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밭에서의 기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5),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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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ㆍ2016-07-30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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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5) - 마지막회
“눈밭에서의 기도”
기대하고 찾아갔던 이브코브 목사님의 냉담함에 상한 마음이 되어 사택을 돌아 나왔으나 딱히 갈 곳이 없습니다.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니 파랗게 쪽빛을 내뿜는 초승달이 시커먼 구름 속에 가려 보일 듯 말듯 걸렸고 너무 추운 탓인지 몇 개 떠 있는 별들마저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 밤에 또 모진 폭설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음산한 기운이 여간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젠 어쩐다? 뒷일은 생각지 않고 일을 저질러 논 자신을 질책이라도 하는 것일까……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기라도 한 듯 장승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남편이 그날처럼 야속하게 느껴진 때는 다시 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듯 ‘우수리스크’란 곳은 한국으로 치자면 작은 면 소재지 정도의 후진 도시입니다. 그것은 상태가 면 소재지 정도로 후지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땅이 넓은 탓에 모든 것이 가깝게 올망졸망 붙어 있는 것은 또 아닙니다. 역 근처에 호텔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교회 근처에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여인숙이라도 있어서 나그네가 하룻밤 쉬었다 갈만한 곳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선교지를 옮기기 전 ’우수리스크’에서 지내면서 약 6개월 정도 사역을 했기에 그 지역의 실상을 조금은 알고 있던 우리로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차갑고 캄캄한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정말이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한국의 도시들처럼 길가에 가로등이 있어서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그곳에는 택시도 없었고 일반 승용차가 용돈을 벌기 위해서 가끔 사람을 태워주는 정도였으나 그것도 낮시간 동안이지 워낙 추운 곳이라 그런지 캄캄해지기 무섭게 모두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기차역이 가깝다거나 어디로 가는지 알기라도 한다면 혹시 역 구내에서 하룻밤 지새우기라도 하겠지만, 동서남북 천지를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낯선 지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눈밭에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주여, 우리를 살려주소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십시오.” 남편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핑~ 고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곧, 놀랍게도 번개처럼 반짝! 하고 어떤 생각 하나가 나의 머리에 주입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여기 길거리에 이러고 앉아서 죽음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저 멀리 산 너머 동네 어딘가에 한국에서 온 처녀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다고 하였지? 그곳을 찾아가 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선교사님들이란 다름 아닌 한국 감리교 교단에서 파송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보다 2년 정도 먼저 그곳에 미리 와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는 처녀들로, 우리가 “우수리스크”에 처음 갔을 때 만난 여자 선교사님들입니다.
비록 파송 받은 교단은 다르지만 이제 갓 30대 남짓 된 처녀들이 고국을 떠나 이 열악한 곳에 와서 청년들을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며 헌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특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녀들이 ‘우수리스크’ 장터에 나오는 때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따끈하게 만들어 먹이기도 하고 커피도 끓여 주면서 그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잠시나마 가정과 같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한 다음 돌려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선교지를 옮긴 후에도, 그들은 외로웠던지 우리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두서너 번 찾아온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러시아에서는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소고기, 우리가 먹기에는 아까워서 얼음 통에 감추어두었던 것을 꺼내어 달달 볶고 감자와 양파 그리고 당근을 송송 썰어 넣고 미국에서 성도들이 보내어준 카레를 풀고 따끈한 카레밥을 지어줄라치면 두 아가씨 선교사님들은 너무도 맛있다고 어린애들처럼 좋아하면서 즐겁게 먹고 이런저런 선교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허심탄회 모두 털어놓고 깔깔대며 웃기도 하다가 때론 눈물 짖기도 하다가 편안한 마음이 되면 사역지로 되돌아가곤 했던 것입니다.
