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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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ㆍ2003-05-2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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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주 뉴욕 중앙 일보 2003년 1월 1일자---전문가 칼럼
8·15 해방 때에 독립 만세를 부르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한일합방 전, 동학에 전혀 가담한 적이 없는 그의 아버지를 고을 관리가 혁명 가담죄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넣었고 결국 농지 전답을 다 빼앗아 버렸다.
온갖 공갈과 협박, 그리고 문초 때문에 고통 당한 아버지를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아주 힘들게 마련한 논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그래서 한일 합방도 그냥 덤덤하기만 했다. 그런데 해방이라고 하니, 동족으로부터 수탈 당했던 어릴 때의 생각이 그의 머리를 괴롭혔다. 그래서, 해방이니 독립이니 그다지 감동이 없었다. ‘나라’라는 것은 그에게는 단지 고통만을 주는 불한당으로 여겨졌기에... 채만식의 근대 소설 ‘논 이야기’의 한생원 이야기다.
우리 민족은 참 상처가 많다. 쉴 새 없는 외세의 침략과 국내적으로는 왕권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리저리 상처투성이다. 일제의 식민지하에 빈곤과 핍박으로 상처는 한없이 깊었다. 해방이 된 듯 하더니 이념 전쟁의 6.25 동란으로 또 상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군사 독재 정권 하에 왜곡과 단절, 분쟁, 억압 등으로 좌절의 연속이었다. 인간답게 만족하며 살아본 적이 그다지 없는 우리 민족이다. 제대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 본 지가 없는 우리 민족이다.
1992년 급기야 대망의 문민 정부가 들어섰다. 모두들 흥분하며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이 곳 미국 땅에 이민온 우리도 흥분했다. 무언가 눌려 있던 것이 시원하게 분출하는 듯 하였다. 온갖 규제들이 풀리면서 모두들 제 세상 만난 듯 흥분하며 즐기는 것 같았다. 굉장히 잘 사는 나라의 사람인 양, 부족한 것이 없는 듯 하였다. 해외 여행으로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려는 욕구들도 많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머리 속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인지 방임인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곧 여기저기서 부패 냄새가 나고 경제가 아래로 곤두박질하더니 밝은 마음들이 어두워져버렸다. 모두들 움츠리기 시작하더니 모든 ‘흥청스러움’이 잠수해버렸다.
이번에는 국민의 정부다. 경제의 구조 조정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손대려고 애썼다. 많은 실업자들도 생겼다.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곳곳에서 부패가 폭로되기 시작했다. 아픈 상처가 아무는가 싶더니 더 깊어지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꺾이면 한 겨울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났던 우리 민족이다.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겠지! 그런데, 곧 일어났다.
2002년! 이번에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우리 민족의 오뚜기 저력을 이들이 보여줬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함성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들 젊은이들의 힘은 한여름의 월드컵을 실험 무대로 하여 결국은 선거판을 뒤집어 놓았다. 제왕적이며 절대적 권위 구조에 의식적으로 도전했다. 식상한 것에 참지 못하고 지속적인 변화의 도전을 추구하는 이들이었다. 강한 자존심도 있는 이들이다. ‘오노’의 지저분한 금메달 사건을 쉽게 잊지 않았다. 우리 어린 여동생들의 억울한 죽음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결코 강대국의 일방적인 자존심 건드리는 모욕은 앞으로 참지 않을 기세이다.
이들 젊은이들이 누구인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부모님을 거쳐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시켰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아닌가!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였던가 19세기말부터 우리 조국의 땅에는 배움의 열정이 움텄다. 우여곡절의 우환과 좌절로 점철된 한 세기의 분단 역사이지만, 일찍부터 계몽 교육으로, 신식 교육으로, 미국 교육으로 무장되어 온 우리의 결실이 이들이 아닌가 민주화 투쟁으로 우리가 인권을 찾았고 마침내 진정한 주권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우리의 젊은이들!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으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대로 미래의 조국을 위한 참 지도자를 찾겠다는 이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보통 사람 출신의 대통령’이 우리 조국의 중심에 있게 한 이들이다. 고등학교만을 졸업하면 무슨 상관인가! 5공 청문회 스타 국회의원이자 반민주 시대에 인권 변호사, 온갖 고생의 열매를 맺은 우리의 새대통령을 선택한 이들이다. 우리 기성세대의 힘없이 무너짐이 허탈하지만 그래도 내심 대견스러운 우리의 젊은이들의 도전에 흐뭇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장기와 씨름에서 진 느낌이다.
기성세대여! 우리의 새 대통령이 우리의 젊은이들과 함께 힘을 함쳐 조국의 미래를 연다. 우리는 머지 않아 물러날 것이다.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자. 힘들더라도 우리의 상처, 조국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앞장서자. 서로 손가락질 그만하고 뭉치는 지혜를 발휘하자. 더 이상 우리 젊은이들의 눈에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자.
대∼한민국! 오, 조국이여, 일어나라! 부디,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한 우리 민족 신바람 나게 살게 해다오! 그리하여, 부디, 그 정기로 통일까지 이룩되는 축복을 허락해다오!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8·15 해방 때에 독립 만세를 부르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한일합방 전, 동학에 전혀 가담한 적이 없는 그의 아버지를 고을 관리가 혁명 가담죄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넣었고 결국 농지 전답을 다 빼앗아 버렸다.
