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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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ㆍ2010-10-1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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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심었을까? 방조제를 가로지르는 길가에 가녀린 소녀의 자태처럼 청초하기 그지없는 코스모스가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다소곳이 줄지어 선 채 살랑살랑 춤을 추며 피곤함에 지친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방축으로 된 도로의 양면이 모두 시퍼렇게 출렁이는 바다이다.
새만금, 그 어마어마하고 웅장한 모습에 놀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벌어졌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쭉 곧은 교각 위 단정한 도로를 따라 얼마쯤 들어가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 입구에 서있는 거대한 천사의 석고상이 아직은 때 묻지않아 새하얗게 눈부시다. 우리나라 지도를 바꾸고 있다고 하는, 이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디찌 방조제(32.5km)보다 더 긴 33km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새만금 그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전망대를 벗어나 한참을 더 달려가니, 눈앞에 보이는 둑길 제방 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곳 들판에는 소란한 세상 소리, 자동차 소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벼알은 가을 땡볕 아래서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채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니, 넓디넓은 갯벌, 이미 메말라버린 거전갯벌에는 바다식물 나무 제가 듬성듬성 흩어진 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고 거기에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 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꿈꾼다고 하는 곳,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 방조제는 단순한 방조제가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새만금이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생각도 지역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지역 한계를 벗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새만금의 미래도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역설했다고 한다.
또 "새만금은 4대강 사업과 더불어 대한민국 저탄소 녹색 성장을 위한 우리의 또 다른 노력, 4대강 사업이 죽어가는 강을 살리는 것이라면 새만금 사업은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적이고 계획적인 녹색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새만금은 나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울 수 있도록 웅장한 간척사업장이요, 대통령의 꿈, 한 사업가의 원대한 비전이 현실화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면, 그곳 어민들과 생태보존학자들은 새만금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울상을 짓는다고도 한다. 거전갯벌은 수천 수만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갯벌은 거기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갯벌에서 태어나고 갯벌에서 자라고 갯벌과 함께 늙어가다가 갯벌의 품속에 안기는 사람들, 갯벌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갯벌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어민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고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새만금, 이 거대한 힘 앞에서 수많은 도요새, 백합과 조개 그리고 게들, 갯벌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뭇 생명은 죽어가고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새만금지역의 거전갯벌에는 큰뒷부리도요새 긴다리도요새, 붉은부리도요새 등등,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철새들이 때가 되면 날아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유도 모른 채 많은 철새가 죽어가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수천 킬로미터의 비행을 하면서 이곳을 찾아온 도요새 몇 마리가 메마른 갯벌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고 끝내 주검으로 남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들고 다니면서 갯벌을 보호애야 한다 호소하는 조류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친구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내어준 봉고차에 우리를 태우고 안내를 하시던 그곳 교회 나이 많은 장로님은 "밀물 때와 썰물 때를 맞추어 바구니와 망태기를 든 아이들과 여인네, 지게를 지고 백합을 주우려고 나가는 할아버지들, 또 갯벌에서 개구리를 잡는 민첩한 도요새의 정겨운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한편으로 세간에서는 이 웅장한 새만금을 가리켜 바다의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만리장성,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始皇帝)가 연과 조가 축성한 북변의 장성을 연결하여 서쪽으로 더 연장시켰는데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대비하고 백성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명분을 꿈으로 포장하여 앞에 내세운 강자의 욕심일 뿐이었다. 결국 그 강자는 백성을 위한다는 자신의 거짓 꿈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약자의 생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진정한 꿈은 너도나도 모두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현대에도 강자의 무리한 욕심은 꿈이란 이름으로 포장시켜 약자를 희생시키고서야 얻어내는 것, 정작 약자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헛된 것이요, 재앙일 뿐이다.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갯벌의 무수한 작은 생명을 죽여서 일구어낸 새만금, 수많은 젊은 생명을 희생시켜서 일구어낸 진시황제의 만리장성, 결국 약자인 너를 울게 해야만 이룩해 내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이 모두가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욕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너무 지나친 말일까?
나는 생태보존학자도 아니고 갯벌을 사랑하는 어민의 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거대한 새만금 방조제 위를 달리는 내내 마음이 많이 울적했다. 왜일까? 그것은 새만금이나 만리장성을 보면서 내게는 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의 무리한 욕심과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기독교계의 현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를 외쳐대며 바벨탑을 쌓아올리던 고대 사람들처럼 무엇이든지 크고 높고 강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 그들을 큰 종이라 따르며 숭배하는 어리석은 성도들,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기복신앙가들이 주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은 그들의 무리한 욕심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 포장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수히 작은 교회를 쓸어트리고 성도들의 헌금을 갈취한다.
교회당 건물은 주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부와 권력과 능력의 상징이라도 되듯 하늘 높은지 모르고 더 크게 더 높게 올라만 간다. 어디 건물뿐이랴, 이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영혼을, 사업,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것 같다. 성도들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단다. 사업가적 마인드가 뛰어난 몇몇 삯군 목자들은 목회보다는 성도관리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시켜 사고팔기도 한다. 이런저런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 상품들로 성도들의 영혼을 유치(그렇다 유치가 아니고 무엇이랴)하기 급급하다.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신자들을 각종 프로그램과 상품으로 미혹해서 더 많이 수용하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작은 교회도 엄연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이건만, 약한 교회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교회 내에서도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문어발처럼 자신의 교세 넓히기 경쟁이라도 하듯,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많은 돈과 인재들을 투자해서 지교회를 세운다. 이런 비본질을 본질보다 더 크게 부각시키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반기련도, 극단적 신비주의 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각종 이단 사설을 양산(produce)해 내는 그 어떤 단체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며 남을 짓밟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이랴? 우리는 이제 서로 연합해야 산다. 연합하여 일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힘을 합쳐서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엄청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서로 도우는 교회가, 서로 도우는 성도가 되어야 그날에 주님께로부터 잘했다 칭찬과 함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00여 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슴에 각인시키고 결코 잊지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죽음을 택하셨다.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삼 일 만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부활의 영광을 쟁취하신 것이다.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구속을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뉘어 사역하시는 아픔을 참으셨으며, 협력하여 일하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셨다!!
