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하는 사랑: 학대(Abuse) 시리이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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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ㆍ2005-11-1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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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Lee, I .. can.. har--dly brea-the…(탁터 리,나 숨 쉬기가 곤란해요).” 목소리가 아주 힘이 없다. 필자는 그녀가 자살할 목적으로약을 먹은 것으로 판단했다. 여러 달 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터였다. 더 이상 전화상으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어,최양에게 그녀의 어머니에게 전화기를 넘기도록 부탁했다. 엄마로부터 증상들에 관한 추가 설명을 들었다. 목에서 무엇인가가 짓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숨을 쉴 수가 없고 말을 제대로 연결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녀가 정신 질환(불안증)의 신체적 斫?증세(Psychosomatic Symptoms)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최양의 어머니에게, 즉시 인근 정신과 응급실을 찾아 가도록 당부했다. 이틀 후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양이 응급실을 통해서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고 하였다. 직접 찾아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최양은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한인 1.5세 미혼 여성이다. 그러나, 여러 정신 질환 증세들로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해 오고 있었다.
작년에 필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마음 아파한 적이 있다.여러 시간 동안 그녀는 가슴 속에 잠겨 놓았던 눈물을 다 쏟아 내는 듯 했다. 필자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곤 했다.
그녀의 불안과 우울증은 어렸을 적부터의 가정 폭력(신체와 감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복 오빠의 신체 폭력이 주원인이었고 부모(특히, 아버지)에 대한 불신이 그녀의 불안의 시작이었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무기력함도 우울과 불안 증세의 심화에 더 기인을 한 것 같았다. 최양은 가정을 불안(Anxiety)와 공포(Fear)를 주는 곳으로 느껴졌다.
10대의 사춘기 때 가정 폭력 등으로 인한 위협감과 불안으로 인하여 한 두 차례 가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는 집으로 들어 오게 되었는데, 작은 이복 오빠가 집으로 들어 와 자기를 들어 벽에다 팽개쳤다고 했다. 마루에 떨어져 거의 의식을 잃게 되었고,자기 주변의 온 방바닥이 피로 물들게 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심한 신체 고통으로 인해 오직 죽음으로 치닫는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아무도 앰블런스를 불러 주지 않았고, 옆에서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피를 닦아 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 날의 사건이 그녀의 마음 상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였다.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입가와 얼굴의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 했다.특히 폭력으로 인해 오빠가 경찰에 체포될까 봐 911에 연락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분노도 대단했다. "It was not fair...(공평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흐느끼면서 고통스러워 하며 되풀이하는 그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으나, 학업에 열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건강이 허약해져 있었다. 집중력 저하와 악몽(nightmare)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엄마와 기도원을다니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마음의 평강과 이복 오빠와 아빠에 대한 용서도 간구하면서…
자기 삶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던 그 날은 최양에게 참 오랜 만에 기분이 좋았던 날 같았다. 하늘을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을 말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미래의 계획도 나누었다. 혼자 독립해서 생활하고 직장을 찾아 일을 다시 시작하며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누었다. 아픈 고통을 뒤로 하고...
그런데, 문제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이었다. 아빠가 너무 완강하게 한국인이 아닌 남자 친구와의 관계 단절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한국 남성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남성 중심(Male Dominance)의 가정에서의 엄마와 자신의 무기력(Powerless)함과 남성들의 힘(Power)의 논리에 혐오감과 분노가 차 있었던 그녀에게, 비한국인인 자기 남자 친구가 너무 친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의 상황이 악화되게 된 결정적인 사건도 결국 이 남자 친구가 자기를 떠나게 됨으로 인함이었다. 아빠는, 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그 남자 친구에게 딸과의 관계를 종용했던 것이다. 결국 그 남자 친구는 최양을 떠나게 되었고 최양은 또 한 번 좌절과 분노로 감정이 악화되어 결국 몸 전신에 정신 질환의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것은 교회의 중직자(항존직)인 그녀의 아버지의 눈물 어린 진솔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는 점과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직 통제(control)와 지배(dominance)로 자기 부모가 자신을 다루었던 방법을 되풀이 해 왔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딸과의 관계에서의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는 듯 했으나, 딸이 타민족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자기 주장을 굽힐 수 없었던 것이다.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수업 시간에, 뉴욕의 어떤 한국인 교회의 백인 미국인 전도사로부터, 사랑하던 한국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간증으로 듣게 된 적이 있다. 그의 여자 친구는 성인(Adult)인 데도 불구하고, 장로와 권사인 부모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면서도, 스스로 독립하여 선택을 하지 못하고 오랫 동안 망설여서 부득이 자기가 물러섰다는 이야기를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위로하는 그였다.
