고 하니 그런 빽 이라도 없었다면 단순사고 사로 묻힐 뻔 했습니다. 수사가 진행되자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폭행에 가담한 병사는 이 병장,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 모두 4명입니다.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은 나이가 26살로 비교적 늦게 군에 입대하여 이등병 시절 나이 어린 선임자들로부터 심한 모욕과 폭언을 당해 수치심으로 잠을 잘 자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선임 병들의 폭언을 간부들에게 알렸다가 이 사실이 부대에 알려져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부대생활이 더 어려워져 전출을 신청하여 지금의 부대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험인물로 취급 받아 지금의 부대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의 부대로 옮겨 온 이후 작년 6월에는 모범운전병으로 대대장 표창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근무유공 대대장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내무반 내 최 고참이 되자 별 의식 없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래 악마 같은 사람이었는지 그렇게 변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병을 구타하기 시작했는데, 암기 시험점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치약을 먹이고 눕혀 놓고 얼굴에 물을 붓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매우 악질적인, 소위 싸이코라는 짐작이 듭니다. 후임이 잘못 할 때, 아무리 군대 내 때리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지만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한 두 번 친다거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 정도까지 사라졌다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 정도를 문제 삼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방법이 너무 가혹하고 매우 엽기적입니다. 그리고 후임 병 관리를 잘 못한다고 자기 아래 병장과 상병들을 압박했습니다. 그가 주문한 ‘관리’란 가혹한 폭력과 엽기적 방법의 사용을 지시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윤 일병을 죽게 한 폭력에 가담한 네 명은 모두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평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중 이 상병 같은 경우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도 당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폭력의 중심에는 이병장이 있었습니다. 내무반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싸이코 고참병에 의한 공포 분위기에서 고참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이 병장이 윤 일병을 구타하면서 자기 아버지가 조폭인데 구타사실을 가족이나 상부에 알리면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고 어머니를 납치하여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폭력이 얼마나 심했으면 폭력현장을 목격한 어떤 병사는 저렇게 맞고도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놓고 개 흉내를 내며 핥아먹게 하고, 구타로 음식물을 흘리자 핥아먹게 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고, 치약 한 통 먹이기, 물 1.5l 얼굴에 붓기, 기운을 못 차리자 비타민 수액 주사를 놓아 정신을 들게 하여 계속 폭행을 가하는 등 2차 대전 때 일본군이나 독일군의 야만행위에 버금가는 가혹행위를 내무반 안에서 동료 병사에게 가했습니다. 윤 일병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이 터진 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가혹행위와 왕따를 참고 있으면 윤 일병처럼 맞아 죽고, 못 참으면 지난 6월에 22사단 GOP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육군 관계자는 22 보병사단에 속한 ‘관심병사’가 모두 1,800명으로, 전체 부대원의 20%를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년 병장이 총기를 난사한 이유를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임 병장이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남긴 유서 형식의 메모에 “선임과 후임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따돌림을 당해 부대 생활이 힘들었다.”는 심경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임 병장은 6월 병장 계급을 달기 전 상병 때부터 상하 계급 전체에게 따돌림을 받는 “계급 열외”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자주 열외 됐고, 선임 병한테는 왕따를 당했고 후임 병한테도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임 병장이나 윤 일병이 왜 왕따의 표적이 되었을까요? 세월호 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조직 내 폭력과 비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심지어 검찰 조직이나 교회 안에도 폭력과 비리가 존재합니다. 어디서나 피해자는 약자입니다. 신체가 허약하거나 정신적 또는 심리적으로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거나 가난하여 법에 호소할 수도 없는 이들이 대개 왕따 피해를 당합니다. 학교 다닐 때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집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서 친구들과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고 다른 친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를 못했습니다. 도시락은 언제나 꽁보리밥이었고 반찬은 언제나 고추장이었습니다. 그는 도시락 뚜껑으로 밥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옆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밥을 먹었습니다. 바보 같으니까 친구들이 놀렸고 자연히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못된 친구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인상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인상을 쓰는 것은 괴롭힘이 너무 싫다는 의미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는데 못된 친구들은 그것을 재미 삼아 더욱 괴롭혔습니다. 가끔 말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단순히 재미있어 하며 구경하였습니다. 왕따가 나쁜 것은 피해당사자는 죽음을 생각하는 정도로 괴로운데 가해자는 단순히 재미로 괴롭힌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자기의 정당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양심적인 개인이라도 집단의 일원이 되면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왕따를 시키는 방법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악질적이고 엽기적이 되고 야만적이 될 수 있습니다.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동료 병사들의 경우가 그러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집단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악성 특징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도덕과 인권의 가치질서를 허물게 됩니다. 가치 질서가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의 죽음은 그 폐해를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낸 것일 텐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걱정입니다.
