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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울증 환자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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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200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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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환자의 자살 충동과 교회의 입장

다양한 교회들을 돕는 일을 하는 나는 이따금 교회에서 우울증으로 인해서 자살한 소식들을 접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육체적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와는 다르게, 이들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남 앞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의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례를 맡은 목사님도 신학적인 답을 찾기에 어쩔 줄 몰라 하고, 가족을 위로하러 오는 교우들도 유족들에게는 여러 가지 말로 위로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찜찜해 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교회가 신학적 사고의 틀과 영적 해석에만 깊이 물들어져 있는 반면 의학적 상식은 무시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본다. 특히 자살하면 지옥이라는 교리주의에 휩싸여 있을수록 유족과 교회 모두에게 처신의 폭을 더욱 어렵게 한다. 모든 자살이 우울증으로 인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울증 환자의 자살을 무조건 저 사람은 지옥 갔어 식의 마구 잡이 식 표현은 삼가 해야 한다고 본다.

우울증은 마음과 생각 속에 생기는 육체의 암과 같은 병이다.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고 계속해서 재발 할 수도 있다. 교회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사랑으로 함께 있어주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새 힘을 갖고 새 마음으로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걸 할 힘이 그들 스스로에게 없는 것이다. 교회가 해야 할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해주며, 그들을 따뜻하게 진실된 사랑의 마음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몇 년 전 Brooklyn의 한 종합 병원에서 임상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병원 원목의 한 사람으로 매주 한번씩 신경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음악 치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한 나로서는 음악 치료에 대해서 어렴풋이 들었던 것들이 있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점도 있었고, 이 음악 치료에 환자들과 함께함으로써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개인적으로 가깝게 다가가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 날도 나는 환자들과 함께 있고자 시간에 맞추어서 지정된 곳으로 갔었다. 이미 그 곳에는 간단한 타악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음악 치료사와 전문 간호원 그리고 환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악 치료사의 피아노 반주와 인도에 맞추어 어떤 환자는 스네어 드럼을 치며, 어떤 환자들은 다양한 타악기들로 박자를 맞추어 나갔고, 우리 모두는 미국의 간단한 대중 음악들을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서 기분이 흥겨워 졌을 때, 음악치료사는 환자들에게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 주면서 각자의 기분에 대해서 쓰라고 했다. 나는 이 때 스네어 드럼을 치던 우울증 환자 가까이에 앉아 있었고 환자들이 어떻게 글을 쓸 건지에 대해서 호기심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런데 2-3분이 지나도록 내 옆에서 스네어 드럼을 치던 이 우울증 환자는 종이에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괴로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이 모습을 음악치료사가 놓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글 쓰는 것이 힘듭니까?”그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천천히 말했다. “매우 힘들어요.” 음악치료사가 다시 말했다. “글 쓰는 것이 힘들면 내가 써줄 테니 천천히 말해봐요.” 그러자 그 환자가 음악 치료사에게 자시 생각을 고통 속에서 정말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I want to kill myself. But I don’t want to do it because it is bad!”

나는 이 환자에게서 두 가지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환자의 상태가 자신의 간단한 생각조차 정리해서 글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점과 둘째는 고통 속에서 말한 그의 대답이 나의 예상을 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우울증 환자라지만, 기껏 신나게 노래 부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일까? 나는 이 환자를 통해서 우울증의 파괴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살고자 절규하는 그 환자의 내적 갈등을 또한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환자의 말을 통해서 그 날 두 가지의 신앙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들어온 교회의 가르침인 ‘자살은 죄다’라는 가르침에 대한 것이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첫 번째 것과 연관해서 하나님께서는 왜 고약하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울증을 통해서 자살 충동을 주셨을까 라는 점이었다. 이 환자의 경우 자살을 실천에 옮긴다면 이 사람은 지옥에 갈까? 내가 이 때까지 교회 안에서 들어온 말들만으로는 자살이 죄니까, 이 사람은 자동으로 지옥에 가야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임상 목회와 목회 상담 경험을 통해서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에 이러한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말은 의학적 상식을 무시한 너무나 단순하고도 환자와 그들의 가족들에게 잔인한 말이 된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기의 생각도 마음도 그리고 몸도 자기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은 환자들이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 가운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의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이 같은 말은 완전히 사치스런 표현이다. 이들에게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그들 스스로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살을 막는 일을 첫째는 가족이 해야 한다. 또한 교회가 소 그룹이나 Care 사역을 통해서 함께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우울증으로 인해서 자살한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유족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함께 그들의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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