몇 번 사귐이 있던 그 처녀선교사님들을 찾는다! 아이디어는 기발한 것 같은데…그녀들이 사역하는 곳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를 않은 것이 또 문제였습니다. 이건 차라리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산너머 동네란 곳을 찾아갈 수 있는가?”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얼어붙은 길에 가만히 서 있을 수만은 또 없는 터라 우리는 무작정 산 너머에 있다는 동네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발길을 산쪽으로 돌려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눈이 발목까지 쌓인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터벅터벅, 걷는다기보다는 힘겹게 허우적거리며 움직인다고 해야 옳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대신 불행 중 다행으로 길 양편으로 하얗게 수북이 쌓인 눈 위로 쏟아져내리는 달빛의 반사작용으로 희미하게나마 겨우 우리가 걷는 곳이 길이란 것을 어림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서너 시간 가량 산으로 계속 올라갔을까? 몸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저만치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까 산너머 있다는 동네가 어쩌면 저곳인지도 모릅니다. 저 동네가 우리가 찾는 그 처녀 선교사님들의 동네이기를 바라면서….
동네에 들어서자 기진하여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아파트 (아파트라고 해야 다 낡은 창고 같은 것이지만)의 대문을 무작정 밀고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치우지 않은 탓에 지린내가 확! 덮쳐오지만 가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캄캄한 아파트 층계를 더듬어 올라가니까 철문이 하나 보이고 그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옵니다. 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강도가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무서운 마피아가 기다리고 있을지….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밖에서 얼어서 죽으나 강도에게 잡혀서 죽으나 매한가지란 생각에 무조건 제일 먼저 만난 집의 문을 쾅쾅! 두들겼습니다.
“크토, 땀?(거 누구요?)” 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내다보는 눈 하나. 그들도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탓에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입니다. 하물며 이토록 늦은 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안에서 잠시 망설임 없이 덜커덩! 문빗장 따는 소리와 함께 파랗고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노란 금발의 러시안 중년부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무슨 일이냐? 하고 묻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이 깊어 자정이 훨씬 넘었습니다. 이런 시각에 사람이 자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요. 들어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또 다른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선교부에서 보내어 온 1년 치 생활비, 미화 약 $5, 6,000불 정도의 거액을 집에다 둘 수가 없어서 하얀 천을 만들어 그 띠에 돈을 돌돌 말아 허리에 늘 차고 다녔기에 더욱더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돈이란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애물단지임을 배웠습니다.
여인의 눈이 착하게 보이긴 하지만 들어오란다고 무조건 따라 들어갔다가 자칫 돈만 빼앗기고 밤거리에 쫓겨날 수도 있고 더 심한 경우에는 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당한 것처럼 소리도 없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거의 숨도 쉴 수 없이 질린 채, 더듬거리면서 “혹시 한국에서 온 처녀선교사님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느냐?” 영어 반 러시아어 반, 손짖 반으로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내 아들이 그 처녀 선교사들의 교회에 다닌다. 내 아들이 조금 전 교회에서 돌아와 지금 씻는 중이다. 추울 텐데 따끈한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조금만 기다려라. 아들이 나오면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방안을 힐끗 드려다 보니, 한쪽 구석 난로 위에서는 늦게 온 아들을 위한 것인 듯, 노랗고 큰 양은 주전자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스바씨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죽을 땐 죽더라도….하면서 얼른 따라들어갔습니다. 추워서 덜덜 떨던 몸이라 한 잔의 따끈한 차는 마치 사막에서 생수를 마신 듯 행복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어머니를 닮은 듯, 파란 색의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20대 젊은 청년이 욕실에서 나오더니 깜짝 놀라며 경계하는 얼굴로 불청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후, 흔쾌히 “하라쇼!”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로 바뀝니다. 그 청년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이미 새벽이 가까운 듯, 더욱 캄캄해진 하늘에서는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가더니 허름한 아파트 앞에서 “즈데시(이곳이다.)” 합니다. “오, 주님!” 이곳이 정말 이 밤에 찾지 못하면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그 처녀선교사님의 숙소엘 무사히 찾아온 것일까요? 가슴이 다 두근두근 두근거립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눈을 비비며 "크토 땀?(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처녀선교사님들입니다! 연락도 없이 그것도 한밤중에 불쑥 나타난 우리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여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어머나! 어머나!" 소리를 연신 지르며 와락 껴안기도 하고… 너무 기쁘다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죽었던 가족이 살아서 돌아온 듯,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떨며 환대해주었습니다. 아, 이제는 살았습니다.