성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 십자가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큰 교회는 내 몸집만 키울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믿음에 강한 성도는 약한 성도를 도와야 한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나도 죽는다. 성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 상생(相生)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말씀이 인정하지 않는 비전은 불법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무리 그 업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이웃과 이웃, 목회자와 성도, 교회와 교회, 국가와 국가, 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한 개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23),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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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은혜
2010-10-28 14:25
74.xxx.73
별똥별님이 대한민국에서도 번쩍하셨군요.
주님의 마음도 동일하실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에게 문안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어떤 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을 끊지는 못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아멘넷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그것은 님같은 분들의 따스한 소식과 격려의 글에 힘을 얻는 것이지요..
별똥별님 축복하고 감사합니다.
비둘기
2010-10-26 13:53
66.xxx.79
세상적인 욕구로 미혹되는 욕망들이 빚어낸
무너지고 파괴되는 세상속에 살아가고 있음에
찾아오신 예수님 그 피의 손길 머무는 곳에
말씀과 성령의 눙력이 함께 하시어 살아나는 양심
화평을 위하여 나의 생각과 욕심이 버려지는
정다움속에서 세워가는 가정,사회, 교회의 회복으로
오늘도 이곳에 복음의 말씀이 흘러내리게
하시어 영생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
겸손한 마음으로 이곳에 내려놓으신
별똥별님의 글이 구비구비 흘러가기를...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서재생
2010-10-26 08:34
68.xxx.135
별똥별 사모님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김성훈
2010-10-25 20:15
69.xxx.27
《Re》짐보 님 ,
김 오동님;
"원래 "회개"라고 하는 말이 처음 생각은 틀렸으니까 다시 생각한다는 뜻"
제가 기다렸던 주제을 펼쳐 주셨읍니다.
미아리점장이의 생계를 해결해 주는 한국인들의 framed mentality와 행동양식 이 여기서 시작 합니다 .
감동과 감정은 노래방을 나서고 극장을 나선 후에는 털어 버려 야 합니다 .
원래 회개가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요?
김오동
"다시 생각한다"고 할때 생각만 바꾸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바뀐 생각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지요. 전인적(全人的) 변화이겠지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이 "그들이 말은 잘하지만, 그 말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마23:3하)
최근에 우리들 교회에서 회개없는 축복만을 외치면서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듣기 원하는 말씀"만을 골라 전하는 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별똥별님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까 더 이상의 토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25 20:36
218.xxx.20
tm 동감입니다. 실천의지 없이 말만하면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와 같읍니다. 삭게오는 범죄할 경우 사배를 갚겠다고 예수님께 고백했읍니다. 바리새인들은 실천에 대한 것은 전무했읍니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한적이 없지요. 10/25 20:54
208.xxx.4
김오동
어떤 철학자의 말이,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으나 사실은 "하나님"이란 사람이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했죠.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란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이 말씀하시는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탕자가 "제 정신이 들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10/25 21:14
218.xxx.20
김오동
별똥별님의 "칭찬"에 고래같은 이 사람이 분별없이 춤추고 있는 느낌입니다. 좋은 글을 대하게 되면 영혼이 작약하고, 마음이 기쁘고, 삶에 활력이 생깁니다. 그때문에 자주 찾게 되고, 한 두마디 하다보니 저로서는 너무 나간 느낌입니다.
한가지 바람(願)이 있다면 여기 글을 올리는 분들이 피차간 상대방의 신앙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각박한 삶의 현실에서 피곤해진 마음들이 여기서 좋은 글, 좋은 이웃을 만나서 격려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새벽별이신 주님 앞에서 하나의 별똥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10/26 18:29
218.xxx.172
짐보
2010-10-23 16:52
96.xxx.163
나의 꿈이 너를 울리게 한다 면
슬픔이지요.
확신에 찬 진리의 말로도
상대의 어린 믿음에 걸림돌이 된다면
나의 표현이든
내가 네게 닿아가는 진리의 덕이 부족함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확실한건
너와 나 사이의 진리는 사랑을 동반한다!
너와 나 사이의 사랑은 진리를 동반한다! 아닐까요?
부부든 친구사이든 누구든.
셈 없이 헤아림 없는 은혜에 빚진 사랑.
어느덧 중년이 되어보니
진리의 띠를 두른 진정한 신앙인의 생활을 하려는 고민 중에
화려함을 회피합니다.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
집도, 교회의 건물도, 크고 화려한 장식보단 단출한 단순함
구호가 없는 순수한 치장
마치 성형수술 하지 않은 본 얼굴처럼 있는 그대로가 청순한 아름다움 같이
진한 화장을 하듯 화려함을 꿈꾸는 세대...
말과 말, 말 찬치 보다는
때로는 침묵하며 기다리며 성급히 결정하지 않는
그의 뜻을 헤아려 진리를 바라보는 믿음
그런 믿음은, 과거에 이어진 현재가 오늘이듯이
오늘은, 닿아오는 미래가 믿음의 끈으로 이어진 소망 날
오늘은, 믿음으로 바라본 미래의 소망이 연결된 축복의 날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의 끈으로 연결하듯.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8:38-39]
자연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지친 육체와 마음을 치료합니다.
저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산과들 바닷가에서
제게 갇힌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내 기도의 응답에 갇힌 하나님
내 가정의 축복에 갇힌 하나님
내 교회의 건물에 갇힌 하나님
내 얄팍한 지식에 갇힌 하나님
나만의 하나님...
틀로 모형을 짜듯이 제게 묶어 매인
제가 만든 하나님의 허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니요?
이보다 큰 기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교회,교단,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글을 옮겨 놓습니다.
그의 기도에 비쳐진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지
몇 단어를 바꾸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면서.
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오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리려 놓으신 듯 한 이곳에는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고집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생명,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이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김오동 "새만금"에서 엄청난 인간의 작위적(作爲的) 의도를 보면서
그 속에 잉태된 재앙과 불행의 씨앗을 예측하는 것이 무지의 소치일까요?
"자연을 자연되게 하라."고 주장해 봅니다.
"제게 갇힌 하나님.....나만의 하나님....제가 만든 하나님의 허상"
이 모두가 우상이죠.
옛날 애굽에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해방시키셨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으로 하나님되시게 하라(Let God be God!)"고 주장해 봅니다.
변화는 엄청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하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줄 압니다.
그런 일이 이 작은 공간에서 이미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귀한 글 잘 읽고 감사드립니다. 10/23 20:12
218.xxx.169
짐보
김오동 목사님
반갑습니다.
