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이 우상되게 말라
페이지 정보
최송연ㆍ2008-10-11관련링크
본문
고린도후서 2:12-13
12 When I came to Troas to preach the gospel of Christ, even though a door was opened for me in the Lord, 13 my spirit was not at rest because I did not find my brother Titus there. So I took leave of them and went on to Macedonia.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가장 수고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사도바울’이 떠오른다. 바울은 그야말로 인생 전부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을 기쁘게 여긴 사람이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바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와서 할례파의 평가가 두려워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공석에서 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을 폭로했던 바울이었다. (갈 2장) 그리고 바나바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이유도 제2차 전도여행을 위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한 다툼이었는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실라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행 15장)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행여나 천사가 다른 복음을 제시한다면 그 천사의 머리 위에 저주를 과감히 퍼부을 정도로 복음에 대한 헌신(dedication)이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었다.
다른 사도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하더라도 바울만큼은 복음전파라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사람이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바울 그렇게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는 여기 고후 2:12-13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로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문이 열렸다. 복음을 전파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황금의 기회를 눈앞에 둔 바울은 복음전파에 전적으로 임했어야 한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바울의 행동은 예상을 뒤엎는다.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디도는 바울의 전도팀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아주 아끼는 동역자요, 또한 믿음 안에서 아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디도서 1:4).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에 전념했어야 정상적이다. 최소한 그것이 우리의 예상하는 바이다. 그러나, 바울은 “심령이 편치 못하여” 결국 드로아를 떠났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쓰던 바울이다. (고전 9:16) 그런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가 드로아에 없어서 심령이 편치 못하여서 사역을 거두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다. 복음과 인간관계에서 바울만큼은 복음을 택하는 것이 나의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끼는 형제가 보이지 않아서 염려하는 그런 가운데 그 사역을 고집하지 않았다. 특히 사역하다 보면 사역에 대한 열정이 더 요구될 때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더 하기 원하시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 바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뭐랄까… “우선순위”라고 하기는 좀 위험하지만, 조심스럽게 “순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승무원이 비상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시범을 보여주고 간단한 비디오로 산소마스크 등을 어떻게 사용하라든지 가르쳐준다. 거기에서 항상 이렇게 말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본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다음에 아이를 도우라고. 다시 말해서,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기쁜 소식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역자는 먼저 본인의 삶 안에 은혜와 평안이 넘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만 고집하다 보면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결국 도움을 못 준다. 바울의 경우, 꼭 그런 원리인지 아닌지 100%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것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 마음이 편하지 못한 가운데서 복음전파 사역을 고집하지 않고 사역을 잠시나마 접었다. 바울… 정말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가르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 자주 서 있게 되는데, 내 마음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여유와, 충만함,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겠다. 결국, 복음은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동역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리더쉽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더욱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역이란 말인가? 사역이 우상화된 사례다. 이 시점에 와서 우리는 바울사도의 사역방법을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우리들의 사역자세도 재검토해 보아야만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감당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희생시키며 그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죽이려 함이 아니였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제 아들 QT일기장에 쓴 것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
hkw
2008-10-18 21:31
75.xxx.201
사모님
제 자신이 전도 하는 상황에서도 혹시나하여
조심스럽고 두려움이 드는데...
목회자의길이 얼마나 조심스럽지 않겠읍니까
영생의길을 인도하여야하는 [죽이느냐,살리느냐]길고...주님이 역사하여주시어야하는것이지만요.
말씀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분이나 그러시겠네요.
작은 믿음이지만 어디에서나 빛과 소금의맛을 잊지않도록 노력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젊은갈렙
2008-10-14 01:24
190.xxx.228
평소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사모님의 칼럼을 통해 보게 되어 감사가 됩니다.
제 홈페이지(http://www.vision-trip.net)에도 사모님 이름을 밝히고 올려 놓아도 되겠죠?
사모님께서 쓰신 글처럼 건강하고 바른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평안하세요.
