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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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ㆍ2007-01-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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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엄마가 가족 상담의 종료를 위해 기도를 하던 중 , 울먹거리다가 결국 울음을 …18세가 다 되어가는 케네디로 인한 마음 고통, 그리고 아이와 자신의 관계 개선으로 인한 가슴벅참의 교차가 만감하는 듯… 항상 기도를 부탁하면, 거절하는 엄마였는데.
사실, 상담의 가장 난제는 엄마의 변화에 있었다. 케네디에 대한 차가운 태도와 자기의 기대에 맞게 아이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오히려 아이와의 감정적 거리를 더 벌이게 하는 것같았다. 물론, 아이에 대한 엄마의 행동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내면 깊은 곳의 아이에 대한 분노는 무조건적 사랑을 불가능케 하였다. 잘 해주면서도 또 아이로부터 배신감을 맛보게 됨으로 인해 아이와 형식적인 화해와 싸움의 악순환의 연속이…
케네디 엄마로 하여금 아이의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게 하는 것이 상담 목표 중의 하나였다. 사실, 케네디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시선이 무섭게(불안) 여겨진다며 특정 수업 시간에 들어 가기가 싫음을 눈물로 호소한 적도 있었다. 다시말해서, 부모의 차가운 태도나 감시적 접근 방법은 아이의 마음을 열도록 하기보다는, 자기가 잘 이해되지 않기에 열고 싶은 마음까지 더 닫게 해버린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였다.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찾아 내는 형사적 역할은 현재 케네디와 부모와의 거리를 더 줄일 수 없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도와야 했다. 나아가, 아이의 죄의식과 수치심을 계속 자극하면 아이는 아예 부모를 회피하거나 공격적으로 될 가능성도 이해하도록…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 같았으나, 자신(엄마)이, 위의 차가운 태도나 경계성의 행동으로,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과 태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음에는 인정하기가힘든 것 같았다. 이는 엄마 자신의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인함일 수도 있다고 해석되었다. 여러 차례 자기 방어도 보였다. ‘어떤 부모가 아이가 저항하고 반항하는데, 기분 좋게 대하겠느냐’라는 식으로. 또 자기가 일방적 피해자라는 의식으로 인해, '용서'라는 것은 마음에 둘 여유가 없는 듯 했다. 물론, 때로는 용서를 한답시고 아이가 자기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들어주기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이를 경계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다가,두 주 전에 엄마의 분노가 극에 달한 정도로 상담시간에 표출되었다. 1시간 정도의 눈물 기둥과 함께...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되면 집을 나가야 할 것’이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하자, 상담자는 그것이 진심인지를 물어보았다. 평상시에 상냥한 남편도, 아내의 아이에 대한 냉랭하고 가혹한 발언에, 직면(Confrontation)했다. 케네디 엄마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무의식이 분노로 표출된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자기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하는 등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움도 보였다. 아이에게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의식적으로 갈등을 피해가려고 했지만, 억압되고 누적된 감정(아이의 욕설 등의 위협적 행동으로 인한 상처로 인한)이 정화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이의 비뚤어짐에 자신이 기여하여 남편과 아이로부터 비난(Blame)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괴롭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기가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됨에 무기력함도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상담자는, 눈물로 호소되는 엄마의 심적 고통을 최대한 이해함과 동시에 아이에 대한 사랑(거친: Tough Love))을 감사해하며 우선 엄마의 방어를 낮추는 데 촛점을 맞추었다. 동시에, ‘하나님께 맡겼다’는 표현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했다. 케네디 부모는 망설였다.
