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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라 하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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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7-31

본문

지금 한국에는 수해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름에 비가 갑자기 많이 내리면 개울을 건너기가 어려워집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이 급하게 흘러가는데 물 깊이는 그리 깊지 않지만 물살이 세어 건너지를 못합니다. 물의 깊이가 깊지 않다고 겁 없이 들어갔다가는 물살에 떠내려가게 됩니다. 그냥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넘어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합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어떤 선교사가 급물살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물살이 어찌나 거센지 쉽게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물이 깊지는 않지만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건너가기는 해야겠는데 건너지를 못하고 있을 때 어떤 원주민 한 사람이 오더니 선교사에게 개울을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가 가르쳐 준 방법은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돌을 등에 지니까 사람이 무거워 져서 센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건너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디딜방아를 찧을 때 몸이 가벼운 사람이 혼자 디딜방아를 찧게 되면 방아가 무거워서 방아가 올라오지를 않습니다. 그런 때 등에 아이를 업으면 방아를 찧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없을 경우에는 돌을 이고 방아를 찧는 경우도 있습니다.

급물살을 건널 때 등에 돌을 지고 건너가는 것이나 디딜방아를 찧을 때 아이를 업고 방아를 찧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편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서 아주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도 많이 듣고 모함과 욕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사임을 하고 교회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그 와중에 아들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어려움이 겹쳤으니까 더욱 실망하고 좌절하였을 것 같지만 아들이 아프기 전에는 태산같이 크게 보이든 교회 문제가 아주 조그마하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잘 견디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시고쿠 라고 하는 지방의 벽촌에 스즈끼라는 농사꾼이 있습니다. 그가 “생명농업”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농사꾼이 아니라도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그가 그의 책에서 자신이 농사꾼이 된 내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20세 때에는 기술직 공무원이었다가 22세에 악성 기관지염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자”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시골 고향으로 가는데, 집으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갔습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가 쓰러지는 곳에서 죽자는 생각으로 간 것입니다.

밤새 지친 몸을 끌고 걸어서 길을 가는데 새벽에 꿩 한 마리가 갑자기 푸드덕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는 꿩이 기세 좋게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하나님께서 저 꿩 한 마리에게도 저런 힘을 주었는데 내가 이렇게 죽으려고 해서 되겠나”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힘을 내어 산에다 움막을 하나 짓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산에서 머루 다래를 따먹고 산나물을 캐먹으면서 사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성 기관지염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 농장을 세워서 “생명 농업”을 시작했습니다. 씨앗만 뿌려놓고 전혀 돌보지 않는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 하나가 보통 무보다 크게 자랐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무 하나가 어떻게 이렇게 큽니까? ” 그분의 대답은 “식물이 자기들끼리 경쟁하여 살아남으려고 하다가 그렇게 건강하게 크게 되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니니아 삽비라 사건이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아니니아 삽비라 같은 사람이 있을 텐데 성령을 속인 죄로 즉사하여 죽었다는 이이기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심판하신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왜 동일한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이 있어도 그냥 두시는 것일까요? 초대교회의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은 교회의 기초를 놓는 단계였기에 거짓과 속임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만약에 교회 안에서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완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교회는 순결하고 완전하기를 힘써야 하지만 이 땅에 완전한 교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불완전하다는 것이 완전하게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가 불완전해도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교회를 통하여 구원할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에 우리는 감사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는 가라지 비유에서 더욱 분명하게 계시되고 있습니다. 가라지는 사단이 뿌린 씨이고 제거되어야 할 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도 요긴하게 쓰십니다. 가라지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볼 때 쓰임 받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하거나 기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잠 16:4절)

주님께서는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니니아 삽비라 사건에서는 분명히 가라지를 뽑아버렸습니다. 아니니아 삽비라 사건을 보면 가라지를 뽑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마 13장의 가라지 비유에서는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심은 불완전한 교회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을 다칠까를 염려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뽑으신다면 알곡을 다칠 염려가 없겠지만 교회는 불완전하기에 가라지를 함부로 뽑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 가라지를 그냥 두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할 것 같아도 주님보시기에는 가라지를 뽑아야 한다고 설쳐대는 교회가 더욱 교회답지 못하다고 나무랄 듯싶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마태복음 13:28-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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