“언어, 감정및 신체 폭력으로 자녀를 학대(Abuse)하는 모순적인 기독교인의 부모와 그렇지 않는 비기독교인 부모 중,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은 누구를 ...? " 한 미국인 신학교 교수가,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을 다루는 강의 중, 던졌던 질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한 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심각성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다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자기의 상처를 어루만지듯이...
최양은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한인 1.5세 미혼 여성이다. 그러나, 여러 정신 질환 증세들로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해 오고 있었다.
작년에 필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마음 아파한 적이 있다.여러 시간 동안 그녀는 가슴 속에 잠겨 놓았던 눈물을 다 쏟아 내는 듯 했다. 필자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곤 했다.
그녀의 불안과 우울증은 어렸을 적부터의 가정 폭력(신체와 감정)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복 오빠의 신체 폭력이 주원인이었고 부모(특히, 아버지)에 대한 불신이 그녀의 불안의 시작이었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무기력함도 우울과 불안 증세의 심화에 더 기인을 한 것 같았다. 최양은 가정을 불안(Anxiety)와 공포(Fear)를 주는 곳으로 느껴졌다.
10대의 사춘기 때 가정 폭력 등으로 인한 위협감과 불안으로 인하여 한 두 차례 가출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는 집으로 들어 오게 되었는데, 작은 이복 오빠가 집으로 들어 와 자기를 들어 벽에다 팽개쳤다고 했다. 마루에 떨어져 거의 의식을 잃게 되었고,자기 주변의 온 방바닥이 피로 물들게 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심한 신체 고통으로 인해 오직 죽음으로 치닫는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아무도 앰블런스를 불러 주지 않았고, 옆에서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피를 닦아 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 날의 사건이 그녀의 마음 상처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듯 하였다.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입가와 얼굴의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키는 듯 했다.특히 폭력으로 인해 오빠가 경찰에 체포될까 봐 911에 연락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분노도 대단했다. "It was not fair...(공평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흐느끼면서 고통스러워 하며 되풀이하는 그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으나, 학업에 열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 건강이 허약해져 있었다. 집중력 저하와 악몽(nightmare)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엄마와 기도원을다니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마음의 평강과 이복 오빠와 아빠에 대한 용서도 간구하면서…
자기 삶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던 그 날은 최양에게 참 오랜 만에 기분이 좋았던 날 같았다. 하늘을 날아 갈 것 같은 기분을 말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미래의 계획도 나누었다. 혼자 독립해서 생활하고 직장을 찾아 일을 다시 시작하며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누었다. 아픈 고통을 뒤로 하고...
그런데, 문제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이었다. 아빠가 너무 완강하게 한국인이 아닌 남자 친구와의 관계 단절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한국 남성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남성 중심(Male Dominance)의 가정에서의 엄마와 자신의 무기력(Powerless)함과 남성들의 힘(Power)의 논리에 혐오감과 분노가 차 있었던 그녀에게, 비한국인인 자기 남자 친구가 너무 친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의 상황이 악화되게 된 결정적인 사건도 결국 이 남자 친구가 자기를 떠나게 됨으로 인함이었다. 아빠는, 딸에 대한 지나친 사랑(?)으로, 그 남자 친구에게 딸과의 관계를 종용했던 것이다. 결국 그 남자 친구는 최양을 떠나게 되었고 최양은 또 한 번 좌절과 분노로 감정이 악화되어 결국 몸 전신에 정신 질환의 여러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 것은 교회의 중직자(항존직)인 그녀의 아버지의 눈물 어린 진솔한 고백이다.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는 점과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직 통제(control)와 지배(dominance)로 자기 부모가 자신을 다루었던 방법을 되풀이 해 왔음을 강하게 암시했다. 딸과의 관계에서의 자기의 약점을 인정하는 듯 했으나, 딸이 타민족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자기 주장을 굽힐 수 없었던 것이다.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수업 시간에, 뉴욕의 어떤 한국인 교회의 백인 미국인 전도사로부터, 사랑하던 한국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 이야기를 간증으로 듣게 된 적이 있다. 그의 여자 친구는 성인(Adult)인 데도 불구하고, 장로와 권사인 부모의 강압적인 행위에 분노하면서도, 스스로 독립하여 선택을 하지 못하고 오랫 동안 망설여서 부득이 자기가 물러섰다는 이야기를 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위로하는 그였다.
“언어, 감정및 신체 폭력으로 자녀를 학대(Abuse)하는 모순적인 기독교인의 부모와 그렇지 않는 비기독교인 부모 중,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 자녀들은 누구를 ...? " 한 미국인 신학교 교수가,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을 다루는 강의 중, 던졌던 질문이다. 모든 학생들이 한 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심각성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다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자기의 상처를 어루만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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