저도 새만금을 사진으로만 보았습니다만
잘못된 인위적인 개발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자연 파괴범인 아파트,작은 나라라 대안이 없었겠지만
투기로 만들어 놓은 시골의 논 한폭판의 흉한 아파트들
광화문 광장도 그렇고,나무나 심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신학도
하나님을 그 신학에 매여 놓고...
신학이 교회가 없어서
한국사회가 성적으로 타락하고 성형공화국이 되었고
성도 라면서 드라마에 열광하고,연예인을 공인 취급하는 현실
(한국과 교포사회가 무엇이 다른지)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건
교회가 타락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교회중심에 매인 하나님을 만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10/25 15:20
96.xxx.163
짐보
별똥별님, 반갑게 맞아주시고 과찬하시니 황송합니다.
저는 꽃가꾸기 등산 들과 바다로 여행,자전거 타기,골프등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활동이 쉼이라 낮잠도 없고 방구석에서 티비 비디오 보는걸 질색이라
제 아내가 별종이라 합니다만 전 평범한 사람인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도 절 따라합니다.
제가 사는 곳도 시골 비스무리한 나무가 많은 조용한 동네
오늘 아침에 바라본 뒤뜰은 아직도 꽃이 만발해 있고
아침 이슬이 맺힌 나팔꽃이 아침을 반깁니다.
(아침이슬님은 잘 계신지?)
한 무리의 새가 앉았다 지나가면
다른 종류의 새가 오는걸 바라보면서
하루 하루가 다르게 물드는 나무잎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가 닿아옴을 느낌니다만
악하고 게으른 자는 고민스럽습니다.
제가 교회가 복음에 걸림돌이 되어간다는... 10/25 15:50
96.xxx.163
짐보
성령의 열매님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불러주시고,고맙고 미안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도 아픈사람이 많습니다.
얼마전 친구도 stroke 이 와 몸이 불편하고
님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10/25 15:57
96.xxx.163
김오동
짐보님,
별똥별님이 마련해 놓은 아름다운 가상공간에서 만나뵙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기대합니다.
흔히 현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위기는 "인식(認識)의 위기"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지만 어쩌면 인식의 전환도 회개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원래 "회개"라고 하는 말이 처음 생각은 틀렸으니까 다시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토대하여 이웃과의 조화로운 삶, 피조세계와의 조화로운 삶, 그리고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할 줄 압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에(마음에서 나오는 것) 그리스도인인 나 한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10/25 18:27
218.xxx.4
성령의열매
2010-10-22 04:18
24.xxx.29
사모님!
글은 벌써 읽었는데 요즘 바빠서 인사도 못드렸네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무례하지않게 남을 배려하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나의 꿈을 이루어가고 싶네요!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며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을
내어미는 주님의 딸이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 감사드리구요. 건강하세요!
조경윤
2010-10-22 00:45
74.xxx.85
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한 개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별똥별님의 칼럼 중에서
별똥별님의 결론에 100% 아니 1000% 공감하고 적극 지지합니다. 귀한 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조금전에 할로윈에 대한 경각심과 왜 기독교인들이 할로윈으로부터 우리의 자녀들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어야 하는지에 관한 칼럼의 원고를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멘넷에 들어와 보니 사모님의 글이 눈에 띄어서 관심을 갖고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바람처럼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김성훈
2010-10-21 10:50
69.xxx.27
《Re》누지문서 님 ,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니
삶이 복잡해지는것 같습니다"
-결국 분별력, 판단력, 인상학 과 관상의 '찰라'적 결정이 필요 합니다.
plus 직접적, 간접 경험이 바른 판단에 이르게 하지요 .
brand launching을 해보거나 trends anaylsis 를 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윤도현의,"가을 우체국앞에서"라는 노래가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 가?"
누지문서
2010-10-21 06:59
71.xxx.100
"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_ 동감합니다.
삶의 시간이 더할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니
삶이 복잡해지는것 같습니다.
김성훈
2010-10-20 16:16
69.xxx.27
《Re》tm 님 ,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한국이민자중에 애나씨 같은 분들을 종종 만난다....(중략)....인간은 감정이 풍부한 존재라 감정이 북받칠때는 적당히 표현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감정이 더이상 통제와 억압이 안되고 폭팔하듯 밖으로 분출하는 경우도 많다."<<정인아/뉴라이트 상담 카운셀러>>10/20/2010.한국일보
가장 급하고 절실 한 것이 '감정표현'에 대해 솔직해지 길 배우는 것이라 봅니다.
신사도/IHOP에 빠지는 것이 그곳에서는 감정표현이 쉽게 허락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극단적 신비주의 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각종 이단 사설을 양산(produce)해 내는 그 어떤 단체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관념적이 되는 경향은 이런 이유라고 생각 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tm
2010-10-20 14:34
208.xxx.187
우리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적절히 표현하셨군요. 공감합니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헤쳐나가야할 것들이 산재해 있지요. 적어도 구체적 실행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읍니다.
초생달
2010-10-19 20:31
110.xxx.47
별똥별님
반갑습니다. 그동아의긴날을 한국에 다녀오셧구먼요.
[글로벌 명품 새만금] 방조대까지...웅장하고도 자랑스럽게 생각할것입니다,
몇년만에 다녀가셧는지요?
엄청나게 변한모습에 놀라셧을것입니다.
우리같은 어진백성이야말로 시대의흐름에 순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주님안에서 겸손히 살아갈것입니다,
그 어느날 주님을 뵙게되는날까지.....
체르니
2010-10-19 14:40
112.xxx.17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모님^^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고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처럼달처럼
2010-10-19 13:38
24.xxx.13
글쎄요. 하나님은 역사에도 개입하신다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욕심이라고만 보는 것도 쉽지는 않겟지요. 상당수 인간의 욕심이 수반되고 있으나,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어떤 뜻이 있으리라 보구요. ㅎㅎㅎㅎ
바벨탑을 쌓게 하시고 허물게 하시는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들이 또한 있을테니까요.
물론 상당 부분 인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모습이니까요. 죄악의 너울을 쓰고 살아가는 그런 우리들 모습 말입니다.
아마도 인간 세상에서 너도 나도 함께 살아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러니 그러한 곳을 우리는 소망하며 사는 게 아니겠어요?
thomas
2010-10-19 13:36
72.xxx.164
별똥별 님, 오랫만입니다~
한국에 갔다오셨나보죠? 봉고차 타고 새만금에 사는 도요새도 구경하시고..^^*
도요새--이름만 들어도 선현들의 詩가 떠오릅니다!
