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미완성’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 측면에서가 아니라 섭리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창조 기사에 의하면 자연과 인간은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만족해하실 만큼 완전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만족해하실 창조의 결과라면 그 피조물들은 하나님처럼 완전하지는 못해도 최상의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물리적인 창조에 머물지 않고 피조물의 존재의 의의와 목적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되었지만 아직 미완성인 것입니다.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창조사역을 계속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당신이 창조사역을 계속하고 계심을 수 없이 많이 알리셨고 또한 상기시켜주셨습니다. 구속의 사역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계속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의 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 받았지만 그 구원은 아직도 이루어 가야 할 미완성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아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는 키워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도 구속도 당신의 나라도 이미 완성하셨지만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에 오늘도 그 일들을 계속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하나님의 그 일에 그의 제자들과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불러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사람을 위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지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위하시는 일 가운데 인간의 행복과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들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그 일에 참여한 자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하고 인간을 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계명과 성경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창조와 구속과 하나님 나라 일의 독특한 특징인 “이미”와 “아직”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연과 인간의 조건을 부조리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20세기 초, 서구 세계에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모더니즘은 자연을 모순된 덩어리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 당시 서구의 예술가들이 신은 자연 세계를 불완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역사 속에서 그것을 완성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미완성의 특징에 대한 인간적 대응인 셈입니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전제에는 쇼펜하우어의 무신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신의 자리에 ‘무의식’을 대입(代入)하였고, 그 무의식 가운데 인간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욕망과 그 욕망이 성취되었을 때에 찾아오는 권태 사이를 시계추와 같이 맹목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이성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였지만 그 대안은 염세주의자가 되는 것임을 증명한 인물입니다. 이성은 인간의 여러 인식 능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하여 감정과 의지와 체험을 통한 포괄적 인식능력을 강조하였습니다. 실존주의는 쇼펜하우어의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철저한 생존본능과 맹목적 의지만을 가진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목적이나 의미 같은 것을 부정하여 허무주의를 낳았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자살을 한 그의 제자들이 많았지만 정작 그는 천수를 누렸다는 것이 아이러니고, 풍성한 식탁에 앉아 인생의 부질없음과 허무를 설파한 그의 태도는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성경 기자들도 인생이 허무하다는 느낌을 감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느낌마저 없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 89:47절)라고 하였고,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창조와 구속과 하나님 나라가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미완성은 일반적인 의미의 미완성이 아니고 완성적 효과를 경험하는 독특한 미완성입니다. 인생과 만물을 미완성으로만 보면 허무와 권태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완성적 효과를 경험하는 미완성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완성적 효과를 경험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도 오래 참습니다. 불완전한 것들을 완전하게 만들어 가는 것과 미완성의 상태에서 완전성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으시면 우리도 참고 하나님께서 이해하시면 우리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면 우리도 용납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거짓과 시기와 교만과 자랑과 분쟁을 우리도 미워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아니하시면 우리도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고, 가정도 교회도 일도 사람도 세워 가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대상임을 기억한다면 인격의 미숙함과 일의 부족함을 인하여 불평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3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