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신자, 고양이 같은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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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05-07-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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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시골에서는 거의 모든 집에서 소, 돼지, 염소, 닭, 토끼, 고양이 등을 길렀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러 짐승들 중에 개를 가장 가까이 합니다. 사람이 여행을 할 때 함께 따라 갈 수 있는 짐승은 개밖에 없습니다.
옛날 시골에서 사람에게 유용한 기여도로 본다면 개보다 소겠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친밀도로 본다면 단연 개만한 짐승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도 귀여워 하긴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이 귀여워 해 준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다 같이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먹이를 얻어먹습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고양이는 공간과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순종하고 또한 반기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공간과 관계를 맺는 고양이는 사람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좋아합니다. 개는 공간이 자기에게 맞지 않아도 사람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의 품이 따뜻하기 때문에 파고들고 기댑니다. 사람 품보다 아랫목이 더 따뜻하면 미련 없이 사람의 품을 떠나는 것이 고양이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따뜻한 부엌 아궁이 앞에서 곤히 잠을 자다가도 주인이 부르면 모든 좋은 공간을 포기하고 주인에게 달려옵니다. 개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하는 본성을 지녔고 고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더 중시하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집나간 개가 돌아온다면 개는 주인을 찾아오는 것이고, 집나간 고양이가 돌아온다면 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양이에게는 아무리 가까이 하고 은혜를 베풀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에 보답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이 별로 잘해 주지 않아도 충성을 변치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람의 보호를 받고 사람을 따른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사를 할 때 고양이는 상자에 넣어서 갑니다. 주인이 이사를 해도 고양이는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을 따라갑니다. 고양이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개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본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동물에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신자도 공간과 관계를 맺는 고양이 같은 신자가 있고 개와 같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신자가 있습니다. 고양이 같은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를 별로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예배당, 편안한 분위기, 격조 높은 부류의 사람들, 잘 조직된 제도들을 찾아 교회를 선택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런 사람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고 예배당에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예배당은 믿는 신자들이 모이는 건물입니다. 예배당에 나가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거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 맞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개와 같은 신자는 아름다운 공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 분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신자들을 만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도 예배당에 왔다가는 사람은 고양이 같은 교인이요 교회에 왔다가는 사람은 개와 같은 신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공간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본성을 지녔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본성을 지녔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본성이 다르다는 것은 소속이 다름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 요한복음 17:14절 -
옛날 시골에서 사람에게 유용한 기여도로 본다면 개보다 소겠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친밀도로 본다면 단연 개만한 짐승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도 귀여워 하긴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이 귀여워 해 준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지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다 같이 주인의 보호를 받으며 먹이를 얻어먹습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고양이는 공간과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순종하고 또한 반기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공간과 관계를 맺는 고양이는 사람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좋아합니다. 개는 공간이 자기에게 맞지 않아도 사람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람의 품이 따뜻하기 때문에 파고들고 기댑니다. 사람 품보다 아랫목이 더 따뜻하면 미련 없이 사람의 품을 떠나는 것이 고양이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개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따뜻한 부엌 아궁이 앞에서 곤히 잠을 자다가도 주인이 부르면 모든 좋은 공간을 포기하고 주인에게 달려옵니다. 개는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하는 본성을 지녔고 고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더 중시하는 본성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집나간 개가 돌아온다면 개는 주인을 찾아오는 것이고, 집나간 고양이가 돌아온다면 집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양이에게는 아무리 가까이 하고 은혜를 베풀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에 보답할 줄도 모릅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이 별로 잘해 주지 않아도 충성을 변치 않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사람의 보호를 받고 사람을 따른다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사를 할 때 고양이는 상자에 넣어서 갑니다. 주인이 이사를 해도 고양이는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을 따라갑니다. 고양이는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개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본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동물에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신자도 공간과 관계를 맺는 고양이 같은 신자가 있고 개와 같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신자가 있습니다. 고양이 같은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를 별로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예배당, 편안한 분위기, 격조 높은 부류의 사람들, 잘 조직된 제도들을 찾아 교회를 선택합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런 사람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고 예배당에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예배당은 믿는 신자들이 모이는 건물입니다. 예배당에 나가는 사람은 사람을 만나거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에 맞는 공간을 찾아가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개와 같은 신자는 아름다운 공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신자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 분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신자들을 만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도 예배당에 왔다가는 사람은 고양이 같은 교인이요 교회에 왔다가는 사람은 개와 같은 신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공간과 관계를 중요시하는 본성을 지녔는지 아니면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본성을 지녔는지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본성이 다르다는 것은 소속이 다름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 요한복음 17:14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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