무슨 신사도운동이네 "치유"집회입네 하며 온갖 잡다한 푸닥거리를 열어서는 "기적과 이사"를 보여준다며 "능력"을 과시하는 거짓되고 허탄한 무리들이 대낮에도 버젓이 횡행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따라 단풍드는 (미국 단풍은 오색단풍이 못되는거 같고 삼색단풍쯤...)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만큼이나 기이하고 아름다운게 없습니다.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이땅에 사는 인간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딤전1:17)
"진정한 꿈은 너도나도 모두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전 이런데 회의적입니다. 너도나도 모두 살리기 위해 공동의 입지를 발견하는 일처럼 귀한게 없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비젼"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 난세를 돌파할 때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고 교단이 힘이 있으면, 우리는 도요새를 읊으며 금강산 단풍놀이 즐기고,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은혜를 우리의 정성을 듬뚝 담아 찬송하기만 하면 되겠지만..ㅎㅎ
주님께서 주시는 비젼을 아멘넷 독자들에게 제시하시는 귀한 일을 앞으로도 더욱 힘있게 감당하시기 바라며, 별똥별님과 교제님! 우리 모두 화이팅!
교제
2010-10-18 21:20
24.xxx.199
[말씀이 인정하지 않는 비전은 불법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무리 그 업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다]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각 사람의 공력이 밝히 드러나는
날, 상 받을 자들과 해 받을 자들과 자신이 행한 일 나열하다
주님의 부인을 당하고 이를 갈 자들이 있을 것이니 야망에 이끌려
헛된 열심으로 허망한 업적 쌓는 것에서 돌이켜 오직 오늘이라는
날 동안 서로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고 불법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분별,주의,경계시키고 이미 받은 말씀과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굳게 지켜 진리안에서 행하도록 서로 권면하는 것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더 절실해 지는 것 같습니다.
교계, 교단차원에서 서로의 부족을 채우고 상보하고 교회가 고르게
성장하도록 방편을 마련,시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로 교훈과 책망함과 바르게 교육함에 유익하다
하였으니.. 분별하여 용납하지 않아야 할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잘못해석하여 그 이름아래 수용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엄히
경계하여야 하고 교회내에 해로운 누룩으로 작용할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책망과 바른 징계가 시행되어져 각 교회내 성찰,자정작용이
필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요즘 더더욱 기독교에 대해서 외부적인 비방과 비판이 넘치고
내부적인 비리와 그릇된 처사에 대한 고발도 간혹 보게 되는지라
사모님의 글이 더 와닿다 보니 교계와 교회에 대한 희망사항만
열거하게 되네요.
김성훈
2010-10-18 08:17
69.xxx.27
"고통의 원인은 인간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에 대하여”라는 그의 책에서 모든 인간 고통의 5분의 4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농노의 아들이 장군의 개를 괴롭혔다 하여 그 장군은 그 아이를 부모가 보는 앞에서 한 겨울에 발가벗겨 놓고 개로 하여금 물어뜯어 죽게 합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황상하목사님의 칼럼중에서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동시에 관계는 우리를 구속하고 괴롭힌다. 나를 힘들게 만드는 건 결국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는 나 역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뜻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모의 속을 썩이고, 연인의 애를 태우고, 친구들의 화를 돋우며 지금껏 살아왔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들뿐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참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몇 번 고백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대사가 몇 차례 반복된다.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나 자신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 사실을 서로가 공감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괴물이 아닌 사람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
-조선일보 일사일언/김 기홍 소설가 10/18/2010
"거전갯벌은 수천 수만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갯벌은 거기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갯벌에서 태어나고 갯벌에서 자라고 갯벌과 함께 늙어가다가 갯벌의 품속에 안기는 사람들, 갯벌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갯벌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어민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고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
한 순간의 ah! experience 때문에 앞으로 이세상의 나올 당신들의 자식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지 도 모른 다는 것을 모른 척합니다. 대한민국역사 60년전에
"앞으로 미국의젊은이 들이 한국말을 배우러 올거야" 했다면 분명 미친 놈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vision이란 것은 달콤한 사탕 발림이 아니라 정확한 역사전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김오동
2010-10-18 04:22
218.xxx.68
글을 올리고 나서 보니 마지막 부분에 "-사라지고 말것이기입니다."라고 했군요. "-사라지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로 바로잡습니다. 그 덕분에 한 번 더 쓰게 되는군요. 4대간 사업을 바라보는 환경운동가들은 "낙동강은 강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샬롬!
김오동
2010-10-18 04:14
218.xxx.68
별똥별님,
오늘은 방을 달리해서 만나게 되는군요. 느낌이 새롭습니다. 굳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글을 올리는 것은 우리 주변에 건전한 인성(지성, 영성)을 가진 분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만금 방조제를 보시고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아!"하는 것을 소위 "아! 경험(aha! experience)"이라고 했더군요.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동안 엄격하기만 한 줄로 알았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말을 못하고 "아!"하고 외마디 소리만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아! 경험"입니다. 이럴때 우리 영성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람직한 "아! 경험"이겠지요. 여기에 엄청난 창조와 치유의 효과가 있답니다.
그런데 별똥별님의 "아!"는 새만금 방조제의 그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이것은 부정적인 두려움의 감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유행가 가수가 "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애절한 이별의 노래를 불렀으나 지금은 정말 바다가 육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위적 생태환경의 변화가 몰고 올 재앙은 결코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닐 것이요, 설사 그것이 먼 훗날 일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번에 "녹색은총"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짓밟을 수 없듯이 녹색은총도 역시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보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인간을 우주의 막내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살아가야할) 이 땅과 피조세계는 막내둥이인 인간의 욕심에 의하여 망가지고 있습니다(욕심-죄-사망). 그야말로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에 대해서도 인간은 탕자라고 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개구일성(開口一聲)은 "너희 삶을 고쳐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있다."(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절박한 말씀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상전벽해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꿈꾸던 유토피아는 사라지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호, 통재라! 부끄러운 글을 용서해주십시오.