선교사님들은 그 밤에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일어나 따끈한 밥을 짓고 한국에서 가져온 별미라면서 신라면을 보글보글 국 대신 끓이고…. …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우리에게 밥을 먹게 한 뒤, 싫다고 사양하는데도 굳이 자신들의 침대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자신들은 마룻바닥에 담요를 깔고 잠을 자는 등… 얼마나 반가워들 하는지요…진심으로 기뻐하며 환대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주의 사랑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주소를 가지고도 잘 찾을 수 없는 낯선 지역,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기이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기이한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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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엽
2016-08-17 09:11
124.xxx.34
위의 글이 별똥별님의 자신의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다른사람의 신앙 이야기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지라 궁금하네요.
그리스도의편지
2016-08-02 05:45
79.xxx.39
형제 중에 한 분이 제가 독일로 오고 나서 이듬해에 러시아 선교로 가서 아직도 그곳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과묵해서 별 이야기를 안하는 터라, 짐작은 하지만 그 어려움을 단지 저의 이해 측면에서만 헤아린 터라....
별똥별님 이야기 행간에서 30여년 간을 그 동토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그 형제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누지문서
별똥별님도 그렇지만 그편님의 형제분도
30간간의 동토 복음에 대한 헌신이 대단하십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이 가장 크리라 믿습니다.^^ 8/2 11:28
71.xxx.9
그리스도의편지
겨우 하는 일이 그기 교회 사업으로 계획하는 일을 위하 눈 먼 돈이 있으면 선교비 보내는 것, 요즘은 필라복음 신문 보내는 정도... 80년도에 한창 러시아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외치던 사람들이 그기서 뼈를 묻을 줄이야 몰랐지요?! 그런 복음의 열정을 보면, 그냥 부끄러울 뿐이지요!! 8/2 12:04
79.xxx.39
샤론
2016-08-01 09:42
64.xxx.54
시베리아의 추운 밤에 ...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모님.
이 것으로서 시베리아 선교 이야기가 마지막이라니 참 섭섭하네요. 더 하여 주셨으면 하는 데.... ㅜ ㅜ
이 것 다음에도 은혜스런 좋은 이야기를 기대할게요. 사모님.
시베리아 선교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사모님 목회 일정을 도우실 것을 기도할게요...""))
“눈밭에서의 기도”
기대하고 찾아갔던 이브코브 목사님의 냉담함에 상한 마음이 되어 사택을 돌아 나왔으나 딱히 갈 곳이 없습니다.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니 파랗게 쪽빛을 내뿜는 초승달이 시커먼 구름 속에 가려 보일 듯 말듯 걸렸고 너무 추운 탓인지 몇 개 떠 있는 별들마저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 밤에 또 모진 폭설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음산한 기운이 여간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젠 어쩐다? 뒷일은 생각지 않고 일을 저질러 논 자신을 질책이라도 하는 것일까…… 할 말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기라도 한 듯 장승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남편이 그날처럼 야속하게 느껴진 때는 다시 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듯 ‘우수리스크’란 곳은 한국으로 치자면 작은 면 소재지 정도의 후진 도시입니다. 그것은 상태가 면 소재지 정도로 후지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땅이 넓은 탓에 모든 것이 가깝게 올망졸망 붙어 있는 것은 또 아닙니다. 역 근처에 호텔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교회 근처에 호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여인숙이라도 있어서 나그네가 하룻밤 쉬었다 갈만한 곳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선교지를 옮기기 전 ’우수리스크’에서 지내면서 약 6개월 정도 사역을 했기에 그 지역의 실상을 조금은 알고 있던 우리로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 차갑고 캄캄한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정말이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한국의 도시들처럼 길가에 가로등이 있어서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그곳에는 택시도 없었고 일반 승용차가 용돈을 벌기 위해서 가끔 사람을 태워주는 정도였으나 그것도 낮시간 동안이지 워낙 추운 곳이라 그런지 캄캄해지기 무섭게 모두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기차역이 가깝다거나 어디로 가는지 알기라도 한다면 혹시 역 구내에서 하룻밤 지새우기라도 하겠지만, 동서남북 천지를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낯선 지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눈밭에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오, 주여, 우리를 살려주소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십시오.” 남편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나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핑~ 고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고개를 들자 곧, 놀랍게도 번개처럼 반짝! 하고 어떤 생각 하나가 나의 머리에 주입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여기 길거리에 이러고 앉아서 죽음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저 멀리 산 너머 동네 어딘가에 한국에서 온 처녀 선교사님들이 사역하고 있다고 하였지? 그곳을 찾아가 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 선교사님들이란 다름 아닌 한국 감리교 교단에서 파송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보다 2년 정도 먼저 그곳에 미리 와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는 처녀들로, 우리가 “우수리스크”에 처음 갔을 때 만난 여자 선교사님들입니다.
