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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사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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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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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해서 모든 것을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먹고 사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만 먹거리가 넉넉하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가를 덜 생각할 뿐입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입 하나 덜기 위한 것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먹을 것은 모자라는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낳았는지, 한 집에 아이들이 네댓 명씩 되는 것은 보통이었고 많은 집에는 열 명이 넘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이 가난하고 자식이 많은 집은 좀 넉넉하고 자손이 귀한 집에 자식을 양자로 보내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것도 다 입 하나 덜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옛날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절실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먹고 사는 문제에 초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생사의 문제였던 시대에 먹는 것에 초연하려 했던 선비들의 정신은 나름대로 대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도 미식가 선비들은 음식 맛 좋고 술맛 좋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그들은 단순히 음식 맛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풍유를 즐기기도 했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이치와 원리를 탐구하고 논하려 했던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에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먹고 사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천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희랍 철학에서도 그렇고 유교 문화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천한 것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아무리 철학자라도 먹어야 살고 아무리 양반이라도 먹어야 살지만 명분상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천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문제입니다. 먹는 것은 곧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문제를 천히 여겼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도 양반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속담에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고 하고, 양반들은 냉수를 마시고도 이빨을 쑤신다고 합니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안 먹고는 못사는데, 양반 체면에 굶었다는 내색은 못하고 잘 먹은 시늉으로 이빨을 쑤셨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먹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데 인생과 우주의 원리를 배우고 논했던 철학자들은 한 결 같이 먹는 문제를 천하게 여겼습니다. 희랍과 동양의 철학자들과 양반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인생을 공부하고 우주의 원리를 탐구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동서양의 철학자들과 종교인들까지 먹는 것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각자들이 먹는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정말 먹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만큼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사람이 먹고 사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기독교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성경에서도 우리가 배우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희랍이나 동양 철학이나 이방 종교의 이원론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천히 여긴 것은 윤리적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이방의 가르침과 차원을 달리합니다. 성경은 속된 것과 고귀한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으로 인간과 우주와 가치를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느냐로 설명합니다.

어떤 분이 ‘먹고 살기 위해 목회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목회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맞는 것 같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지나치게 저돌적인 영적 주장입니다. 성경에 먹고 살기 위해 목회하면 안 된다는 말은 없지만 그 주장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나 그런 주장에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혹시나 싶어 그 주장의 글을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역시나 다분히 이원론적인 생각이요 주장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원리로 볼 때 먹고 살기 위해 목회하면 안 되지만, 비즈니스나 직장생활도 먹고 살기 위해 하면 안 됩니다. 그 주장에는 이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의 토대가 없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비즈니스나 직장생활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목회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도자는 먹고 살기 위한 세상 직업에서는 목회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름만 가진 그리스도인, 즉 교회 프로그램에만 모범적인 우등생을 양산하게 되어 오늘날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잃고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의도적으로 성과 속을 구분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사고 속에는 거룩하고 속된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영향이 작용합니다. 사실 나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성속(聖俗)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회는 거룩하고 세상 직업은 속되며, 예배당은 거룩하고 예배당 밖은 속되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일깨워야 형편입니다. 물론 일 자체로 악하고 속된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악하거나 속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영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속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는 먹고 살기 위해 목회하면 안 되고, 교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비즈니스나 직장생활 해도 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지향하도록 하나님 나라 원리의 토대 위에서 사고하고 생활하고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먹는 것 자체를 천한 것으로 여기신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먹든지 마시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면 거룩하고 영적인 것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목회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직장생활, 먹고 마시는 것, 학문과 문화와 예술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나 비즈니스나 직장생활이나 문화 예술 활동이나 학문연구나 가사일도 목회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 어는 것도 다른 것보다 못하다고 폄하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여러 일들 중에 중요성의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대통령의 직책은 말단 공무원의 직책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악하고 속될 수 있고 말단 하급 공무원 직을 수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면서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사악할 수 있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면 목사, 장로, 집사, 권사의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도 위선이 될 뿐입니다. 아껴 먹고 가려 먹고 나누어 먹고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은 성도의 덕목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는 문제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먹는 문제는 거의 모든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먹는 문제에 대한 사려 깊은 영적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을 개척해 가십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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