김승민
2008-10-13 20:35
67.xxx.74
참으로 귀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천하보다도 한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사역이 우선인지 사람이 우선인지 쯤은 바르게 인식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역의 촛점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경우들이 많은 교회들의 퇴색을 보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을 해야 하는데,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을 기쁘게하려는 사역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사람을 실족케하지 않는 사역을 해야 할텐데...
agok
2008-10-11 17:58
24.xxx.155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동역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리더쉽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보다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는가?>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의(義) 대신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해 열심을 흉내낸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오늘날의 복음사역자들에게도 일부 퍼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사랑으로 전하는 사역자들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소자 하나라도 실족시키는 것에 대해 어떠한 댓가를 치룬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지 (막 9:42) 기억하고 고전 8:18,27의 바울사도를 본 받아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사역을 해야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늘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비둘기
2008-10-11 16:36
70.xxx.208
주님의 복음위한 구속사역의 선한 일에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어 말씀을 통하여 나누시는 교훈이 모든 사람을 비추시길 기도드립니다
모모
2008-10-11 15:09
207.xxx.21
먼저 하나님께만 영광을....
최 사모님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생수같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목회를 위한 희생이란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평신도와 사역자들이 상처를 받고 내쳐졌는지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역자 한사람이 내쳐지면 그것은 단지 한 사람만이 내쳐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상기해봅니다. 그 사역자 가정의 아픔과 그 사역자로 인하여 주님을 만나 힘을 얻던 동역자들의 아픔을 다시금 곱씹듯이 되새겨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교회안에 들어와있던 물질만능주의,성공주의,신비주의,명사주의,인본주의 등등이 하루빨리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복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부지불식간에 종교다원주의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채 성경보다 한 인물을 옹호하는 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던 차였습니다.
사람과 이 세상 그 어떤곳도 perfect 한 사람과 장소가 없기에 그토록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소망해보았건만 본인들의 경험,체험,지식이 전부인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것 같습니다. 댓글을 쓰는 저 역시도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기에 잘 몰라도 성경을 의지하려고 하는것인데 상대의 모름을 빌미로 자신들의 경험과 체험을 성경보다 우선시하는 현실이 눈물나게 안타깝습니다.
사역자나 평신도나 모두가 주님안에서.십자가의 복음아래서 하나가 되어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나가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승리인
2008-10-11 14:40
76.xxx.181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씀입니다
근대사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인물중의 하나가 사도바울이라고 합니다
과소평가되었다는 뜻이지요
사도바울의 또 다른 진면목을 통하여 바른 사역자의 자세를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첫본 째 글,윈윈(WIN)에 이어 계속되는 귀한 말씀,기대하며 기다리며,기도합니다!1
나그네
2008-10-11 10:14
59.xxx.27
바울사도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천천히 살필수 있도록 귀한 나눔을 주신 사모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과같이 사역이 우상화 되는것을 경계해야할텐데요
정작 모든것을 믿음으로만 밀어 부치는 것이
오랜 관행처럼 그것만이 최선인양 배워 왔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마음으로 감사함을 한껏 전하면서 사모님의 섬김이 가정과 삶의 모든곳에
풍성하게 주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빈의자 올림.
누지문서
2008-10-11 08:21
96.xxx.106
좋은 글입니다.
만약 목사님들이 이러한 점을 깨닫고 유념하여 행동한다면
수많은 평신도들의 마음의 상처를 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그저 아쉬운 바램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에게는 교인 한분한분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보다는 교회의 성장이 무조건 우선이니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irene
2008-10-11 06:54
141.xxx.181
오랫만에사모님의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교회생활가운데에서 평신도로서 교회일에 봉사를 하다보면 너무 조직화된 행정력으로 목사들이 교인들을 다루는것을 보면서 교인이 교회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들때도 있고
목회자들이 교인을 위한 목회가 아닌 교회조직을 유지 발전시키기 의한 목회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볼때
그 목회가 사역이 아닌 직업이든지 아니면 사역이라고는 하되 사역자체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우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담임목사보다 한수 더뜨는 부목사들도 많습니다,
저를 포함한 평신도들도 교회사역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교회일못지 않게 자신의 직장 가정에서의 삶자체가 주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면서 범사에 주님의 뜻을 깨달아가며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정말 현실적으로 적절한 글입니다,
12 When I came to Troas to preach the gospel of Christ, even though a door was opened for me in the Lord, 13 my spirit was not at rest because I did not find my brother Titus there. So I took leave of them and went on to Macedonia.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가장 수고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당연히 ‘사도바울’이 떠오른다. 바울은 그야말로 인생 전부를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을 기쁘게 여긴 사람이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바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와서 할례파의 평가가 두려워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을 때, 공석에서 베드로의 위선적인 모습을 폭로했던 바울이었다. (갈 2장) 그리고 바나바와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이유도 제2차 전도여행을 위해서 마가를 데리고 가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한 다툼이었는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떠나고, 바울은 전도여행을 실라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행 15장)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행여나 천사가 다른 복음을 제시한다면 그 천사의 머리 위에 저주를 과감히 퍼부을 정도로 복음에 대한 헌신(dedication)이 남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뛰어났었다.