비록 파송 받은 교단은 다르지만 이제 갓 30대 남짓 된 처녀들이 고국을 떠나 이 열악한 곳에 와서 청년들을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며 헌신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특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녀들이 ‘우수리스크’ 장터에 나오는 때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데리고 가서 점심을 따끈하게 만들어 먹이기도 하고 커피도 끓여 주면서 그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잠시나마 가정과 같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한 다음 돌려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선교지를 옮긴 후에도, 그들은 외로웠던지 우리가 보고 싶다고 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두서너 번 찾아온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러시아에서는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소고기, 우리가 먹기에는 아까워서 얼음 통에 감추어두었던 것을 꺼내어 달달 볶고 감자와 양파 그리고 당근을 송송 썰어 넣고 미국에서 성도들이 보내어준 카레를 풀고 따끈한 카레밥을 지어줄라치면 두 아가씨 선교사님들은 너무도 맛있다고 어린애들처럼 좋아하면서 즐겁게 먹고 이런저런 선교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허심탄회 모두 털어놓고 깔깔대며 웃기도 하다가 때론 눈물 짖기도 하다가 편안한 마음이 되면 사역지로 되돌아가곤 했던 것입니다.
몇 번 사귐이 있던 그 처녀선교사님들을 찾는다! 아이디어는 기발한 것 같은데…그녀들이 사역하는 곳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를 않은 것이 또 문제였습니다. 이건 차라리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산너머 동네란 곳을 찾아갈 수 있는가?” 막연하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얼어붙은 길에 가만히 서 있을 수만은 또 없는 터라 우리는 무작정 산 너머에 있다는 동네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발길을 산쪽으로 돌려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눈이 발목까지 쌓인 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터벅터벅, 걷는다기보다는 힘겹게 허우적거리며 움직인다고 해야 옳습니다. 가로등이 없는 대신 불행 중 다행으로 길 양편으로 하얗게 수북이 쌓인 눈 위로 쏟아져내리는 달빛의 반사작용으로 희미하게나마 겨우 우리가 걷는 곳이 길이란 것을 어림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서너 시간 가량 산으로 계속 올라갔을까? 몸에서는 진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저만치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까 산너머 있다는 동네가 어쩌면 저곳인지도 모릅니다. 저 동네가 우리가 찾는 그 처녀 선교사님들의 동네이기를 바라면서….
동네에 들어서자 기진하여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아파트 (아파트라고 해야 다 낡은 창고 같은 것이지만)의 대문을 무작정 밀고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치우지 않은 탓에 지린내가 확! 덮쳐오지만 가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캄캄한 아파트 층계를 더듬어 올라가니까 철문이 하나 보이고 그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옵니다. 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강도가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무서운 마피아가 기다리고 있을지….알 수 없는 일이지만 밖에서 얼어서 죽으나 강도에게 잡혀서 죽으나 매한가지란 생각에 무조건 제일 먼저 만난 집의 문을 쾅쾅! 두들겼습니다.
“크토, 땀?(거 누구요?)” 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내다보는 눈 하나. 그들도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탓에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상식입니다. 하물며 이토록 늦은 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안에서 잠시 망설임 없이 덜커덩! 문빗장 따는 소리와 함께 파랗고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노란 금발의 러시안 중년부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무슨 일이냐? 하고 묻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이 깊어 자정이 훨씬 넘었습니다. 이런 시각에 사람이 자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요. 들어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또 다른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선교부에서 보내어 온 1년 치 생활비, 미화 약 $5, 6,000불 정도의 거액을 집에다 둘 수가 없어서 하얀 천을 만들어 그 띠에 돈을 돌돌 말아 허리에 늘 차고 다녔기에 더욱더 무서웠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돈이란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애물단지임을 배웠습니다.