새만금, 그 어마어마하고 웅장한 모습에 놀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벌어졌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쭉 곧은 교각 위 단정한 도로를 따라 얼마쯤 들어가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 입구에 서있는 거대한 천사의 석고상이 아직은 때 묻지않아 새하얗게 눈부시다. 우리나라 지도를 바꾸고 있다고 하는, 이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디찌 방조제(32.5km)보다 더 긴 33km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새만금 그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전망대를 벗어나 한참을 더 달려가니, 눈앞에 보이는 둑길 제방 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곳 들판에는 소란한 세상 소리, 자동차 소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벼알은 가을 땡볕 아래서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채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니, 넓디넓은 갯벌, 이미 메말라버린 거전갯벌에는 바다식물 나무 제가 듬성듬성 흩어진 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고 거기에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 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꿈꾼다고 하는 곳,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 방조제는 단순한 방조제가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새만금이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생각도 지역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지역 한계를 벗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새만금의 미래도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역설했다고 한다.
또 "새만금은 4대강 사업과 더불어 대한민국 저탄소 녹색 성장을 위한 우리의 또 다른 노력, 4대강 사업이 죽어가는 강을 살리는 것이라면 새만금 사업은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적이고 계획적인 녹색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새만금은 나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울 수 있도록 웅장한 간척사업장이요, 대통령의 꿈, 한 사업가의 원대한 비전이 현실화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면, 그곳 어민들과 생태보존학자들은 새만금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울상을 짓는다고도 한다. 거전갯벌은 수천 수만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갯벌은 거기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갯벌에서 태어나고 갯벌에서 자라고 갯벌과 함께 늙어가다가 갯벌의 품속에 안기는 사람들, 갯벌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갯벌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어민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고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새만금, 이 거대한 힘 앞에서 수많은 도요새, 백합과 조개 그리고 게들, 갯벌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뭇 생명은 죽어가고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새만금지역의 거전갯벌에는 큰뒷부리도요새 긴다리도요새, 붉은부리도요새 등등,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철새들이 때가 되면 날아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유도 모른 채 많은 철새가 죽어가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수천 킬로미터의 비행을 하면서 이곳을 찾아온 도요새 몇 마리가 메마른 갯벌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고 끝내 주검으로 남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들고 다니면서 갯벌을 보호애야 한다 호소하는 조류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친구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내어준 봉고차에 우리를 태우고 안내를 하시던 그곳 교회 나이 많은 장로님은 "밀물 때와 썰물 때를 맞추어 바구니와 망태기를 든 아이들과 여인네, 지게를 지고 백합을 주우려고 나가는 할아버지들, 또 갯벌에서 개구리를 잡는 민첩한 도요새의 정겨운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한편으로 세간에서는 이 웅장한 새만금을 가리켜 바다의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만리장성,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始皇帝)가 연과 조가 축성한 북변의 장성을 연결하여 서쪽으로 더 연장시켰는데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대비하고 백성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명분을 꿈으로 포장하여 앞에 내세운 강자의 욕심일 뿐이었다. 결국 그 강자는 백성을 위한다는 자신의 거짓 꿈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약자의 생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진정한 꿈은 너도나도 모두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현대에도 강자의 무리한 욕심은 꿈이란 이름으로 포장시켜 약자를 희생시키고서야 얻어내는 것, 정작 약자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헛된 것이요, 재앙일 뿐이다.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갯벌의 무수한 작은 생명을 죽여서 일구어낸 새만금, 수많은 젊은 생명을 희생시켜서 일구어낸 진시황제의 만리장성, 결국 약자인 너를 울게 해야만 이룩해 내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이 모두가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욕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너무 지나친 말일까?
나는 생태보존학자도 아니고 갯벌을 사랑하는 어민의 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거대한 새만금 방조제 위를 달리는 내내 마음이 많이 울적했다. 왜일까? 그것은 새만금이나 만리장성을 보면서 내게는 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의 무리한 욕심과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기독교계의 현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를 외쳐대며 바벨탑을 쌓아올리던 고대 사람들처럼 무엇이든지 크고 높고 강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 그들을 큰 종이라 따르며 숭배하는 어리석은 성도들,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기복신앙가들이 주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은 그들의 무리한 욕심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 포장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수히 작은 교회를 쓸어트리고 성도들의 헌금을 갈취한다.
교회당 건물은 주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부와 권력과 능력의 상징이라도 되듯 하늘 높은지 모르고 더 크게 더 높게 올라만 간다. 어디 건물뿐이랴, 이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영혼을, 사업,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것 같다. 성도들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단다. 사업가적 마인드가 뛰어난 몇몇 삯군 목자들은 목회보다는 성도관리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시켜 사고팔기도 한다. 이런저런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 상품들로 성도들의 영혼을 유치(그렇다 유치가 아니고 무엇이랴)하기 급급하다.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신자들을 각종 프로그램과 상품으로 미혹해서 더 많이 수용하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작은 교회도 엄연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이건만, 약한 교회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교회 내에서도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문어발처럼 자신의 교세 넓히기 경쟁이라도 하듯,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많은 돈과 인재들을 투자해서 지교회를 세운다. 이런 비본질을 본질보다 더 크게 부각시키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반기련도, 극단적 신비주의 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각종 이단 사설을 양산(produce)해 내는 그 어떤 단체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며 남을 짓밟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이랴? 우리는 이제 서로 연합해야 산다. 연합하여 일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힘을 합쳐서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엄청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서로 도우는 교회가, 서로 도우는 성도가 되어야 그날에 주님께로부터 잘했다 칭찬과 함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00여 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슴에 각인시키고 결코 잊지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죽음을 택하셨다.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삼 일 만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부활의 영광을 쟁취하신 것이다.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구속을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뉘어 사역하시는 아픔을 참으셨으며, 협력하여 일하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셨다!!
성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 십자가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큰 교회는 내 몸집만 키울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믿음에 강한 성도는 약한 성도를 도와야 한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나도 죽는다. 성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 상생(相生)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말씀이 인정하지 않는 비전은 불법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무리 그 업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이웃과 이웃, 목회자와 성도, 교회와 교회, 국가와 국가, 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한 개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23),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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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은혜
2010-10-28 14:25
74.xxx.73
별똥별님이 대한민국에서도 번쩍하셨군요.
주님의 마음도 동일하실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에게 문안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어떤 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을 끊지는 못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아멘넷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그것은 님같은 분들의 따스한 소식과 격려의 글에 힘을 얻는 것이지요..
별똥별님 축복하고 감사합니다.