다른 사도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하더라도 바울만큼은 복음전파라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사람이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바울 그렇게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는 여기 고후 2:12-13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드로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문이 열렸다. 복음을 전파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황금의 기회를 눈앞에 둔 바울은 복음전파에 전적으로 임했어야 한다. 그런데 13절에 보면 바울의 행동은 예상을 뒤엎는다.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디도는 바울의 전도팀의 일행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아주 아끼는 동역자요, 또한 믿음 안에서 아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디도서 1:4).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에 전념했어야 정상적이다. 최소한 그것이 우리의 예상하는 바이다. 그러나, 바울은 “심령이 편치 못하여” 결국 드로아를 떠났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쓰던 바울이다. (고전 9:16) 그런 바울이 복음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가 드로아에 없어서 심령이 편치 못하여서 사역을 거두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다. 복음과 인간관계에서 바울만큼은 복음을 택하는 것이 나의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아끼는 형제가 보이지 않아서 염려하는 그런 가운데 그 사역을 고집하지 않았다. 특히 사역하다 보면 사역에 대한 열정이 더 요구될 때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사역을 더 하기 원하시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 바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뭐랄까… “우선순위”라고 하기는 좀 위험하지만, 조심스럽게 “순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승무원이 비상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시범을 보여주고 간단한 비디오로 산소마스크 등을 어떻게 사용하라든지 가르쳐준다. 거기에서 항상 이렇게 말한다. 어린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본인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다음에 아이를 도우라고. 다시 말해서,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기쁜 소식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역자는 먼저 본인의 삶 안에 은혜와 평안이 넘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만 고집하다 보면 본인에게도 남에게도 결국 도움을 못 준다. 바울의 경우, 꼭 그런 원리인지 아닌지 100%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것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 마음이 편하지 못한 가운데서 복음전파 사역을 고집하지 않고 사역을 잠시나마 접었다. 바울… 정말 배울 것이 많은 것 같다. 나도 가르치는 (사역자의) 입장에서 자주 서 있게 되는데, 내 마음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여유와, 충만함,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겠다. 결국, 복음은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일환이 아닌가 싶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가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동역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리더쉽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더욱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역이란 말인가? 사역이 우상화된 사례다. 이 시점에 와서 우리는 바울사도의 사역방법을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우리들의 사역자세도 재검토해 보아야만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셔서 감당하신 사역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희생시키며 그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 죽이려 함이 아니였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제 아들 QT일기장에 쓴 것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
hkw
2008-10-18 21:31
75.xxx.201
사모님
제 자신이 전도 하는 상황에서도 혹시나하여
조심스럽고 두려움이 드는데...
목회자의길이 얼마나 조심스럽지 않겠읍니까
영생의길을 인도하여야하는 [죽이느냐,살리느냐]길고...주님이 역사하여주시어야하는것이지만요.
말씀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분이나 그러시겠네요.
작은 믿음이지만 어디에서나 빛과 소금의맛을 잊지않도록 노력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젊은갈렙
2008-10-14 01:24
190.xxx.228
평소에 담아두었던 생각들을 사모님의 칼럼을 통해 보게 되어 감사가 됩니다.
제 홈페이지(http://www.vision-trip.net)에도 사모님 이름을 밝히고 올려 놓아도 되겠죠?
사모님께서 쓰신 글처럼 건강하고 바른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평안하세요.
