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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받은 자의 바른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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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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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밀양”의 주연배우인 전도연이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베를린, 칸, 베니스 영화제가 있는데, 지난 1987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강수연씨가 영화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칸 영화제에서는 전도연이 처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아서 한국 영화계는 지금 상당히 고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이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교회들이 단체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 중의 하나인 “용서”라는 문제를 나름대로 상당히 심층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용서라고 하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을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 작가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어느 수준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하여 현대 기독교 신앙의 피상성을 고발하고 있으나 그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 역시 피상성의 수준임을 감안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전제는 휴머니즘의 한계 안에 머물고 있어 교리적으로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겠으나 참 기독교에 대한 말 걸기라는 측면에서 피상적 기독교 신앙에 대한 자성의 동기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아직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 관련 기사와 글들을 통해서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듯합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유괴범에게 아들까지 살해당한 여주인공 ‘신애’는 전도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교회에 나가면서 구역모임과 노방전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간증까지 하면서 성령을 경험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어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신애가 용서하려고 찾아간 범인도 감옥에서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범인이“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 받으니 이래 편합니다.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라는 고백을 듣는 순간 신애는 자신의 희생적 용서의 결심이 너무나 허무함을 느낍니다. 아들을 죽인 범인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려고 큰 결심을 하고 면회를 간 주인공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 받았다는 살인범의 말에 충격을 받고 기독교 신앙을 버리게 되는 것이 이 영화, ‘밀양’의 대략적 줄거리입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피상성을 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도대체 “용서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할 것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아들을 살해한 원수가 자기가 용서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아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범인이 자기 앞에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구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자기가 용서하기 전까지는 범인이 처절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전제 하에서 범인을 용서할 결심을 하였을 때 그녀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범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녀의 마음의 평안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유행가 노랫말“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를 빌어 자신이 거짓 감정에 속았음에 분노를 터트렸습니다. 그녀는 거짓 평안에 속았지만 범인은 참 평안을 누렸을지도 모릅니다. 주인공 신애가 맛본 평안은 심리적 평안이고 범인이 얻은 평안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도 범인의 평안을 문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범인이 아무리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하여도 자기가 살해한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용서 받은 자의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그가 살해한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떳떳함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런 잘못된 신앙인의 모습을 인하여 복음을 거부하는 태도 역시 정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휴머니즘의 한계 안에서 이해한 기독교를 전제했기 때문에 극복하지 못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제기는 부인할 수 없는 기독교의 피상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기독교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하고 있습니다.

죄를 사하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에게도 용서를 받아야 하고, 용서 받은 사람은 그 기쁨의 감격을 내면에 깊이 간직함이 덕스럽고 또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용서 받은 감격과 기쁨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마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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