상담자의 의도는, 기도로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분노가 더 자라고 있음을 인식케 하고자 함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포인트가 강조 논의 되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즉, 무조적 사랑을 적용(베풀지)하지 않고는 아이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의 미래(대학 진학 등)는 아이가 영적 및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어 채울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었다. 즉,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서의 필요성, 십자가의 사랑이 우선임을 나누었다. 참고로, 그들은 인도에서 이민 온 크리스챤들이었고, 부모 모두가 간호원들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남편의 허락을 받아 케네디의 엄마에게 포옹을 해주며 위로를 했다. 그러나, 엄마의 고통스러워한 모습이 자꾸 상기되면서 상담자에게는 다음 한 주 동안에 약간의 불안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시간에 엄마가 확연히 달라져 한층 높은 수준의 아이에 대한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지난 주의 상담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다. 계속 어떻게 아이가 덜 저항하고 편하게 해 줄 수 있는지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 날의 상담은 그 동안의 결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거실의 크리스마스 계속되는 캐롤송은, 아이와 그리고 가정에 평강이 찾아 옴에 감사해하는 가족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느낌을한층 더해주는 듯 하였다. 케네디도 훨씬 자연스럽게 그리고 성숙된 태도로 가족 상담(대화)에 참가하였다. 사실, 케네디는 이제 거의 부모에게 욕설을과 위협적인 언행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업이 힘들지만 언젠가는 학교가 아니면, GED(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고교 수준의 졸업장을 취득할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아이가 잠자리로 떠난 후, 엄마와 아빠는, 지난 3-4년간의 아이의 마귀적(부모에 반항하며 욕설하는 등)인 모습을 간단히 묘사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이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에게도 많은 변화(성숙)가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였다.
2주에 한 번씩의 상담 계획 변화에 부모는 약간 염려를 하는 듯 했으나, 가족의 신뢰가 많이 회복되었으니 가족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며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필자의 말에 동의했다. 동시에, 문제가 악화되면 다시 상담 횟수를 다시 늘이는 것도 약속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 지혜는, 바로 우리의 욕심을 줄이며(기대를 낮추며), 상대방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나의 인식 변화(내가 기여한 것을 찾아 하나님께 용서 받을...)로 인한 의식의 성숙이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한 부분이자 하나님의 손에 맡긴 열매임을 이 가정의 상담 과정에서 우리(부모와 상담자)는 배웠다.
사실, 상담의 가장 난제는 엄마의 변화에 있었다. 케네디에 대한 차가운 태도와 자기의 기대에 맞게 아이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오히려 아이와의 감정적 거리를 더 벌이게 하는 것같았다. 물론, 아이에 대한 엄마의 행동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나, 내면 깊은 곳의 아이에 대한 분노는 무조건적 사랑을 불가능케 하였다. 잘 해주면서도 또 아이로부터 배신감을 맛보게 됨으로 인해 아이와 형식적인 화해와 싸움의 악순환의 연속이…
케네디 엄마로 하여금 아이의 불안과 고통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게 하는 것이 상담 목표 중의 하나였다. 사실, 케네디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시선이 무섭게(불안) 여겨진다며 특정 수업 시간에 들어 가기가 싫음을 눈물로 호소한 적도 있었다. 다시말해서, 부모의 차가운 태도나 감시적 접근 방법은 아이의 마음을 열도록 하기보다는, 자기가 잘 이해되지 않기에 열고 싶은 마음까지 더 닫게 해버린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였다. 부모가 아이의 잘못을 찾아 내는 형사적 역할은 현재 케네디와 부모와의 거리를 더 줄일 수 없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도와야 했다. 나아가, 아이의 죄의식과 수치심을 계속 자극하면 아이는 아예 부모를 회피하거나 공격적으로 될 가능성도 이해하도록…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 같았으나, 자신(엄마)이, 위의 차가운 태도나 경계성의 행동으로,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과 태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음에는 인정하기가힘든 것 같았다. 이는 엄마 자신의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인함일 수도 있다고 해석되었다. 여러 차례 자기 방어도 보였다. ‘어떤 부모가 아이가 저항하고 반항하는데, 기분 좋게 대하겠느냐’라는 식으로. 또 자기가 일방적 피해자라는 의식으로 인해, '용서'라는 것은 마음에 둘 여유가 없는 듯 했다. 