비둘기
2010-10-26 13:53
66.xxx.79
세상적인 욕구로 미혹되는 욕망들이 빚어낸
무너지고 파괴되는 세상속에 살아가고 있음에
찾아오신 예수님 그 피의 손길 머무는 곳에
말씀과 성령의 눙력이 함께 하시어 살아나는 양심
화평을 위하여 나의 생각과 욕심이 버려지는
정다움속에서 세워가는 가정,사회, 교회의 회복으로
오늘도 이곳에 복음의 말씀이 흘러내리게
하시어 영생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
겸손한 마음으로 이곳에 내려놓으신
별똥별님의 글이 구비구비 흘러가기를...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서재생
2010-10-26 08:34
68.xxx.135
별똥별 사모님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김성훈
2010-10-25 20:15
69.xxx.27
《Re》짐보 님 ,
김 오동님;
"원래 "회개"라고 하는 말이 처음 생각은 틀렸으니까 다시 생각한다는 뜻"
제가 기다렸던 주제을 펼쳐 주셨읍니다.
미아리점장이의 생계를 해결해 주는 한국인들의 framed mentality와 행동양식 이 여기서 시작 합니다 .
감동과 감정은 노래방을 나서고 극장을 나선 후에는 털어 버려 야 합니다 .
원래 회개가 하느님의 뜻이 아닌가요?
김오동
"다시 생각한다"고 할때 생각만 바꾸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바뀐 생각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지요. 전인적(全人的) 변화이겠지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이 "그들이 말은 잘하지만, 그 말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마23:3하)
최근에 우리들 교회에서 회개없는 축복만을 외치면서 성도들이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니라 "듣기 원하는 말씀"만을 골라 전하는 편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별똥별님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까 더 이상의 토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25 20:36
218.xxx.20
tm 동감입니다. 실천의지 없이 말만하면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와 같읍니다. 삭게오는 범죄할 경우 사배를 갚겠다고 예수님께 고백했읍니다. 바리새인들은 실천에 대한 것은 전무했읍니다. 그들은 진정한 회개를 한적이 없지요. 10/25 20:54
208.xxx.4
김오동
어떤 철학자의 말이,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으나 사실은 "하나님"이란 사람이 자기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했죠.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란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버리고 성경이 말씀하시는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탕자가 "제 정신이 들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10/25 21:14
218.xxx.20
김오동
별똥별님의 "칭찬"에 고래같은 이 사람이 분별없이 춤추고 있는 느낌입니다. 좋은 글을 대하게 되면 영혼이 작약하고, 마음이 기쁘고, 삶에 활력이 생깁니다. 그때문에 자주 찾게 되고, 한 두마디 하다보니 저로서는 너무 나간 느낌입니다.
한가지 바람(願)이 있다면 여기 글을 올리는 분들이 피차간 상대방의 신앙과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피력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각박한 삶의 현실에서 피곤해진 마음들이 여기서 좋은 글, 좋은 이웃을 만나서 격려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새벽별이신 주님 앞에서 하나의 별똥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10/26 18:29
218.xxx.172
짐보
2010-10-23 16:52
96.xxx.163
나의 꿈이 너를 울리게 한다 면
슬픔이지요.
확신에 찬 진리의 말로도
상대의 어린 믿음에 걸림돌이 된다면
나의 표현이든
내가 네게 닿아가는 진리의 덕이 부족함이 아닐까요?
무엇보다 확실한건
너와 나 사이의 진리는 사랑을 동반한다!
너와 나 사이의 사랑은 진리를 동반한다! 아닐까요?
부부든 친구사이든 누구든.
셈 없이 헤아림 없는 은혜에 빚진 사랑.
어느덧 중년이 되어보니
진리의 띠를 두른 진정한 신앙인의 생활을 하려는 고민 중에
화려함을 회피합니다.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
집도, 교회의 건물도, 크고 화려한 장식보단 단출한 단순함
구호가 없는 순수한 치장
마치 성형수술 하지 않은 본 얼굴처럼 있는 그대로가 청순한 아름다움 같이
진한 화장을 하듯 화려함을 꿈꾸는 세대...
말과 말, 말 찬치 보다는
때로는 침묵하며 기다리며 성급히 결정하지 않는
그의 뜻을 헤아려 진리를 바라보는 믿음
그런 믿음은, 과거에 이어진 현재가 오늘이듯이
오늘은, 닿아오는 미래가 믿음의 끈으로 이어진 소망 날
오늘은, 믿음으로 바라본 미래의 소망이 연결된 축복의 날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의 끈으로 연결하듯.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8:38-39]
자연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자연은 우리의 지친 육체와 마음을 치료합니다.
저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산과들 바닷가에서
제게 갇힌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내 기도의 응답에 갇힌 하나님
내 가정의 축복에 갇힌 하나님
내 교회의 건물에 갇힌 하나님
내 얄팍한 지식에 갇힌 하나님
나만의 하나님...
틀로 모형을 짜듯이 제게 묶어 매인
제가 만든 하나님의 허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저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니요?
이보다 큰 기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교회,교단,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언더우드의 기도로 알려진 글을 옮겨 놓습니다.
그의 기도에 비쳐진 모습과 지금 우리의 모습이 무엇이 다른지
몇 단어를 바꾸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면서.
오! 주님,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오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넘어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리려 놓으신 듯 한 이곳에는 지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고집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생명,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이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 주소서.
김오동 "새만금"에서 엄청난 인간의 작위적(作爲的) 의도를 보면서
그 속에 잉태된 재앙과 불행의 씨앗을 예측하는 것이 무지의 소치일까요?
"자연을 자연되게 하라."고 주장해 봅니다.
"제게 갇힌 하나님.....나만의 하나님....제가 만든 하나님의 허상"
이 모두가 우상이죠.
옛날 애굽에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을 해방시키셨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으로 하나님되시게 하라(Let God be God!)"고 주장해 봅니다.
변화는 엄청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 한 사람의 의식이 변하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줄 압니다.
그런 일이 이 작은 공간에서 이미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귀한 글 잘 읽고 감사드립니다. 10/23 20:12
218.xxx.169
짐보
김오동 목사님
반갑습니다.
저도 새만금을 사진으로만 보았습니다만
잘못된 인위적인 개발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자연 파괴범인 아파트,작은 나라라 대안이 없었겠지만
투기로 만들어 놓은 시골의 논 한폭판의 흉한 아파트들
광화문 광장도 그렇고,나무나 심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성경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신학도
하나님을 그 신학에 매여 놓고...