온갖 공갈과 협박, 그리고 문초 때문에 고통 당한 아버지를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아주 힘들게 마련한 논을 빼앗아 갔던 것이다. 그래서 한일 합방도 그냥 덤덤하기만 했다. 그런데 해방이라고 하니, 동족으로부터 수탈 당했던 어릴 때의 생각이 그의 머리를 괴롭혔다. 그래서, 해방이니 독립이니 그다지 감동이 없었다. ‘나라’라는 것은 그에게는 단지 고통만을 주는 불한당으로 여겨졌기에... 채만식의 근대 소설 ‘논 이야기’의 한생원 이야기다.
우리 민족은 참 상처가 많다. 쉴 새 없는 외세의 침략과 국내적으로는 왕권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리저리 상처투성이다. 일제의 식민지하에 빈곤과 핍박으로 상처는 한없이 깊었다. 해방이 된 듯 하더니 이념 전쟁의 6.25 동란으로 또 상처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군사 독재 정권 하에 왜곡과 단절, 분쟁, 억압 등으로 좌절의 연속이었다. 인간답게 만족하며 살아본 적이 그다지 없는 우리 민족이다. 제대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 본 지가 없는 우리 민족이다.
1992년 급기야 대망의 문민 정부가 들어섰다. 모두들 흥분하며 마냥 좋아하기만 했다. 이 곳 미국 땅에 이민온 우리도 흥분했다. 무언가 눌려 있던 것이 시원하게 분출하는 듯 하였다. 온갖 규제들이 풀리면서 모두들 제 세상 만난 듯 흥분하며 즐기는 것 같았다. 굉장히 잘 사는 나라의 사람인 양, 부족한 것이 없는 듯 하였다. 해외 여행으로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보려는 욕구들도 많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머리 속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유인지 방임인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곧 여기저기서 부패 냄새가 나고 경제가 아래로 곤두박질하더니 밝은 마음들이 어두워져버렸다. 모두들 움츠리기 시작하더니 모든 ‘흥청스러움’이 잠수해버렸다.
이번에는 국민의 정부다. 경제의 구조 조정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손대려고 애썼다. 많은 실업자들도 생겼다. 빈부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 곳곳에서 부패가 폭로되기 시작했다. 아픈 상처가 아무는가 싶더니 더 깊어지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꺾이면 한 겨울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났던 우리 민족이다.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겠지! 그런데, 곧 일어났다.
2002년! 이번에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우리 민족의 오뚜기 저력을 이들이 보여줬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함성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들 젊은이들의 힘은 한여름의 월드컵을 실험 무대로 하여 결국은 선거판을 뒤집어 놓았다. 제왕적이며 절대적 권위 구조에 의식적으로 도전했다. 식상한 것에 참지 못하고 지속적인 변화의 도전을 추구하는 이들이었다. 강한 자존심도 있는 이들이다. ‘오노’의 지저분한 금메달 사건을 쉽게 잊지 않았다. 우리 어린 여동생들의 억울한 죽음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결코 강대국의 일방적인 자존심 건드리는 모욕은 앞으로 참지 않을 기세이다.
이들 젊은이들이 누구인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부모님을 거쳐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시켰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아닌가! 교육이 백년대계라고 하였던가 19세기말부터 우리 조국의 땅에는 배움의 열정이 움텄다. 우여곡절의 우환과 좌절로 점철된 한 세기의 분단 역사이지만, 일찍부터 계몽 교육으로, 신식 교육으로, 미국 교육으로 무장되어 온 우리의 결실이 이들이 아닌가 민주화 투쟁으로 우리가 인권을 찾았고 마침내 진정한 주권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우리의 젊은이들! 조국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으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대로 미래의 조국을 위한 참 지도자를 찾겠다는 이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보통 사람 출신의 대통령’이 우리 조국의 중심에 있게 한 이들이다. 고등학교만을 졸업하면 무슨 상관인가! 5공 청문회 스타 국회의원이자 반민주 시대에 인권 변호사, 온갖 고생의 열매를 맺은 우리의 새대통령을 선택한 이들이다. 우리 기성세대의 힘없이 무너짐이 허탈하지만 그래도 내심 대견스러운 우리의 젊은이들의 도전에 흐뭇하기만 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장기와 씨름에서 진 느낌이다.
기성세대여! 우리의 새 대통령이 우리의 젊은이들과 함께 힘을 함쳐 조국의 미래를 연다. 우리는 머지 않아 물러날 것이다. 이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자. 힘들더라도 우리의 상처, 조국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앞장서자. 서로 손가락질 그만하고 뭉치는 지혜를 발휘하자. 더 이상 우리 젊은이들의 눈에 천덕꾸러기가 되지 말자.
대∼한민국! 오, 조국이여, 일어나라! 부디, 인간답게 대접받지 못한 우리 민족 신바람 나게 살게 해다오! 그리하여, 부디, 그 정기로 통일까지 이룩되는 축복을 허락해다오!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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