물론, 때로는 용서를 한답시고 아이가 자기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 들어주기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이를 경계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다가,두 주 전에 엄마의 분노가 극에 달한 정도로 상담시간에 표출되었다. 1시간 정도의 눈물 기둥과 함께...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되면 집을 나가야 할 것’이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하자, 상담자는 그것이 진심인지를 물어보았다. 평상시에 상냥한 남편도, 아내의 아이에 대한 냉랭하고 가혹한 발언에, 직면(Confrontation)했다. 케네디 엄마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무의식이 분노로 표출된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자기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하는 등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움도 보였다. 아이에게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의식적으로 갈등을 피해가려고 했지만, 억압되고 누적된 감정(아이의 욕설 등의 위협적 행동으로 인한 상처로 인한)이 정화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이의 비뚤어짐에 자신이 기여하여 남편과 아이로부터 비난(Blame)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괴롭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기가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됨에 무기력함도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상담자는, 눈물로 호소되는 엄마의 심적 고통을 최대한 이해함과 동시에 아이에 대한 사랑(거친: Tough Love))을 감사해하며 우선 엄마의 방어를 낮추는 데 촛점을 맞추었다. 동시에, ‘하나님께 맡겼다’는 표현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질문했다. 케네디 부모는 망설였다.
상담자의 의도는, 기도로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분노가 더 자라고 있음을 인식케 하고자 함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포인트가 강조 논의 되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즉, 무조적 사랑을 적용(베풀지)하지 않고는 아이에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이의 미래(대학 진학 등)는 아이가 영적 및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어 채울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었다. 즉, 아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서의 필요성, 십자가의 사랑이 우선임을 나누었다. 참고로, 그들은 인도에서 이민 온 크리스챤들이었고, 부모 모두가 간호원들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남편의 허락을 받아 케네디의 엄마에게 포옹을 해주며 위로를 했다. 그러나, 엄마의 고통스러워한 모습이 자꾸 상기되면서 상담자에게는 다음 한 주 동안에 약간의 불안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시간에 엄마가 확연히 달라져 한층 높은 수준의 아이에 대한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지난 주의 상담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다. 계속 어떻게 아이가 덜 저항하고 편하게 해 줄 수 있는지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 날의 상담은 그 동안의 결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거실의 크리스마스 계속되는 캐롤송은, 아이와 그리고 가정에 평강이 찾아 옴에 감사해하는 가족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느낌을한층 더해주는 듯 하였다. 케네디도 훨씬 자연스럽게 그리고 성숙된 태도로 가족 상담(대화)에 참가하였다. 사실, 케네디는 이제 거의 부모에게 욕설을과 위협적인 언행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학업이 힘들지만 언젠가는 학교가 아니면, GED(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고교 수준의 졸업장을 취득할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아이가 잠자리로 떠난 후, 엄마와 아빠는, 지난 3-4년간의 아이의 마귀적(부모에 반항하며 욕설하는 등)인 모습을 간단히 묘사했다.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이 뿐만이 아니라 자기들에게도 많은 변화(성숙)가 있게 해주심에 감사하였다.
2주에 한 번씩의 상담 계획 변화에 부모는 약간 염려를 하는 듯 했으나, 가족의 신뢰가 많이 회복되었으니 가족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며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필자의 말에 동의했다. 동시에, 문제가 악화되면 다시 상담 횟수를 다시 늘이는 것도 약속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으랴, 성령의 인도가 없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의 지혜는, 바로 우리의 욕심을 줄이며(기대를 낮추며), 상대방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나의 인식 변화(내가 기여한 것을 찾아 하나님께 용서 받을...)로 인한 의식의 성숙이었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한 부분이자 하나님의 손에 맡긴 열매임을 이 가정의 상담 과정에서 우리(부모와 상담자)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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