학교 내 왕따, 직장 내 왕따, 어느 집단 안에서도 왕따가 있게 마련입니다. 왕따는 자살과 살인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피할 수 없어 고스란히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으며 견디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왕따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캠퍼스까지, 노동현장에서 국회까지, 동사무소에서 검찰이나 법원까지, 친목회 같은 사조직에서 군대까지, 깡패나 조폭 같은 조직에서 교회나 사찰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과 학벌과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왕따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왕따가 되어도 작은 집단 안에서 국한되기 때문에 이사를 가거나 이런 저런 방법으로 피할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문화 때문에 피하기가 어렵고 그 피해가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극대화 됩니다.
세상에서는 능력이 부족해서 왕따가 되기도 하지만 진실하고 정직해서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 밖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왕따가 되어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본적으로 진실하고 정직해야 하니까 세상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겪은 것은 그들이 왕따를 당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왕따의 원조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너무 못생겼고 유약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너무 비호감이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같이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이들에 대해 마음이 특별하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잘나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고 인정해 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유령인간 취급 받는 이들을 매우 측은히 여기셨고 제자들에게 그런 자들을 만나면 당신을 대하듯 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부탁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왕따로 인해 자살과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너무 절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어디에서나 왕따 당하는 자를 보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교회의 부흥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이 사회나 어떤 조직 안에서 왕따 당하는 이들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부흥과 선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 시 140:12 -
폭행에 가담한 병사는 이 병장, 하 병장, 이 상병, 지 상병 모두 4명입니다.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은 나이가 26살로 비교적 늦게 군에 입대하여 이등병 시절 나이 어린 선임자들로부터 심한 모욕과 폭언을 당해 수치심으로 잠을 잘 자지도 못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선임 병들의 폭언을 간부들에게 알렸다가 이 사실이 부대에 알려져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부대생활이 더 어려워져 전출을 신청하여 지금의 부대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위험인물로 취급 받아 지금의 부대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의 부대로 옮겨 온 이후 작년 6월에는 모범운전병으로 대대장 표창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근무유공 대대장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내무반 내 최 고참이 되자 별 의식 없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래 악마 같은 사람이었는지 그렇게 변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이 일병을 구타하기 시작했는데, 암기 시험점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치약을 먹이고 눕혀 놓고 얼굴에 물을 붓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매우 악질적인, 소위 싸이코라는 짐작이 듭니다. 후임이 잘못 할 때, 아무리 군대 내 때리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지만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한 두 번 친다거나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 정도까지 사라졌다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 정도를 문제 삼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방법이 너무 가혹하고 매우 엽기적입니다. 그리고 후임 병 관리를 잘 못한다고 자기 아래 병장과 상병들을 압박했습니다. 그가 주문한 ‘관리’란 가혹한 폭력과 엽기적 방법의 사용을 지시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윤 일병을 죽게 한 폭력에 가담한 네 명은 모두 대학을 휴학하고 군에 입대한 평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그 중 이 상병 같은 경우는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도 당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폭력의 중심에는 이병장이 있었습니다. 내무반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싸이코 고참병에 의한 공포 분위기에서 고참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이 병장이 윤 일병을 구타하면서 자기 아버지가 조폭인데 구타사실을 가족이나 상부에 알리면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고 어머니를 납치하여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폭력이 얼마나 심했으면 폭력현장을 목격한 어떤 병사는 저렇게 맞고도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가래침을 바닥에 뱉어놓고 개 흉내를 내며 핥아먹게 하고, 구타로 음식물을 흘리자 핥아먹게 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고, 치약 한 통 먹이기, 물 1.5l 얼굴에 붓기, 기운을 못 차리자 비타민 수액 주사를 놓아 정신을 들게 하여 계속 폭행을 가하는 등 2차 대전 때 일본군이나 독일군의 야만행위에 버금가는 가혹행위를 내무반 안에서 동료 병사에게 가했습니다. 