신학이 교회가 없어서
한국사회가 성적으로 타락하고 성형공화국이 되었고
성도 라면서 드라마에 열광하고,연예인을 공인 취급하는 현실
(한국과 교포사회가 무엇이 다른지)
사회가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건
교회가 타락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교회중심에 매인 하나님을 만납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10/25 15:20
96.xxx.163
짐보
별똥별님, 반갑게 맞아주시고 과찬하시니 황송합니다.
저는 꽃가꾸기 등산 들과 바다로 여행,자전거 타기,골프등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활동이 쉼이라 낮잠도 없고 방구석에서 티비 비디오 보는걸 질색이라
제 아내가 별종이라 합니다만 전 평범한 사람인데
언제부터인가 아내도 절 따라합니다.
제가 사는 곳도 시골 비스무리한 나무가 많은 조용한 동네
오늘 아침에 바라본 뒤뜰은 아직도 꽃이 만발해 있고
아침 이슬이 맺힌 나팔꽃이 아침을 반깁니다.
(아침이슬님은 잘 계신지?)
한 무리의 새가 앉았다 지나가면
다른 종류의 새가 오는걸 바라보면서
하루 하루가 다르게 물드는 나무잎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가 닿아옴을 느낌니다만
악하고 게으른 자는 고민스럽습니다.
제가 교회가 복음에 걸림돌이 되어간다는... 10/25 15:50
96.xxx.163
짐보
성령의 열매님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불러주시고,고맙고 미안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도 아픈사람이 많습니다.
얼마전 친구도 stroke 이 와 몸이 불편하고
님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10/25 15:57
96.xxx.163
김오동
짐보님,
별똥별님이 마련해 놓은 아름다운 가상공간에서 만나뵙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기대합니다.
흔히 현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원적인 위기는 "인식(認識)의 위기"입니다. "회개"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지만 어쩌면 인식의 전환도 회개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원래 "회개"라고 하는 말이 처음 생각은 틀렸으니까 다시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토대하여 이웃과의 조화로운 삶, 피조세계와의 조화로운 삶, 그리고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할 줄 압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결과이기 때문에(마음에서 나오는 것) 그리스도인인 나 한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10/25 18:27
218.xxx.4
성령의열매
2010-10-22 04:18
24.xxx.29
사모님!
글은 벌써 읽었는데 요즘 바빠서 인사도 못드렸네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무례하지않게 남을 배려하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나의 꿈을 이루어가고 싶네요!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잘 감당하며 소자에게 냉수 한그릇을
내어미는 주님의 딸이 되길 기도합니다.
말씀 감사드리구요. 건강하세요!
조경윤
2010-10-22 00:45
74.xxx.85
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한 개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별똥별님의 칼럼 중에서
별똥별님의 결론에 100% 아니 1000% 공감하고 적극 지지합니다. 귀한 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조금전에 할로윈에 대한 경각심과 왜 기독교인들이 할로윈으로부터 우리의 자녀들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 주어야 하는지에 관한 칼럼의 원고를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멘넷에 들어와 보니 사모님의 글이 눈에 띄어서 관심을 갖고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바람처럼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김성훈
2010-10-21 10:50
69.xxx.27
《Re》누지문서 님 ,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니
삶이 복잡해지는것 같습니다"
-결국 분별력, 판단력, 인상학 과 관상의 '찰라'적 결정이 필요 합니다.
plus 직접적, 간접 경험이 바른 판단에 이르게 하지요 .
brand launching을 해보거나 trends anaylsis 를 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윤도현의,"가을 우체국앞에서"라는 노래가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 가?"
누지문서
2010-10-21 06:59
71.xxx.100
"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_ 동감합니다.
삶의 시간이 더할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 아니라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니
삶이 복잡해지는것 같습니다.
김성훈
2010-10-20 16:16
69.xxx.27
《Re》tm 님 ,
"필자는 상담을 하면서 한국이민자중에 애나씨 같은 분들을 종종 만난다....(중략)....인간은 감정이 풍부한 존재라 감정이 북받칠때는 적당히 표현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감정이 더이상 통제와 억압이 안되고 폭팔하듯 밖으로 분출하는 경우도 많다."<<정인아/뉴라이트 상담 카운셀러>>10/20/2010.한국일보
가장 급하고 절실 한 것이 '감정표현'에 대해 솔직해지 길 배우는 것이라 봅니다.
신사도/IHOP에 빠지는 것이 그곳에서는 감정표현이 쉽게 허락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극단적 신비주의 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각종 이단 사설을 양산(produce)해 내는 그 어떤 단체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한국사람들이 관념적이 되는 경향은 이런 이유라고 생각 됩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tm
2010-10-20 14:34
208.xxx.187
우리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적절히 표현하셨군요. 공감합니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헤쳐나가야할 것들이 산재해 있지요. 적어도 구체적 실행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읍니다.
초생달
2010-10-19 20:31
110.xxx.47
별똥별님
반갑습니다. 그동아의긴날을 한국에 다녀오셧구먼요.
[글로벌 명품 새만금] 방조대까지...웅장하고도 자랑스럽게 생각할것입니다,
몇년만에 다녀가셧는지요?
엄청나게 변한모습에 놀라셧을것입니다.
우리같은 어진백성이야말로 시대의흐름에 순응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으면서 주님안에서 겸손히 살아갈것입니다,
그 어느날 주님을 뵙게되는날까지.....
체르니
2010-10-19 14:40
112.xxx.17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사모님^^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고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처럼달처럼
2010-10-19 13:38
24.xxx.13
글쎄요. 하나님은 역사에도 개입하신다고 보니 모든 것이 다 욕심이라고만 보는 것도 쉽지는 않겟지요. 상당수 인간의 욕심이 수반되고 있으나,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그 어떤 뜻이 있으리라 보구요. ㅎㅎㅎㅎ
바벨탑을 쌓게 하시고 허물게 하시는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들이 또한 있을테니까요.
물론 상당 부분 인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모습이니까요. 죄악의 너울을 쓰고 살아가는 그런 우리들 모습 말입니다.
아마도 인간 세상에서 너도 나도 함께 살아가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러니 그러한 곳을 우리는 소망하며 사는 게 아니겠어요?
thomas
2010-10-19 13:36
72.xxx.164
별똥별 님, 오랫만입니다~
한국에 갔다오셨나보죠? 봉고차 타고 새만금에 사는 도요새도 구경하시고..^^*
도요새--이름만 들어도 선현들의 詩가 떠오릅니다!
