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상처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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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ㆍ2006-10-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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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상처주고
17세로 11학년인 케네디의 엄마가 간호사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8시 10분, 케네디가 아직도 학교로 출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직도 떠나지 않았어?”라고 한 마디를 던진다. 잠시 후, 아이가 계속 꾸물정거리자 엄마는, 17살이 넘었는데도 자기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짜증스러운 말투로 몇 마디를 더 던진다. 이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It’s none of your business (엄마, 참관하지 마세요.)”로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공격적인 말투로 적대감을 나타낸다. 이에, 엄마는 아들의 불손함과 무책임한 행동에 더 화가 나서 자극적인 몇 마디를 더 하게 된다. 이에, 아들에 엄마에게 영어로, 더 공격적인 말투와 얼굴 표정으로 엄마에게 대어 든다. 엄마와 케네디가 모두 절제력(Self-control)을 잃어버렸다.
아이가 10학년 때 한 번 유급을 당하기도 하였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약에 손을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는 계속 불안하였다. 아이의 미래를 보니까 길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
케네디와 상담을 시작한 지가 5개월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지만, 케네디에게 성숙이 있었다. 처음 한 달 이상 동안, 상담 시간이 어색하여서 그런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케네디였다. 얼굴 표정도 굳어져 별로 웃음도 없었다. 필자와 가까와지면서 감정의 표현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얼굴에 많은 생기가 돌았고 웃음도 많아졌다. 물론, 고통의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인도에서 9살에 엄마와 함께, 간호사가 된 아빠를 찾아서 미국을 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케네디였지만, 불안이 참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교회를 가도 친구들이 자기의 비미국식 발음 때문에 웃고 놀리는 것 같아 교회를 다니기도 싫었다고 하였다. 그래도 가정 기도나 예배에는 참석을 하는 케네디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심각한 문제 행동들을 나타내 보였다. 미국에서 출생한 인도 여자 친구를 두고 부모와의 갈등도 생겼다. 엄마, 아빠가 자기 여자 친구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 화가 났다고 했다. 집에서 불안이 가중되니, 오히려 여자 친구와 있을 때가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성관계를 할 정도의 도덕성이 문란한 케네디는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잦은 지각과 결석으로 급기야 한 번은 유급을 당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아이를 도와 주어야 할지를 몰라 속을 태우며 ‘당근과 채찍’ 요법으로 아이를 대하기도 했다고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어져 좌절감과 분노가 더해지기만 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케네디와 그의 엄마는 예기치 않은(언짢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상황을 중지하거나 마음을 추스리기보다는 감정을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끌려들어 갔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로는 참 이겨내기 힘든 상황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자극하지 않고 자기도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행동(예: 언어, 말투, 표정 관리 등)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기분 나쁜 생각으로 계속 반응하기보다는, 어차피 일어난 상황을 매듭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사고나 행동의 선택이 다양한 경우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예: 감정 악화가 아닌 회복) 길을 모색하는 여유를 보이게 된다고 한다. 물론, 훈련(Role Play)이나 성공적 체험이 필요하다.
케네디의 엄마는, 보통의 아침처럼, “Good morning!”으로 시작하여 “You are running lat. You will be okay(지각하겠네. 괜찮니)?”식으로 케네디의 마음(죄책감)을 염려해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형사(?)의 역할을 말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즉, 아이의 내적 불안(판단 받는 것)을 높이는데 기인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엄마가 나를 또 잘못 된 놈으로…’ 등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여 엄마의 거친 사랑을 감사하기보다는 자기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으로 여겨져 방어 심리로 무의식적 저항감이 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케네디가 오랫동안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엄마를 부모로서 감사해했지만, 동시에 판단과 자극적인 언행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분노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케네디가 더 멀리 달아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그 날의 상담의 촛점은 엄마와 케네디의 모두가 자기의 잘못(감정 악화에 기인한 점)을 깨닫고 인정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리고 , 그로 인한 내담자들의 자아 성찰의 성숙과 발전이 상담의 목표이었다.