김승민
2008-10-13 20:35
67.xxx.74
참으로 귀한 은혜의 말씀입니다. 천하보다도 한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사역이 우선인지 사람이 우선인지 쯤은 바르게 인식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역의 촛점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경우들이 많은 교회들의 퇴색을 보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을 해야 하는데,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을 기쁘게하려는 사역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사람을 실족케하지 않는 사역을 해야 할텐데...
agok
2008-10-11 17:58
24.xxx.155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사역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동역자들, 부교역자나 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나는 거룩하고 나는 신령하고 내가 가장 많이 알고…등등의 자고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리더쉽을 따르라 강요하고 있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도 보다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서라면 이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버리고 있는가?>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의(義) 대신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해 열심을 흉내낸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오늘날의 복음사역자들에게도 일부 퍼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복음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사랑으로 전하는 사역자들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소자 하나라도 실족시키는 것에 대해 어떠한 댓가를 치룬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지 (막 9:42) 기억하고 고전 8:18,27의 바울사도를 본 받아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사역을 해야합니다. 물론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늘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비둘기
2008-10-11 16:36
70.xxx.208
주님의 복음위한 구속사역의 선한 일에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시어 말씀을 통하여 나누시는 교훈이 모든 사람을 비추시길 기도드립니다
모모
2008-10-11 15:09
207.xxx.21
먼저 하나님께만 영광을....
최 사모님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생수같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목회를 위한 희생이란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평신도와 사역자들이 상처를 받고 내쳐졌는지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역자 한사람이 내쳐지면 그것은 단지 한 사람만이 내쳐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한번 상기해봅니다. 그 사역자 가정의 아픔과 그 사역자로 인하여 주님을 만나 힘을 얻던 동역자들의 아픔을 다시금 곱씹듯이 되새겨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교회안에 들어와있던 물질만능주의,성공주의,신비주의,명사주의,인본주의 등등이 하루빨리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복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부지불식간에 종교다원주의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채 성경보다 한 인물을 옹호하는 분들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프던 차였습니다.
사람과 이 세상 그 어떤곳도 perfect 한 사람과 장소가 없기에 그토록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소망해보았건만 본인들의 경험,체험,지식이 전부인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것 같습니다. 댓글을 쓰는 저 역시도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기에 잘 몰라도 성경을 의지하려고 하는것인데 상대의 모름을 빌미로 자신들의 경험과 체험을 성경보다 우선시하는 현실이 눈물나게 안타깝습니다.
사역자나 평신도나 모두가 주님안에서.십자가의 복음아래서 하나가 되어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나가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승리인
2008-10-11 14:40
76.xxx.181
적절한 때에 적절한 말씀입니다
근대사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인물중의 하나가 사도바울이라고 합니다
과소평가되었다는 뜻이지요
사도바울의 또 다른 진면목을 통하여 바른 사역자의 자세를 알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첫본 째 글,윈윈(WIN)에 이어 계속되는 귀한 말씀,기대하며 기다리며,기도합니다!1
나그네
2008-10-11 10:14
59.xxx.27
바울사도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천천히 살필수 있도록 귀한 나눔을 주신 사모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과같이 사역이 우상화 되는것을 경계해야할텐데요
정작 모든것을 믿음으로만 밀어 부치는 것이
오랜 관행처럼 그것만이 최선인양 배워 왔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마음으로 감사함을 한껏 전하면서 사모님의 섬김이 가정과 삶의 모든곳에
풍성하게 주의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빈의자 올림.
누지문서
2008-10-11 08:21
96.xxx.106
좋은 글입니다.
만약 목사님들이 이러한 점을 깨닫고 유념하여 행동한다면
수많은 평신도들의 마음의 상처를 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그저 아쉬운 바램뿐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에게는 교인 한분한분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보다는 교회의 성장이 무조건 우선이니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irene
2008-10-11 06:54
141.xxx.181
오랫만에사모님의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교회생활가운데에서 평신도로서 교회일에 봉사를 하다보면 너무 조직화된 행정력으로 목사들이 교인들을 다루는것을 보면서 교인이 교회조직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가 하는 회의가 들때도 있고
목회자들이 교인을 위한 목회가 아닌 교회조직을 유지 발전시키기 의한 목회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볼때
그 목회가 사역이 아닌 직업이든지 아니면 사역이라고는 하되 사역자체가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우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담임목사보다 한수 더뜨는 부목사들도 많습니다,
저를 포함한 평신도들도 교회사역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교회일못지 않게 자신의 직장 가정에서의 삶자체가 주님의 사역이라고 생각하면서 범사에 주님의 뜻을 깨달아가며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정말 현실적으로 적절한 글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