무슨 신사도운동이네 "치유"집회입네 하며 온갖 잡다한 푸닥거리를 열어서는 "기적과 이사"를 보여준다며 "능력"을 과시하는 거짓되고 허탄한 무리들이 대낮에도 버젓이 횡행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따라 단풍드는 (미국 단풍은 오색단풍이 못되는거 같고 삼색단풍쯤...)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만큼이나 기이하고 아름다운게 없습니다.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이땅에 사는 인간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딤전1:17)
"진정한 꿈은 너도나도 모두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전 이런데 회의적입니다. 너도나도 모두 살리기 위해 공동의 입지를 발견하는 일처럼 귀한게 없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비젼"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는 사람끼리 힘을 합쳐 난세를 돌파할 때입니다.
교회가 바로 서고 교단이 힘이 있으면, 우리는 도요새를 읊으며 금강산 단풍놀이 즐기고,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은혜를 우리의 정성을 듬뚝 담아 찬송하기만 하면 되겠지만..ㅎㅎ
주님께서 주시는 비젼을 아멘넷 독자들에게 제시하시는 귀한 일을 앞으로도 더욱 힘있게 감당하시기 바라며, 별똥별님과 교제님! 우리 모두 화이팅!
교제
2010-10-18 21:20
24.xxx.199
[말씀이 인정하지 않는 비전은 불법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무리 그 업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다]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각 사람의 공력이 밝히 드러나는
날, 상 받을 자들과 해 받을 자들과 자신이 행한 일 나열하다
주님의 부인을 당하고 이를 갈 자들이 있을 것이니 야망에 이끌려
헛된 열심으로 허망한 업적 쌓는 것에서 돌이켜 오직 오늘이라는
날 동안 서로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고 불법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분별,주의,경계시키고 이미 받은 말씀과 우리에게 있는 믿음을
굳게 지켜 진리안에서 행하도록 서로 권면하는 것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더 절실해 지는 것 같습니다.
교계, 교단차원에서 서로의 부족을 채우고 상보하고 교회가 고르게
성장하도록 방편을 마련,시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로 교훈과 책망함과 바르게 교육함에 유익하다
하였으니.. 분별하여 용납하지 않아야 할 가르침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잘못해석하여 그 이름아래 수용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엄히
경계하여야 하고 교회내에 해로운 누룩으로 작용할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적인 책망과 바른 징계가 시행되어져 각 교회내 성찰,자정작용이
필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요즘 더더욱 기독교에 대해서 외부적인 비방과 비판이 넘치고
내부적인 비리와 그릇된 처사에 대한 고발도 간혹 보게 되는지라
사모님의 글이 더 와닿다 보니 교계와 교회에 대한 희망사항만
열거하게 되네요.
김성훈
2010-10-18 08:17
69.xxx.27
"고통의 원인은 인간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에 대하여”라는 그의 책에서 모든 인간 고통의 5분의 4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농노의 아들이 장군의 개를 괴롭혔다 하여 그 장군은 그 아이를 부모가 보는 앞에서 한 겨울에 발가벗겨 놓고 개로 하여금 물어뜯어 죽게 합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황상하목사님의 칼럼중에서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동시에 관계는 우리를 구속하고 괴롭힌다. 나를 힘들게 만드는 건 결국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는 나 역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뜻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는 부모의 속을 썩이고, 연인의 애를 태우고, 친구들의 화를 돋우며 지금껏 살아왔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일들뿐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참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라고 몇 번 고백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는 이런 대사가 몇 차례 반복된다.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나 자신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 사실을 서로가 공감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괴물이 아닌 사람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
-조선일보 일사일언/김 기홍 소설가 10/18/2010
"거전갯벌은 수천 수만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갯벌은 거기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갯벌에서 태어나고 갯벌에서 자라고 갯벌과 함께 늙어가다가 갯벌의 품속에 안기는 사람들, 갯벌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갯벌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어민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고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
한 순간의 ah! experience 때문에 앞으로 이세상의 나올 당신들의 자식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지 도 모른 다는 것을 모른 척합니다. 대한민국역사 60년전에
"앞으로 미국의젊은이 들이 한국말을 배우러 올거야" 했다면 분명 미친 놈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vision이란 것은 달콤한 사탕 발림이 아니라 정확한 역사전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김오동
2010-10-18 04:22
218.xxx.68
글을 올리고 나서 보니 마지막 부분에 "-사라지고 말것이기입니다."라고 했군요. "-사라지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로 바로잡습니다. 그 덕분에 한 번 더 쓰게 되는군요. 4대간 사업을 바라보는 환경운동가들은 "낙동강은 강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샬롬!
김오동
2010-10-18 04:14
218.xxx.68
별똥별님,
오늘은 방을 달리해서 만나게 되는군요. 느낌이 새롭습니다. 굳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글을 올리는 것은 우리 주변에 건전한 인성(지성, 영성)을 가진 분을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만금 방조제를 보시고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아!"하는 것을 소위 "아! 경험(aha! experience)"이라고 했더군요.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동안 엄격하기만 한 줄로 알았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말을 못하고 "아!"하고 외마디 소리만 질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아! 경험"입니다. 이럴때 우리 영성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바람직한 "아! 경험"이겠지요. 여기에 엄청난 창조와 치유의 효과가 있답니다.
그런데 별똥별님의 "아!"는 새만금 방조제의 그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 때문은 아니었는지요. 이것은 부정적인 두려움의 감정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유행가 가수가 "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애절한 이별의 노래를 불렀으나 지금은 정말 바다가 육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인위적 생태환경의 변화가 몰고 올 재앙은 결코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닐 것이요, 설사 그것이 먼 훗날 일이라고 할지라도 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난 번에 "녹색은총"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었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짓밟을 수 없듯이 녹색은총도 역시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보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인간을 우주의 막내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살아가야할) 이 땅과 피조세계는 막내둥이인 인간의 욕심에 의하여 망가지고 있습니다(욕심-죄-사망). 그야말로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에 대해서도 인간은 탕자라고 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개구일성(開口一聲)은 "너희 삶을 고쳐라. 하나님 나라가 여기있다."(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절박한 말씀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상전벽해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꿈꾸던 유토피아는 사라지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호, 통재라! 부끄러운 글을 용서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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