17세로 11학년인 케네디의 엄마가 간호사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8시 10분, 케네디가 아직도 학교로 출발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직도 떠나지 않았어?”라고 한 마디를 던진다. 잠시 후, 아이가 계속 꾸물정거리자 엄마는, 17살이 넘었는데도 자기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짜증스러운 말투로 몇 마디를 더 던진다. 이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It’s none of your business (엄마, 참관하지 마세요.)”로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공격적인 말투로 적대감을 나타낸다. 이에, 엄마는 아들의 불손함과 무책임한 행동에 더 화가 나서 자극적인 몇 마디를 더 하게 된다. 이에, 아들에 엄마에게 영어로, 더 공격적인 말투와 얼굴 표정으로 엄마에게 대어 든다. 엄마와 케네디가 모두 절제력(Self-control)을 잃어버렸다.
아이가 10학년 때 한 번 유급을 당하기도 하였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약에 손을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는 계속 불안하였다. 아이의 미래를 보니까 길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
케네디와 상담을 시작한 지가 5개월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지만, 케네디에게 성숙이 있었다. 처음 한 달 이상 동안, 상담 시간이 어색하여서 그런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던 케네디였다. 얼굴 표정도 굳어져 별로 웃음도 없었다. 필자와 가까와지면서 감정의 표현도 자연스러워졌다. 이제는 얼굴에 많은 생기가 돌았고 웃음도 많아졌다. 물론, 고통의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인도에서 9살에 엄마와 함께, 간호사가 된 아빠를 찾아서 미국을 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케네디였지만, 불안이 참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교회를 가도 친구들이 자기의 비미국식 발음 때문에 웃고 놀리는 것 같아 교회를 다니기도 싫었다고 하였다. 그래도 가정 기도나 예배에는 참석을 하는 케네디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심각한 문제 행동들을 나타내 보였다. 미국에서 출생한 인도 여자 친구를 두고 부모와의 갈등도 생겼다. 엄마, 아빠가 자기 여자 친구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 화가 났다고 했다. 집에서 불안이 가중되니, 오히려 여자 친구와 있을 때가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성관계를 할 정도의 도덕성이 문란한 케네디는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잦은 지각과 결석으로 급기야 한 번은 유급을 당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아이를 도와 주어야 할지를 몰라 속을 태우며 ‘당근과 채찍’ 요법으로 아이를 대하기도 했다고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어져 좌절감과 분노가 더해지기만 했다고 한다.
위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케네디와 그의 엄마는 예기치 않은(언짢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상황을 중지하거나 마음을 추스리기보다는 감정을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끌려들어 갔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로는 참 이겨내기 힘든 상황으로 간주되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자극하지 않고 자기도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는 행동(예: 언어, 말투, 표정 관리 등)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기분 나쁜 생각으로 계속 반응하기보다는, 어차피 일어난 상황을 매듭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사고나 행동의 선택이 다양한 경우는,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예: 감정 악화가 아닌 회복) 길을 모색하는 여유를 보이게 된다고 한다. 물론, 훈련(Role Play)이나 성공적 체험이 필요하다.
케네디의 엄마는, 보통의 아침처럼, “Good morning!”으로 시작하여 “You are running lat. You will be okay(지각하겠네. 괜찮니)?”식으로 케네디의 마음(죄책감)을 염려해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형사(?)의 역할을 말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즉, 아이의 내적 불안(판단 받는 것)을 높이는데 기인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엄마가 나를 또 잘못 된 놈으로…’ 등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여 엄마의 거친 사랑을 감사하기보다는 자기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으로 여겨져 방어 심리로 무의식적 저항감이 발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케네디가 오랫동안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는 마음의 중심에는, 엄마를 부모로서 감사해했지만, 동시에 판단과 자극적인 언행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분노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케네디가 더 멀리 달아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그 날의 상담의 촛점은 엄마와 케네디의 모두가 자기의 잘못(감정 악화에 기인한 점)을 깨닫고 인정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리고 , 그로 인한 내담자들의 자아 성찰의 성숙과 발전이 상담의 목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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