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하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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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ㆍ2004-03-3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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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 맘 때의 한 금요일 오후의 일이다. 평상시와 같이 퇴근하여 아이의 방에 잠시 들렀다. "오늘 학교 재미있었어?" "수고했어!" 등으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아이의 방을 나서는 중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아빠!"라고 불렀다. "응, 왜?"라고 대답하며 다시 얼굴을 아이에게로 돌렸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아이는, "약속 하나 하셔요?"라고 말했다. "무슨 약속?"이라고 물으며 나는 반응했다. 아이는, 약간 보채듯이, 꼭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속으로, '무엇을 하나 사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막무가내이었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없이, "그래."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이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나이가 드셔서 하나님께서 아빠를 데리고 가실 때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셔요?"라고 말을 했다. 나는 별안간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서 있있었다. 잠시 후에, "그래."라고 대답을 하고 아이의 방문을 나섰다. 몇 걸음의 사이의 안 방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게 느껴졌다. 그 몇 걸음의 완보 중에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 저런 부탁을 하지?" "내가 너무 피곤해 보이고 건강이 안좋아 보였나?" "얼마나 좋아하면..." 등의 생각들이 지배하며 나를 침대 위로 인도했다. 한 20 분간 깊은 생각을 하다가 집사람이 퇴근하여 도착함을 알고는 맞으러 나왔다.
그 때, 아이는 11살로 6학년이었다. 그 몇 달 전, 5학년의 가을 어느 목요일 저녁, 집에 있던 예쁜 새 제임스가 죽었을 때, 아주 슬퍼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 나의 이동 전화기에, "아빠 제임스가 죽었어요.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그 날 저녁 늦게 슬퍼하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가엾은 마음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와 식사 시간에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니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꼭 껴안았다. 제임스가 나이가 많아서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가 죽어 없어지게 된 것이 무척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제임스를 통해서 처음으로 살아 있음과 죽음의 차이를 깨닫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몸이 아프신 할머니께도 마음이 꽤나 쓰인 모양이었다.
아빠가 바쁜 일정으로 피곤해 함을 감지한 것 같았다. '제임스의 죽음'과 '할머니의 편찮으심'의 감정이 '아빠의 피곤해보임'에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집사람과 함께 아빠의 건강을 위해 나름대로 기도를 해 왔던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약속 요구는, '하나님께서 아빠를 나이가 드셔서 데려 가면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 오래 사는 축복을 받으셔요. 그리고 주신 건강도 나름대로 잘 관리하셔요.'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감사했다. 아이를 통해서 바쁜 생활에 찌든 나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가족)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도 받았다. 서로를 더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하고 돌보고... 그리하여 아이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남겨 주는 부모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도 되었다.
특히, 건강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지혜와 실행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마음이 기도에 포함되었다. 한 동안 중단했던 조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한 과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바쁠수록 마음의 분주함을 다스리는 시간의 지혜도 강화시키셨다. 말씀 읽고 찬양하며 기도하고 여호와를 묵상하면서...
갑자기 아이가, "아빠!"라고 불렀다. "응, 왜?"라고 대답하며 다시 얼굴을 아이에게로 돌렸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아이는, "약속 하나 하셔요?"라고 말했다. "무슨 약속?"이라고 물으며 나는 반응했다. 아이는, 약간 보채듯이, 꼭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속으로, '무엇을 하나 사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막무가내이었다. 그래서, 결국 할 수 없이, "그래."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이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나이가 드셔서 하나님께서 아빠를 데리고 가실 때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셔요?"라고 말을 했다. 나는 별안간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서 있있었다. 잠시 후에, "그래."라고 대답을 하고 아이의 방문을 나섰다. 몇 걸음의 사이의 안 방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게 느껴졌다. 그 몇 걸음의 완보 중에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 저런 부탁을 하지?" "내가 너무 피곤해 보이고 건강이 안좋아 보였나?" "얼마나 좋아하면..." 등의 생각들이 지배하며 나를 침대 위로 인도했다. 한 20 분간 깊은 생각을 하다가 집사람이 퇴근하여 도착함을 알고는 맞으러 나왔다.
그 때, 아이는 11살로 6학년이었다. 그 몇 달 전, 5학년의 가을 어느 목요일 저녁, 집에 있던 예쁜 새 제임스가 죽었을 때, 아주 슬퍼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 나의 이동 전화기에, "아빠 제임스가 죽었어요.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파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두었다. 그 날 저녁 늦게 슬퍼하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가엾은 마음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와 식사 시간에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니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꼭 껴안았다. 제임스가 나이가 많아서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가 죽어 없어지게 된 것이 무척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제임스를 통해서 처음으로 살아 있음과 죽음의 차이를 깨닫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몸이 아프신 할머니께도 마음이 꽤나 쓰인 모양이었다.
아빠가 바쁜 일정으로 피곤해 함을 감지한 것 같았다. '제임스의 죽음'과 '할머니의 편찮으심'의 감정이 '아빠의 피곤해보임'에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집사람과 함께 아빠의 건강을 위해 나름대로 기도를 해 왔던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약속 요구는, '하나님께서 아빠를 나이가 드셔서 데려 가면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 오래 사는 축복을 받으셔요. 그리고 주신 건강도 나름대로 잘 관리하셔요.'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
감사했다. 아이를 통해서 바쁜 생활에 찌든 나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가족)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도 받았다. 서로를 더 위하여 기도하며 사랑하고 돌보고... 그리하여 아이에게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남겨 주는 부모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도 되었다.
특히, 건강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지혜와 실행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마음이 기도에 포함되었다. 한 동안 중단했던 조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한 과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바쁠수록 마음의 분주함을 다스리는 시간의 지혜도 강화시키셨다. 말씀 읽고 찬양하며 기도하고 여호와를 묵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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