여인의 눈이 착하게 보이긴 하지만 들어오란다고 무조건 따라 들어갔다가 자칫 돈만 빼앗기고 밤거리에 쫓겨날 수도 있고 더 심한 경우에는 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당한 것처럼 소리도 없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거의 숨도 쉴 수 없이 질린 채, 더듬거리면서 “혹시 한국에서 온 처녀선교사님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느냐?” 영어 반 러시아어 반, 손짖 반으로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내 아들이 그 처녀 선교사들의 교회에 다닌다. 내 아들이 조금 전 교회에서 돌아와 지금 씻는 중이다. 추울 텐데 따끈한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조금만 기다려라. 아들이 나오면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방안을 힐끗 드려다 보니, 한쪽 구석 난로 위에서는 늦게 온 아들을 위한 것인 듯, 노랗고 큰 양은 주전자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스바씨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죽을 땐 죽더라도….하면서 얼른 따라들어갔습니다. 추워서 덜덜 떨던 몸이라 한 잔의 따끈한 차는 마치 사막에서 생수를 마신 듯 행복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어머니를 닮은 듯, 파란 색의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20대 젊은 청년이 욕실에서 나오더니 깜짝 놀라며 경계하는 얼굴로 불청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후, 흔쾌히 “하라쇼!”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미소로 바뀝니다. 그 청년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이미 새벽이 가까운 듯, 더욱 캄캄해진 하늘에서는 새하얀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가더니 허름한 아파트 앞에서 “즈데시(이곳이다.)” 합니다. “오, 주님!” 이곳이 정말 이 밤에 찾지 못하면 길거리에서 얼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할 그 처녀선교사님의 숙소엘 무사히 찾아온 것일까요? 가슴이 다 두근두근 두근거립니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눈을 비비며 "크토 땀?(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처녀선교사님들입니다! 연락도 없이 그것도 한밤중에 불쑥 나타난 우리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오히려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여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어머나! 어머나!" 소리를 연신 지르며 와락 껴안기도 하고… 너무 기쁘다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죽었던 가족이 살아서 돌아온 듯,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떨며 환대해주었습니다. 아, 이제는 살았습니다.
선교사님들은 그 밤에 피곤한 기색도 없이 일어나 따끈한 밥을 짓고 한국에서 가져온 별미라면서 신라면을 보글보글 국 대신 끓이고…. …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우리에게 밥을 먹게 한 뒤, 싫다고 사양하는데도 굳이 자신들의 침대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자신들은 마룻바닥에 담요를 깔고 잠을 자는 등… 얼마나 반가워들 하는지요…진심으로 기뻐하며 환대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주의 사랑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주소를 가지고도 잘 찾을 수 없는 낯선 지역,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기이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기이한지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아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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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엽
2016-08-17 09:11
124.xxx.34
위의 글이 별똥별님의 자신의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다른사람의 신앙 이야기입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지라 궁금하네요.
그리스도의편지
2016-08-02 05:45
79.xxx.39
형제 중에 한 분이 제가 독일로 오고 나서 이듬해에 러시아 선교로 가서 아직도 그곳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과묵해서 별 이야기를 안하는 터라, 짐작은 하지만 그 어려움을 단지 저의 이해 측면에서만 헤아린 터라....
별똥별님 이야기 행간에서 30여년 간을 그 동토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 그 형제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누지문서
별똥별님도 그렇지만 그편님의 형제분도
30간간의 동토 복음에 대한 헌신이 대단하십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이 가장 크리라 믿습니다.^^ 8/2 11:28
71.xxx.9
그리스도의편지
겨우 하는 일이 그기 교회 사업으로 계획하는 일을 위하 눈 먼 돈이 있으면 선교비 보내는 것, 요즘은 필라복음 신문 보내는 정도... 80년도에 한창 러시아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외치던 사람들이 그기서 뼈를 묻을 줄이야 몰랐지요?! 그런 복음의 열정을 보면, 그냥 부끄러울 뿐이지요!! 8/2 12:04
79.xxx.39
샤론
2016-08-01 09:42
64.xxx.54
시베리아의 추운 밤에 ...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모님.
이 것으로서 시베리아 선교 이야기가 마지막이라니 참 섭섭하네요. 더 하여 주셨으면 하는 데.... ㅜ ㅜ
이 것 다음에도 은혜스런 좋은 이야기를 기대할게요. 사모님.
시베리아 선교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사모님 목회 일정을 도우실 것을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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