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해야할 도덕적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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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5-08-1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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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스 값이 갤런 당 $3.00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자원의 대부분을 오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오일 값이 오르면 세계 경제가 위축되고 오일 값이 내리면 세계 경제가 살아납니다. 중국 같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오일의 소비가 증대되는 것도 오일 값 인상의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의 산업 발전에 따른 오일 소비량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매장된 오일은 한정되어 있고 소비는 늘어나니까 오일 값 상승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일 생산국들이 산업 발전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지고 있고, 그런 나라들의 경제 역시 오일을 수입해서 사용하는 나라보다 앞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나라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라 교육에 힘을 쏟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높은 교육열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여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경제가 성장할수록 정신은 병들고 사람들의 불만지수는 높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만지수가 상승하는 것은 먹을 것이 없거나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불만을 갖게 됩니다.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구체적인 개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제도나 구조, 법률 등 비인격적인 힘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개인은 매우 선한 동기에서 행동을 했는데도 비인격적인 제도나 구조, 법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어떤 제도나 법률도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만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욕은 너무나 강하고 이익 추구를 위한 지능은 너무 교묘하여 좋은 제도나 법률도 배타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이제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법률 등이 가져다주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받아야 할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있는 자들은 제도나 법률을 통하여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없는 자들은 제도나 법률 때문에 정당한 이익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불공평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불공평을 최소화 할 의무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모든 고통과 모든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이상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자와 약자의 도덕이 서로 달라서는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도덕일 뿐입니다. 공평한 도덕은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자원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합리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강자가 합리적이 되어서 계속 약한 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많은 이익을 취하는 것은 함께 망하는 사회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추리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면 얻은 것까지 잃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약한 자에 대한 동정심도 윤리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나 쾌락이 다른 사람의 희생이나 고통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도덕적 자원을 무시하고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자신의 노력의 대가라고 믿거나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으로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도적적 자원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종살이 사백년은 도덕적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약한 자를 돌아보고 종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애굽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천연 자원의 풍족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적 자원에 달린 것도 아니며, 도덕적 자원을 개발하여 더 합리적이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섬기는 예배와 도덕적 자원을 개발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로마서 15:1절 -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나라들은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라 교육에 힘을 쏟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높은 교육열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여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경제가 성장할수록 정신은 병들고 사람들의 불만지수는 높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불만지수가 상승하는 것은 먹을 것이 없거나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불만을 갖게 됩니다. 사회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은 구체적인 개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제도나 구조, 법률 등 비인격적인 힘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개인은 매우 선한 동기에서 행동을 했는데도 비인격적인 제도나 구조, 법률 등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어떤 제도나 법률도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만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욕은 너무나 강하고 이익 추구를 위한 지능은 너무 교묘하여 좋은 제도나 법률도 배타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이제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나 법률 등이 가져다주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받아야 할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있는 자들은 제도나 법률을 통하여 더 많은 이익을 취하고, 없는 자들은 제도나 법률 때문에 정당한 이익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불공평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불공평을 최소화 할 의무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모든 고통과 모든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이상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자와 약자의 도덕이 서로 달라서는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도덕일 뿐입니다. 공평한 도덕은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 자원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합리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강자가 합리적이 되어서 계속 약한 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많은 이익을 취하는 것은 함께 망하는 사회로 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추리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면 얻은 것까지 잃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약한 자에 대한 동정심도 윤리적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나 쾌락이 다른 사람의 희생이나 고통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도덕적 자원을 무시하고 자신이 누리는 특권이 자신의 노력의 대가라고 믿거나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으로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를 도적적 자원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종살이 사백년은 도덕적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약한 자를 돌아보고 종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애굽에서의 생활을 돌아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천연 자원의 풍족함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적 자원에 달린 것도 아니며, 도덕적 자원을 개발하여 더 합리적이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섬기는 예배와 도덕적 자원을 개발하여 다른 사람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로마서 15: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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