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친(肉親)을 잃은 것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는 뜻입니다. 자식의 죽음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라 하여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합니다. 부모 주검은 산에 묻고 자식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육친을 잃은 아픔이 인륜의 고통이라면 자식 잃은 아픔은 동물적 본능의 슬픔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을 참척(慘慽)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자식 잃은 슬픔과 고통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셋째 아들 윌리가 앓다 죽은 몇 주 뒤 백악관 마구간에 불이 났습니다. 링컨은 조랑말 한 마리 구하려고 무모하게 불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경호원들이 기겁을 하고 달려들어 대통령을 구출하였습니다. 조랑말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이 그렇게 무모하게 불속으로 뛰어든 것은 그 조랑말이 죽은 아들 윌리가 너무도 아끼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링컨의 아내 메리는 아들 월리가 숨진 백악관 ‘이스트 룸’과 아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그린 룸’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흔히 자식의 죽음을 내 탓이라 여겨 죄책에 빠집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John Calvin Coolidge, 1872. 7. 4 ~ 1933. 1. 5)는 아들 칼을 잃었습니다. 칼은 백악관 테니스 코트에서 테니스 게임을 하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맨발로 몇 게임을 더 했는데, 그로 인해 그만 패혈증에 걸려 사흘 뒤에 숨졌습니다. 쿨리지는 며칠을 넋을 잃고 지냈습니다. 창밖에서 아들이 테니스를 하는 환영을 보기도 하고, 집무실에서 인터뷰 하다 말고 기자 앞에서 흐느껴 울기도 하였습니다. 쿨리지는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아들이 백악관에서 테니스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다음 대선에는 출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훗날 그는 자서전에 “주니어가 떠난 뒤 대통령의 권력과 영광도 함께 사라졌다”고 썼다고 합니다.

김동리도 큰아들 진홍이 죽자 10년이 지나도록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아들 잃은 슬픔을 시로 읊조렸습니다.‘진(晉)이 한 조각 구름 되어 날아간 날/ 하늘엔 벙어리 같은 해만 걸려 있더라/ 먹고살면 흘러가는 나날/ 십 년도 도무지 하루같이 쉬운 것을/ … / 어이한 새 한 마리냐 너는, 지금도/ 천길 하늘 위에서 우느냐.’

참척의 고통은 눈을 감을 때까지 부모 가슴에 납덩이로 얹혀 있고, 세월이 흘러도 딱지가 앉지 않는 상처입니다. 소설가 박완서는 1988년 스물다섯 외아들을 앞세웠습니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밟던 ‘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 아들’을 잃은 박완서는 스무 날이 넘게 부산 수녀원에 칩거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하시라고 하나님께 대들며 따졌습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 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이 어미에게 죽음보다 무서운 벌을 주는 데 이용하려고 그 아이를 그토록 준수하고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하셨더란 말인가. 하나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나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통한에 몸부림쳤던 박완서는 후일 그렇게라도 따져 묻고 분풀이할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참척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을 거라고 회고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는 참척의 고통을 꺼억 꺼억 삼키며 견디는 이들이 수백이 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불법과 무책임으로 참사를 불러온 자들에 대해 분노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생때같은 자식을 앞세웠을까 하는 참척의 고통으로 마음까지 뒤틀어져 있을 것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조문행렬이 계속되고 있고,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분향소를 찾고 있는데, 조문행렬에는 무겁고 참담한 침묵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참척을 당한 부모에게 조문은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지라도 견디기 힘든 모진 고문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울고 온 국민이 울었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 보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에게 참척에 버금가는 고통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눈물을 어떤 이들은 연기(演技)라고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 꼬인 이들에게 진심을 전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장례식에서 연기(?)하는 상주는 많이 보았습니다. 장례 풍속에는 울음꾼을 사서 울게 하는 풍속도 있습니다. 장례가 여러 날 계속되는 경우 아무리 슬퍼도 몇날 며칠을 계속 울 수는 없기 때문에 전문 울음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전문 울음꾼의 울음은 진정한 울음이 아니고 연기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장례식에서 자식이 연기로 우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잃고 참척의 고통 중에서 연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참척의 고통과 슬픔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쉽게 전이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울고 온 국민이 울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말과 행동을 삼갑니다. 이런 때는 정당한 말도 진정성으로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최종적인 책임이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국민에게 사과하였고 참사를 수습하는 일과 재발을 막는 일에 대통령에게 부여된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는 각오와 다짐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의 이와 같은 뜻과 의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롬 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