윤 일병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이 터진 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가혹행위와 왕따를 참고 있으면 윤 일병처럼 맞아 죽고, 못 참으면 지난 6월에 22사단 GOP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육군 관계자는 22 보병사단에 속한 ‘관심병사’가 모두 1,800명으로, 전체 부대원의 20%를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년 병장이 총기를 난사한 이유를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임 병장이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남긴 유서 형식의 메모에 “선임과 후임들로부터 인정을 못 받고 따돌림을 당해 부대 생활이 힘들었다.”는 심경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임 병장은 6월 병장 계급을 달기 전 상병 때부터 상하 계급 전체에게 따돌림을 받는 “계급 열외”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자주 열외 됐고, 선임 병한테는 왕따를 당했고 후임 병한테도 인정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임 병장이나 윤 일병이 왜 왕따의 표적이 되었을까요? 세월호 사건에서도 나타났지만 조직 내 폭력과 비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심지어 검찰 조직이나 교회 안에도 폭력과 비리가 존재합니다. 어디서나 피해자는 약자입니다. 신체가 허약하거나 정신적 또는 심리적으로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거나 가난하여 법에 호소할 수도 없는 이들이 대개 왕따 피해를 당합니다. 학교 다닐 때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집이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내성적이라서 친구들과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고 다른 친구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를 못했습니다. 도시락은 언제나 꽁보리밥이었고 반찬은 언제나 고추장이었습니다. 그는 도시락 뚜껑으로 밥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옆도 돌아보지 못하고 혼자서 밥을 먹었습니다. 바보 같으니까 친구들이 놀렸고 자연히 왕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못된 친구들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인상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인상을 쓰는 것은 괴롭힘이 너무 싫다는 의미의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는데 못된 친구들은 그것을 재미 삼아 더욱 괴롭혔습니다. 가끔 말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단순히 재미있어 하며 구경하였습니다. 왕따가 나쁜 것은 피해당사자는 죽음을 생각하는 정도로 괴로운데 가해자는 단순히 재미로 괴롭힌다는 사실입니다. 개인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자기의 정당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양심적인 개인이라도 집단의 일원이 되면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왕따를 시키는 방법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악질적이고 엽기적이 되고 야만적이 될 수 있습니다.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동료 병사들의 경우가 그러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집단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어도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악성 특징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도덕과 인권의 가치질서를 허물게 됩니다. 가치 질서가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의 죽음은 그 폐해를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낸 것일 텐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걱정입니다.
학교 내 왕따, 직장 내 왕따, 어느 집단 안에서도 왕따가 있게 마련입니다. 왕따는 자살과 살인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피할 수 없어 고스란히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으며 견디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왕따는 유치원에서부터 대학 캠퍼스까지, 노동현장에서 국회까지, 동사무소에서 검찰이나 법원까지, 친목회 같은 사조직에서 군대까지, 깡패나 조폭 같은 조직에서 교회나 사찰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과 학벌과 사회적 지위를 불문하고 어디서든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왕따 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왕따가 되어도 작은 집단 안에서 국한되기 때문에 이사를 가거나 이런 저런 방법으로 피할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 문화 때문에 피하기가 어렵고 그 피해가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극대화 됩니다.
세상에서는 능력이 부족해서 왕따가 되기도 하지만 진실하고 정직해서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 밖에서도 정의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은 왕따가 되어 고난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본적으로 진실하고 정직해야 하니까 세상에서 왕따가 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을 겪은 것은 그들이 왕따를 당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왕따의 원조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너무 못생겼고 유약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너무 비호감이어서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같이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이들에 대해 마음이 특별하셨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잘나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고 인정해 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유령인간 취급 받는 이들을 매우 측은히 여기셨고 제자들에게 그런 자들을 만나면 당신을 대하듯 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이 부탁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왕따로 인해 자살과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너무 절실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어디에서나 왕따 당하는 자를 보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사명입니다. 교회의 부흥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이 사회나 어떤 조직 안에서 왕따 당하는 이들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부흥과 선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 시 14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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